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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62화 (662/687)

662화

졸지에 친구가 결투광들이 날뛰는 사교계의 투기장으로 끌려가게 되자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당황했다.

“잠... 잠깐만요. 교수님.”

시아나는 황급히 나섰다.

볼라디 교수가 시아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학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위해서였다.

“...데리고 가세요.”

“시아나 사제...!”

이한은 배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플레맹 교단 칭찬을 많이 해줬는데!

“죄, 죄송해요. 너무 무서웠어요.”

‘이해는 간다.’

시아나가 겁먹고 친구들 사이로 도망치는 걸 보자 이한은 매우 공감이 갔다.

방금 볼라디 교수가 후배를 메다꽂고 이한을 죽일듯 공격하는 걸 목격했는데 겁을 먹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대로 뒀다가는 워다나즈 님이 지하투기장에 끌려가게 생겼습니다!”

“결투 클럽이 지하투기장은 아닌데...”

“교수님! 워다나즈 님의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랫포드는 교활하게 나섰다.

설마 다리가 부러진 학생을 결투 클럽에 데리고 가진 않을 테니까.

볼라디 교수는 이한의 다리를 한 번 보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멀쩡하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실제로 하나 부러뜨리는 수밖에.”

“이, 이한이 좋아할 것 같진 않은데.”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친구들은 이한의 다리를 부러뜨려야 한다느니, 아니면 팔을 부러뜨려야 한다느니로 다퉜다.

기다리던 볼라디 교수가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남은 건 가면서 이야기하도록. 전부 들어가려면 시간이 걸린다.”

“......”

“...?”

학생들은 멈칫했다.

무언가 이상했던 것이다.

“전부요?”

“전부라는 게 혹시... 그... 저희 모두를 말하시는 걸까요?”

교수는 동의했다. 가이난도가 경악해서 외쳤다.

“교... 교수님. 이한하고 달리 저는 교수님 강의를 듣지도 않는데!”

‘저런 비겁한 자식 같으니.’

이한은 혼자 도망치려는 가이난도를 보며 속으로 투덜댔다.

물론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는 갔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도망치려고 하다니!

“괜찮다. 워다나즈 혼자 소개해주면 공평하지 않겠지.”

볼라디 교수는 의외로 교육법에 신경을 꽤 쓰는 사람이었다.

버두스 교수였다면 이한 혼자 데리고 갔겠지만(애초에 그 전에 데리고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볼라디 교수는 방학 기간에 다른 학생들까지 만났는데 이한 혼자 결투 클럽에 데리고 가는 건 그리 공정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이한이 볼라디 교수의 제자라지만, 제자라고 특별히 챙겨주면 학생들이 섭섭해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식사도 다 같이 사줬듯이 결투 클럽도 다 같이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아, 아니. 제가 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가이난도는 ‘저는 강의 안 듣는데요’를 ‘강의 안 듣는데 저도 결투 클럽 가도 되나요’로 기가 막히게 해석하는 볼라디 교수의 재주에 할 말을 잃었다.

그걸 보자 이한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다른 놈들도 듣게 했어야 했나?’

*         *         *

플라허 시 결투 클럽은 비교적 최근에 열린 클럽이었다.

도시의 몇몇 호전적인 하급귀족들과 결투꾼들, 그리고 이들에게서 금화 냄새를 맡은 상인들이 모여서 세운 클럽.

그래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원래 역사가 짧으면 호화로움에 의존하기 마련.

이 결투 클럽에 투자한 상인들은 제대로 된 결실을 얻기 위해 아낌없이 금화를 뿌렸던 것이다.

먼저 건물 앞에 도착하면 문 위에 드리워진 결투 클럽 간판부터 감탄이 나왔다.

-플라허 시 결투 클럽.

별다른 수식어가 없어도 금실과 은실을 꼬아서 빛 마법을 부여하면 품위가 생기기 마련.

묵직한 청동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에 걸린 마석 샹들리에가 따뜻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깔끔하게 나눠진 구역마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간단한 샌드위치나 주먹밥, 커피나 차를 파는 식당 구역부터 시작해서, 클럽 회원들이 모여서 최근 있었던 일들을 나누는 구역.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보가준 황자님이...”

“자네는 황족들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경향이 있네!”

