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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79화 (679/687)

679화

디레트는 품위 있는 선배로서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참고 이한을 안으로 안내했다.

예상했던 대로 낡은 저택은 문을 통과하자 전혀 다른 풍경을 드러냈다.

흰색으로 칠해진 넓은 돔 형태의 공간은 학구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있었다.

제각각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는 마법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연구 지원이 끊겼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크흑, 물론 제가 황금을 빼돌리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더 위대한 마법을 위해서였습니다.

-알지. 알아! 황금 좀 빼돌렸다고 연구 지원을 끊다니. 무례한 놈들. 마법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런 놈들 때문에 마법의 발전이 멈춘다니까!

-수도에서 유행하는 지팡이 양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화염 원소 하나 때문에 그렇게 불안정한 구조를 만든다고? 천박할 뿐이야! 곧 유행이 가라앉을 걸세!

돔 앞쪽에는 마법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면, 돔 뒤쪽에는 오늘 교류회에서 발표할 마법사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원이 그 사이에서 준비하고 있는 걸 발견한 이한은 속으로 잘되기를 빌었다.

디레트는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더니 이한을 불렀다.

“후배. 여기. 여기부터 봐야 해.”

“어떤 겁니까?”

“간식이야. 여기 교류회 다과가 괜찮아.”

디레트는 손수 접시를 들어서 과편(果片)과 다식(茶食) 몇 개를 올려주었다.

“기억해둬. 여긴 살구 과편하고 밤 다식이 맛있어.”

“아, 예.”

이한은 진지하게 말하는 디레트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순간 가이난도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디레트 선배. 교류회면 마법이나 그런 걸 더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응?”

디레트는 차를 홀짝이다가 후배의 말에 피식 웃었다.

“교류회에서 발표되는 것 중 절반 넘는 게 쓰레기인데 뭘. 간식이라도 맛있는 거 안 고르면 시간 아까울 거야.”

사실 절반도 좋게 말해준 것이었다.

영감을 얻기 위해 왔다고 말했지만 디레트 같은 마법사한테 영감을 줄 수 있는 마법은 오늘 채 한두개도 되지 않을 터.

그것도 운이 좋은 경우에만 가능했다.

“다행히 오늘 교류회에는 유크벨티레 황녀가 참가해. 걔 작품은 볼만하겠지.”

“누구십니까?”

“아. 넌 모르겠구나. 내 친구야. 너희 선배기도 하고. 걔도 5학년으로 올라가...”

디레트는 후배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마지막 말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함과 우울함이 담겨 있었다.

이한은 응원했다.

“힘내십시오. 선배는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디레트는 후배 앞에서 추태를 보였다는 걸 깨닫고 모르는 척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아까 교장 선생님 이야기는 뭔데?”

“음. 그 이야기를 하려면 좀 길어집니다만.”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야. 준비하려면 더 걸릴 거고.”

디레트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러니까 비통 산맥에 가게 된 이유는...”

이한은 왜 비통 산맥에 가게 됐는지부터 시작해서 교장 선생님이 왜 유니콘을 데리고 가게 됐는지까지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간식을 아삭거리며 먹던 디레트였지만 어느새 찻잔도 내려놓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유니콘들은! 그 불쌍한 유니콘들은?”

심지어 근처에 있던 다른 마법사들도.

이한과 디레트는 당황해서 마법사들을 쳐다보았다.

“저, 이건 에인로가드 내부 일이라서 외부 분들이 듣긴 좀...”

“제, 제발!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알려주십시오! 크악! 어떻게 된 건데!”

마법사들은 애걸복걸했지만 이한과 디레트는 냉정하게 일어나서 다른 자리로 향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이 유니콘을 데리고 가게 된 겁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야 디레트는 숨을 크게 들이쉴 수 있었다.

“후배 너는... 정말...”

“?”

“...지적할 부분이 많아서 어딜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네. 정말 용케 목숨 부지하고 산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나쁜 것 아닌가?’

