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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16화 (16/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6화

-여기까지 왜 찾아왔지? 통신구로 연락을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통신구를 잃어버려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뭔데?

-청부하신 암살 결과에 대해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참 빨리도 보고하네.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당연히 없어야지. 내 피 같은 돈이 날아갔는데! 이제 어떡할 거야?

-저희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마무리 지어도 잔금은 없을 줄 알아. 동선까지 알려줬는데도 실패한 건 너희니까!

누가 봐도 전후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녹음이었다.

알렉스가 피터와 지크를 죽이기 위해 살인을 청부했다는 사실을.

제라드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렇게 증거가 명백한데 발뺌하는 것이냐? 감히 내 앞에서?”

“아, 아버지. 저, 저건 오해…….”

“그렇다면 왜 내가 들어왔을 때 달튼이 지크의 목을 조르고 있었지?”

대화 도중 끼어드는 러셀을 보며, 알렉스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저 형님 새끼가 편들어주지는 못할망정,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날뛸 정도로 사리 분별 못 하는 알렉스가 아니었다.

“아이, 참, 형님. 형제끼리 다툴 수도 있지 뭘 그거 가지고 그러십니까?”

“내가 볼 땐 호위 기사를 시켜 지크를 죽이려는 것 같았다만.”

“에이, 오해입니다, 오해.”

전부 다 오해라고 말하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제라드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 통신구는 어디서 구한 것이냐?”

“이, 이거요? 친구와 연락하려고 구한 것인데…….”

“이리 내놓아 보아라.”

제라드의 요구에, 알렉스는 잠깐 주저하다가 통신구를 건넸다.

그러나 통신구는 작동하지 않았다.

“……고장이 났군.”

“그래요? 아, 난 고장 난 줄도 모르고 있었네.”

알렉스가 순순히 건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건네기 전에 이미 마력으로 자신이 망가뜨려 놓았으니까.

‘조사해 보면 내 마력 패턴이 발견되겠지만 상관없지. 그때 가서 또 오리발 내밀면 그만이야.’

뭐가 됐든 명확한 증거는 없다.

암살단의 이름조차 모르는 게 저들의 현실.

자신이 빠져나갈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 알렉스였다.

어디까지나 오산이었지만.

“달튼.”

“예? 예, 가주님.”

“네 입으로 말해 보거라. 알렉스가 무엇을 시켰는지.”

“그, 그게…….”

맹수와도 같은 제라드의 눈빛에 달튼은 속으로 죽을 맛이었다.

일개 호위 기사가 감당하기엔 8서클 대마법사의 기세가 너무도 거셌다.

“사,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주시는 겁니까?”

“네가 지금 협상할 처지라고 생각하느냐?”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노려보자 달튼의 입이 술술 열렸다.

“마, 말하겠습니다. 얼마 전 삼공자님께서 두 공자님을 죽이고 싶다며 저에게 솜씨 좋은 암살단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다, 달튼!”

“그래서 용병 짓을 할 때 알음알음 알고 있던 검은 달이라는 암살조직을 소개해 주었고, 삼공자님이 그들과 접선해 모아두었던 골드와 마법 서고에서 훔친 비책을 대금으로 지급하였습니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 미쳤어?”

“제가 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해와 같은 자비를 베풀어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가주님. 흐흑.”

속사포처럼 진실을 토해낸 달튼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알렉스로선 속이 뒤집힐 지경.

“아버지! 저 새끼 지금 거짓말하는 겁니다! 저를 배신하고 모함하고 있는 거라고요!”

“모함이라… 쯧.”

증거가 명백한데도 끝까지 발뺌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라드가 혀를 찬 뒤에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말해 보거라. 내 질문에 진실만을 답할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저는 아버지께 거짓을 고하지 않아요.”

“그럼 [마나의 서약]을 걸어도 문제없겠구나.”

“…….”

마나의 서약은 대상의 마나 패턴을 읽어 생체 반응을 보는 기술이다.

보통 마법사들이 중요한 맹약을 할 때 서로의 서클을 걸고 마나의 서약을 사용한다.

거짓을 말하면 서클이 파괴되도록 설정해두고서.

그렇기에 서로 간에 믿음을 보여주거나 거짓을 판별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너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다면 발동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거짓을 말한다면 네 몸의 마나가 역류하여 서클이 파괴될 것이다. 하겠느냐?”

“…….”

“강요는 하지 않는다. 애당초 강요로 이루어지는 기술도 아니다. 난 그저 네가 결백을 주장하기에 방법을 제시한 것뿐이다.”

“거,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럼 네 결백은 밝혀지지 않고 지금의 증거를 토대로 합당한 죄를 물어야겠지. 어떻게 하겠느냐?”

“저는…….”

알렉스는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물러서면 꼼짝없이 죄인이 되지만 대답 한 번만 잘하면 한 방에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마나의 서약을 속일 수 있지 않을까?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으면 되잖아.’

진실을 말해야 한다면 그렇게 믿으면 그만이다.

“하겠습니다.”

“알겠다. 바로 시작하지.”

제라드가 다가가 알렉스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마나를 불어넣어 알렉스의 마나 패턴을 인식, 마나의 서약에 발동되는 마력을 구현시켰다.

알렉스의 동의하에.

“서약이 발동되었다. 서클에 이질적인 고리가 걸린 걸 너도 느끼고 있을 터. 그렇다면 이제부터 질문하마.”

