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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71화 (671/687)

671화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가진 가장 강한 마법이라면...’

한 가지 비기를 극한으로 갈고 닦는 검사라면 가장 강한 기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마법사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마법사의 강점은 그 유연함과 범용성에 있었고 그만큼 가장 강한 마법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상대의 숫자가 많아서 물량 싸움을 해야 한다면?

이한 같은 경우에는 암흑 원소로 담금질한 뼈 시약을 꺼내서 스켈레톤 전사들을 소환할 것이다.

거기에 이제 샤르칸과 고나달테스, 폰리그나 바실리스크의 힘까지 빌릴 수도 있었고.

만약 상대가 빠르게 움직이고 원소 방어력이 약해보인다면?

이한은 섬뢰창이나 페르쿤트라의 번개로 접근할 것이다.

지금 쓸 수 있는 마법 중에서 그 공격 속도와 시전 속도, 위력이 균등하게 우수했으니까.

강한 충격력이 필요하다면 수옥탄을 꺼낼 것이다. 번개 원소 마법보다는 느리더라도 적중만 시킨다면 충격력은 확실했다.

데미지와 상관없이 관통력만 필요하다면 시간을 두고 강화 마법을 연타하면 됐고, 상대가 마력 위주로 구성된 영체 계열의 적이라면 새벽별, 그도 안 되면...

‘만마의 팔찌나 페르쿤트라까지 가고 싶진 않은데.’

둘 다 이한이 가진 히든 카드였지만 꺼냈을 때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

‘잠깐. 한 가지 더 있던 것 같은데.’

“침입자들아, 꺼져라. 산의 분노를 맛보고 싶지 않다면!”

고민하는 사이 밖에서 걸걸한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됐어. 농담한 거다. 워다나즈 네가 교수를 공격할 순 없겠지.”

번개걸음 교수는 이한이 교수들에게 툴툴대긴 해도 꽤나 충성스럽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당장 배그렉 교수만 해도 뒤에서 칼을 찌르지 않고 얌전히 따르지 않던가.

“아니 그건...”

이한이 어이가 없어서 해명하려고 했지만 번개걸음 교수는 벤도졸 교수를 상대하느라 대답을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벤도졸 교수! 최다르 가문의 번개걸음이다!”

“네가 누군데!”

“......”

번개걸음 교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람 한 명 정도는 죽일 만한 살기였다.

이한은 걱정이 됐다.

번개걸음 교수가 사람을 한 명 묻어버릴까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저 벤도졸 교수가 학교로 돌아오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냥 계속 실종 상태가 나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 대신 에인로가드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있다. 삼년 전에 에인로가드 산맥에서 한 번 만났지 않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

“......”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미친 교수가 이번 학기에 돌아올지도 모른다니!

“벤도졸 교수. 내가 학생들을 왜 가르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니콘이 비통 산맥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었다. 밀렵꾼들이 몰려오고 있어. 우린 협력해야 한다!”

“어디서 수작이야, 이 드워프 사기꾼 새끼가! 고나달테스가 유니콘 잡아오라고 시켰지!”

“미치신 거 아니에요??”

시아나는 경악해서 소곤거렸다.

에인로가드의 교수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미친 사람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규칙은 지켰다.

안 그래도 이미 충분히 아비규환인데 더 지옥으로 만들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벤도졸 교수는 그런 규칙이고 뭐고 필요 없다는 듯이 지랄하고 있었다.

번개걸음 교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틀렸다. 유니콘 때문에 완전히 눈이 돌아갔군.”

“눈이 돌아갔다니요?”

“말했잖나. 희귀한 동물만 엮이면 미친놈이 된다니까. 원래도 사교적인 놈은 아니지만, 지금은 특히 심하군. 유니콘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벤도졸 교수는 희귀한 동물을 데리고 있는 순간 반쯤 미친 사람이 됐다.

누가 접근만 하면 ‘너 이 새끼 내가 돌보고 있는 동물을 훔치려고 다가오는구나!’하면서 날뛰는 것이다.

그 희귀한 동물이 아프기라도 하면 예민함은 더더욱 심해졌다.

“교장 선생님이 유니콘을 잡아오라고 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워다나즈...”

“아, 아니. 진지하게 여쭤본 겁니다.”

“그걸 진지하게 물어본 거라면 더더욱 놀라운데.”

야영지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벤도졸 교수가 고함을 쳤다.

“밀렵꾼 놈들은 내가 다 묻어버릴 테니 도움은 필요 없다. 꺼져라!”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하나.”

철컥!