디레트는 속으로만 생각하며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교장 선생님하고 너무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좀 걱정이긴 하네.”

“친구들한테 첩자로 오해받을 수 있어서요?”

“...아니... 마법. 마법 이야기였어. 교장 선생님의 마법이 쉬운 건 아니니까.”

디레트는 후배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하긴.’

안 그래도 저번 비통 산맥에서 헤어질 때 말도 안 되는 과제를 부여받았던 만큼 이한은 깊게 공감했다.

“그럼 벤도졸 교수님이 올해부터 돌아오신다는 거지?”

“예.”

“음, 힘내. 후배.”

많은 의미가 함축된 디레트의 말에 이한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렇게 심하셨습니까?”

“조금? 난 아직도 크라켄 뱃속에 실수로 들어간 친구를 꺼내던 게 잊히질 않아.”

디레트는 추억에 젖은 눈빛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물론 이한은 그런 감상에 젖을 수가 없었다. 경악의 시선으로 선배를 쳐다보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후배. 다들 거쳐 온 길이니까. 물론 2학년 강의들은 좀 더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후배 너는 이미 충분히 어렵게 들었어. 크게 달라질 거 없을 걸.”

“따뜻한 위로 감사드립니다...”

이한은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심정으로 대답했다.

“참. 디레트 선배. 소세계(小世界) 마법이 뭔지 아십니까?”

해골 교장한테 들었던 게 생각나 묻자 디레트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알긴 아는데, 왜? 후배 네가 아직 관심 가질 마법은 아닐 텐데.”

의아해하면서도 디레트는 갖고 있던 종이를 꺼내 간단하게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어차피 시간도 남는데다가, 디레트가 보기에 눈앞의 후배는 마법에 아주 미친 사람이라 관심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후배 너라면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지.”

“현실을 마법사의 의지로 바꾸는...”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었기에 이한은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디레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맞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대부분의 마법은 정말로 현실을 바꾸는 게 아니야. 현실을 교묘하게 속이는 것에 가깝지.”

디레트는 옆을 지나가는 마법사가 현란한 빛의 망토 마법을 두르고 있는 걸 가리켰다.

빛의 망토는 일곱 가지 색깔로 변하면서 독특한 마력 파장을 만들어냈다.

“저 마법은 아마 <아센의 칠색 환영 망토>일 거야. 저 마법을 시전하는 정석적인 방법은 두 개의 마법진과 다섯 가지 종류의 시약. 그리고 네 어절 이상의 주문이지. 그런데 왜 그냥 주문과 의지와 동작으로 시전하지 못하지? 그러면 훨씬 간편한데?”

“마력이 부족해서입니다.”

이한은 즉시 대답했다.

“......”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디레트는 약간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후배를 쳐다보았다.

“그... 그것도 맞긴 한데,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어, 후배. 현실을 바꾸는 게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마법은 아무 대가 없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학문이 아니었다.

어떤 현상이든 간에 이뤄내고 싶다면 대가가 필요했다.

마력이든 시약이든 주문이든...

“저런 온갖 복잡한 방법들이 동원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현실을 바꾸는 게 아니라 속이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그래. 요령 있게 속이기 위해 각종 방법이 동원되는 거지. 진정 현실을 바꾸려면 하위 마법으로는 힘들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마법이 필요하고, 온갖 비전이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소세계의 경지야.”

여기까지 말한 디레트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싶어서 고민에 잠겼다.

“혹시 고유세계 마법은 알아? 아마 모를 것 같은데...”

“압니다. 본 적 있어요.”

“아. 그건 알아? ...뭐? 어디서 봤는데?!”

디레트는 깜짝 놀랐다.

워다나즈 가문에서 봤나?!

“그건 나중에 물어보고... 고유세계 마법은 마법의 극치이자 지고한 경지지. 세계 자체를 마법사의 뜻으로 바꿔버리는 거니까. 하지만 그만큼 난해하고 힘든 마법이고... 목표로 하는 사람도 드물어.”

