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4화 (4/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4화

마법사는 누구나 심장 부근에 마나의 고리를 두르고 있다.

그것이 제2의 심장이라 불리는 서클.

서클은 일종의 필터다.

대기 중의 마나에는 불순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서클은 이를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마법사들은 그렇게 뽑아낸 순도 높은 마나를 가지고 마법을 구현하고.

‘이 세계에선 그걸 마력이라 부르지.’

지크는 자신이 그동안 흡수한 것이 무엇인지 책을 통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마법으로 변환되기 직전의 순도 높은 마나.

마법이 발현하기 직전, 혹은 직후의 현상.

그것들을 통틀어 마력이라 한다.

별로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내용 또한 마법 서고에서 숱하게 읽어봤으니.

‘룬문자로 적힌 고대의 서적도 읽어봤지.’

문자라면 뭐든 해석해 주는 기본 스킬인 [해석]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지적 욕구는 이제 지겨우리만치 채웠다.

‘문제는 개도식이라는 지겨운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거지만.’

개도식.

이른바 서클 수여식이라고도 불리는 마법 명가만의 관례.

심장에 서클을 만들기 위해선 순도 100%의 마나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다른 마법사가 직접 필터링 된 마나를 공급해서 인도해 주는 수밖에 없다.

혼자서는 서클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니까.

서클을 만들기 가장 좋다는 12살에 생애 첫 서클을 만드는 숭고한 의식이었지만…….

‘서클을 만들 수 없는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잖아?’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법 명가의 자식이라면 누구나 개도식을 치르는 게 관례인 것을.

배다른 자신의 형제들도 모두 개도식을 치렀다.

‘별로 친하진 않지만 말이지.’

지크는 자신보다 더 귀찮아하는 얼굴로 줄지어 서 있는 형제들을 바라봤다.

이공자, 러셀 맥러플린.

삼공자, 알렉스 맥러플린.

일공녀, 루나 맥러플린.

모두 2, 3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였지만 아버지의 명령하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었다.

마탑으로 마도 수련을 떠난 일공자를 제외하고는.

“왜 이렇게 늦었느냐? 오늘 개도식이 있다는 걸 잊었더냐?”

자신을 보자마자 근엄하게 꾸짖는 아버지 제라드였지만, 지크는 주눅 들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태어날 때부터 확인했기에.

“죄송합니다. 정신없이 책을 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또 마법 서고에 있었더냐?”

“예.”

솔직한 대답이었지만 돌아온 건 형제들의 비난이었다.

“재능도 없는 주제에 왜 자꾸 서고는 들락거리는 거야? 어휴.”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 안 하나? 쯧.”

“그만! 조용하거라!”

삼공자 알렉스와 일공녀 루나의 입을 다물게 한 제라드가 지크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는 눈빛엔 일말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진전은 있더냐?”

“아니요.”

지크는 즉답하여 아버지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기대를 많이 했겠지만, 굳이 거짓말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검사해 보면 알 수 있을 테니.’

물론 마력 흡수 기능을 꺼두면 재능이 있다고 나오긴 하리라.

하지만 지크는 굳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왕 마나에 재능이 없다고 판별난 거, 끝까지 밀고 나가야지.’

컨셉을 유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오늘 재능을 빌미로 아버지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진전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해 보면 알겠지. 개도식에 앞서 재능부터 확인하는 시간을 갖겠다. 사공자 지크 맥러플린은 앞으로 오라.”

“예.”

사뭇 근엄한 어조로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색했지만, 지크는 말없이 앞으로 섰다.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제라드는 재능을 판별하기 위해 지크의 손목을 잡았다.

12년 전 이후로 시행하는 두 번째 재능 검사였다.

* * *

제라드는 간절히 바랐다.

‘부디 우리 지크에게 마나 친화력이 생겼기를…….’

자기 말론 진전이 없다고 했지만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믿을 수 없었다.

‘선천적인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지만 노력하지 않고는 모르는 일.’

12년간 마나와 친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설마 진전이 없기야 하겠는가?

적어도 새똥만큼은 진전이 있으리라.

‘아주 조금이라도 좋다.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보인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마.’

재능 검사 전에는 천재가 아닐까 기대하던 제라드였지만 이제는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평범한 수준이라도, 그 이하라도 좋으니 제발 친화력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야 첩의 자식이라고, 형제들로부터 무시 받지 않을 테니.

‘12년 동안 한 게 있으니 변화가 없진 않겠지.’

하지만 제라드의 기대가 무너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전처럼 몸에 머물지 못하고 사라지는 마력의 느낌에, 제라드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정말로 차도가 없구나. 12년 동안 그토록 노력했는데도…….”

