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86화 (686/687)

686화

-누구냐고 물었...

끼익.

공방 안에서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드라이어드 혼혈 선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크나무 바닥 위로 나뭇잎을 떨어뜨리며 걸어 나온 일렌딜은 이한을 발견하고 매우 반가워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예.”

후배를 가리키며 기억을 되새긴 일렌딜은 느릿한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 저번에 암흑 정령을 도와주고 보살펴줬던...”

‘사실과 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정확히 말하자면 폭주한 암흑 정령을 공격해서 제압한 다음에 억지로 계약한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계약도 이한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렌딜이 압박해서 억지로 했던 것 같은데...

“아. 예. 맞습니다.”

“그리고 옆의 분은... 윽.”

일렌딜은 디레트의 얼굴을 보고는 재빨리 뒷걸음질쳤다.

“안,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 그래. 안녕.”

디레트는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일렌딜도 어색한 표정으로 공방 풀무 뒤에 숨은 채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아덴아르트와 추종자들의 다과회처럼 숨막히는 분위기가 되자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타깝게도 이한보다 후배는 이 자리에 없었다.

‘빨리 2학년으로 올라가던가 해야지,’

이한은 한숨을 푹 쉬었다. 후배가 없으면 결국 이한이 상황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디레트 선배.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소곤거리며 묻는 후배의 질문에, 디레트는 일렌딜을 눈여겨보며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전에 말한 적 있잖아. 흑마법 학파 애들이 숲에 들어가서 시약 채취할 때 일렌딜한테 공격당한 적 있다고.”

“아.”

그제야 이한은 흑마법 학파와 일렌딜 사이에 있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사실 꼭 흑마법 학파에만 한정된 일은 아니었다.

에인로가드의 학파들 중에서 숲의 시약이 필요 없는 학파는 없었으니까.

숲에 들어온 학생들이 욕심을 부리다가 숲을 다치게 하는 건 비일비재했고, 숲을 지키려는 일렌딜이 그들과 충돌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어, 그런데 선배. 그러면 다른 선배들이 어색하면 모를까 디레트 선배는 왜 어색한 겁니까?”

“나야 같은 학파니까 구하러 갔지...”

디레트는 저번에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사건의 뒷이야기를 꺼냈다.

일렌딜한테 공격당한 흑마법 학파 학생들이 붙잡히자, 디레트는 당연히 선배로서 구출하러 갔다.

도착해보니 흑마법 학파 학생들은 숲 골렘한테 붙잡혀 있었고...

...디레트는 어쩔 수 없이 숲 골렘들을 다 파괴한 뒤 학생들을 구출해왔다.

“어, 골렘 계열 소환수는 만드는 데에 꽤 공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걸 다 부쉈다고요?”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니까! 골렘이 꽤 난폭했다고.”

‘선배도 상당히 과격하시군.’

디레트가 들었다면 ‘니가 할 소리냐’하고 멱살 잡을 생각을 하며,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방 풀무 뒤에 숨어서 둘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일렌딜이 슬며시 물었다.

“흑마법 학파하고... 친한 것 같은데...”

“저 흑마법 학파도 듣습니다만.”

“뭐... 뭐?! 왜...!?”

“아니 들을 수도 있지.”

디레트는 살짝 발끈했다.

흑마법 듣는 게 뭐 그리 놀랄 일이란 말인가?

...물론 놀랄 일이긴 했지만...

그 반응에 일렌딜은 기겁해서 자세를 낮췄다.

“히익.”

“...아, 아니. 화낸 거 아니야. 후배. 봐봐. 화낸 거 아니다?”

“보통 화난 사람이 그런 소리 많이 하지 않습니까?”

“너 누구 편이니?”

“...선배님! 디레트 선배께서는 화 안 나셨습니다! 보십시오! 나오셔도 됩니다!”

일렌딜은 주저하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눈빛에는 아직도 디레트를 향한 경계심이 가득해보였다.

“대체 숲 골렘을 어떻게 부수셨길래...”

“야. 후배. 네가 그 때 못 봐서 그러는 거야!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쟤도 만만찮게 미친 후배라고!”

