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83화 (683/687)

683화

아깝게-됐군-

교만공은 중얼거렸다.

살육과 파괴에만 목매는 다른 하급 악마들과 달리, 공작 정도 되는 악마라면 품위와 지성이 결부된 목적이 따로 있기 마련이었다.

교만공 또한 그랬다.

여기 좌중의 마법사들을 전부 죽이기보다는 그 영혼을 수집하고 싶어하는 수집가.

그게 바로 교만공 가리사이마였다.

지금 상황은 가리사이마에게는 행운과 행운이 연속적으로 겹쳐진 상황이었다.

제약 없이 힘을 발휘해서 마법사들을 제압한 뒤 강제로 계약을 들이밀 상황이 또 언제 오겠는가?

마법사들은 실로 교활한 족속들이라 강력한 악마와 계약할 때에는 온갖 함정을 깔기 마련.

이런 기회는 정말 흔치 않았다.

특히 눈앞에서 뇌공왕과 계약한 어린 마법사는 정말로 탐이 났다.

‘마치 보석 같구나!’

교만공의 진열장에 전시된 영혼들 중에서도 저런 자는 찾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탐욕을 뇌공왕도 느끼고 있었는지, 패배할 바에 마법사를 죽이겠다는 각오로 힘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마법사를 제압한 뒤 강제로 계약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교만공은 아쉬워하고 아쉬워하면서 결심을 다졌다.

어쩔-수-없나-뇌공왕-이-원한은-나중에-갚지-!

-놈이 다시 온다!

순간 교만공의 뒤편에서 거대한 마력이 솟구치더니 주변 공간을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예전에 서리거인의 왕이 주변 공간을 자신에게 맞게 변화시킨 걸 본 적 있었기에 이한은 놀라지 않았다.

이한이 놀란 건 다른 부분이었다.

‘마력의 속성이...?!’

처음 보는 속성의 마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악마 공작은 자신만의 속성을 사용한다. 조심해라! 아마 다른 원소들과는 다를 테니.

암흑 원소도, 기타 다른 원소들도 아닌 이질적인 속성의 마력이 교만공을 둘러쌌다.

이러면 갖고 있는 지식으로 상대를 미리 파악하는 마법사의 장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어떤 특성인지 알고 계신 게 있습니까?

불길한 기운의 마력을 감지하며 이한은 물었다. 페르쿤트라는 즉답했다.

-그런 건 몰라도 된다!

-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만공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아까 제압하려던 것과 달리, 페르쿤트라를 확실히 죽이겠다는 살기가 느껴졌다.

‘안개가...!’

교만공은 검붉은 안개처럼 변하더니 이한을 빙 둘러싸려고 했다. 범위에 있던 사물들이 먼지가 되어서 사라져나갔다.

“!”

풍화도 부식도 아닌 것 같은 기묘한 속성에 이한은 전율했다.

그러나 페르쿤트라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네놈에게 벼락을 보여주마.

뇌화(雷化)!

이한과 일체화 된 페르쿤트라는 그 순간 벼락 자체로 변해서 움직였다.

교만공이 안개로 변해서 물들인 공간을, 한 줄기 벼락이 뚫고 나갔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페르쿤트라는 연속으로 움직이며 오히려 교만공을 압박해 들어갔다. 벼락이 움직이고 움직일 때마다 점점 교만공의 공간이 줄어들었다.

뇌공왕-아주-신났군-!

억울하면 네놈도 마력 빌려오지 그러냐!

아무리 제약 없이 차원 관문을 통과했다지만 결국 교만공의 힘은 저 연결된 차원 관문을 통해서 나오기 마련.

그에 비해 계약자와 직접적으로 일체화해서 싸우는 페르쿤트라는 계약자의 기량에 따라 얼마든지 힘을 부풀릴 수 있었다.

교만공은 뇌공왕이 확실히 만만찮은 상대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자가 어떻게 저렇게 버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법사-정말-신기하군-

-그런데 페르쿤트라 님.

이한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방금 뇌화 같은 마법은 이제 변환 마법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었다.

번개로 변신해서 주변을 장악한다는, 간단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마법.

-이걸 써도 제가 괜찮은 거 맞습니까?

-마력이 그렇게 많은데 무슨 멍청한 질문을 하는 거냐!

-아뇨. 마력 질문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제 수준에 맞지 않는 마법을 썼을 경우 육신에 부담이 가잖습니까.

