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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84화 (684/687)

684화

마법사들은 그 말에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보니 눈앞의 소년이 혼자 싸우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가신-놈들-같으니-!

주문과 함께 수십 개의 마법들이 준비되기 시작하자 교만공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법사들은 강하지 않더라도 그 교활함으로 인해 언제나 성가신 자들이었다.

지금 시전하는 마법들도 그랬다.

교만공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기 힘들다는 걸 깨닫고 이 공간 전체에 약화 마법을 걸고 있었다.

<악마 추방의 빛>, <악에 대한 저항>, <마계 연결 타격> 등등.

교만공에게 저런 약화 마법은 크게 데미지를 주지 못했지만 수십 개가 연달아 쌓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게다가 저들 중 몇몇은 대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이야 꽤 걸리겠지만 완성되기만 한다면 교만공에게도 상당한 타격을 주리라.

신경 쓰이나, 응? 이제라도 물러나지 그러나?

페르쿤트라는 교만공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비웃으며 제안했다.

애초에 서로 쉽게 승부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수록 유리한 건 교만공이 아니라 페르쿤트라였던 것이다.

교만공이야 뒤에 열린 관문만 믿고 있었겠지만 페르쿤트라도 그에 못지 않은, 아니, 그보다 더 대단한 계약자가 있었다.

그걸 예상하지 못한 교만공은 처음부터 패배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에인로가드의-마법사였나-못-본-사이-실력이-늘어났군-

으음. 그건...

교만공이 이한을 보고 에인로가드 학생들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자 페르쿤트라는 멈칫했다.

그건 마치 해골 교장을 넣어서 제국 마법사들의 실력 평균을 내는 것과 비슷한 통계 오류였다.

좋아-좋아-물러나도록-하지-오늘은-내가-졌다-!

상대의 항복 선언에 페르쿤트라는 기뻐하며 이한에게 속삭였다.

-축하한다! 네가 이겼다!

-어? 에인로가드의 무간심층에 가두시려는 거 아니었습니까?

-......

페르쿤트라는 이 간 큰 1학년 학생에게 경악했다.

-교만공을 어떻게 그렇게 가두냐! 놈이 무슨 이름 없는 악마처럼 보이냐!

-이름 있는 악마도 가둘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건 악마가 자기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속아 넘어갔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원래라면 불가능해!

-교장 선생님은...

-네가 그 놈이냐?

이한은 워다나즈 가문 이야기도 할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별로 좋은 예시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교만공은 고나달테스와 부딪친 적도 있고, 에인로가드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놈을 얕보지 마라! 놈이 교양 있게 행동할 때 돌려보내는 게 낫다. 놈이 발광하면 여기서 몇 명이나 죽을 것 같으냐?

-이해했습니다.

확실히 상대 악마가 해골 교장에 대해 안다면 무간심층에 갇히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럴 바에는 그냥 자결한 뒤 마계에서 다시 부활하고 말지!

마법사-네-이름을-알고-싶군-

“고나달테스 가문의 오수!”

......

......

“......”

교만공과 페르쿤트라, 심지어 디레트까지도 황당하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뒤늦게 아차 싶었다.

‘교장 선생님과 부딪친 적 있다고 했었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강력한 악마가 괴롭히더라도 별 문제 없을 마법사의 이름을 떠올리다보니 바로 해골 교장의 이름이 떠오른 것이다.

“버두스 가문의 비블레...”

됐다-마법사-. 이름을-알려주고-싶지-않은-모양이군-

교만공은 킬킬대며 웃었다.

하지만-타고난-힘은-운명을-부른다-오늘-만난-것처럼-우리는-다시-만나게-될-것이다-분명-!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이한은 질색했다.

“악마 공작, 이렇게 주변을 파괴해놓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소!”

대마법을 준비하던 마법사 중 한 명이 분노한 기색으로 외쳤다.

교만공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나와-마법사의-싸움에-취해-실컷-구경하던-놈들이-무슨-염치로-?

마법사들은 단체로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던 것이다.