디레트는 울컥했다.

나름 선배로서 다른 학파 후배 욕을 하고 싶지 않아서 참았지만, 일렌딜도 만만찮게 미친 후배에 속했다.

대화 한 마디 없이 숲 골렘들을 시켜 디레트의 언데드 군대를 박살내려고 했던 것이다.

디레트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었지만, 기습당한 탓에 언데드 군대를 폭발시켜서 인근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밖에 선택할 수 없었다.

“무슨 일로 왔어...?”

“아. 그게 말입니다.”

이한은 공방 창문 밖을 가리키며 음산하게 몰려다니는 마법사 무리들을 지목했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고 이한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사교도 무리를 연상시켰다.

일렌딜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기겁해서 되물었다.

“사교도?!”

“그건 아니고요.”

이한은 오늘 있었던 일들 중 덜 이상해보이는 부분들만 골라서 설명했다.

교류회에서 활약을 했더니 온갖 마법사들이 쫓아와서...

“아. 나도 그런 적 있어.”

일렌딜은 천천히 주억거리며 이한의 말에 동의했다.

예전에 연금술사들 학회에 나갔다가 온갖 스카우트 신청으로 상당히 귀찮았던 것이다.

“힘들었겠다... 잠깐.”

일렌딜은 창문 밖의 누군가를 발견했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유크벨티레였다.

평소 무덤덤하고 느릿한 태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적개심을 활활 드러내며 일렌딜은 물었다.

“저 사악한 마법사도 왔다고?”

“......”

“......”

이한과 디레트는 눈빛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친한 건 숨겨야겠죠?’

‘응...’

일렌딜은 단호하게 말했다.

“잘 왔어. 편하게 쉬다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한과 대화를 마친 일렌딜이 디레트를 쳐다보았다.

아까의 경계심과는 달리 존경심이 눈동자에서 엿보였다.

유크벨티레 같은 사람 상대로 후배를 지키기 위해 다른 학파 공방까지 들어올 줄이야.

“선배님께서 이렇게 따뜻한 분이신 줄은 몰랐어요.”

“으음.”

디레트는 멋쩍어했다.

사실 저 밖의 사악한 마법사하고도 친했지만, 그걸 말했다가는 영원히 이 연금술 학파 후배하고는 친해지지 못할 것 같았다.

“난...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그게 대단한 거지요.”

더 이상 칭찬을 들었다가는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디레트는 화제를 돌렸다.

“난 저쪽에서 사악한 마법사가 오나 안 오나 감시하고 있을게.”

“......”

이한은 슬며시 자리를 벗어나는 디레트를 보며 어이없어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핑계를?

“뭘 하고 계셨습니까?”

“물약 제조... 올해 연구지원비를 확보해야 해.”

연금술 실력과 별개로 숲을 우선시하는 일렌딜은 받을 수 있는 의뢰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이런 식의 물약 제조 의뢰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트롤이 먹이로 선호하는 종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싶거든...”

“......”

이한은 오늘 교만공을 만났을 때보다 더욱 경악했다.

그 미친 연구를 제안했던 게 일렌딜 선배였단 말인가!?

“그... 어째서입니까?”

일렌딜은 기특한 후배가 연구에 관심을 보이자 얼굴이 밝아졌다.

“혹시 관심이 있어?”

“무, 무슨 연구인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두려움에 질린 이한이 재빨리 말을 돌렸지만 일렌딜은 이미 자신이 좋은 대로 해석한 뒤였다.

“숲 트롤은 강력한 몬스터지만... 동시에 숲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몬스터기도 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들을 처리하는 역할도 하고...”

“...그, 그러니까 그런 숲 트롤을 키우기 위해서 먹이로 선호하는 종족을 연구하시려는 겁니까?”

이한의 말에 일렌딜은 멈칫했다. 꽤 흥미로운 발상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 아니.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 그것도 좋은 발상 같은데...”

일렌딜은 느릿한 동작으로 자신이 작성한 연구를 펼쳤다.

숲 트롤이 위협적인 몬스터인 만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도 많았다.