“뭐, 뭐?! 그렇다면 자네는 파렴치한 귀족주의자나 독립주의자인가!”

“방금 그 말 취소하지 않으면 결투일세!”

그리고 품위 있는 결투를 벌이기 위해 준비된 결투 구역과 그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관중석까지.

마법처리가 된 마호가니 나무로 짜여진 결투장 바닥은 어지간한 방패보다 튼튼했고 관중석을 막고 있는 방어 역장은 결투 도중 누가 튕겨가거나 날아가도 충분히 막아낼 견고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쁘지 않다.’

기사 가문인 우킴 가문 출신이자 이제 에인로가드 3학년으로 올라가는 팔가는 결투 클럽의 분위기에 만족했다.

당장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세운 결투 클럽의 열악한 환경과 비교하면, 여긴 거의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금 화려하긴 해도 이 정도면 꽤 오래 유지될 것 같았다.

팔가는 남은 방학 동안 여기서 결투를 연습할 생각이었다.

결투란 게 기본적으로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수십 가지 생각을 해야 하는 긴박한 싸움.

그런 만큼 감각을 날카롭게 갈고 닦아두는 게 중요했다.

방학 내내 쉬다가 녹슬어서 돌아가면 결투 클럽 친구들한테 비웃음을 살 수 있었다.

“오늘 누가 이길 거 같나?”

“글쎄, 첼레세 경의 검술은 분명히 뛰어나지만, 거기에 맞서는 고랑이라는 자도 만만치 않던데.”

“소문을 들어보니 용병 출신에 별명이 면도날이었다는군. 면도날 고랑.”

‘첼레세 경, 고랑. 좋아.’

팔가의 마지막 방문은 4일 전.

그 사이 새로이 클럽에 얼굴을 내민 결투가들이 있을까 걱정했었다. 결투에서 언제나 위험한 건 처음 보는 낯선 상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첼레세 경이나 고랑은 저번에도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쉬는 사이 팔가는 둘과 맞서 싸울 전략을 준비해왔다. 오늘 그 준비가 분명히 빛을 발하리라.

“그런데 어제 그 자는 대체 누구였나?”

“글쎄, 백작께서 놀라서 찾아본다고 하시더군. 아마 유명한 결투가 아니겠나? 나 원 참. 회원들이 전부 다 쓰러질 줄이야!”

“첼레세 경은 반드시 복수한다고 하시더군. 기대되지 않나?”

“글쎄, 난 그 자가 클럽에 출입금지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네. 저런 자가 있으면 회원들이 남아나겠나.”

“무슨 소리! 강하다고 출입금지를 하다니. 결투가로서 명예도 없단 말인가?”

“아무리 명예가 좋아도 그렇지 한도가 있지 않나. 매번 그렇게 다 꺾어버리면 적수가 없을 걸세.”

“...?”

팔가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안 나온 사이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로운 결투가가 온 건가? 어떤 사람이길래?’

팔가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몇몇 무능력하고 비겁한 결투가들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가 나타나면 싸우는 걸 꺼렸다.

그러나 팔가는 아니었다.

자기보다 강한 상대라면 오히려 한 수 배울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니겠는가.

만약 정말 강한 상대라면 공손하게 한 번 부탁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팔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우킴 가문의 팔가 경 아니십니까?”

“예. 하지만 정식 기사는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번 주에 이야기 나눴잖습니까! 에인로가드에 다니시는 분이었죠!”

“예. 맞습니다.”

회원의 말에 팔가는 자부심 섞인 대답을 내놓았다.

에인로가드 욕을 제국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게 에인로가드 학생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자부심이라도 없다면 이 학교를 어떻게 다니겠는가.

“여기,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있는데 기막힌 우연이군요!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

회원의 말에 팔가는 깜짝 놀랐다.

제국이 좁다지만 여기서 같은 에인로가드 학생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 앞에 앉아 있던 더르규와 이한은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미안하다. 이한.

-아니... 네 잘못은 아니지.

친구들 모두 삼삼오오 흩어져서 결투 클럽을 구경하는 동안, 이한과 더르규도 결투 클럽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기 혹시 미리 함정 설치하면 안 되나? 교수님하고 싸울 때를 대비해서.

-...이한...

-하하. 농담이야. 농담.

-네 눈빛이 전혀 농담이 아니다.

그러던 도중 웬 회원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 것이다.

