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61화 (661/687)

661화

이한은 항변했지만 볼라디 교수는 무시했다.

제자가 그저 겸양의 뜻을 표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한. 너 그런데 시간 마법 연습하고 있었잖아.”

“야. 조용히 해라.”

“아, 아니... 그냥 말한 건데...”

그냥 잊고 있나 싶어서 말했다가 살기 넘치는 시선을 받자 가이난도는 매우 억울해졌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볼라디 교수는 학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움직였다.

몇 블록 걷다 보니 2층으로 된 커다란 붉은 벽돌 건물이 보였다. 간판에는 ‘드워프 형제가 운영하는 <세 마리 까치> 레스토랑’이라고 멋들어지게 휘갈겨있었다.

신이 난 가이난도는 친구들한테 가게를 설명했다.

“여기 괜찮아. 플라허 시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치킨 파이와 세 번째로 맛있는 포터하우스 스테이크를 팔거든!”

“가이난도. 설명은 고맙지만 가게 주인이 옆에서 노려보고 있어.”

이한은 가이난도의 스테이크에는 드워프 침이 들어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수님. 여기 자주 오십니까? 교수님께서 자주 오실 만한 곳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 이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교수님께서 여기 음식값을 못 낼 정도로 가난하시진 않겠지.”

가이난도는 겁먹은 표정으로 소곤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가 너무 미친 소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식 메뉴 이야기한 거였다. 랫포드. 여기 가이난도하고 자리 좀 바꿔주겠나?”

“안 돼! 안 돼!”

가이난도는 저항했지만 친구들한테 붙잡혀 강제로 자리를 교환당했다.

“요네르 옆은 싫다구!”

“나도 네 옆은 싫으니까 저 아래 바닥으로 내려갈래?”

떠드는 친구들은 무시하고,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자리에 앉은 손님들이 즐기는 음식만 봐도 고기 요리 전문인 가게였다. 채식을 즐기는 볼라디 교수가 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용병들이나 모험가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오지. 평가가 좋더군.”

“!”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용병이나 모험가들을 주기적으로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율했다.

대체 무슨 개짓거리를 하시려고?

“설마 올해... 강의 준비를 하시느라 그런 겁니까?”

볼라디 교수는 제자의 멍청한 질문에도 차분함을 잃지 않는 교양을 보여주었다.

“아니. 올해 강의 준비는 작년에 끝냈다.”

“......”

이한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번 겨울, 가장 오싹한 대답이었다.

“자. 에안두르데. 빵 바구니가 오기 전까지 기다려야 해. 고기는 직접 자를 필요 없어. 나이프로 찍어 먹으면 안 되고. 알겠지?”

“자리 바꿔주시면 안 됨니까?”

“안 돼. 그리고 이한은 지금 교수님 때문에 충분히 괴로우니까 너까지 괴롭히지 마.”

요네르는 후배를 훈계했다. 볼라디 교수는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편하게 먹어도 상관없다. 말했듯이 용병들이나 모험가도 오니까.”

에안두르데가 그 말에 식기를 던지고 나이프만 잡으려고 하자 요네르가 엄하게 노려봤다.

“안 돼.”

“하지만...”

“안 돼. 다시 잡아.”

“낑...”

에안두르데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 이한의 친구들은 다 엄격하지만 그래도 저기 교수는 좀 널널한 사람 같았다.

에인로가드에 들어가게 되면 이것저것 배워야 할 텐데...

어쩌면 저 교수의 널널한 강의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몰랐다.

게다가 에안두르데는 저 교수한테 설욕해야 할 게 있지 않은가.

‘비결을 훔쳐서 복수한다!’

에안두르데가 언젠가 교수를 바닥에 메다꽂을 날을 생각하며 탁자를 주먹으로 두드리자, 요네르가 다시 엄하게 훈계했다.

“탁자를 악기처럼 두드리면 안 돼.”

“...자리 바꾸고 싶슴니다...”

이한은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갓 구운 빵에 버터를 바른 뒤 한 입 베어 물었다.

