659화
에안두르데는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후배를 각자 자기 학파로 끌어들이려던 친구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왜 그래?”
“안 돼요. 워다나즈 님. 연금술의 즐거움을 알려줘야 한다구요.”
“내가 보기에 에안두르데는 기사가 좀 더 어울릴지도...”
“검은 거북이 탑인데 무슨 기사입니까? 함정 해제하고 자물쇠만 딸 줄 알아도 평생 먹고 사는 데에 문제없습니다.”
“저기 배그렉 교수님 아니냐?”
친구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앞을 쳐다보았다.
에인로가드에서 가끔씩 본 적 있는 무제 교수가 앞에 서있었다.
이한의 말뜻을 바로 이해한 친구들은 일제히 돌아섰다.
“빨리 돌아가자!”
“세상에, 대낮에 에인로가드 교수님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니. 이래도 돼?”
“플라허 시 치안 좋다는 소문 헛소리 아니야?”
‘?’
시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수가 범죄자도 아니고 길거리는 돌아다녀도 될 것 같은데...
허겁지겁 후배를 데리고 달아난 친구들은 세 블록 너머 장난감 가게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왜 장난감 가게 안에?”
“교수님이 가장 안 올 법한 곳이니까.”
이한의 말에 친구들은 감탄했다.
과연 가장 많은 교수들의 사랑을 받는 제자다운 식견이었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이한 일행은 거대한 장난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5층으로 되어 있는 장난감 가게 안에는 고급 외출복을 잘 차려입은 십대 소년소녀들이 신중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고나달테스 공 카드는 요즘 유행에 맞지 않아서...”
“그걸 허점을 노려야...”
“차라리 예전에 나온 축제 기념 고나달테스 공 카드를...”
“그거 정말 실존하는 카드인가? 난 예전부터 그게 진짜 있는 카드인지 모르겠어.”
한쪽에서는 제국 전역에서 수집한 마법사 카드를 팔고.
“와, 이거 봐! 새 에인로가드 스노글로브야.”
“정말 아름답다.”
다른 한쪽에서는 큼지막한 유리구슬 안에 눈 내리는 에인로가드 정경을 담은 스노글로브를 팔고...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거리를 벌렸다.
“다른 장난감. 다른 장난감 찾아보자.”
닐리아보다 더 날카로운 사냥꾼의 눈으로 가게 안을 둘러보던 가이난도는 이한에게 속삭였다.
“이한.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용돈 돌아오면 바로 갚을게.”
“가이난도. 그런데 너 저번 여름 방학에 용돈 안 받고 네가 스스로 벌겠다고 했잖아?”
문득 저번 방학에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 요네르가 물었다.
이한과 친구들이 은화를 긁어모으려는 모습에 감명 받은 가이난도가 분명 ‘나도 스스로 벌겠어!’했던 것 같은데...
“이한.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용돈 돌아오면 바로 갚을게.”
“......”
불리한 말은 못 들은 척 하는 가이난도의 모습에 요네르는 옆에 있는 장난감 무쇠 솥으로 한 대 때릴까 고민했다.
“용돈 돌아오길 바라는 것보다는 네가 직접 버는 게 빠를걸.”
“무, 무슨 소리야. 어머니께서는 다음 주면 분명 주실 거야.”
‘안 주실 것 같은데...’
이한이 보기에 가이난도의 용돈이 끊긴 가장 큰 이유는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이 없다면 용돈이라도 있어야 놀겠지만 친구들이 있다면 용돈이 없어도 잘 놀 수 있지 않겠는가.
크라하 부인께서는 아마 그런 걸 염두에 둔 것 아닐까 싶었다.
“...진짜 안 주실 거 같아?”
가이난도는 슬며시 물었다.
자기도 눈치가 있는 만큼 어머니의 말에서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그러시지 않을까 싶은데.”
“크윽. 스스로 벌어야 한다니. 왜 사람은 일을 해야 하는 건데?”
“요네르도 말했지만 저번 여름 방학에는 스스로 벌고 싶어했잖아. 그 때는 좋아해놓고 왜?”
“스스로 번 돈으로 장난감 사니까 얼마 못 사서 화가 나더라구.”
