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80화 (680/687)

680화

“방금 직접이라고...”

“디레트.”

“!”

처음 보는 마법사가 말을 걸어왔다.

마법사에게는 어딘가 아덴아르트를 닮은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다. 은색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라는 점이 특히 더 동질성을 만들어냈다.

차이점이 있다면 눈앞의 마법사가 훨씬 더 무기질적이고 냉정한 분위기를 흩뿌리고 있다는 점 정도.

이한이 아덴아르트와 꽤 친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었지만, 아덴아르트는 차갑다고 오해를 많이 받는 것치고 그렇게까지 냉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품위나 격식을 신경 쓰고 성격이 엄격해서 그렇지 자기 추종자들을 위해 빵을 훔쳐오는 사람이 냉정할 리 없지 않은가.

‘능력 있는 가이난도 같은 사람이지.’

그에 비해 눈앞의 마법사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단 게 느껴졌다.

마법사는 이한에게는 관심 하나 보이지 않고 디레트에게 말을 걸었다.

“보러 왔군.”

“그야 유크벨티레 네 작품이니까.”

“잘 생각했다. 분명 도움이 될 테지.”

‘황녀였나!’

이한은 아까 디레트가 말했던 유크벨티레 황녀가 이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그럼 아덴아르트의 언니인가?’

디레트와 이번 마법에 대해 복잡한 이야기를 나누던 유크벨티레는 그제야 이한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유크벨티레는 이한을 한 번 쳐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디레트에게 말했다.

“또 후배들을 챙기고 있나?”

“아. 관둬. 내 마음이야.”

“그러면 충고도 내 마음이지. 수준 맞지 않는 후배들을 챙기는 건 관두도록. 네 마법에 하등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

황녀의 목소리에는 오만함이나 멸시 같은 감정적인 부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맞다는 무감정한 확신만 느껴졌다.

친구가 언제나 보여주는 차가운 친절에 디레트는 진저리치며 대답했다.

“됐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거든. 그리고 이 후배 똑똑하거든.”

“매번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정말로 똑똑한 후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친구의 말에 아픈 곳을 찔린 디레트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흑마법 학파의 후배들 중 디레트만큼 성적이 좋은 사람은 아직 없긴 했던 것이다.

“이 후배는 진짜 똑똑하다고!”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었지. 차이점이 있나?”

“야. 가라. 저리 가.”

“여긴 네 소유의 공간이 아니니, 네게는 그럴 권리가 없지.”

“...후배. 우리가 가자.”

디레트는 이한의 소매를 끌고 이동하려고 했다.

그러나 황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뒤를 쫓아왔다. 그러면서 친구를 계속해서 설득하려고 했다.

“이제 같이 5학년으로 올라가게 됐는데 언제까지 후배들을 챙겨줄 생각이지? 너도 네 마법에 집중해야지.”

“내가 대체 이딴 곳에 왜 왔을까?”

디레트는 괜히 왔다고 후회했다.

친구의 마법 하나 보겠다고 왔다가 더 큰 혹을 붙인 기분이었다.

디레트가 말을 무시하자 유크벨티레는 화살을 이한에게 돌렸다.

“3학년. 네가 대답해봐라. 언제까지 디레트한테 응석을 부리려는 거지? 에인로가드의 학생이 되어서 위대한 마법사가 될 디레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게 부끄럽지도 않나?”

‘왜 3학년이라고 생각한 거지?’

1학년인데?

이한은 의아해했다.

그러나 대답하기도 전에 디레트가 격노했다.

“야. 너 지금 선 넘고 있다. 친구고 뭐고 한계가 있어.”

“난 친구로서 충고를 하는 건데...”

“더 지껄여봐. 오늘 발표고 뭐고 여기서 뒤진다.”

“!”

이한은 4학년, 아니 5학년으로 올라가는 선배의 분노가 얼마나 강력한지 느끼고 전율했다.

마력이 일렁거리더니, 이한이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마법 다섯 개 정도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까지 올라온 느낌이 들었다.

“음. 그런데 맞긴 하지 않습니까?”