번개걸음 교수는 쇠뇌를 꺼내더니 장전을 끝냈다. 그리고는 밖을 향해 한 방 갈겼다.

“벤도졸. 드워프 사기꾼한테 뒤질 준비해라! 이번 기회에 영원히 실종시켜주마!”

“!”

이한은 허공에서 터져나간 화살이 복잡한 마력 패턴을 만들어내는 걸 보며 경악했다.

‘마법 방해 역장!’

벤도졸 교수의 실력을 보진 못했지만, 아마 뛰어난 마법사일 터였다. 그렇지 않다면 저 지랄맞은 성격으로 교수 노릇을 하기 힘들었다.

그에 비해 번개걸음 교수는 제국 탐험가 출신이었으니 마법으로 정면 승부를 하기엔 불리했다. 그래서 전투 시작에 마법 방해 역장을 깔아서 선공권을 가져온 것이다.

“이 밀렵꾼 놈이!”

벤도졸 교수는 으르렁대며 역장을 찢으려고 끝이 뭉툭하고 길이가 짧은 지팡이를 흔들었다.

당연히 번개걸음 교수도 그걸 내버려두지 않았다.

“공간이여, 적을 내게 가져와라!”

장갑 아티팩트가 발동되자 갑자기 벤도졸 교수가 강한 인력(引力)에 끌리듯 날아왔다.

퍽!

“네놈이 실종되어서 일 년 동안 고생했다, 개자식!”

번개걸음 교수의 정권이 벤도졸 교수의 명치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벤도졸 교수의 허리가 깊숙이 앞으로 꺾였다.

“...교수님...”

“너희를 가르치는 게 보람 없었다는 건 아니다!”

번개걸음 교수는 학생들에게 해명하며 벤도졸 교수를 한 대 더 쳤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러나 벤도졸 교수도 맞으면서 마법을 기어코 완성시켰다. 거대한 두더지로 변한 벤도졸 교수는 순식간에 땅으로 파고들었다.

“산(酸)이여, 땅을 태워라!”

딱 봐도 지독한 산성 물약을 땅굴에 던져넣자 서리걸음이 당황해서 물었다.

“너무 강한 물약 아닌가요?”

“이걸로 안 죽으니 걱정할 거 없다. 사냥꾼들 뭐하나! 조준 안 하고!”

이름 없는 사냥꾼들은 지켜보고 있다가 뒤늦게 움직였다. 그러나 한 발 늦었다. 벤도졸 교수가 갑자기 땅에서 뛰쳐나오더니 학생을 한 명 붙잡았다.

가이난도였다.

번쩍!

벤도졸 교수의 주머니에서 나온 요정벌레가 교수를 야영지 밖으로 공간이동시켰다.

그걸 본 번개걸음 교수는 아차 싶었다.

유니콘 때문에 눈이 뒤집힌 줄 알았는데 의외로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벤도졸 교수가 아무리 광인이어도 그렇지 작정하고 몰려온 번개걸음 교수 일행을 다 상대할 수는 없었다.

가장 효과적인 건 저런 식의 발을 묶는 인질극!

“쫓아오지 마라, 밀렵꾼 놈들아! 쫓아오면 인질을 유니콘 먹이로 주겠다!”

“이, 이한! 살려줘! 읍읍!”

“조용히 해라!”

벤도졸 교수는 그대로 산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번개걸음 교수는 이를 갈며 말했다.

“생각보다 머리를 쓰는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쫓는다! 놈은 절대 가이난도를 유니콘 먹이로 주지 못해.”

번개걸음 교수도 배짱 하나만 놓고 보면 절대 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벤도졸 교수는 절대 가이난도를 유니콘 먹이로 주지 못한다!

“왜죠? 유니콘이 싫어해서인가요?”

“시아나 사제... 미친 소리 좀 하지 마...”

“교장 선생님 때문이지. 방금 벤도졸을 보아하니 눈이 뒤집힌 상황에서도 제법 냉정하게 판단을 하더군. 그럼 학생을 유니콘 먹이로 줬다가는 누가 여기 올지 잘 알 거다.”

‘설득력이 있다!’

이한은 묘하게 설득되는 걸 느꼈다.

하긴 미친 것 같은 사람도 가끔 제정신이 될 때가 있었다.

바로 정말 미친 사람이 자기 앞을 지나갈 때였다.

해골 교장의 광기라면 벤도졸 교수의 광기를 제압할 수 있을지도...

