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87화 (687/687)

687화

“방금 뭐였어?!”

디레트의 외침에 이한과 일렌딜은 깜짝 놀랐다.

“미친 선ㅂ... 아니, 유크벨티레 선배님이 여길 발견하셨습니까?”

“개자ㅅ... 아니, 유크벨티레 선배님이 여길 발견하셨어요?”

“...유크벨티레는 아까 갔어. 그보다 방금 <해골로부터의 해방> 물약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이한은 질문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아직 아닙니다.”

“그, 그렇지?”

후배의 대답에 디레트는 자신이 뭔가 착각했나 싶어서 다시 앉으려고 했다.

“원액만 완성해서 희석 작업을 해야 하거든요.”

“......”

후배의 어이없는 대답에 디레트는 할 말을 잃었다.

희석 직전 원액까지 완성시키면 사실상 거의 다 완성한 셈 아닌가.

“어떻게 만들었어? <해골로부터의 해방>은 꽤 어려운 물약일 텐데?”

“정령에 대한 사랑 덕분...”

일렌딜은 흐뭇한 마음으로 훈훈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이한이 먼저 대답했다.

“제가 만드는 걸 도운 적 있는 <도브룩의 환혼 물약>과 과정이 비슷한 부분이 있고 마력으로 대체 가능한 공정이 많아서 가능했습니다. 일렌딜 선배가 복잡한 밑작업은 미리 해주신 것도 있고요.”

일렌딜은 별 거 아니었다는 듯이 느릿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보다 <도브룩의 환혼 물약>... 어디서 만들어 본 거야?”

도브룩의 환혼 물약도 만만찮게 난이도가 높고 만들기 까다로운 물약이라 1학년 학생이 만들 일은 없었다.

“메이킨 가문의 요아넨 님의 일을 도우면서 만들어봤습니다.”

쨍그랑!

일렌딜은 들고 있던 법랑 그릇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이한을 경악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메... 이킨 님 밑에서 일했어...?”

‘혹시 요아넨 님하고도 원한이 있나?’

이한은 선배의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이 정도로 격한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예. 저번에 일했었습니다만.”

“어떻게 버틴 거지...?”

“......”

일렌딜의 혼잣말에 이한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요아넨의 공방이 일을 혹독하게 시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 생각만큼 힘들진 않았습니다.”

“그 곳 별명이 시약 대신 연금술사들을 갈아 넣는 곳인데...”

“생각해보니 요아넨 님이 좀 무시무시하긴 했습니다. 저도 무서웠습니다.”

이한은 재빨리 요아넨을 버렸다.

괜히 편을 들어줬다가는 자신도 같이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일렌딜은 안타깝다는 듯이 이한을 위로했다.

“고생이 많았을 것 같아. 공방에서 그렇게 물약을 만들다니...”

“그, 후배한테는 그 정도는 사실 크게 문제되지도 않을 거야.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디레트가 옆에서 첨언했다.

이제까지 이한이 해왔던 걸 봤을 때 공방에서 물약 만드는 것 정도는 쉬운 편에 속할 터였다.

물론 그런 내막을 모르는 일렌딜은 속으로 질색했다.

‘역시 무서운 사람이야...!’

피도 눈물도 없이 철혈로 흑마법 학파를 이끄는 건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 * *

사교도들처럼 돌아다니던 마법사들도 어느새 포기하고 사라지고, 저 멀리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일렌딜과 같이 열심히 물약을 만들던(완성된 건 빼놓지 않고 배낭에 차곡차곡 담아놓았다) 이한은 밖을 보고 말했다.

“이제 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다시 한 번 고맙네. 공방에 이렇게 방문했는데 환영해줘서.”

디레트의 말에 일렌딜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쑥스러워했다.

“같은 학파 후배기도 하고...”

‘으음.’

디레트는 복잡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같은 학파 출신을 챙겨주는 게 보통이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한은 거의 모든 선배들에게 같은 학파 후배였다.

‘괜히 말하지 말자.’

디레트는 일렌딜을 위해서 말을 참았다.

아무리 괴팍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유능한 후배 한 명 정도는 필요한 법이었다.

“...암흑 정령을 보살펴주고 있으니까.”

“!”