강력한 강화 마법이 육신에 부담을 주듯이 다른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번개로 변신해서 치고 빠지는데 나중에 몸이 괜찮나?

-그것도 마력이 많아서 몸이 붕괴하지 않고 유지될 거다.

-정말입니까? 근육통 같은 것도 없습니까?

-그런 건 있을지도...

-......

-악마 공작을 상대하면서 근육통 정도면 싸게 먹히는 거지!

페르쿤트라는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하긴 맞는 말이다.’

이한도 저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교만공은 흑적색 검을 꺼내더니 호전적으로 웃었다.

좋아-좋아-계속-해보자고-뇌공왕-!

말이 끝나는 순간 교만공이 사라졌다.

마치 캄캄한 밤하늘처럼 교만공의 마력이 주변을 휘감았다. 그 안개 속에서 교만공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이빨을 드러냈다.

페르쿤트라도 호전적인 천둥소리로 화답하며 벼락으로 변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벼락의 창칼이 안개를 찢어발기고 교만공의 검과 충돌했다.

5초도 안 되는 짧은 사이 둘은 수백 번 가까이 충돌했다. 교만공은 흥분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지간한-악마들도-여기 갇히면-카나리아처럼-지저귀는데-!

안개로 계속 변신할 생각이냐? 그런 안개로는 내 벼락을 이길 수 없다!

교만공의 공간에 닿는 순간 막대한 데미지를 입는다지만, 페르쿤트라는 자신의 진명을 담은 신성한 벼락으로 저항해냈다.

안개의 힘이 통하지 않으면 그저 성긴 그물일 뿐.

그건-해봐야-알겠지-네-계약자가-아무리-교활해도-언젠간-쓰러질-테니-!

“거기까지다. 악마. 후배한테서 떨어져라! 에인로가드의 무간심층에 갇히고 싶지 않다면!”

감히-그런-협박을-?!

‘그런 곳도 있나?’

* * *

페르쿤트라와 교만공의 싸움이 시작되자, 마법사들은 냉정하게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들을 판단하고 행동에 나서...

...지 않고 그냥 홀린듯 구경했다.

빨리 이 교류장의 공간을 격리해서 혹시라도 모를 피해를 예방하고, 악마에게 통할 대마법을 준비해야 하는데도!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신비를 쫓는 탐색자이자 구도자.

눈앞에서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싶은 아름다운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자리에서 일어난단 말인가.

‘대단하다!’

페르쿤트라가 벼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마법사들은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저 벼락이 평범한 번개 원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낀 것이다.

짐작도 가지 않을 만큼 난해하고 심오한 과정을 거쳐 강화된 번개 원소!

저 벼락의 백 분의 일이라도 관찰하고 배워갈 수 있다면, 여기 있는 마법사들은 팔다리라도 성큼 내놓을 터였다.

그런 와중에 유크벨티레는 다른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어떻게 버티는 거지?’

대정령과 계약해서 소환하는 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운과 적성의 문제였지 성공한 마법사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대정령이 아낌없이 힘을 과시하고 있는데 버티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유크벨티레는 갑자기 예전에 들었던 워다나즈 가문의 1학년 학생에 대한 소문이 떠올랐다.

소문에 따르면 여러 학파 마법을 같이 들으면서 수석을 차지하고 선배들의 마법도 보조하고 있다고.

일렌딜과 어울릴 정도로 괴짜고, 흑마법 학파 학생들과 친분이 깊은 걸 보면 아마 교우 관계가 좁고 원만하지 못한 학생일 터였다.

‘설마?’

유크벨티레는 디레트와 친해보이던 후배의 모습에 혹시나 싶었다.

“유크벨티레, 도와줘. 연결된 차원을 끊어낼 거야.”

“혹시 저 후배, 워다나즈 가문인가?”

“뭐? 맞아.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혹시 흑마법, 연금술, 부여 마법들을 다 듣고 있는 거 맞나?”

“도울 거야, 말 거야?”

디레트는 짜증 섞인 눈빛으로 친구를 쳐다보았다.

자기 작품이 눈앞의 지옥을 만들고 있는데 뭔 헛소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도와야겠지. 어떤 식으로 견제할 생각이지?”

“일단 차원 관문을 끊어야겠지.”

다른 차원의 존재는 원래 현세에 강림하면 크게 제약을 받았다.