모든 마법사들이 해골 교장처럼 고유세계 같은 마법을 꿈꾸진 않았다.

마법사들이 가진 목표는 기본적으로 지식의 탐구인 만큼, 자신의 목적과 상관있는 마법만이 중요한 것이다.

평생을 갈아 넣어도 닿기 힘든 마법은 수단으로서 비효율적이었다.

그에 비해 소세계(小世界) 마법은 훨씬 더 국소적이고 제한적이긴 했지만 고유세계 마법과 비슷한 원리로 현실을 바꿨다.

‘보급형 고유세계 마법 같은 건가.’

이한은 디레트의 설명을 듣고 나름대로 이해했다.

하긴 해골 교장도 일말의 양심이 있는 만큼(언령 마법은 바로 배우라고 권하긴 했었지만) 바로 고유세계를 익히라고 하진 못했다.

대신 조금 더 익힌 사람이 많은 소세계부터 시작하라고 권한 게 분명했다.

고유세계 마법은 누가 가르쳐줄 수도 없는 마법사 개인의 지고한 경지.

그에 비해 소세계 마법은 어느 정도 이론화도 되어 있고 시간과 재능을 갈아 넣으면 배울 수 있는 수준의 경지였다.

“소세계를 펼칠 수만 있다면 그 때부터는 정말 현실을 바꾼다고 말할 수 있게 돼. 그 안에서 펼칠 수 있는 마법도 다양해지지.”

“디레트 선배도 쓰실 줄 아십니까?”

“아주 아주 준비를 많이 한다면, 제한된 상황에서만 잠깐.”

디레트는 자신이 익힌 소세계, ‘펜타그라마톤’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해줬다.

마법사 내부와 지근거리의 흑마법 한계를 풀어버리는 계열의 소세계 경지였다.

“그런데 어지간해서는 쓸 일이 없어. 이거 쓸 바에는 그냥 다른 방식으로 준비하는 게 훨씬 편하고.”

만약 한계 이상의 마법을 준비해야 한다면 디레트는 그냥 공방에 각종 마법을 걸어 강하게 영역을 장악한 다음 비약으로 스스로의 능력을 증폭시킬 것이다.

마법으로 영역을 강하게 장악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증폭시키면 대충 소세계와 비슷한 효과가 나왔으니까.

마법사는 언제나 효율을 추구하는 존재였다.

“대단하십니다!”

이한은 존경 가득한 눈빛으로 디레트를 쳐다보았다.

“잠깐밖에 못 쓴다니까.”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겁니다. 존경스럽습니다.”

후배의 말에 디레트는 겸연쩍어하며 시선을 피했다. 칭찬을 듣는 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약간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디레트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소세계는 왜? 누가 익히라고 했어?”

“네.”

“...어떤 미친 새끼가?!”

농담으로 던진 말에 긍정이 돌아오자 디레트는 경악했다.

“교장 선생님이 올해 말에 입문할 수 있도록 5서클 마법들 익혀놓으라고 하시던데요.”

“미친 새끼가 정신나갔냐!”

디레트는 격분했다.

그 모습에 이한은 아까보다 더 감동했다.

후배를 위해서 해골 교장한테 분노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충성심이 절로 솟구쳤다.

“이건 안 되겠어. 후배. 투서 쓴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적당히 핑계 대고 넘어갈 생각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냥 쉬운 마법 위주로 익힌 다음에 시킨 거 했다고 우길 생각이었는데요.”

“......”

디레트는 화를 내다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지금...

쉬운 5서클 마법들은 익힐 자신이 있다는 것 아닌가?

새삼 눈앞의 후배가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천재라는 걸 느끼며 디레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겠어. 후배. 네 일이니까 네 의사를 존중해야지. 그래도 나중에 안되겠다 싶으면 참지 말고 말해.”

“네. 힘들다 싶으면 그냥 폐하께 직접 말하겠습니다.”

“그래... 응?”

말하던 디레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투서가 아니라 직접이라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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