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63화 (663/687)

663화

“배... 배그렉 교수!”

팔가는 넘어진 채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방금까지 결투 상대의 전략을 떠올려가며 진지하게 호승심을 불태웠던 선배라고는 믿기 힘든 추태였다.

이한도 당황했다.

“선배님. 고나달테스가 아니라 배그렉 교수님이라고 했습니다.”

해골 교장도 아니고 볼라디 교수 이름에 저렇게 놀랄 것 없지 않은가.

“이한.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더르규의 말대로 팔가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팔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몸을 웅크렸다.

마치 맹수의 울음소리를 들은 초식동물 같은 동작이었다.

“배... 배그렉 교수하고 같이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대체 어째서?”

“말했듯이 우연히 만났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우연히 만났다고 해서 배그렉 교수님이 같이 돌아다니자고 했을 리는 없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다.”

‘아니. 이 사람 예리하군.’

이한은 역시 상대가 에인로가드 선배라는 걸 느꼈다.

에인로가드에서 1년 이상 보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위험에 대한 감각이 예리해지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저희가 교수님의 일을 도와드렸거든요.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식사를 대접해주셨습니다.”

“그렇... 그런데 왜 결투 클럽에?”

“식사 도중 이야기가 나왔는데, 교수님께서 한 번 견학을 시켜주겠다고 하셨습니다.”

“!”

팔가는 깜짝 놀랐다.

볼라디 교수가 이렇게 친근하고 사교적인 사람이었을 줄이야.

해골 교장이 학생들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 낸 흡혈괴물인 줄 알았는데...

“놀... 놀랍군. 배그렉 교수님께서 그런 말도 하실 줄 알았나?

“선배님. 배그렉 교수님하고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더르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더르규가 알기로 볼라디 교수는 제자가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양한 강의를 가르치는 사람도 아니고 해골 교장처럼 학생들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과한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당장 제 다른 친구들은 배그렉 교수님을 좀 두려워하는 정도입니다. 선배님께서 왜 그러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겠지.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 강의는 들어봤나?”

“들어보려고 시도는 했었습니다만...”

“둘 다 흰 호랑이 탑 학생이니까 당연히 그랬겠지. 우리도 그랬으니까.”

팔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신입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강의를 골라서 들을 수 있지만, 보통 탑마다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강의가 있었다.

예를 들어 흰 호랑이 탑 같은 경우에는 검술 같은 전투 계열 강의들이 인기가 좋았다.

특히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 같은 경우는 ‘마법전투’가 이름에 들어간 덕분에 많은 신입생들이 두근거리며 강의실로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모두 다 울면서 강의실 밖으로 도망쳐 나온 뒤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해가 갑니다.”

“그렇겠지. 선배들한테 물어보니 선배들도 그랬다는군. 죽은 사람도 한 명 있었다는데 그건 허풍인지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

이한이 어이없어서 할 말을 잃은 사이 더르규가 대답했다.

“저희도 다 도망쳤습니다. 이한을 제ㅇ... 으윽.”

더르규는 친구가 자신의 발등을 밟자 신음했다. 이한은 조용히 하라고 눈빛을 보냈다.

지금 볼라디 교수의 이름만 들어도 뒤로 넘어지는 선배 앞에서 사실 이한이 제자라는 이야기를 해서 좋을 게 없었다.

‘심장마비 걸리실 지도 모른다.’

“거기서 끝났다면 우리들 사이에서 배그렉 교수님은 에인로가드를 떠도는 무서운 소문 같은 존재로 남았을지도 모르지. 왜, 그런 거 있잖나. 에인로가드 깊은 지하에 불가살이가 산다거나...”

‘사는데.’

이한은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선배가 꽤 병약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불가살이가 진짜 있다는 걸 알면 쓰러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팔가의 얼굴은 마치 먼 옛날의 전쟁을 회상하는 노병 같았다. 더르규는 궁금해져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까 말했지만 난 <에인로가드 결투 클럽> 소속이다. 그리고 클럽은 담당하는 교수가 계시지.”