오늘-너희-영혼을-지킨-것에-만족해라-그만한-행운이-어디-있겠는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교만공은 새로운 차원 관문을 열었다.

디레트의 마법으로 인해 기존 관문이 봉쇄당하고 힘의 공급이 약해졌을 텐데도, 남은 힘만으로 가볍게 공간을 찢은 것이다.

교만공은 우아하게 인사하더니 관문 너머로 사라졌다. 차원 관문이 완전히 닫힌 걸 확인하자 페르쿤트라는 일체화를 해제했다.

고생했다. 나도 이만 돌아가마!

털썩!

이한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페르쿤트라 님... 몸에... 힘이 안 들어갑니다...?”

으음! 힘을 너무 많이 썼나 보군. 푹 쉬면 회복될 거다. 마력이 있으니.

“아까는 분명 근육통 정도라고 하셨...”

페르쿤트라도 민망했는지 재빨리 작별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한은 바닥에 쓰러진 채 속으로 페르쿤트라를 욕했다.

‘하여간 정령들은 믿을 게 못 된다!’

“후배, 괜찮아!? 말할 수 있으면 말해봐!”

디레트가 기겁해서 달려왔다.

대정령을 불러서 한참 싸우던 후배가 탈진해서 쓰러졌는데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통증은? 타들어가는 통증 있어? 번개가 몸을 태우는...”

“그냥 몸에 힘이 안 들어갑니다.”

“그거 말고는 없어? 그거뿐이야?”

“...그거뿐이라니요.”

이한은 목소리에 섭섭함을 담아서 말했다.

사람이 쓰러졌는데 그거뿐이라니?

디레트도 뒤늦게 알아차렸는지 민망함을 감추며 설명했다.

“그, 그게 아니라. 정령의 힘을 무리하게 끌어내서 쓰거나 억지로 일체화하면 리바운드가 오거든. 마력 탈진이나 정령의 힘이 육신을 태운다거나... 그런 건 없는 거지?”

“예.”

디레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상황을 걱정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피한 모양이었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탈진 정도면 아주 싸게 막은 거였다.

“정말 다행이다...”

“지금 다행이라고?”

“네가 잘못 들은 거야. 걱정 마. 이런 탈진은 회복하기 쉬우니까.”

디레트는 후배를 부축해서 자세를 바로잡은 뒤 물약을 꺼내서 세 방울 입에 떨어뜨렸다.

“백두옹(白頭翁) 물약이야. 억지로 힘을 쓰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마력을 순환시키면서 손끝과 발끝의 감각이 돌아오는 것에 집중해. 탈진이 심하게 왔을 때는 감각부터 살려야 하니까.”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유크벨티레가 불쑥 고개를 내밀더니 말했다. 디레트는 깜짝 놀라서 물약병으로 친구의 얼굴을 칠 뻔했다.

“뭔데?”

“내가 머물고 있는 저택에 뛰어난 치유 마법사들이 있다. 디레트. 응급처치보다는 전문 학파에게 맡기는 게 낫겠지. 그게 더 좋지 않을까 싶은데?”

“앗. 그렇다면...”

디레트는 반색했다.

돈 많은 친구는 이럴 때 편리한 법이었다.

“신세를 좀 져도 될까?”

“물론.”

“네가 돈 많다는 사실이 참 오랜만에 도움이 되네!”

“당연하지.”

디레트가 참으로 오랜만에 칭찬해주자 유크벨티레도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이 아닌 것 같은데...?’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마력을 돌리면서 육체의 통제권을 되찾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바로... 잠깐만.”

디레트는 후배를 들고 유크벨티레의 저택으로 향하려다가 멈칫했다.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유크벨티레가 원래 이렇게 사람을 잘 걱정해줬었나?’

마치 예전에, 해골 교장이 소환한 악마를 잘 꼬드겨서 계약하는 걸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이...

“...유크벨티레.”

“왜 그러지?”

“아까 이 후배 가문은 왜 물었지?”

싸늘해진 디레트의 목소리에 이한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

유크벨티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워다나즈 가문의 신입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흑마법, 연금술, 부여 마법을 듣고 있다는 이야기는 왜?”

