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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70화 (670/687)

670화

-살려줘! 살려줘!

밀렵꾼들이 비명을 지르자 이한은 마구간 문을 열고 확인했다.

“혹시 먹었니? 음. 아니군.”

폰리그는 불만스럽게 벽을 긁으며 항의했다.

누굴 식욕도 제어 못하는 와이번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

“그래그래. 믿고 있었지. 하도 비명을 지르길래. 다들 조용히 좀 해라.”

“살, 살려줘! 제발!”

“살려줬잖아. 자꾸 헛소리하면 바실리스크도 풀어놓는다.”

남은 밀렵꾼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바실리스크는 무슨 소리야?

쾅!

이한은 문을 닫고 다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서리걸음이 수배서를 보고 있었다.

이한은 친밀감이 들어서 말을 걸었다.

“벤도졸 교수님 수배서 보고 계십니까? 저도 갖고 있습니다.”

“아. 아닙니다. 밀렵꾼 수배서를 보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낯이 익다 싶더니, 저 줄반이란 놈. 꽤 유명한 밀렵꾼이군요. 현상금이 걸려 있었습니다.”

“예?”

이한은 ‘멍청하게 굴다가 번개 마법을 그대로 맞은 놈 주제에 현상금이?’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하하. 방심해서 그렇지 저 놈도 꽤 악명 높은 놈입니다.”

“저런. 밀렵꾼들이 좀 방심을 많이 하나 봅니다.”

탐지 마법 하나 걸지 않고 바로 기습부터 갈긴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이한은 뻔뻔하게 말했다.

‘다들 더 방심해주면 좋겠군.’

저 줄반이란 놈처럼 현상금 걸린 밀렵꾼들이 더 찾아와준다면 방학 끝나기 전에 두둑하게 한 몫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밀렵꾼들이 혹시 더 올까요?”

“흠. 어려운 질문입니다. 더 올 수도 있긴 하지만... 아마 안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리걸음은 길쭉한 황동 망원경 아티팩트를 꺼내든 뒤 주변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까지만 해도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얼쩡거리던 인기척들이 싹 사라진 상태였다.

“밀렵꾼들은 광신도들이 아니라 약아빠진 도둑놈들입니다. 방금 마법들이 터져 나오고 줄반 패거리가 괴멸되었으니 깨달았겠죠.”

줄반 패거리도 어디까지나 약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찔러봤던 거였다.

그런데 그 줄반 패거리가 이렇게 박살났으니 밀렵꾼들은 여기 마법사들이 보통이 아니란 걸 깨달았으리라.

“산맥 밖으로 도망쳤을까요?”

이한은 살짝 아쉬워하며 물었다. 서리걸음은 이한의 말 속에 담긴 감정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아닙니다. 밀렵꾼 놈들은 끈질기거든요. 아마 저희를 견제하기보다는 유니콘을 먼저 찾으려고 서둘러 들어갔을 겁니다.”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가이난도가 깜짝 놀랐다.

“그럼 저희도 빨리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니콘은 그렇게 서둘러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니까요.”

서리걸음의 말에 가이난도가 이한에게 소곤거렸다.

“이한. 저 분 좀 많이 틀리는 거 같은데, 저 말 믿어도 돼?”

“...아까 밀렵꾼들 바로 못 알아차렸다고 너무 그러지 말자.”

*         *         *

밀렵꾼 악가는 줄반과 달리 고독한 사냥꾼에 가까웠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림자 순찰대와 비슷한(그림자 순찰대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성격.

제국에는 어렵고 강한 사냥감을 쓰러뜨리는 것 자체에서 희열감과 달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냥꾼들은 이제 이런 사람들을 사냥꾼의 신 자르미스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하곤 했다.

원래라면 누리고 살아야 할 평범한 행복을 버리고 고독하고 위험한 삶을 선택한 이들.

그리고 밀렵꾼 악가도 이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유니콘은 내가 잡는다.’

악가는 품속에서 향로 나침반을 꺼냈다.

유니콘의 갈기털 한 가닥이 들어있는 이 향로 나침반은 유니콘을 쫓는 사냥꾼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보물이었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유니콘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악가는 다른 이들이 산맥 초입에서 헤매는 동안 혼자 유니콘에게 접근해서 해치울 생각이었다.

“!”

