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4화
-카르볼, 이 나비 모양의 조그만 물건은 뭐야?
-그건 대상의 마력 패턴을 읽고 통신을 엿들을 수 있게 하는 고대의 장치다. 우리는 그걸 도청기라 불렀지.
-신기하네. 일반적인 브로치처럼 생겼는데. 어떻게 쓰는 거야?
-엿듣고자 하는 사용자 근처에서 나비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그럼 대상의 마력 패턴을 읽고 등록을 하지.
-그럼 끝이야?
-끝이다. 패턴이 등록되면 버튼을 눌러 마력이 연결된 통신구의 대화를 언제든지 엿들을 수 있지.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듣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도청 대상한테 들킬 염려는 없고?
-등록된 패턴을 인식해서 도청하는지라 역추적 당할 일은 없다. 상대는 통신하느라 전혀 눈치채지 못할 거야.
얼마 전에 했던 카르볼과의 대화를 떠올린 지크가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엔 금으로 만들어진 나비 모양의 도청기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카르볼. 이거 왜 이래?’
-패턴을 입힌 사용자의 통신이 기록되는 중이다.
‘뭐?’
그 말은 지금 피터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는 뜻.
마동차에 있을 때 피터 몰래 마력 패턴을 등록했으니 확실했다.
“레이커 경.”
“예, 도련님.”
“잠깐 볼일 좀 봐도 될까요?”
“예. 대신 멀리 가시면 안 됩니다.”
끄덕인 지크가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걸어갔을 때쯤.
나비 모양의 브로치를 들어 버튼을 눌렀다.
-마력의 반작용 연구에 대한 실험체가 필요하다고 지크를 데려오길 원하셨…….
-……죽일 거였으면 너에게 실험체를 데려오란 말도 하지 않았겠지. 실험체는?
-지크는 살아나오지 못할 겁니다.
-안타깝군. 마나 친화력이 없다 하여 마도 수련을 핑계로 직접 살펴보고 싶었거늘.
‘이, 이건!?’
듣는 내내 지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믿기 힘들었지만, 결코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첫째 형이 마탑주와 짜고서 날 실험체로 팔아먹으려 했다고?’
이제야 알 것 같다.
마탑에서 재능도 없는 자신을 왜 초청했는지.
‘하마터면 인체실험의 재료로 쓰일 뻔했잖아?’
어이가 없다.
비밀리에 인체실험을 진행하는 마탑도, 꼴 보기 싫다고 동생을 팔아넘긴 첫째 형도.
‘이 X발 새끼들이…….’
주먹이 절로 쥐어졌지만 당장 나서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피터는 인비저빌리티를 쓰고 도망쳐 버렸고, 마탑주는 15살인 자신이 상대하기엔 거물이었으니.
‘일단은 마수의 숲부터 벗어나는 게 우선이야.’
이곳이 마수의 숲이라는 건 레이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
얼마나 흉포한 몬스터들로 득시글거리는 곳인지 또한.
마수의 숲에 들어간 사람 중 멀쩡히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하지만 지크는 살아서 돌아갈 것이다.
‘우선 가문으로 돌아가자. 피터도 사라졌으니 마탑에 갈 이유도 없지. 그리고 이 녹음은…….’
자신을 실험체로 써먹으려던 놈들에게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다.
지크가 브로치를 손에 꼭 쥔 채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레이커를 비롯한 호위 기사들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두려움에 떠는 눈빛으로.
“레이커 경?”
“도, 도련님. 더 이상 다가오지 마십시오.”
무슨 일인가 보니 시뻘건 피부색에 우락부락한 체형을 지닌 몬스터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블러드 오크입니다.”
[몬스터 도감]이라는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마수의 숲에 출현하는 몬스터 중 가장 비중이 높은 몬스터로, 피를 보면 강해지는 녀석들이다.
기본적으로 한 마리 한 마리가 오러 익스퍼트 급이라고.
그런데 그런 놈들이 수십 마리가 보인다.
“저희가 어떻게든 막아볼 테니 지크 도련님은 자리를 피하십시오.”
죽음을 각오한 듯 비장한 눈빛으로 말하는 레이커였지만 그것도 잠시.
“퀴익, 퀴익.”
“퀵, 퀵.”
비장함이 무색하게도 블러드 오크들이 먼저 물러나기 시작했다.
“응? 저놈들이 왜 저러지?”
슬금슬금 물러서던 블러드 오크는 공포를 집어먹은 표정으로 수풀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긴장하던 호위 기사들로선 맥이 빠지는 상황.