-혹시 초이 가문 출신 아니십니까?

-엇, 맞습니다.

-이야! 저는 알다를 가문 출신인데...!

알다를 가문 출신의 결투 클럽 회원은 초이 가문의 먼 친척의 친척 정도 되는 사이였다.

하지만 사교 목적으로 모인 클럽에서 이 정도 인연이면 거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이 오크 아저씨는 둘을 매우 마음에 들어하며 먹을 걸 사주기 시작했다.

-학생이면 아직 많이 먹을 때겠군요. 하하. 드세요. 드세요! 제가 사는 겁니다.

-아니... 오늘 처음 만난 분에게 이렇게 얻어먹을 수는...

-여기 팬케이크 좀 더 가져다주겠나? 자. 드시지요. 한참 배고플 것 아닙니까.

-저, 저희 방금 식사했...

-더 드십시오. 아주 비쩍 마르셨군요!

이한과 더르규는 차마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팬케이크와 샌드위치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클럽의 음식이 맛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알다를 아저씨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지나가는 에인로가드 학생을 알아보고 바로 말을 걸었다.

-혹시 우킴 가문의 팔가 경 아니십니까?

그리고 지금.

이한과 더르규는 어색한 표정으로 선배와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알다를만 싱글벙글하며 셋의 잔에 설탕을 잔뜩 넣은 홍차를 채워주었다.

“나 원 참. 베이컨을 시킨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나오다니. 잠깐 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

오크 아저씨가 일어나고 나서야 셋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팔가는 이 두 후배도 반쯤 억지로 붙잡혔다는 걸 깨닫고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보아하니 둘도 갑자기 끌려왔나보군. 제국 클럽들이 그렇지. 사교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 아차 하면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 앞에 앉게 된다고.”

“오늘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는 초이 가문의 더르규입니다. 저는 이한이고요.”

이한은 슬쩍 워다나즈 가문의 이름을 피했다.

기사 가문 출신 앞에서 워다나즈 가문의 이름은 별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난 우킴 가문의 팔가. 알고 보니 흰 호랑이 탑 후배들이었구나. 반갑다.”

팔가는 미소지으며 둘을 환영했다.

탑이 같다는 건 에인로가드 내에서도 특별했다. 팔가 입장에서는 환영해줄만한 가치가 있었다.

“선배님께서는 여기서 뭘 하고 계셨습니까?”

“에인로가드 결투 클럽... 아. 너희들한테는 말해줘도 괜찮겠지. 어차피 이제 다음 학기 때부터는 클럽에 대해 알게 될 테니까. 난 에인로가드 결투 클럽 소속이야. 연습으로 감각을 갈고 닦기 위해 여길 방문한 거고.”

“돈은 안 거십니까?”

철없는 후배의 질문에 팔가는 실소를 터뜨렸다.

“어디서 잘못된 소문을 들었나보군? 결투가들이 다 돈을 걸진 않아. 생각해봐. 결투는 서로 준비된 둘이 최선을 다해 승부를 내는 신성한 행위야. 승률을 절반 조금 넘기기도 힘들지. 이런 도박에 크게 돈을 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야.”

팔가는 자기 재산을 재미삼아 내기에 걸었다가 순식간에 파산해버린 결투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불운도 불운이지만, 팔가의 생각에 이들의 불운은 결투의 신성함을 모독했기에 찾아온 형벌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한은 듣는 시늉만 했다.

‘돈도 벌지 못하고 그냥 결투를 즐기다니. 에인로가드 결투 클럽의 문화는 매우 이상하군.’

“너희는 여기서 뭘 하고 있었지? 혹시 나처럼 결투 훈련을 하러 온 건가?”

“아, 아닙니다. 저희는 교수님하고 같이 왔습니다. 교수님께서 결투 클럽을 소개해준다고 하셔서요.”

“방학 때 교수님하고 같이 다닌다고!? 대체 왜 그런 짓을?”

“하하. 우연히 같이 만났습니다.”

이한의 대답에 팔가는 안쓰럽다는 듯이 후배를 쳐다보았다.

대체 얼마나 재수가 없다면 방학에 교수를 만난단 말인가?

“어느 교수님이시지?”

“배그렉 교수님이요.”

꽝!!!

요란한 소리와 함께 팔가는 뒤로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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