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7화
‘무슨 문이지?’
안 그래도 인위적이라 생각했었던 동굴에 문이 있다?
그것도 철제문이?
누군가 만들어놓은 게 분명하다.
‘보물창고라도 되나?’
뭔진 몰라도 해석 스킬이 알아서 룬문자를 읽어주었다.
[이곳은 황금룡의 안식처. 외부인의 접근을 불허한다. 돌아가라.]
‘무슨 소리야? 황금룡? 안식처?’
어쨌거나 경고문이라는 건 알아들었다.
대놓고 축객령을 내리는 꼬락서니라니.
‘이러면 더 들어가 보고 싶잖아?’
지크는 물러서기보다 문을 열기 위해 손을 가져갔다.
‘이거 꿈쩍도 하지 않는데?’
손잡이가 달리지 않아서 밀면 될까 싶었는데 움직이질 않는다.
두꺼운 철문이라 맨손으로 부술 수도 없고.
‘어쩌지?’
고민하던 그때 지크의 눈에 들어오는 메시지가 있었다.
[스킬 ‘마력의 주인’의 성취도가 8성에 도달하였습니다.]
[마력 감지 및 흡수 범위가 45m▶50m로 상향되었습니다.]
[마력 흡수로 올릴 수 있는 스탯량이 하루 8개▶9개로 상향되었습니다.]
[9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0/300,000]
‘잠깐, 벌써 8성이 됐다고?’
이대로라면 곧 9성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 3차 각성 스킬도 개방할 수 있을 테고.
‘일단 여기서 3차를 개방해 보자.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이 나올지 모르잖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주변 마력을 본격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득하게 기다린 끝에 기꺼운 알림이 나타났다.
[스킬 ‘마력의 주인’의 성취도가 9성에 도달하였습니다.]
[마력 감지 및 흡수 범위가 50m▶60m로 상향되었습니다.]
[마력 흡수로 올릴 수 있는 스탯량이 하루 9개▶10개로 상향되었습니다.]
[3차 스킬을 각성하였습니다.]
[3차 각성 스킬 : 마법 흡수]
-성취도 : ★☆☆☆☆☆☆☆☆ (1성)
-유형 : 액티브
-숙련도 : 0/100
-효과 : 반경 15m에 발동 중인 마법을 1개 흡수하여 차원의 틈새에 [저장]합니다. 이후 10분 이내에 저장한 마법을 [방출]할 수 있습니다. 방출하지 않으면 마법은 자연히 소멸됩니다.
-쿨타임 : 마법 저장 후 10분
-특이사항 : 마법을 흡수하면 숙련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스킬의 On/Off가 가능하며 흡수할 수 있는 마법의 제한은 없습니다. 성취도 9성 달성 시, 4차 각성 스킬이 개방됩니다.
‘이게 뭐야? 마력 흡수가 아니라 마법 흡수?’
기대 이상의 스킬이 나와 버렸다.
마법을 흡수해서 내 것처럼 사용할 수 있다니.
‘이러면 서클이 없어도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잖아?’
이게 있으면 굳이 마법사가 될 필요는 없다.
일회용으로 저장했다가 방출하는 방식이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서클 없이도 마법을 쓸 수 있다는데.
게다가 상대의 마법을 흡수하여 방어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거 엄청난데? 마법사를 상대하기엔 이만한 스킬이 없겠어.’
당장 손해 볼 거 없기에 스킬을 On으로 켜놨다.
조금이라도 숙련도를 올리려면 항상 켜두는 게 나을 테니.
마법사로 가득한 판타지 세계에서 유용하게 쓰일 스킬이었지만 아쉽게도 당장 문을 여는 데는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흠. 그냥 힘으로 밀어볼까?’
다시 한번 힘을 줘서 밀어봤다.
“흐으읍!”
그극-
“어?”
문이 조금 움직인 느낌이 난다.
‘된다!’
가능성을 본 지크가 젖 먹던 힘을 발휘했다.
“으랏차차차!”
쿠그그그긍!
문이 밀렸다.
비로소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가 생기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안에 들어섰다.
‘오오. 이것들은?’
여태의 어둠이 무색하게도 내부는 밝았다.
번쩍거리는 금화와 휘황찬란한 보석들.
왕관과 황금갑옷, 값비싸 보이는 무구들과 자체적으로 발광하는 마력석까지.
꿈에서나 그리던 보물창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역시 이곳은 보물창고였어!’
하기야 보물처럼 중요한 게 아니고서야 경고문까지 써 붙이며 문을 걸어 잠갔겠는가?