저 멀리서 보이는 희고 아름다운 생물에 악가는 눈을 깜박였다.

사냥꾼으로서 사냥감을 보고 넋을 잃은 적은 없었지만, 유니콘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찾았다!’

악가는 조심스럽고 천천히 쇠뇌를 꺼내들었다.

유니콘은 강력한 마법을 갖고 있는 몬스터라 일격에 해치우지 못하면 악가가 역으로 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악가는 무조건 일격에 끝낼 생각이었다.

쇠뇌용 볼트를 꺼내들자 사악한 기운이 올라왔다. 유니콘의 숨통을 끊을 만한 저주가 걸려 있는 만큼 공기가 흔들렸다.

‘자르미스여. 둘 중 하나는 죽게 해주소ㅅ...’

순간 유니콘의 모습이 변했다. 악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니콘이 셰이프시프팅 능력도 있었나?

-■■■■■■!

사람으로 변한 유니콘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악가는 영혼이 뒤흔들리는 충격을 느꼈다. 차고 있는 정신 방어 아티팩트가 일제히 깨져나갔다.

그 순간 악가는 깨달았다. 노련한 사냥꾼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는 유니콘이 아니었다!

“너... 너...!”

“야, 이 튀겨 죽일 밀렵꾼 놈아. 어딜 감히 유니콘을 잡으려고 해? 네놈 목숨 따위는 백 개가 있어도 유니콘과 바꿀 수는 없어!”

키가 작고 심술궂게 생긴 인간 마법사가 걸어오는 모습이, 악가가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털썩!

벤도졸 교수는 쓰러진 밀렵꾼 위에 침을 뱉은 다음 향로 나침반을 뺏었다.

그런 뒤 갈기털을 빼내고 마법을 풀었다. 그러자 아름다웠던 유니콘의 털이 벤도졸 교수의 머리카락으로 돌아왔다.

“밀렵꾼 놈들이 생각보다 능력이 부족하군. 다 이쪽으로 올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입구에서 미적거려?”

벤도졸 교수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가짜 유니콘 털을 시중에 흩뿌리는 계략은 해골 교장에게서 영감을 얻은 방법이었다.

밀렵꾼 놈들이 유니콘 털로 수색 마법을 걸면 다 이쪽으로 올 줄 알았더니...

“안 되겠군.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

-■■■■...

“걱정하지 마라. 네가 다 나을 때까지는 내가 지켜줄 테니까.”

벤도졸 교수는 유니콘에게 단호하게 말한 뒤 성큼성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살벌한 기세에 비통 산맥의 위협적인 몬스터들도 감히 덤비지 못하고 길을 피했다.

*         *         *

“이 주변은 수색이 끝났다.”

사흘이 지나자 번개걸음 교수와 사냥꾼들이 돌아왔다.

이한은 재빨리 버터를 듬뿍 넣은 뜨거운 커피와 방금 구워낸 토스트를 갖고 왔다. 번개걸음 교수는 이뻐 죽겠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너 같은 녀석이 왜 우레걸음 밑에서 배우는지 모르겠다.”

‘극찬이시군.’

교수와 사냥꾼들은 허겁지겁 커피와 토스트를 때려 넣었다. 산맥의 수색은 피곤한 일이라 노련한 사냥꾼이나 순찰자도 쉬이 지치게 만들었다.

“유니콘의 흔적은 찾으셨습니까?”

“아니. 대신 다른 것만 찾았지.”

“밀렵꾼들이요? 저희도 좀 잡아놨습니다.”

“!”

커피를 홀짝이던 므랑세는 깜짝 놀랐다. 번개걸음 교수는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냐?

“정, 정말 잡으셨습니까?”

“저기 마구간 안에 가둬놨습니다.”

므랑세는 마구간을 힐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거 보니 한 두 세 명 잡은 모양이었다.

“밀렵꾼들 흔적은 처음부터 찾았었다. 숨길 기색도 없는 놈들이니 별로 어렵지도 않았지. 문제는 다른 건데...”

“?”

“밀렵꾼들이 사냥당하고 있다.”

“좋은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그런데 누가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번개걸음 교수는 양철 잔에 든 커피를 전부 들이켰다.

밀렵꾼들을 잡아주는 건 좋았지만, 산맥에 예상 밖의 상대가 있는 건 좋지 않았다.