“...야... 후배...”

디레트는 ‘네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하는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자기 편을 들어야지 싸가지 없는 친구 편을 들면 어떡한단 말인가?

“아니, 흑마법 학파 선배들이 디레트 선배한테 너무 의존하는 것 같긴 하던데요... 저번에도 그렇고... 심지어 교수님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보는 눈이 있군.”

유크벨티레는 냉큼 공감했다.

재능은 몰라도 양심은 조금 있는 모양이었다.

“흑마법 학파는 디레트의 재능을 착취하고 있지. 모르툼 교수는 물론이고, 코홀티는 같은 학년이면서 도움이 된 적이 없지. 이것도 부정할 생각인가?”

아픈 곳을 다시 찔린 디레트는 멈칫했다.

“그건 흑마법 학파의 특성이...”

“맞긴 한 것 같습니다.”

“야!”

디레트는 후배의 배신에 분노했다.

이 자식 첩자 아니야?

이한은 디레트를 달래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제 생각에는 흑마법 학파 학생들은 이제 디레트 선배에게 그만 의존해야 합니다.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죠. 모르툼 교수님도 디레트 선배 그만 시키고요.”

“...!”

디레트는 싸움도 잊고 울컥 감동했다.

저런 기특한 소리를 하는 후배는 처음 보았던 것이다.

“...마음만이라도 기쁘네.”

“저도 교수님이 디레트 선배님 부를 때마다 교장 선생님한테 투서 넣겠습니다!”

“......”

“......”

디레트도 유크벨티레도 이한을 정신 나간 놈 쳐다보듯 보았다.

“혹시 정신이 이상한 후배인가?”

“...아니야. 교장 선생님하고 친해서 그래.”

“그럼 정신이 이상한 게 맞는데?”

황녀는 악의 없이 말했다.

상대가 해골 교장의 제자일리는 없을 테고, 제자도 아니면서 친하게 지내는 놈은 징벌방 단골밖에 없었다.

“후배... 마음은 고마운데.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그리고 흑마법 학파는 워낙 숫자가 적어서 일 부담이 많아 보이는 것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디레트 혼자 맡는 일 부담이 훨씬 많지.”

“넌 닥쳐 좀.”

“거절하지.”

둘의 대화를 듣던 이한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혹시 유크벨티레 선배님은 어느 학파를 전공하십니까?”

“부여 마법. 버두스 교수의 직계야.”

“아하, 역시!”

이한은 역시나 싶어서 바로 납득했다. 디레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내 친구인데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디레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한테 ‘혹시 버두스 교수의 제자십니까?’라고 묻는 것만큼 실례되는 일도 드물었지만, 예외가 있긴 했다.

상대가 정말 버두스 교수의 제자일 경우!

유크벨티레는 그런 경우였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유크벨티레 님.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마법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황녀는 시간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디레트. 오늘 충고를 잊지 마.”

“예. 제가 꼭 바꾸겠습니다!”

‘왜 니가 대답해...’

유크벨티레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겠다고 말한 뒤 떠나갔다.

디레트는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마법 보려고 왔다가 무슨 고생인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넌 왜 쟤 편을 드는 건데!”

“죄, 죄송합니다.”

이한은 살짝 억울했다.

솔직히 흑마법 학파 잘못도 있어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까 저 선배 분이 왜 절 3학년이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4학년은 자기가 알고, 2학년은 여기 올 이유가 없으니 3학년이라고 생각한 거겠지.”

“1학년도 있잖습니까?”

디레트는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질문을 한 후배를 쳐다보는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보았다.

* * *

가원이 마법을 준비하자 디레트는 별로 관심 없는 표정으로 책을 뒤적거렸다.

“저 마법에는 별 관심 없으십니까?”

“사전에 발표한 거 봤는데 별로더라.”

교류회에서 발표되는 마법들은 기본적으로 사전에 카탈로그로 작성된 뒤 마법사들에게 나눠졌다.