‘그러고 보니 보물이 있다는 건 주인도 있다는 뜻이잖아. 누가 여기에 이런걸?’
마법사도 접근하기 힘든 이곳에 보관했다는 건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소리.
문득 경고문의 글귀가 떠올랐다.
‘여기가 황금룡의 안식처라고 했지. 설마……?’
3천 년 전 멸종한 고대의 용이 마련해놓은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드래곤의 물건이라니. 꺼림칙한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뭐든 발견한 사람이 임자 아니겠는가?
‘어차피 주인도 찾아가지 못하는 물건. 내가 가져가면 그만이지.’
전부 챙기기엔 손이 모자라니 질 좋아 보이는 마력석이랑 보석 몇 개 좀 챙겨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손을 대는 그때.
[기본 패시브 스킬인 ‘통역’이 발동됩니다.]
-멈춰라, 이놈! 감히 누구의 물건에 손을 대려는 것이냐!
‘응?’
-도둑놈! 더 이상 건들면 찢어 죽이겠다, 인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머릿속에 직접 전해지는, 신비스러운 목소리였다.
‘무슨 소리야? 어디서 나는 소리지?’
-뭐야? 설마 했는데 내 말을 알아듣는 거냐, 인간?
‘뭔 소리야? 들으라고 내는 소리 아니었어?’
-이건 말이 안 된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룬어를 알고 있다니…….
‘룬어?’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울리는 목소리가 아무래도 룬어인 모양이다.
누군지 몰라도 룬어를 할 줄 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었고.
그냥 통역 스킬이 발휘되었을 뿐인데 말이다.
-룬어를 안다면 룬문자가 쓰인 경고문도 읽어봤겠구나.
‘읽어봤지.’
-그걸 읽고도 마력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다니! 뻔뻔한… 어라? 문이 왜 고장 났지?
혼잣말을 중얼대던 목소리가 별안간 소릴 질렀다.
-이, 이런! 어떻게 들어왔나 했더니 힘으로 밀고 들어왔잖아?
‘그럼 안 되는 거야?’
-그 문은 애당초 마력을 불어넣어야만 열리는 문이다! 그걸 힘으로 밀어서 망가뜨려? 이런 무식한 인간 같으니!
‘무식이고 나발이고, 넌 누군데? 여기 있는 보물들의 주인이냐?’
-미천한 인간에게 알려줄 이름 따윈 없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지거라, 도둑놈!
나름대로 위협적인 목소리였지만 지크는 코웃음만 쳤다.
원래 쫄리는 놈일수록 목소리가 큰 법이다.
빈 수레일수록 요란한 법이고.
‘그렇게 위협해 봐야 별로 안 무서운데?’
-뭐라?
‘목소리만 들리는 놈이 뭐가 무섭겠어? 나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할 줄 알았다면 꺼지라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 진즉에 죽였겠지.’
-이런 우매한 인간이!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니까 누구냐고.’
-듣고 놀라지나 말거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3천 년 전 인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골드 드래곤 카르볼레아로스 님이시다!
‘뭐? 드래곤?’
얼핏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들으니 놀라웠다.
드래곤이라는 환상 속의 존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문득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용군단에 짓밟혀 죽던 사람들.
불길에 휩싸여 산 채로 타들어 가던 사람들.
무너지는 도시.
끊임없는 비명.
집채만 한 거대한 보스 용까지.
용이라는 것들은 지크에게 있어 그런 의미였다.
전생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철천지원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후후, 표정이 시무룩한 걸 보니 이제야 알아들은 모양이구나. 이 몸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당장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거라!
‘내 표정을 볼 수 있어?’
지크가 희번덕 뜬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가 어디서 날 쳐다보나 했더니…….’
마력의 반응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콱-!
‘여기 숨어 있었구나?’
-허억!
지크가 잡은 건 마력석이 박힌 왕관이었다.
‘이 안에 들어 있는 거냐? 골드 드래곤 카르 뭐시기?’
지크는 왕관을 흔들었다.
-흐, 흔들지 마라! 이것 놓으란 말이다!
‘너희 빌어먹을 드래곤 때문에 X 같은 기억이 떠올라 버렸잖아. 이거 어떡할 거야? 내가 왜 처음 보는 곳에 환생해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는데? 왜 하필 내가 인류의 구원자가 되어야 하냐고.’
-미, 미친 인간이로다! 헛소리를 줄줄 읊는 걸 보니!
‘왜? 이렇게 흔드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어? 아까처럼 죽인다고 협박해 보시지 그래? 응?’
-말 안 해도 그럴 참이었느니라!