“지금부터는 유니콘을 찾을 필요 없다. 벤도졸 놈을 찾으면 유니콘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전략을 바꾼다! 사냥꾼들. 학생들과 2인 1조로 추적해라. 벤도졸 놈이 역습하려고 하면 학생이 방패 역할을 해!”

“예!”

이한은 그렇게 대답하고 일어났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친구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다들 경악한 눈으로 이한을 보고 있었다.

“왜 그래?”

“우, 우리가 방패 역할을 해야 한다는데 안 무섭나, 워다나즈?”

“걱정 마라. 벤도졸 교수님은 절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할 거야.”

이한은 확신했지만 아쉽게도 친구들에게까지 그 확신이 전염되지는 못했다.

“대체 워다나즈 님은 뭘 보고 확신하시는 거죠?”

“워다나즈 님은 좀 교수님들하고 통하는 게 있으십니다.”

“그건 욕 아니에요?”

친구들이 소곤거리는 사이 이한은 추적에 나설 준비를 했다.

이름 없는 사냥꾼들 중 한 사람과 2인 1조로...

“......”

같은 조로 움직이게 된 이름 없는 사냥꾼은 이한을 보더니 형언하기 힘든 매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번개걸음 교수한테 찾아가 속삭였다.

“안 돼. 뭘 바꿔? 장난하나? 괴물들의 왕이라고? 지금 자네들 미신 따질 때가 아니라니까. 빨리 출발해!”

“......”

이번에는 이한이 형언하기 힘든 매우 미묘한 표정으로 이름 없는 사냥꾼을 쳐다보았다.

사냥꾼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출발하겠소.”

“예, 뭐.”

*         *         *

이름 없는 사냥꾼들은 제국의 여러 산맥에 흩어져서 고독하게 지내는 이들이었지만, 각자 같은 목표와 생활방식, 그리고 수많은 미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집단이었다.

모든 삶을 사냥에 몰두한 만큼 이들의 추적술은 어지간한 순찰자들은 따라오지도 못할 만큼 대단했다.

이한도 닐리아한테 그림자 순찰대의 방식을 배우긴 했었지만 새로 배우는 점들이 많았다.

‘대단하다!’

“여기 방향은 어떻게 찾으신 겁니까? 아무 발자국도 없는데?”

“가끔은 발자국이 없는 게 단서가 되오. 이 주변은 작은 동물들이 계속해서 출몰하는 곳인데, 여기 흙만 유난히 흔적이 없소. 발자국이 난 다음 흙을 위로 덮은 걸 거요.”

“과연...!”

“조금 후부터는 목소리를 줄이시오. 비통 산맥의 몬스터들은 소리에 민감한 놈들이 많소.”

“명심하겠습니다.”

이름 없는 사냥꾼은 이한을 꺼림칙하게 여기거나 두려워한 것치고는 매우 친절했다.

뭘 물어봐도 잘 대답해줬고, 벤도졸 교수의 흔적을 쫓으면서 이한이 주의해야 할 점들을 세심하게 지적해줬다.

솔직히 말해서 닐리아보다 가르치는 능력이 뛰어났다.

‘닐리아는 너무 대충 가르쳐줬지...’

대충 이렇게 느낌적으로 쉭쉭! 같은 표현을 즐겨했던 닐리아를 떠올리며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뭐 좀 더 여쭤 봐도 됩니까?”

“좋소. 그믐달도 아니니 편히 물어보시오.”

이한은 ‘그믐달은 왜 안 됩니까?’ 같은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괴물들의 왕이 뭡니까? 처음 듣는 건데요.”

“괴물들의 왕은 우리 이름 없는 사냥꾼들의 옛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자요. 온갖 악마와 괴수를 부리는 무시무시한 자지.”

괴물들의 왕은 이야기에서 자주 보이는, 무시무시한 악당 느낌의 등장인물이었다.

오만한 사냥꾼이 주인공이라면?

게을러져서 활을 팔고 갑옷을 팔고 놀다가 괴물들의 왕을 만나서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다.

용감하지만 어린 사냥꾼이 주인공이라면?

온갖 무구를 찾아서 괴물들의 왕에게 한 방 먹여주었다.

교훈으로도 쓰이고 어린아이들 겁줄 때도 쓰이는 등 참으로 편리한 악당!

“...아니, 동화나 옛 이야기에 나오는 존재잖습니까! 그거 때문에 저를 꺼려하시는 게 말이 됩니까?”

“물론 괴물들의 왕은 옛 이야기에 나오는 존재요. 하지만 저 이야기와 상관없이, 그리폰과 바실리스크를 길들여서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겁이 나기 마련이오.”

“......”

그건 그렇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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