빈 속에 뭐라도 들어가니 올해 있을 무시무시한 수업의 공포가 조금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고용하신 겁니까?”

“흠.”

볼라디 교수는 대답하는 대신 미세하게 고민하는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이한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왜 실수한 기분이 들지?’

“말해줘도 괜찮겠지.”

“잠깐만요. 위험한 비밀 같은 거면 괜찮습니다.”

볼라디 교수가 누군가를 암살하려고 사람들을 고용했다면 이한은 듣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제국 수사관이 와서 ‘뭘 알고 있나!’했을 때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제자일 뿐입니다!’라고 변명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건 아니다. 네가 지나치게 관심을 가질까 걱정했을 뿐.”

“?”

이한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질 만한 건이라니.

‘제국 금화 주조소라도 습격하셨나?’

“하나씩 설명하지. 먼저 의뢰 때문에 고용할 때가 있다.”

“아.”

이한은 그제야 볼라디 교수가 마법사이자 교수라는 걸 깨달았다.

하긴 마법사가 모험가나 용병을 불러서 의뢰를 맡기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유적 탐사부터 재료 채집까지 마법사가 맡길 일은 많았으니까.

이걸 직접 하는 마법사가 이상한 거였다.

“찾는 재료라도 있으셨습니까?”

볼라디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의뢰를 맡기지 않는다.”

“......”

놀랍게도 볼라디 교수는 의뢰를 맡기는 쪽이 아니라 의뢰를 해결하는 쪽이었다.

모험가나 용병들도 이제 볼라디 교수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위험한 의뢰들이 있다 보니, 같이 해결하려고 고용한...

‘뭔 드래곤 사냥이라도 하시나??’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의 의뢰면 대체 어떤 의뢰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 정도 의뢰면 그냥 제국법으로 금지를 해야 하지 않나?

“잠깐. 그럼 제가 지나치게 관심을 가질까봐 걱정하셨다는 게, 이런 의뢰에 관심을 가질까봐 걱정하셨다는 겁니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그건 너무 지나친 걱정이십니다. 저는 교수님과 달리 위험한 의뢰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

“......”

친구들은 떠들던 대화를 일제히 멈추고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지간해서는 친구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이건 정말 너무 심한 헛소리였던 것이다.

“구울의 왕...”

“씨 서펜트...”

“서리거인...”

“워다나즈 님은 솔직히 위험에 중독되신 것 같아요. 지금도 교수님 옆에 앉아계시잖아요.”

신랄한 친구들의 비난에도 이한은 진심으로 당당했다.

위험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어도 덤벼드는 볼라디 교수와 달리, 본인은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하게 의뢰의 위험도를 분석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네 성급함이 걱정됐다.”

“저번부터 느꼈던 거지만 교수님께서는 저를 조금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

아까 무시했던 것처럼 볼라디 교수는 다시 무시했다.

원래 사람은 자기 단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다.

이한은 뛰어난 제자였지만 타고난 재능 때문에 성급하다는 단점이 있었고, 이건 교수들이 신경을 써줘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의뢰에 필요한 동료 말고 고용해야 할 다른 이유도 있습니까?”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라허 시는 최근 결투 클럽이 생겼다.”

“결투 클럽이라면...”

결투라고 하면 둘 중 한 명이 서로 죽을 때까지 혈투를 벌이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웠지만, 제국에서 이런 부류의 결투는 대부분 금지된 상태였다. 이런 결투는 지하 투기장 같은 곳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제국에서 허가되는 결투는 보통 서로 명예롭게 행동하겠다고 맹세하고, 참관인을 두고, 관중을 허락하고, 누구라도 상처를 입고 피 한 방울을 흘리면 승패가 결정되는 온건한 방식이었다.

물론 이런 결투도 누군가 타인의 명예를 모욕했을 때 벌어지는 게 보통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예외가 있었다.

살벌하게 오고가는 날붙이와 마법, 그 스릴과 위험, 황홀한 승리의 영광에 중독된 사람들.

그리고 이런 살벌한 싸움을 직접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까지.

이런 이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가 제국의 결투 클럽이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은 사교계의 합법적인 투기장이라고 조롱하는(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장소!