자신의 차원에서 갖고 올 수 있는 힘의 일부만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교만공이 날뛸 수 있는 이유는 뒤에 차원 관문이 열려있고 지속적으로 자기 차원에서 힘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

관문을 끊어버리면 교만공도 주저할 수밖에 없으리라.

“몇 가지 난관이 있어 보이는데. 저 정도로 강력한 악마는 차원 관문에 간섭하는 순간 곧바로 알아차리겠지. 그러면 저 정령이 아니라 우리를 노릴 거다.”

황녀는 냉정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디레트는 알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키지 않고 간섭할 생각이야.”

“그게 가능한가?”

“어렵겠지만 해봐야지.”

디레트의 말에 유크벨티레는 친구가 자신도 모르는 뛰어난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에 유크벨티레는 아주 미세한 흡족함을 드러내며 칭찬했다.

“훌륭해. 디레트. 수준 맞지 않는 후배들을 챙기느라 걱정했는데, 네 마법에도 집중하고 있었군.”

“야. 닥쳐. 아티팩트 하나 못 만들어서 차원 사고 일으킨 게.”

“내 잘못이 아니다. 다른 마법사들의 실수였지. 멍청한 마법사들을 믿고 맡긴 건 확실히 실수군.”

“알아차리는 것도 능력이지. 후배는 멀리서 알아차렸거든? 그러게 말 좀 듣지. 고집만 세가지고.”

“......”

아픈 곳을 찔린 황녀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1학년 학생이 알아차렸는데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도 반박하기 힘들었다.

“방심했다.”

“방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꼭 공부 못하는 놈들이 그런 소리 하더라. 시험 보기 전에 방심하고 과제하기 전에 방심하고.”

“그런 놈들과 날 같이 비교하지 마. 디레트.”

“싫은데.”

“나는 그런 놈들과 다르...”

“다 됐다. 야. 도와줘.”

디레트의 양팔과 흰 얼굴 위로 기하학적인 문양의 마법 글자가 올라와있었다.

유크벨티레는 디레트가 계약한 악마의 힘을 빌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 악마와?”

“교장 선생님한테 허락받고 에인로가드에 갇힌 악마 하나 빌렸어.”

마법사의 마법에는 예민하게 반응할 교만공이었지만, 악마의 힘에는 비교적 반응이 둔할 터.

디레트는 악마의 힘을 사용해 차원 관문에 접촉해 그 연결을 봉쇄시킬 생각이었다.

“은폐할 수 있지? 이거 못하면 넌 코홀티 이하야.”

“......”

모욕적인 발언에 눈썹 끝을 살짝 떨며, 유크벨티레는 디레트의 손을 붙잡고 주문을 외웠다.

일반적인 마력과 다른 악마의 힘이 공간을 뱀처럼 타고 들어가 차원 관문을 휘감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악마의 힘을 빌리고 있는 탓에 디레트는 식은땀을 흘렸다. 계약에 따른 적절한 대가를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반동이 만만치 않았다.

‘...대체 쟤는 어떻게 저렇게...?’

앞을 보니 후배는 숫제 벼락으로 변해서 싸우고 있었다. 교만공의 안개를 벼락으로 찢어발기는 모습이 초현실적이었다.

다른 마법사들은 홀린 것처럼 지켜만 봤다. 디레트는 뒤에 확 저주를 갈겨버리고 싶었다.

“쓰레기들.”

“동감이군.”

유크벨티레도 디레트의 말에 동의했다.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관람이나 하고 있다니.

아무리 신화적인 싸움이라고 해도 그렇지...

“야. 집중하라고!”

“......”

유크벨티레는 자신이 눈앞의 싸움을 관찰하다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이 내가... 이런 하찮은 실수를... 했다고?’

“너 지금 코홀티까지 내려왔다.”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집중해. ...됐다! 거기까지다. 악마. 후배한테서 떨어져라! 에인로가드의 무간심층에 갇히고 싶지 않다면!”

디레트의 외침에 홀린 듯 지켜보고 있던 마법사들도 깨어났다.

“차, 차원 관문을 봉쇄했군!”

“왜 저 생각을 못했지...?!”

‘죽이고 싶네 진짜.’

“잠깐, 저 분은 디레트 님 아니십니까!?”

디레트는 재빨리 모자를 푹 눌러쓰며 외쳤다.

“잘못 보셨습니다.”

“어...”

“빨리 저 악마나 공격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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