이한은 멈칫했다.

‘아차.’

생각해보니 저번에 일렌딜과 헤어질 때 했던 약속이 (강제로 계약했던) 암흑 정령을 잘 보살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소환 안 했는데...’

보통 정령을 불러낼 정도면 필요한 상황이 있어서기 마련.

문제는 암흑 정령이 딱히 필요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암흑 원소는 여러 원소들 중 가장 까다롭고 난해한 축에 드는 만큼 다룰 때 정령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지만 이한은 그냥 스스로 써서 성공시켰다.

화염 정령이나 냉기 정령 같은 경우에는 자잘한 일들을 시키기나 좋지, 암흑 정령은 그런 것도 힘들었으니...

이한 입장에서는 불러내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일렌딜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부탁했다.

그 모습에 이한은 매우 부담감을 느꼈다.

‘안 그래도 날 싫어했던 것 같은데. 소환하면 이대로 공격하는 것 아닌가?’

만약 공격하면 다시 맞서 싸울 준비를 하며, 이한은 조심스럽게 하급 암흑 정령을 소환해냈다.

둥그런 공 형태로 뭉친 암흑 원소 정령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잘, 잘 지냈어...?”

일렌딜이 부르자 암흑 원소 정령은 빙글 돌아섰다.

저번에는 비록 폭주 상태였지만 자신을 만들어 준 주인을 어느 정도 기억하는지 꽤 호의적인 태도였다.

게다가 일렌딜은 드라이어드 혼혈인만큼 정령들에게 기본적으로 호감을 사고 시작하는 면이 있었다.

“혹시 불편한 점이 있거나... 정령계에서 문제가 생긴 건 없구? 원소력은?”

대화하는 둘을 보며 이한은 살짝 긴장했다.

언제 암흑 정령이 이한을 고발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계약은 괜찮아?”

질문을 받은 암흑 정령은 빙글 돌더니 이한에게 넙죽 엎드리는 시늉을 했다.

누가 봐도 충성심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괜찮나보구나!”

“정령이 저렇게 충성심을 보여주는 건 드문 일인데 서로 오랫동안 함께했나봐?”

일렌딜은 물론이고 디레트까지 신기해했다.

그리고 이한도 신기해했다.

“???”

한 번도 소환 안 했는데 암흑 정령이 왜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지어 저번에 만났을 때는 적개심을 가득 드러냈던 놈이!

“저. 선배.”

“?”

디레트는 이한이 속삭이며 부르자 시선을 돌렸다.

“저 암흑 정령이 말입니다.”

“이야. 대단한데? 정령한테 충성심을 저렇게 받기도 힘들 텐데 암흑 정령이라니. 어떻게 만난 거야?”

이한은 일렌딜이 했던 일을 말하면 둘의 사이가 더 어색해질 것 같아서 슬쩍 화제를 돌리며 대답했다.

“저번에 처음으로 계약한 다음 한 번도 소환 안 했는데 왜 저러는 겁니까?”

“...뭐?”

디레트는 귀를 의심했다.

보통 정령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수적이었다.

마법사와 정령이 쌓은 시간.

그 시간이 다른 차원의 두 존재를 단단히 결속시키고 우정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다니.

“소환은 왜 안 했는데?”

“소환할 일이 없어서요...?”

“암흑 원소 필요한 적 없었어? 너 스켈레톤도 암흑 원소 결합시켜서 소환하고 그랬잖아?”

“그건 그냥 제가 시전했습니다.”

“......”

디레트는 재능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라면 정령의 도움을 받았어야 할 일을 다 해버리다니.

어쩌면 이 후배가 정령과 친하지 못한 건 꼭 마력 때문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시간을 쌓아서 친해지지 않았는데도 저런 복종을 보이는 건 보통...”

“보통?”

“겁을 먹어서인데.”

“...저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정령한테 직접적으로 뭘 안 해도 그 마법사가 살아온 행적에 따라서 정령은 예민하게 알아차린다고. 보자, 후배 너는...”

디레트는 이한이 최근 한 일들을 되짚어보았다.

비통 산맥부터 시작해서 교류회장에서 한 일들까지.

...짚이는 게 너무 많았다.

“이래서 겁먹은 거겠네.”