순간 왕관에 박혀 있던 마력석에서 빛이 번뜩였다.
흔들던 지크가 눈살을 찌푸릴 때였다.
[마법이 감지되었습니다.]
[‘마법 흡수’ 스킬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시전된 마법 ‘정신 붕괴’를 흡수합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90 증가하였습니다.]
[2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90/100]
자칭 드래곤이라는 녀석이 뭔가를 시도하긴 한 모양이다.
켜놨던 3차 각성 스킬이 발동되는 걸 보면.
[마법 ‘정신 붕괴’를 차원의 틈새에 저장하였습니다.]
[제한 시간 내에 마법을 방출할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 : 00:09:59]
‘이게 뭐야? 정신 붕괴?’
무슨 마법인지는 몰라도 어감상 좋지 않아 보였다.
‘야, 도마뱀. 나한테 뭐 하려고 했냐?’
-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분명 마력석을 이용해 시전했거늘, 왜 먹히지 않지?
‘내 말 안 들려?’
대답도 없이 중얼거리는 걸 보니 적잖이 당황한 모양.
‘내가 묻잖아. 정신 붕괴가 무슨 마법이야?’
-그, 그건…….
‘이럴 게 아니라 바로 시험해 보면 되지.’
지크는 방금 흡수한 마법명을 떠올리며 방출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드래곤이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왕관을 쳐다보며.
그러자 손끝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오는 느낌과 함께 왕관에 적중하는 느낌이 들었다.
‘된 건가?’
고개를 갸웃하는 그때.
의심할 필요 없다는 듯 비명이 들려왔다.
-으르르르아악! 억, 어억!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끄륵, 케엑, 끄엑!
대답할 정신도 없다는 듯 고통스러워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정신 붕괴가 먹혔나 보다.
‘이 미친 드래곤 새끼가 나한테 이런 고통스러운 마법을 먹이려 했단 말이야?’
보자 보자 하니 부아가 치민다.
3차 각성 스킬이 아니었다면 내가 저러고 있었을 것 아닌가?
지크가 왕관을 마구마구 흔들었다.
‘죽어! 죽어!’
-끄어어어어! 도, 도망, 도망가야…….
잠깐 정신이 돌아왔는지 목소리가 들리더니 왕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 새끼가 또 수작질을?’
또다시 마법 흡수를 쓰고 싶었지만 쿨타임이 걸려 있어 불가능.
마법에 적중당하기 전에 왕관을 내동댕이쳤다.
땡그랑-
그러나 녀석은 자신에게 역공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도망치려는 것이었지.
파사삭-
마력석이 부서지더니 왕관에서 나오던 빛이 힘을 잃고 꺼졌다.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딱 보니 알겠다.
그저 그런 평범한 왕관으로 전락했음을.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몸을 옮긴 건가?’
왕관에 머물러 있었으니 이번엔 다른 기물로 옮겨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의 생각은 역시나 들어맞았다.
[전방 2m 지점에서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저기서 마력이 강하게 느껴지네.’
지크는 목걸이 하나를 주시했다.
마력석 없이 보석만 박힌 목걸이였다.
‘어딜 도망가려고. 이 도마뱀 새끼야.’
-히이이익!
목걸이를 집어 들자 소스라치게 놀란다.
힘의 차이를 깨달은 목소리다.
‘감히 인간인 나한테 정신 붕괴를 쓰려고 해? 이 쓸데없는 도마뱀 영혼 따위가?’
-미, 미안, 히익! 미안하다, 인간. 히익!
발작하는 걸 보니 아직 정신 붕괴의 여파가 남은 모양.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다.
‘이 빌어먹을 용 새끼를 어떻게 해야 내 속이 시원해질까?’
전생의 용군단과 이 녀석이 같은 차원의 용이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용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사실.
방금 정신 붕괴에 걸려 죽을 뻔한 것도 사실이다.
‘3차 각성 스킬이 없었다면 내가 당했겠지.’
지크는 놈을 어떻게 괴롭힐지만 생각했다.
마치 지상최대의 과제처럼.
‘확 목걸이를 부숴 버릴까? 그럼 죽지 않을까?’
지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영혼처럼 물건에 몸을 옮기는 녀석인데 부서트린다고 쉽게 죽을 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나한테 마법을 썼지?’
녀석이 말한 대로 드래곤이 맞다면 온갖 마법에는 통달했을 터.
지크의 입꼬리가 잔혹하게 올라갔다.
죽이는 것보다는 다른 쓰임새가 있을 것 같다.
‘야.’
-……?
‘너, 내 마법 셔틀이 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