알렉스가 긴장한 사이, 제라드가 물었다.

“알렉스. 정말로 암살단을 고용해 형제들을 죽이려 했느냐?”

* * *

‘와. 살벌하다, 살벌해.’

지크는 솔직한 말로 놀랐다.

8서클인 아버지의 몸에서 저런 흉흉한 기세가 뿜어져 나올 줄은.

‘당장 죽이고 싶은 걸 꾹 참는 얼굴이잖아?’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알겠다.

차마 자기 자식을 죽이진 못하겠지만.

‘자식만 아니었으면 알렉스는 이 자리에서 사지 분해됐겠지.’

그렇게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해는 됐다.

자기 자식이 형제를 암살하려 했는데 아버지로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알렉스에게 마나의 서약까지 사용할 줄은 몰랐네?’

진실을 알기엔 이만한 수단이 없지만, 마나의 서약은 상대의 서클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기술.

그렇기에 마법사들끼리도 쉬쉬하는 데다 가문에서도 웬만하면 다루지 않는 기술이었다.

‘뭐, 어쨌거나 끝났네. 마나의 서약이 걸렸다면.’

서약이 걸린 이상 거짓을 말할 순 없다.

자칫 잘못했다간 자신의 서클이 파괴되니까.

그렇다고 서약에 대답하지 못하면 죄가 인정된다.

알렉스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에 몰린 상황.

‘바보가 아닌 이상 서약에 맞서려 들진 않겠지.’

간혹 서약의 성능을 테스트해 보려는 간 큰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사람들은 백이면 백 서클이 파괴되어 반병신으로 살았다고 책에서 읽었고.

‘그런데 여기 있었네? 그 바보가?’

암살단을 고용해 죽이려 했냐는 제라드의 질문에, 알렉스는 멍청하게도 거짓을 말했다.

“아닙니다. 전 절대로 형제들을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딴엔 서약을 속이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내지른 답이리라.

하지만 지크가 [마나의 서약 개론]이라는 책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그건 불가능하다.

마나의 서약은 사용자의 마나 패턴이 주는 떨림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분간하는 원리.

어떻게 보면 현대의 거짓말 탐지기보다도 훨씬 더 정밀한 성능을 발휘한다.

‘대답만 잘하면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욕심이 과했어.’

참혹한 결과가 알렉스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커허허헉!”

입 밖으로 피를 토해낸 알렉스가 두 눈을 뒤집었다.

“끄아악, 끄어어어억!”

목을 박박 긁으며 괴로워하더니 이번엔 심장을 부여잡는다.

“허억, 헉! 흐억!”

숨쉬기 괴로운 듯 헐떡거렸지만, 그 모습을 제라드는 냉정한 눈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설마 했는데 거짓이었군. 마나의 서약 앞에서 거짓을 말하다니. 간도 크구나.”

“끄흐허허억…… 아, 아버지…… 살려주세요.”

“걱정 말아라.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서약을 어기면 서클만 파괴될 뿐이야.”

얼핏 위로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누구도 그렇게 듣지 않았다.

한번 파괴된 서클은 복구할 수 없다.

그럴진대 마법 명가의 자식이 서클이 파괴된 반푼이가 됐다?

병신 취급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더구나 친형제를 암살하려 한 살인자 꼬리표 또한 달고 살아야 할 테고.

입가에 피를 흘리던 알렉스가 부들대며 아버지를 쳐다봤다.

하지만 돌아온 눈빛은 냉랭했다.

“불쌍한 표정 짓지 말아라. 네가 자초한 일이니.”

“…….”

“세상에, 친형제를 죽이려 들다니. 대체 왜 그런 것이냐?”

“그건…….”

“아니, 됐다. 이제 와서 구차한 변명도 듣고 싶지 않다.”

제라드가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명했다.

“알렉스 맥러플린. 지금 이 시간부로 너는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니다. 가문에서 추방을 명하니 당장 떠나거라.”

“아, 아버지…….”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목숨만은 살려주는 걸 감사히 여기도록.”

“끄흐흐흑…….”

이런 결과가 초래할 줄 몰랐는지 알렉스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목을 조르며 보였던 살기와 독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호위병들은 알렉스와 달튼이라는 저 떨거지들을 얼른 내 집에서 치우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피터, 러셀, 지크는 나 좀 보자.”

‘무슨 일이지?’

아버지의 부름에 지크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른 형제들과 함께 서 있었다.

호위병과 시종들이 모두 나가자 방 안에는 네 사람만이 남았다.

“괜찮으냐?”

“예? 저요?”

자신을 보며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에, 지크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조금 전에 냉정하게 내치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알렉스와의 온도 차가 극명했으니까.

“조금 전까지 달튼에게 목을 졸리지 않았더냐. 그게 괜찮냐는 말이다.”

“아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괜찮아요.”

‘사실 아무렇지도 않아요.’

뒷말은 속에 삼킨 채 멀뚱히 서 있는 사이, 제라드가 말했다.

“내가 너희를 남으라고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한 가지 통보를 하려고 한다.”

“통보요?”

“이번에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갑자기 내린 결정이다만…….”

뜸을 들인 제라드가 한 차례 숨을 내쉰 뒤 선언했다.

“아무래도 후계자 시험은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구나.”

그 말에, 찰나지만 지크는 보았다.

유력 후보인 피터의 미간이 구겨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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