“아, 아니. 아까는 충성심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공포로 인한 충성심이나 애정으로 인한 충성심이나 비슷비슷한거지 뭐.”

누가 흑마법 학파 학생 아니랄까봐 디레트는 소환수를 두려움으로 제압하는 것에도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언데드 차원의 소환수들은 난폭한 놈들이 많은 만큼 흑마법사들은 두려움을 채찍처럼 휘둘러서 제압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이한은 그런 선배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만큼 떨떠름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소환 안 해줘서 그 친절에 기뻐했다거나...”

“정령이 그렇게 사람처럼 생각하진 않을 것 같은데. 후배. 그냥 받아들여. 누구는 정령과 친해지지만 누구는 정령을 굴복시킬 수밖에 없는 거야.”

이한은 도움 안 되는 말만 골라하는 흑마법 학파 선배를 살짝 노려보았다.

누가 유크벨티레 친구 아니랄까봐 참으로 얄미웠다.

둘이 나누는 대화도 모르고 일렌딜은 암흑 정령과 이야기를 마친 뒤 작별인사까지 했다.

“흐흑. 저렇게 건강한 걸 보니 내가 다 기쁘다...”

일렌딜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이한과 디레트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디레트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재빨리 말을 꺼냈다.

“후배. 그랑덴 시에는 언제 갈 거야? 슬슬 갈 때가 됐을 텐데.”

“예? 아직 시간은 꽤 남았잖습니까.”

방학이 끝나가고 새 학기가 다가오면 학생들은 보통 에인로가드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그랑덴 시로 모이기 마련이었다.

이한과 친구들도 당연히 그랑덴 시로 갈 생각은 있었지만, 적어도 2주일 가까이 남은 지금은 아니었다.

굳이 무엇하러 에인로가드와 가까운 곳에서 머문단 말인가?

“아. 하긴. 너흰 이번이 처음이니까 모르겠다.”

디레트는 이한의 반응에 뒤늦게 깨닫고 설명을 시작했다.

“보통 겨울방학 때 그랑덴 시에서 머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지. 에인로가드와 가까운 만큼 교수님을 만날 가능성도 높고.”

“전 플라허 시까지 왔는데도 만났습니다.”

“그건 네가 교수님을 끌어들이는 운명을 타고난 거야. 후배.”

디레트는 냉정하게 대꾸했다. 이한은 상처 받은 표정으로 선배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최대한 미루다가 그랑덴 시에 도착하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지만, 2학년만 넘어도 다들 일찍 도착하기 시작해.”

“어째서입니까?”

“학교에 갖고 들어갈 물건들을 준비하기 위해서.”

“!”

이한은 디레트의 말에 놀라워했다.

“어, 2학년 때부터는 그런 것도 됩니까?”

에인로가드는 딱히 준비물이 필요한 학교가 아니었다.

필요한 책들과 장비들은 모두 다 학교에서 제공... 하진 않았고, 학생들이 직접 구하면 됐다.

그런데 2학년 때부터는 필요한 물건들을 사가지고 들어간다니.

그만큼 필요한 마법의 수준이 높아져서인가?

“신기하군요. 교장 선생님께서 2학년 때부터는 그런 걸 허락해주신다니. 저는 금지하실 줄 알았는데.”

“......”

“......”

디레트와 일렌딜은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이한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 판단했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설마...”

“당연히 허락 안 해주시지. 방금 말한 건 밀수 이야기였어.”

디레트가 말한 건 정식으로 갖고 들어가는 게 아닌 밀수 이야기였던 것이다.

해골 교장은 당연히 학생들이 외부 물품들을 갖고 오는 걸 금지했다. 그건 1학년이든 6학년이든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에인로가드에서 1년 이상 보낸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외부 물품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필요가 있는 곳에 마법이 있기 마련.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 학기 시작 때 물품을 최대한 학교 안에 집어넣으려고 애썼다.

“학기 도중에 빠져나와서 물자를 갖고 들어가면 안 됩니까?”

“...후배. 일반적으로 너처럼 나갔다 들어오는 학생이 흔한 편은 아닌 거 알지?”

디레트는 더 어려운 소리를 태연하게 늘어놓는 후배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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