유니콘은 번개걸음 교수도 다루기 조심스러워하는 까다로운 생물인 만큼 변수가 많아서 좋을 게 없는 것이다.

“같은 밀렵꾼들이 싸우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것치고는 너무 전문적이다. 게다가 원래 밀렵꾼들은 사냥감을 잡기 전에는 서로 싸우지 않아.”

“다른 몬스터가 내려왔다면요?”

“밀렵꾼 놈들이 아무리 멍청해도 사냥감한테 사냥당할 정도는 아니지.”

번개걸음 교수와 학생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벤도졸 교수님이 여기서 실종되셨는데, 혹시 벤도졸 교수님이 밀렵꾼들을 해치우신 거 아닙니까?”

“......”

번개걸음 교수는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양철 잔을 떨어뜨렸다.

“벤, 벤도졸이 있었지!”

이한을 포함한 학생들은 모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번개걸음 교수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예 잊어버리고 있으셨을 줄이야!

“벤도졸 교수님이 여기서 실종되셨다고 하셨잖습니까...”

“아... 아... 맞아. 맞아. 그랬었지. 정말 생각도 못했군. 하긴. 벤도졸 교수라면...”

번개걸음 교수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미친놈이 자꾸 짐승처럼 밀렵꾼들을 습격해대나 했더니 벤도졸 교수였나. 벤도졸 교수라면 그럴 법하지. 살아 있었군...”

“......”

돌아오는 학기에 새 교수를 만나야 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썩어들어갔지만 번개걸음 교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한은 그래도 상황의 긍정적인 점을 찾아보기 위해 말을 꺼냈다.

“정말로 교수님이 계신 거라면 일이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흠.”

번개걸음 교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커피 주전자에서 커피를 한 번 더 따라 마신 뒤 번개걸음 교수는 대답했다.

“아니. 별로.”

학생들의 얼굴이 좀 더 썩어들어갔다.

“벤도졸 교수가 있으면 귀찮게 됐군. 우리도 공격할 놈인데.”

“...설, 설마요.”

가이난도가 현실을 부정했다.

교수님이 학생을 공격한다니 말이 되...

...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배그렉 교수님도 아니고 처음 보는 학생을 공격하진 않으시겠죠!”

“......”

이한은 슬픈 눈빛으로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너희가 벤도졸 교수를 못 만나봐서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는 거다. 벤도졸 교수는 원래도 귀찮은 사람이지만 희귀한 동물을 데리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귀찮은 사람이 되지. 아마 우리도 안 믿을 거다. 다들 주의하게. 미친 마법사 하나가 산맥의 몬스터에 추가됐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군.”

‘에인로가드 교수들 중에 좀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없는 건가?’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기껏 산맥에서 교수를 만났는데 더 위험한 몬스터 취급을 해야 한다니.

“으아악!”

“!”

고함 소리에 모두 깜짝 놀랐다.

번개걸음 교수는 지옥숨결이 담긴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벤도졸 교수를 제압하려면 이 정도는 써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줄반 패거리를 보고 놀라서.”

므랑세는 민망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별 생각 없이 마구간 문을 열었다가 안에 가득 찬 죄수들을 보고 놀란 것이다.

“살려주십시오!!”

새로 온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달은 밀렵꾼들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울부짖었다.

번개걸음 교수는 짜증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문 닫아라. 입맛 떨어지게.”

“안 돼!”

쿵!

마구간 문이 다시 닫히자 이름 없는 사냥꾼들은 수군거리며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리폰을 간수로 쓰다니!

저 소년은 타고난 조련사였다. 그리폰을 저렇게 부리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바실리스크까지.

반쯤 포기한 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괜히 커피 끓여줬군.’

“이한. 저 사람들이 네가 맹수들에게 사랑받는대.”

의외로 욕이 아니었다.

이한은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첫인상이 조금은 달라진 모양이었다.

“괴물들의 왕만이 그렇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다음엔 싸구려 원두 써야겠군.’

그 때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이름 없는 사냥꾼들이 번개걸음 교수한테 눈짓했다. 교수는 지옥숨결 유리병을 꺼내들고 말했다.

“벤도졸 교수가 진짜로 왔군. 워다나즈.”

“예?”

“네가 가진 가장 강한 마법을 밖에 갈겨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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