“어, 거기 가십니까?”

이한은 드디어 볼라디 교수가 피에 미쳤나 싶었다.

학생을 공격한 걸로는 참지 못하고 제국의 다른 불쌍한 희생자들을 공격하고 싶어진 건가?

“그래.”

“그러실 이유가 있습니까? 혹시 마법 전투를 갈고 닦으시려고?”

“아니. 대부분의 결투 클럽은 그 정도 수준이 되지 않지. 보상 때문이다.”

볼라디 교수는 세심하게 설명해줬다.

결투 클럽에 들어가서 상호합의 간에 결투를 할 때, 밖에서도 돈을 걸 수 있었지만 당사자들끼리도 내기를 할 수 있었다.

승자는 패자가 건 대가를 가지는 간단명료한 규칙.

볼라디 교수는 자금이 필요할 때면 용병이나 모험가들을 모아 위험한 의뢰를 돌거나, 혹은 제국의 결투 클럽들을 돌았다.

그리고 후자가 훨씬 더 쉽게 금전적인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각종 보물들을 갖고 나온 애송이들이 칼 한 자루 들고 설치고 있었으니...

의뢰와 달리 결투 클럽에 들어갈 때 용병이나 모험가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인원 제한 때문이었다.

일대일 결투 말고도 다대다 결투를 하는 이들도 많았던 것이다.

어차피 상대방 숫자가 몇 명이든 짓밟는 데에는 문제가 없으니 아군은 숫자만 맞춰주면 됐다.

‘세상에!’

이한은 경악했다.

아까 장난감 가게에서 흥정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착각했었지만, 볼라디 교수는 세상 물정에 무지한 사람이 아니었다.

‘금화를 복사하고 계시잖아!’

이한이 볼라디 교수여도 결투 클럽을 순회했을 것이다.

귀찮게 의뢰 뛰고 학생 가르칠 이유가 무엇 있겠는가. 결투 클럽만 돌면 재산이 순식간에 불어나는데.

“교수님. 제국 전역의 결투 클럽을 다 쓸어버리시죠!”

“출입금지 때문에 그럴 수 없지.”

“예?”

“지나치게 많이 이기면 클럽에서 출입을 금지한다.”

“......”

이한은 아까 볼라디 교수가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플라허 시는 ‘최근’ 결투 클럽이 생겼다.

최근.

아까는 그냥 넘겼는데, 그러니까...

‘이 사람, 제국 전역의 결투 클럽에서 대부분 금지당했다는 건가?!’

그래서 최근 결투 클럽이 생긴 플라허 시로 온 것이다.

소문이 퍼지고 금지당하기 전에 빠르게 긁어내려고!

아까 장난감 가게에서 팔던 마법사 카드들도 결투 클럽에서 얻어낸 전리품이 분명했다.

이한은 반성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군.’

나름 열심히 재산을 모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들은 과연 하늘 위의 하늘이었다.

“감탄했습니다. 교수님. 저도 언젠가 결투 클럽에 방문해보고 싶군요.”

“그럴 것 같았다.”

아까 위험한 의뢰에 관심 많을 것 같다는 말은 강하게 부정했지만, 결투 클럽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이한은 지금 결투 클럽으로 어떻게 재산을 불릴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어느 정도 실력이 경지에 오르면 결투 클럽에 찾아가서...

‘나는 교수처럼 노골적으로 행동하지 않겠다. 3번 이기면 1번 정도 지는 식으로... 음, 가장 높은 승률을 찾아보고, 그보다 살짝 아래로 맞춰보자. 모험가를 고용해서 패배 횟수를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결투 클럽 주최자들이 들으면 바로 쫓아낼 만큼 음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볼라디 교수는 녹차를 다 비우고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다 먹었군.”

“잘 먹었습니다, 교수님!”

학생들은 감사의 뜻을 담아 볼라디 교수에게 인사했다.

볼라디 교수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한에게 말했다.

“따라와라. 클럽을 소개해주지.”

“......”

자기 계획보다 십 년 정도는 빠른 방문에 이한은 매우 당황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