“마찬가지로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왜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거지, 디레트?”

“대답이나 해. 그럼 이 후배를 저택에 데리고 간 다음 회복되면 뭘 시키려고 했지?”

“당연히 내 연구를...”

“...떨어져, 이 버두스 교수 같은 쓰레기야!”

디레트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욕설을 내뱉었다.

유크벨티레는 상처 입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버두스 교수처럼 멍청한 사람으로 보이나? 그 말 취소해라, 디레트.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넌 버두스 교수보다 더... 더는 아니지만 못지않게 사악한 마법사 맞거든? 저기요! 이 사람 끌어내세요! 여기 이 마법사를 납치하려고 해요!”

“!”

주변을 점검하고 혹시 모를 다른 차원의 연결을 확인하던 마법사들은 허겁지겁 달려왔다.

대정령을 소환해 그들을 지켜준 어린 마법사를 납치하려고 하다니, 대체 어느 누가...

“...아, 아니. 유크벨티레 님...”

“유크벨티레 님이 납치를 하려고 했다고요?”

디레트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한을 쿡 찔렀다.

“후배. 너도 말해봐.”

“......”

“빨리! 너 누구 후배야?”

엄밀히 따지면 흑마법이든 부여 마법이든 다 들었기에 둘 다 해당되었지만, 이한은 부여 마법 선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걸 알았기에 흑마법 선배를 선택했다.

“저 분이 절 납치하려고 하셨습니다...”

“!!!”

“유크벨티레 님. 따라오십시오!”

“오해가 있는 것 같군. 그저 내 저택에 데리고 가서 회복시켜주려고 했...”

“그 다음에 자기 연구에 강제로 끌어들이려고 했어요!”

“그건 친절이지.”

황녀의 대답에 마법사들은 일단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따라오십시오,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너희 멍청한 마법사들이 내 아티팩트를 망쳐놓고 다음 연구까지 방해하려는 건가? 정말 안타깝군.”

유크벨티레는 마법사들의 속을 박박 긁으며 떠났다. 그제야 디레트는 안심할 수 있었다.

“여기 치유 마법사 좀 불러주세요. 응급처치는 했는데, 아무래도 전문적인 건 치유 마법사들이 해야 할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류회에 참가했던 마법사들은 깍듯한 자세로 감사를 표했다.

오늘 저 소년 마법사가 해낸 일들을 생각해보면 어떤 마법도 아깝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치유 마법사들은 갖고 있는 시약들을 전부 모아서 가장 강력한 치유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알하자드의 눈물을 사용했으니, 아무리 마력 고갈이 심해도 바로 회복시킬...”

“아. 마력은 다 회복됐으니까 육체 회복 좀 부탁드릴게요.”

“?!”

디레트의 말에 마법사들은 당황해서 서로 쳐다보았다.

전달받은 치유 마법사들도 납득하지 못했는지 직접 찾아왔다.

“죄송하지만 치유 마법은 멋대로 순서를 정하시면 안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력입니다. 마력을 회복시켜야...”

“그냥 마력을 확인해보세요.”

디레트는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디레트도 워낙 마법을 많이 쓴 만큼 설명할 체력이 슬슬 부족했다.

치유 마법사들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이한의 마력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어... 어... 어... 어떻게...?!”

“이제 이해가 되셨으면 마력은 넘어가고 다른 회복 좀 부탁드릴게요.”

“알, 알겠습니다. 잠깐. 그런데...”

“또 뭐요?”

“혹시 디레트 님 아니십니까?”

치유 마법사의 말에 옆에 있던 마법사들도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디레트의 이름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던 것이다.

“맞네! 혹시 악마의 마력을 사용한 유사영구기관 연구는 어떻게 되어가고 계십니까? 그 발상에 정말로 감탄했습니다만...”

“......”

이한은 흉흉한 연구 이름에 경악해서 선배를 쳐다보았다.

디레트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는 것도 잊고 다급하게 변명했다.

“이름은 저렇게 들려도 연구접근법은 생각보다 훨씬 평화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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