“갑자기 물러나는데요?”
“어떻게 된 일이지?”
“휴우, 어쨌거나 다행입니다. 저놈들과 싸웠으면 누구 하나 피를 봤을 테니까요.”
“아직 안심하지 마라. 동료를 더 불러오려는 것일 수도 있으니. 일단 자리를 이동한다.”
하지만 숲을 걷고 걸어도 블러드 오크는 조우할 수 없었다.
다른 몬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상하네요. 왜 몬스터들이 안 보이죠?”
“몬스터가 득시글해서 병장기를 놓을 틈도 없다고 들었는데…….”
“그저 부풀려진 소문이었던 걸까요?”
마수의 숲이라는 명색이 무색하게도 몬스터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몬스터라곤 처음에 마주했던 블러드 오크 무리뿐.
동료를 데려오는 것도 아니었는지 더 이상 보이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사실 지크만 알고 있었지만.
‘다시 나타날 리가 없지. 드래곤의 냄새를 맡고도 나타날 간 큰 몬스터가 어디 있겠어?’
드래곤은 몬스터를 수족으로 부리는 최상위 포식자.
그런 카르볼의 영혼과 함께하며 용력을 뿜어내니 몬스터들이 공포를 집어먹을 수밖에 없다.
‘카르볼. 용력이란 기운을 더 넓게 확산시켜줘. 아예 근처에도 오지 못하도록.’
-말하지 않아도 그러고 있다. 몬스터 따위는 내 그림자도 밟지 못하리라.
‘네 그림자가 아니라 내 그림자겠지.’
씩 웃은 지크가 레이커를 재촉했다.
“몬스터도 안 보이는데 빨리 가죠.”
“아, 알겠습니다. 도련님. 모두 좀 더 속력을 내기로 한다.”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 아버지에게 가야 한다.
‘가서 드러내야지. 암살자를 고용한 그 녀석의 정체를.’
한 사람을 떠올린 지크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 * *
“어머니…….”
“피터! 이게 무슨 꼴이니!”
온몸이 흙투성이인 채로 돌아온 피터의 모습에, 크리스티나가 기겁하며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가는 도중 6서클 마법사 넷으로부터 습격을 받았습니다.”
“습격? 어디 다친 곳은 없니?”
“저는 괜찮지만 지크가…….”
“지크?”
“지크가 왜?”
소란을 들었는지 어느새 데이나가 다가왔다.
“피터, 말해보렴. 지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니?”
“그게…….”
우물쭈물 연기를 하던 피터가 착잡한 심정으로 사형선고를 내렸다.
“지크는…… 죽었습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니. 지크가 왜!”
“지크와 호위 기사들이 암살자들을 피해 숲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하필 도망친 곳이 마수의 숲이더군요. 시체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 살아나오긴 힘들 겁니다. 그만큼 악명이 자자한 곳이니까요.”
“아아…….”
“저는 다행히 마법을 익힌 덕분에 큰 상처 없이 돌아올 수 있었고요.”
“정말로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크리스티나가 아들을 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그와 반대로 데이나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믿을 수 없어. 우리 아들이 죽었을 리가 없어…….”
“작은어머니.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마수의 숲은 대마법사도 꺼리는 곳입니다. 살아 돌아올 확률은 극히 희박합니다…….”
“아아, 지크…….”
흐느끼는 작은어머니의 목소리에도 피터의 눈빛은 차가웠다.
‘쯧. 그깟 장애인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슬픈 일이라고. 오히려 가문의 치부가 사라졌으니 잘된 일 아닌가?’
물론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말 못 하는 미물도 자식의 죽음엔 슬퍼하는 법이었으니까.
‘지크는 하늘에서 감사해야겠군. 하찮은 자신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막냇동생이 죽었지만 애도 따위는 할 생각 없다.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리는 없지 않은가?
살아 돌아오길 바라지도 않았고.
“아버지는요? 집에 계시나요?”
“너희 아버지는 일이 있어 자릴 비우셨단다.”
“그래요? 그럼 제가 동생들에게 소식을 전할게요.”
“그래라.”
크리스티나의 허락에 걸음을 떼던 피터는 흐느끼는 데이나를 무심하게 지나쳤다.
* * *
데칸 왕국엔 ‘검은 달’이라는 암살집단이 있다.
암살단답게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는 조직인데,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조직의 수장이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저 접선 방법과 대금 지급 방법, 처리 방법 등이 고객이 알 수 있는 전부다.