“저런. 배그렉 교수님이 클럽 담당이셨던 거군요.”

이한의 말에 팔가는 아니라고 부정했다.

볼라디 교수는 클럽을 담당할 만큼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담당 교수님은 키르민 쿠 교수님이시다.”

“??”

“후. 이건 클럽 내부의 일이라서 말해주기 조금 그렇지만... 여기까지 말한 김에 그냥 말해주지. 너희들은 흰 호랑이 탑이기도 하니까.”

더르규가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못 본 척 무시했다.

“예전에 우리 결투 클럽이 연속으로 패배한 적이 있었다. 보수가 안 들어오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지. 연구도, 식량도 구하기 힘드니 클럽 학생들의 사기가 그야말로...”

“잠깐만요. 선배님.”

얌전히 들으려던 이한은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내기는 안 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아. 오해했군. 여기서 말하는 보수는 결투 대리 보수다. 대전사(代戰士)로서의 보수지.”

스릴과 명예에 미친 사람들이야 직접 결투를 한다지만 제국의 모든 사람들이 결투를 직접 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그런 이들을 대신해주고 보수를 받는 결투가들도 있었다. 에인로가드 결투 클럽 학생들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가 이런 대리 결투였다.

‘이게 돈이 되나?’

이한은 의아해했다.

“죄송하지만 요즘 결투가 그리 많지 않고, 결투 재판은 더더욱 드물잖습니까. 이게 돈이 됩니까?”

“학교 밖에서야 다들 제국법으로 재판하지만, 에인로가드 내에서는 보통 결투를 선호하니까.”

“......”

주요 고객을 들은 이한과 더르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둘의 선배들은 제국법이니 뭐니 하며 규칙으로 다투기보다는 그냥 화끈하게 결투로 해결하는 걸 선호했던 것이다.

‘이게 마법학교냐 야만인 소굴이냐?’

이한은 경악했다.

“그리고 에인로가드 밖에도 고객은 있다. 주로 다른 마법학교 학생들이 우리 클럽 회원들을 용병으로 자주 찾지. 결투 승률이 높거든.”

“아... 예...”

알고 싶지 않았던 선배들의 추악한 돈벌이에 더르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그냥 용병이잖나!’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 클럽이 연속으로 패배한 적이 있었다. 클럽의 수입이 줄어들면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보통 클럽은 친목을 위해 모인 사교 장소 아닌가...?’

“그 때 우리는 정말로 초조했다. 그래서 쿠 교수님께 부탁했지. 강해지고 싶다고. 쿠 교수님은 그냥 불운이 겹쳤을 뿐이라고 침착하게 컨디션을 회복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우린 물러나지 않았다.”

팔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묻어나왔다.

“결국 쿠 교수님께서 물러나셨지. 우리한테 이렇게 물어보시더군. 정말로 강해지고 싶나?”

“설마...”

슬슬 결말을 예감한 이한은 불길함이 몰려왔다.

“우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쿠 교수님께서는 배그렉 교수님을 불러오셨지. 그리고 사흘 동안 문을 막으셨다.”

“저런!”

이한은 탄식했다. 더르규는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문을 왜 막으셨...?”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그, 그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팔가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어리석고 경험 적은 후배들이 저런 말을 하니 가소로울 뿐이었다.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저런 말을 하지!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차마 말하고 싶지 않군. 너희들도 조심해라. 에인로가드 교수들은 모두 위험하지만 그 중 특히 위험한 몇몇이 있기 마련이니까. 식사를 대접해주고 클럽을 구경시켜줬다고 해서 다음 학기에 강의를 듣는다면...”

팔가는 상상만 해도 무서웠는지 몸을 떨었다. 더르규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진정시켰다.

“저는 안 듣습니다. 여기 이한은 이미 배그렉 교수님 제자여서 괜찮구요.”

꽝!

팔가는 다시 넘어졌다.

“괜찮으십니까?!”