“......”
“......”
둘은 한심하다는 듯이 친구를 쳐다보았다.
이한은 갖고 있던 의뢰서 중 몇 개를 뽑아서 가이난도에게 내밀었다.
“너도 남는 시간에 이거나 해라.”
“고마워! 잠깐, 이거 연금술이잖아?”
“연금술이 돈 잘 되는 걸 어떡하겠냐.”
“나, 나는 연금술 잘 못하는데...”
“기초 정도니까 요네르한테 배워.”
요네르는 웃으면서 가이난도한테 꺼지라고 손짓했다. 가이난도는 치사한 친척을 비난했다.
딸랑-
문이 열리고 볼라디 교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장난감을 둘러보고 있던 학생들은 경악했다.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음.”
카운터 뒤에 앉아 있던 가게 주인은 볼라디 교수와 꽤 안면이 있었는지 활짝 웃으며 반겼다.
교수는 외투 주머니에서 마법사 카드 몇 장을 꺼내더니 주인에게 내밀었다.
고블린 혼혈은 카드를 확인하더니 감탄했다.
“대단하십니다! 이런 희귀한 카드를... 젊은 시절의 바콴탈라나와 그 비명이라니! 수집가들이 눈물을 흘릴 겁니다.”
볼라디 교수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옆에 있던 가이난도는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왜 그래, 가이난도? 교수님 때문이면 진정해. 어차피 저 교수님은 이한한테만 관심이 있어.”
“...야.”
이한은 친구들의 말에 울컥했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그걸 꼭 말로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저, 저, 저 젊은 바콴탈라나와 바콴탈라나의 비명 카드는 수백년 전에 사라진... 희귀한...”
“무슨 소리야?”
“보물이라는 것 같은데.”
“저 카드가 보물이라고요? 미친 건가요?”
친구들은 수군거렸지만 이한은 가이난도의 말뜻을 이해했다.
마법사 카드는 제국보다 역사가 깊은 게임인 만큼, 희귀한 카드는 어지간한 보물만한 가치가 있었다.
가이난도가 심장마비 직전까지 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저걸 어디서 구하신 거지?’
자기가 파는 물건에 별 관심도 없고 대충 카운터 위에 던져놓는 걸 보니 마법사 카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고블린 혼혈, 타타바츠는 팔짱을 끼고 깊은 고민에 잠겼다.
“으으음... 그런데 말입니다. 교수님. 이제까지 갖다 주신 다른 물건들과 달리, 이건 좀... 문제가 있습니다.”
“뭐지?”
“너무 희귀한 카드라 살 사람이 바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가끔 보물 중에 지나치게 귀하고 비싼 보물은 오히려 살 사람을 찾지 못해서 보관인을 파산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옛날 마법사 카드는 유적에서 발굴되는 물건들 중 꾸준히 수요가 있는 물건에 속했지만 이 카드들은 그것보다도 훨씬 희귀한 카드들.
이걸 구매하려면 타타바츠도 어느 정도 결심과 확신이 필요했다.
“20%만 깎아주십시오. 교수님. 저도 그래야 위험을 부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도록 하...”
볼라디 교수는 흥정에 별 관심 없었는지 바로 수락하려고 했다.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잠깐!”
“?”
“??”
“??!”
가게 주인도, 볼라디 교수도, 심지어 이한 옆에 있던 친구들도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너 뭐하냐 지금??
볼라디 교수는 이한 일행을 발견하고 눈빛에 이채를 드리웠다.
“다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저희는 장난감을 통한 마법 연구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
뒤에서 장난감을 고르던 소년소녀들이 당황스러운 시선으로 이한 일행을 쳐다보았다.
여기 장난감들 중에 마법 걸린 물건들이 많다지만, 마법 연구까지 가능할 정도였다니.
마법사들은 다르긴 하구나!
“교수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젊은 바콴탈라나>와 <바콴탈라나의 비명> 카드는 수백년 전에 사라진 카드. 고나달테스 공 카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카드입니다. 만약 그 가격에 파신다면 차라리 여기 수집가한테 파십시오. 여기 크라하 가문의 가이난도가 그 카드를 사고 싶어합니다!”