알렉스도 달튼이라는 전속 호위 기사에게 추천받기 전까지는 암살단의 존재 여부조차 알지 못했다.
‘아마 지금쯤 잘 처리했겠지? 흐흐.’
지크 일행이 마탑으로 떠나기 전.
삼공자인 알렉스는 검은 달에 한 가지 의뢰를 넣었다.
바로 일공자인 피터와 사공자인 지크를 죽여달라는 것.
그들을 죽이려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후계자 경쟁에서 떨어트리기 위함이었다.
‘이대로면 재수 없는 첫째 형님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커. 그럴 바엔 차라리 죽여 없애버리는 게 낫지. 덤으로 지크, 그놈도 죽여 버리고.’
두 사람이 도중에 죽어버리면 후계자는 러셀과 자신으로 좁혀진다.
후계자가 될 확률이 50%로 올라가는 것이다.
‘유약한 둘째 형님과 경쟁한다면 내게도 승산은 있겠지. 흐흐.’
후계자가 되기 위해 형제들을 암살한다?
누가 보면 손가락질을 해도 마땅한 행위였지만 알렉스는 양심의 가책 따윈 느끼지 않았다.
재능도 능력도 없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며 자기합리화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양심보다는 다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암살단에 자신의 정체를 노출한 것 말이다.
‘원래는 달튼을 시켜서 몰래 의뢰를 넣고 싶었는데…… 의뢰인이 직접 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돈만 주면 다 죽여주는 줄 알았지만, 암살단은 의외로 사람을 가렸다.
아닌 게 아니라 타깃이 마법 명가로 유명한 공작가의 자식이었으니 꺼리는 것도 이해는 된다.
‘만일의 경우 일이 틀어지면 내가 의뢰했다고 발뺌하려는 속셈인가?’
정체를 노출한 게 찝찝하긴 했지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암살단도 일종의 보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뭐, 상관없어. 암살만 성공하면 내가 의뢰했다는 사실이 들킬 일은 없을 테니까.’
암살에 특화된 6서클 마법사 넷이 나선다고 했으니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언제 어느 길목을 지나는지 자세한 정보까지 제공했으니.
‘아버지에게 도움 요청할 수 없도록 고장 난 통신구로 바꿔치기까지 했어. 계획은 완벽해.’
마동차의 실드라 해봤자 6서클 화염 마법이면 금세 깨질 테고, 대동한 호위 기사들 실력이야 그 나물에 그 밥.
암살이 실패할 리가 없다.
아예 밥숟가락을 떠 먹여주는 셈이었다.
‘돈 좀 깨지긴 했지만 뭐 어때? 죽이기만 하면 됐지.’
이제 가만히 앉아서 검은 달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입꼬리를 올리며 통신구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구냐?”
“도련님. 접니다. 달튼.”
“들어와.”
직속 호위 기사이자 공범인 달튼이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암살단에게서 연락은 왔어?”
“그게 아니라 일공자님이…….”
“첫째 형님이 왜?”
“……조금 전에 가문으로 돌아왔습니다. 멀쩡한 모습으로요.”
“뭐?”
암살 대상이 버젓이 살아 돌아왔다?
알렉스로선 꺼림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봐.”
“암살자로부터 습격을 받았으나 인비저빌리티를 쓰고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고 합니다.”
“하, 검은 달, 그 새끼들은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상대가 5서클이라도 일격에 죽이면 된다고 호언장담하더니만!”
틀어진 계획에 돈만 날렸다고 여긴 알렉스가 넌지시 물었다.
“지크는?”
“죽었답니다.”
“확실해?”
“듣기론 암살자들을 피해 마수의 숲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마수의 숲?”
알렉스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숲에 들어갔다는 건 죽은 거나 다름없었으니.
“그 점은 잘됐네. 안 그래도 꼴 보기 싫었는데.”
“하지만 일공자님이 살아남지 않았습니까?”
“괜찮아. 기회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유력 후보인 일공자가 살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임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느낀 검은 달 측에서 다시금 피터를 노릴 테니까.
거절한다면야 다른 암살단을 고용하면 그만이고.
“어쨌거나 달튼, 넌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내가 후계자가 되면 지금의 공을 잊지 않을 테니까.”
“후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도련님.”
달튼과 알렉스가 마주 보며 씨익 웃던 그때였다.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자 알렉스의 미간이 구겨졌다.
“누가 내 허락도 없이…….”
고개를 돌린 알렉스는 이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들어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