그러나 이미 팔가의 눈빛에는 경악과 두려움과 다른 차원의 괴물을 보는 듯한 경계심이 서려있었다.

“배... 배그렉 교수님 제자였군. 이... 이름이 뭐라고?”

‘아차.’

이한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선배의 눈빛이 마치 흑마법 오물 구덩이에 빠진 가이난도를 쳐다보는 친구들 눈빛 같았던 것이다.

절대 가까워지지 말아야겠다는 각오가 느껴지는 싸늘한 눈빛!

“...가이난...”

“이한. 이한이라고 했지.”

“예.”

앞으로는 조금 더 철저하게 가명을 써야겠다고, 이한은 속으로 다짐했다.

*         *         *

팔가는 한시라도 빨리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하고 싶어했지만 이한도 만만치 않았다.

선배한테 나쁜 인상을 남긴 채 보내주고 싶지 않았던 만큼 필사적으로 붙잡은 것이다.

“...참, 생각해보니 마실 걸 갖고 와야...”

“더르규. 선배께서 목이 마르시다는군. 빨리 갖고 와라!”

“이, 이한.”

이한은 눈빛에 ‘네가 나 볼라디 교수 제자인 거 까발렸잖아’를 담아서 더르규를 쳐다보았다.

더르규는 불평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음료수를 가지러 갔다.

‘크흑. 별 생각 없이 한 소리였는데.’

“내... 내가 갖고 와도 되는데.”

“아닙니다. 앉아계십시오. 선배님.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는 사실 배그렉 교수님 강의만 듣는 게 아닙니다.”

“배그렉 교수님 강의만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중얼거리는 팔가를 무시하고 이한은 다시 말했다.

“사실 저는...”

말하려던 이한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모든 학파 강의를 다 듣는다는 말이 이 상황에서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어쩌다가 몇몇 강의를 추가로 듣게 됐는데 그 중에 우연히 교수님 강의가 있어서 어영부영 억지로 듣게 된...”

“여기 있었군.”

볼라디 교수가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도움이 안 되시는군!’

팔가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쥐어짜듯이 움켜쥐고 있었다.

“안, 안, 안, 안, 안,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추운가?”

“그, 그, 그, 그, 그, 그렇지 않습니다. 교수님.”

“다행이군.”

상황을 모르는 이한의 친구들은 독감에 걸린 것마냥 떨어대는 팔가를 보고 의아해했다.

저 선배는 왜 저러시는 걸까?

“다들 이쪽으로. 곧 결투가 시작될 거다.”

볼라디 교수는 결투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품위를 위해서라면 멀고 안락한 자리가 좋았지만, 배워가는 게 있으려면 가장 가까이서 봐야했다.

학생들은 교수의 지시에 따라 관중석으로 걸어가려고 했...

“워다나즈.”

볼라디 교수는 이한에게 자기 옆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6번이다.”

“?”

6번이라니.

‘교수가 날 기습한 횟수를 말하는 건가? 6번보다 훨씬 많지 않나?’

“결투 순서 말이다.”

볼라디 교수는 자신의 순서를 확인시켜줬다. 5번이었다.

“내버려두면 멋대로 참가 신청을 할 것 같더군. 적절한 상대를 찾아 신청했다.”

다른 학생들에게 결투 클럽을 소개해주면서도 볼라디 교수는 세심한 배려심을 잊지 않았다.

내버려두면 천방지축으로 아무에게나 결투를 신청할 제자를 걱정해 적절한 상대와 맞붙게 해준 것이다.

“교수님...”

이한은 이를 꽉 악물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를 악물게 됐다.

“교수님 같은 스승을 둔 저는 참으로 행운압니다...!”

“음.”

볼라디 교수는 이한의 어깨를 두드리고 걸어가 버렸다.

그러자 뒤에서 선배가 경악의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는 게 보였다.

볼라디 교수가 결투에 참가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고작 1학년을 마친 후배를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참가시키다니.

저건 누가 봐도 수제자였다!

이한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선배하고 친해지는 건 포기해야겠군.’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