그런 와중에 일렌딜은 몇몇 종족의 피해가 특히 크다는 점에 주목했다.

어쩌면 숲 트롤이 먹이로 선호하는 종족이 있는 게 아닐까?

그걸 파악한다면 숲 트롤이 출몰하는 장소에 진입하는 모험가나 숲지기들은 조금 더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파티에 먹이로 선호하는 종족이 없다면 숲 트롤도 반응하지 않을 테니까.

‘생각보다 멀쩡한 연구였잖아?’

숲 트롤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숲 트롤을 좀 더 깊게 분석하자는 멀쩡한 연구였다.

제목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재밌는 연구 같습니다.”

“그래?!”

일렌딜은 뛸듯이 기뻐했다.

동작이 느려서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럼 연구에 참가해볼래? 분명 재밌을 거야.”

멀리서 창가에 서있던 디레트가 기겁해서 손을 내저었다.

무조건 거절하라는 신호였다.

애초에 에인로가드 2학년 학생이 선배들 연구에 참가해봤자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물론 얻는 게 없진 않았다.

자기보다 뛰어난 선배의 마법을 도우며 자신 또한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디레트가 보기에 지금 이한은 자기보다 뛰어난 마법사의 마법을 도우며 성장할 기회가 지나치게 많았다.

당장 교수부터 시작해서...

‘선배들까지 도우면 절대 못 버텨!’

“그,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관심을 가질 줄 알았어...!”

“동의한 게 아니라 생각해보겠다고 했습니다만.”

이한은 문득 저 멀리 대로변을 걸어가는 유크벨티레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서 눈앞의 일렌딜을 쳐다보았다.

‘...잠깐. 둘이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 * *

연구 이야기를 더 해봤자 스스로 무덤만 파게 될 것 같았기에 이한은 화제를 바꿨다.

“그러고 보니 의뢰 받은 물약은 어떤 겁니까?”

“아. 이건... 내가 개발한 물약이야. <해골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불러.”

“특이한 이름이군요. 무슨 효과가 있길래?”

“교장 선생님이 걸어놓은 마법을 잠깐 마비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어.”

“......”

이한은 생각지 못한 물약의 효과에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일렌딜은 저번의 숲에서도 후배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전적이 있었다.

자신이 만든 물약이 아니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잠깐, 이걸 누가 사는 겁니까?”

“다른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사겠지.”

디레트는 팔짱을 낀 채 대신 대답했다.

일렌딜의 물약은 몇몇 아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물건이었다.

“이게 그렇게 쓸모가 있습니까? 이걸 사용한 선배들을 본 적이 없는데...”

“후배 만나려고 쓰는 게 아니라, 교장 선생님 하수인 피할 때 쓰는 거야. 교장 선생님 하수인 중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걸어놓은 마법의 냄새를 맡고 쫓아오는 놈도 있거든.”

‘정말 만만치 않구나!’

이한은 1학년을 마치고 ‘이제 에인로가드에 대해 조금 안 것 같다’라고 생각한 걸 반성했다.

에인로가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심지어 졸업하더라도.

‘하지만 이번 기회에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저도 가르쳐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럴 때 미리 배워놔야 나중에 해골 교장의 마수에서 벗어날 기회가 한 번이라도 생기기 마련.

이한은 공손하게 부탁했다. 다행히 일렌딜은 선선히 수긍했다.

“응... 어렵지 않으니까.”

‘많이 어려울 텐데...?’

디레트는 일렌딜의 말에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어렵지 않았으면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일렌딜에게 비싼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없었다.

연금술의 물약이란 건 겉으로 보면 간단해보여도 어려워지면 한없이 어려워지는 물건이라, 나름 조예가 있는 디레트도 어려워지면 전문가한테 맡기지 직접 만들려고 하진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겁니까?”

“나쁘지 않아...”

“여기서 이렇게?”

“좋은데... 계속해봐.”

“이거 완성된 겁니까?”

“잠깐만. 확인 좀 해볼게... 맞아. 완성됐어.”

“!?”

디레트는 둘의 대화를 듣다가 벌떡 일어섰다.

지금 누가 뭘 완성시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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