눈썰미 좋고 영리한 마법사들은 그것만 봐도 이 마법이 괜찮은 마법인지 진부한 마법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오타의 광성 프리즘> 마법에서 발전이 없던데.”

“그, 그래도 마법진을 좀 더 개량하고 과정을 단축시키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으니까.”

마법을 개량하는 건 지식과 감각 모두가 필요한 일이었다.

온갖 마법진들을 만들고 고친 경험에서 나온 지식과, 마력의 흐름을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는 감각.

그게 있어야 개량할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심지어 방향성을 잡는다고 끝이 아니었다. 그 방향성을 구현할 능력도 필요했다.

예를 들어 마법진에 1,000 만큼의 마력을 압축해 넣으면 효과가 좋아진다고 하자.

그럼 마법사는 그걸 자신이 직접 구해 와서 넣은 다음 증명을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도 못하면서 주장만 해봤자 다들 시큰둥할 뿐이었다.

“그래도 저게 광령묵 마법진도 다시 개량했고, 흑영사에 마력도 압축해서 넣은 건데...”

“...그러게?”

디레트는 <월간 흑마법 유행> 책을 접고 눈을 가늘게 떴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달라진 게 느껴졌던 것이다.

“형태 고정을 훨씬 간략하게 했잖아? 좌면부 형태 고정 마법은 빼버렸네?”

과감한 선택에 디레트는 놀랐다.

에인로가드 출신이라면 모를까 외부 마법사들은 생각보다 안전한 선택에 집착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저런 과감한 마법진이라니.

“괜찮습니까?”

“좋은데... 괜찮네.”

이한은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이 고친 게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깐만, 마법진을 아예 개량한 다음에 흑영사에 마력을 압축해 넣었다고? 비블레 교수님도 아니고 저런 발상을 어떻게 했지?”

“...교수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죠...”

“그렇긴 한데, 저런 방식은 비블레 교수님이 즐겨 쓰는 방식이거든.”

난이도와 상관없이 효율성을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내는 마법 방식.

버두스 교수가 즐겨 쓰는 방식이었다.

이한은 질색했다.

‘억울하군.’

버두스 교수의 방식이라고 오해를 받다니!

교수 밑에서 배운 경험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이한은 커다란 굴욕감을 느꼈다.

“대단하네.”

디레트는 짤막하게 평가를 내뱉고 몸을 젖혔다. 눈빛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저 마법사, 작정하고 나온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후배. 저걸 어떻게 바로 알아본 거야?”

새삼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먼 거리에서, 심지어 후배는 카탈로그도 보지 못했을 텐데 저 마법의 비범함을 알아차리다니.

“제가 개량을 도왔습니다.”

“...뭐?”

“마차 태워주셔서...”

이한은 마법사 가원이 마차를 빌려준 친절에 보답한 이야기를 해줬다.

디레트는 황당해서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걸 본 이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교류회에 제출한 마법은 건드리면 안 되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보통 마차를 빌려준다고 마법을 개조해주진 않지...”

동전 하나 받았다고 마을에 마법을 걸어주고 간 마법사 이야기도 아니고 무슨 인심이 저렇게 후하단 말인가.

디레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앞을 쳐다 보았다.

-오타의 광성 프리즘에서 달라진 게 없지 않습니까?

-그, 그게...

-멍청하긴! 보는 눈도 없는가! 저 마법진을 보게. 오타의 광성 프리즘보다 몇 배는 개량되었어!

-그 정도 개량으로는 안 돼!

-저기 흑영사에 마력 압축된 거 안 보이나! 머저리요, 당신?!

-감히... 따라 나와! 결투다!

-내가 할 소리군. 머저리 놈 하나 교류회에서 치워줘야겠다!

트집을 잡으려다가 역으로 욕만 먹고 결투하러 간 몇몇 소수의 의견을 제외하면, 교류회에 참가한 마법사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가원은 안도해서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이한을 발견하고 반색했다.

그리고는 무대 위에서 이한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한 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마법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좌석에 앉아 있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이한을 쳐다보자, 디레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후배. 우리 다음부터는 따로 앉는 게 좋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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