재능이 없다는 소리임을 알아들었는지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형제들의 비아냥은 덤이었다.

“그럼 그렇지. 한번 정해진 체질이 쉽게 바뀌겠어?”

“그럼 쟤는 12년 동안 헛짓거리를 한 거야? 풉.”

비웃음을 짓는 알렉스와 루나였지만 그것도 잠시.

무시무시한 제라드의 눈총에 입을 다물며 시선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비아냥은 제라드의 노력을 비웃는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후우…… 지크야. 미안하구나. 이제는 널 놓아줄 수밖에 없겠다.’

아들을 꼭 넷은 가져야겠다며 첩을 들여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낳은 막내아들이었다.

그런 막내아들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던가?

100일 때부터 마력석을 가까이에 두게 했고, 글 읽을 나이가 되어서는 마력이 진동하는 마법 서고에 들어가는 것도 허락했다.

마력과 친해지다 보면 언젠가 마나 친화력이 조금이라도 싹트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개도식이 진행되는 12살까지 꾹 참고 기다려온 이유도 여기에 있었고.

‘그러나, 이 짓도 이제 그만둘 때가 된 듯싶구나.’

이 정도로 노력했는데도 재능이 개화하지 않았으면 없다고 보는 게 맞을 테니까.

‘그런데…….’

제라드의 눈이 다소 덤덤한 지크의 표정을 살폈다.

‘재능이 없다고 판별났음에도 아들의 표정은 왜 저리 평온하단 말인가?’

누구보다 충격받았어야 할 당사자는 의외로 아무렇지 않아 하는 얼굴이었다.

제라드로선 이해되지 않는 일.

‘자나 깨나 마법 서고에 드나들며 마법사가 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노력하던 지크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예상과 다른 반응에 제라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지크. 괜찮으냐?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는데…….”

“예, 괜찮아요. 친화력에 진전이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걸요?”

“그래? 실망이 클 줄 알았는데 의외로구나. 허허!”

호탕하게 웃는 제라드였지만 속내는 달랐다.

‘녀석, 담담한 척하지만 많이 속상하겠지.’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도 보여도 지크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을 거다.

지금의 자신도 그러하니까.

‘그래도 세상 무너진 것처럼 굴지 않아서 다행이야.’

반응이 의외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낙담하고 좌절할 줄 알았는데 저렇게 태평한 얼굴을 연기하고 있다니…….

분명 실망하고 있는 아버지를 배려해서 내색하지 않는 것이리라.

‘속이 깊은 아이야.’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지크가 입을 연다.

“아버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 말해 보거라.”

“재능이 없는 것으로 판별났으니 저는 서클을 못 만들죠?”

“아무래도 그렇지.”

“그럼 개도식은 이걸로 끝인가요?”

“안타깝지만 그렇단다.”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음? 뭐가 말이냐?”

“마법 명가에 태어나놓고 마법사가 되지 못했으니, 저는 이제 버려질까요?”

“뭐라?”

어이없는 소리에 잠시 벙찐 표정을 짓던 제라드가 이내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녀석. 농담이 짓궂구나. 내 너를 왜 버린단 말이냐? 재능이 없다 해도 네가 맥러플린 가의 사공자라는 건 변함이 없거늘.”

“그렇다면 절 가문에서 내치지 않으실 건가요?”

“당연한 소릴 하는구나.”

대답하면서도 제라드는 내심 서운함을 느꼈다.

여태껏 내비친 아버지의 사랑도 몰라주고 가문에서 쫓겨날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하긴, 그동안 감정표현을 너무 안 하긴 했지.’

귀여운 막내아들이지만 다른 형제들이 질투할까 봐 일부러 무뚝뚝하게 대하던 제라드였다.

그렇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어떠냐? 대답을 들으니 이제 안심이 되느냐?”

“예. 아버지. 제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네요.”

“걱정 말거라. 마법사가 되지 못해도 마탑에 한 자리쯤은 넣어줄 수 있다. 그러니…….”

“아버지, 말 끊어서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요.”

“응?”

“가능한 한 지금처럼 친화력을 높이는 작업을 시도하고 싶어요.”

“하! 저 자식, 저거 또 책이나 읽으면서 허송세월 보내겠다는 소리잖아?”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알렉스와 루나의 불만스러운 음성에 제라드가 조용히 하라는 듯 눈총을 주었다.

“지크. 네 말은 마법사의 길을 이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냐?”

“예, 아버지.”

“하지만 결과가 말해주지 않느냐. 12년 동안 노력해 봤지만, 친화력은 터럭만큼도 오르지 않았어. 이미 해볼 만한 수단도 전부 동원해 봤고.”