“!!!”
타타바츠는 깜짝 놀랐다.
크라하 가문의 가이난도 또한 타타바츠가 잘 아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플라허 시에서 마법사 카드를 구매하는 고객들 중 손꼽히는 큰손!
크라하 가문의 하인들이 구매할 카드 목록을 들고 방문할 때면 타타바츠는 첫사랑을 만날 때보다 더 설레일 정도였다.
“이... 이 분이 가이난도셨다니. 말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무, 무서워. 저 사람.”
가이난도는 이한 뒤로 슬쩍 피했다.
핏발 선 타타바츠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살벌했던 것이다.
“가이난도 님! 제가 악수를 하게 해주십시오!”
“그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카드를 양보하시죠.”
“!”
정신을 차린 타타바츠는 고민에 잠겼다.
‘크라하 가문의 가이난도 같은 고객도 바로 사려고 한다면...’
다른 고객들도 이 소문을 듣는다면 더 먼저 갖고 싶어할 터.
이 정도면 구매자는 확실히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타타바츠가 확보하는 게 무조건 이득이었다. 저런 희귀한 보물을 확보하는 것도 상인의 명성인 것이다.
“정말이십니까? 정말로 사고 싶어하십니까?”
“이, 이한. 나 돈 없어... 돈 없는데 사면 진짜 어머니가 화내신다구.”
“괜찮다. 날 믿어라.”
“사주려고?!”
“개소리는 하지 말고.”
속닥거리는 이한과 가이난도를 본 타타바츠는 확신이 섰다.
저건 사려는 거다!
타타바츠는 다급히 나섰다.
“가이난도 님. 제가 5%를 더 붙여서 사겠습니다.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서 양보해주십시오! 저런 카드를 확보했다는 명예는 이 타타바츠 늙은이에게 정말로 중요합니다. 양보해주신다면 꼭 은혜를...!”
“그, 그러세요.”
가이난도는 이한 뒤에서 얼굴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주인이 내뿜는 기세는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교수님. 이 멍청한 늙은이가 물건의 가치도 몰라보고 실수를 해서 죄송합...”
“그러도록 하지. 다 됐나?”
볼라디 교수는 흥정에 별 관심이 없는 만큼 빠르게 거래를 마쳤다.
타타바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금화 주머니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고맙군.”
교수는 이한 일행에게 다가오더니 감사를 표했다.
-20%에서 +5%가 되었는데 그걸 모를 만큼 볼라디 교수가 둔한 사람은 아니었다.
볼라디 교수가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감사를 표하자 가이난도는 목이 졸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살, 살려줘. 이한. 살려줘.’
그러나 이한은 슬쩍 친구들 뒤로 피한 뒤였다. 볼라디 교수와 대화할 때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버릇이었다.
언제 어떻게 기습할지 알 수 없었으니 거리와 장애물을 최대한 두자!
“아닙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워다나즈 님. 지금 설마 교수님이 손해 보시는 거 때문에 나서신 건가요?”
“응...”
“......”
시아나는 착잡한 눈빛으로 대답하는 이한의 모습을 보니 뭐라고 말할 마음이 쑥 들어갔다.
이걸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보답을 해야 할 텐데.”
“괜찮습니다. 교수님. 하하.”
“식사를 대접하도록 하지.”
“......”
“......”
순간 침묵이 맴돌았다.
친구들은 눈빛으로 ‘누가 거절해봐’라고 외치고 있었다.
“감사함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후배가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다들 경악해서 쳐다보자 에안두르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군가 식사 대접을 권하면 감사 인사를 하는 게 아니었나?
“이 학생은...?”
“올해 신입생입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부탁하셔서 제가 잠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강의에 데리고 올 생각인가?”
“?”
이한은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뒤늦게 볼라디 교수가 ‘자기’ 강의를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후배의 자유...”
“무슨 강의 가르치심니까?”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이라고...”
후배의 눈빛이 흥미로 반짝이자 이한은 아차 싶었다.
“후배. 생각보다 별로 재미 없는 강의다.”
“이한, 이한. 앞에 교수님 계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