“아니요.”

지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수단을 전부 동원해 본 건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냐?”

“서쪽 칼리파 산맥 너머엔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의 유적이 있어요. 근처에만 가도 고농도의 마나가 들끓는다고 전해지고요.”

“음? 그걸 네가 어떻게……?”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군요?”

알다마다.

칼리파 산맥의 유적은 고위급 마법사라면 누구나 알만한 고급 정보.

‘그런 정보를 다른 마법사와는 아무런 교류도 없던 막내아들이 어떻게……?’

제라드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며 물었다.

“그 정보를 어디서 얻었느냐?”

“마법 서고의 어떤 책에서요.”

“마법 서고?”

순간 제라드는 떠올렸다.

먼지가 쌓일 만큼 구석에 박아뒀던 고대 서적의 존재가.

“설마 고대 서적의 룬문자를 읽었단 말이냐?”

“네. 별로 어렵지 않던데요?”

룬문자는 드래곤이 썼다는 고대의 문자로, 평범한 마법사는 해석할 수 없다고 전해진다.

오직 대마법사가 될 재목만이 문자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 뿐.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룬문자를…… 막내아들이 알아서 터득했다고?’

그 말은 지크가 대마법사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룬문자는 누가 가르쳐준다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자가 아니었으니까.

‘무재능인 알았던 아들이 대마법사가 가질법한 재능을 보이다니.’

가뭄의 단비처럼 기꺼운 소식이었으나 제라드의 표정은 어두웠다.

“설마 유적으로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게냐?”

“예.”

“안 된다. 몬스터는 출몰하지 않지만 그곳은 마나의 기운이 너무도 강해 대마법사조차 가까이 가기 꺼리는 곳이다. 여태껏 내가 언급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고.”

“그러니까 더더욱 가서 확인해 봐야죠. 정말로 제가 마나를 느낄 수 없는 몸인지 아닌지. 어쩌면 잠들어 있던 친화력이 반응할지도 모르잖아요?”

“으음…….”

확실히, 드래곤의 유적에 간다면 뭔가 반응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하다. 네 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문제가 될 거 같으면 바로 돌아올게요. 저도 제 몸이 소중한 건 알고 있거든요.”

지크의 설득에 제라드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생각 정리가 끝났는지 제라드의 눈이 떠졌다.

“좋다. 허락하마. 마동차 한 대와 칼리파 산맥까지 동행할 호위를 붙여주도록 하마. 대신 위험하면 바로 유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원하는 것을 얻었단 사실에 지크의 눈빛이 번뜩였다.

* * *

‘됐어!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다!’

고개 숙이던 지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처음부터 개도식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재능을 개화해야 한다는 빌미로 드래곤의 유적에 가는 것이 목적이었을 뿐.

‘가문에서 내친다고 했으면 혼자서라도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허락은 받았네.’

그가 이토록 유적을 가려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법 서고에서 배웠던 2차 각성 스킬 때문.

[2차 각성 스킬 : 마력의 주인]

-성취도 : ★☆☆☆☆☆☆☆☆ (1성)

-유형 : 패시브

-숙련도 : 5/100

-효과 : 마력을 감지하고 흡수할 수 있는 범위가 15m까지 증가합니다. 마력 흡수로 올릴 수 있는 하루 스탯량이 2개로 증가합니다.

-쿨타임 : 없음

-특이사항 : 마력 흡수를 사용하면 숙련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성취도 9성 달성 시, 3차 각성 스킬이 개방됩니다.

‘2차 각성 스킬은 마력 흡수를 강화해 주는 패시브 스킬이야.’

마력 흡수의 범위를 증가시켜주는 스킬로, 1차 스킬인 마력 흡수를 사용해야 숙련도가 올라간다.

3차 각성을 하려면 계속해서 마력을 흡수해야 한다는 소리.

‘여기서 중요한 건 저 부분이지. 하루 스탯량이 2로 증가한다는 점.’

기존의 마력 흡수는 스탯량이 하루 1 제한으로 막혀 있었다.

그 때문에 12년 동안 마력을 흡수해도 A급 헌터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2차 스킬의 성취도를 올리면 이야기는 달라져.’

성취도를 올리면 마력 흡수의 범위는 물론 스탯량 제한도 증가할지 모른다.

2에서 3으로, 3에서 4로.

그렇게 하루에 올릴 수 있는 스탯량이 점점 늘어나면 결국…….

‘SSS급 수준에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야.’

지크가 유적을 가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단기간에 빠르게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

‘마력이 들끓는 드래곤의 유적에서 단숨에 9성을 찍고 3차 스킬을 각성한다.’

그것이 지크의 큰 그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