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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20화 (20/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20화

약혼자의 말에 루나가 귀를 기울였다.

“지크에게 시비를 걸어서 먼저 싸움을 걸도록 유도하는 거요.”

“싸움을요?”

“녀석은 이제 15살밖에 안 됐다 하지 않았소? 간단한 도발에도 분명 걸려들 것이오.”

“아.”

테오는 루나보다 네 살 많은 20살.

그래서인지 생각의 폭이 넓고 머리가 좋다.

“좋은 생각이에요. 어쩜 그렇게 똑똑하죠?”

“후후, 내가 좀 똑똑하긴 하지. 그러니까 이 나이에 4서클에 이른 것 아니겠소?”

“정말이지, 남자 하나는 제가 잘 골랐다니까요? 후후.”

루나의 칭찬에 테오의 입이 헤벌쭉 열렸다.

“이럴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실행하러 갑시다. 지크라는 놈은 어디 있소?”

“따라오세요. 조금 전에 피터 오라버니와 별관에 있는 걸 봤어요.”

끄덕인 테오는 루나를 따라 별관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 만난 하인들이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했지만 둘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 하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 저기 있네요.”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저희 가문 호위기사단장이에요.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자죠.”

“흐음, 그렇단 말이지?”

루나의 설명에 테오가 눈을 반짝였다.

흡사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눈빛이었다.

* * *

지크는 우연히 마주친 레이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련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달튼에게서 목을 졸렸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거 말이죠? 아주 멀쩡해요.”

목을 한 번 쓰다듬었지만 아파서가 아니었다.

멀쩡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행동.

그러나 레이커는 상처를 어루만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저렇게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걸 보면.

“늦었지만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런 용병 출신은 아예 뽑는 게 아니었는데…….”

“레이커 경이 왜 사과해요. 그 녀석 인성이 글러 먹은 건데.”

“어쨌거나 제가 사람을 잘못 뽑아서 생긴 일이니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됐어요, 됐어.”

지크는 괜찮다며 손을 휘휘 저었지만 레이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신경 쓸 것 없어요. 다 지난 일인걸요?”

“그래봤자 일주일도 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 도련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레이커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순간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것이다.

‘저렇게 보여도 속으론 분명 심란하시겠지. 저 나이에 겪기엔 너무도 충격적인 일들이니까.’

15살의 나이에 형제에게 암살당할 뻔하고 목을 졸려 죽기 직전까지 갔다.

마법 서고에서 책만 읽은 도련님이 겪기엔 너무도 가혹한 일들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시다니. 전에도 느꼈지만, 정말이지 정신력만큼은 감탄이 나오는구나.’

정신력만이 아니었다.

알렉스를 검거할 당시, 직접 암살자로 위장해서 증거를 끌어내기도 했다.

웬만한 담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지크는 해냈다.

‘지혜에 정신력에 담력까지 갖추시다니. 여러모로 대단하신 분이야. 이런 분이 후계자에 오르며 승승장구해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지크는 마법 명가의 재능을 이어받지 못했다.

피터와 러셀이 있는 한 차기 가주는 바라볼 수도 없는 처지.

여러모로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느낀 레이커가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도련님. 수련은 잘 되어가고 계십니까?”

“수련이요? 어떤 걸 말하는 거죠?”

지크의 반문에 레이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능 개화 말입니다. 그거 말고 다른 게 있겠습니까?”

“아아, 그거요? 아쉽게도 성과는 없네요.”

“혹시 오러를 배우신 건 아니시겠죠?”

혹시나 해서 물어본 말이었지만 레이커는 몰랐다.

지크가 내심 뜨끔해할 줄은.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제가 그동안 노력한 게 있는데.”

“하하, 그렇죠? 저번에 오러의 원리에 관해 물어보시길래 혹시나 하였습니다.”

“배우고 싶어도 못 하죠. 마법 명가에서 태어나놓고 오러를 배우면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살걸요?”

“그렇겠네요. 저야 오러 유저니까 오러를 익히는 걸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 도련님께선 아무래도 주변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죠.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 길이 열릴 겁니다.”

“네. 말씀 감사합…….”

“이거 어처구니가 없구만? 한낱 호위 기사가 공작가 자제에게 조언하다니.”

레이커의 조언에 끄덕이려던 지크가 고개를 돌렸다.

금발에 곱슬머리를 한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옆에는 루나가 찰싹 따라붙고 있었고.

‘저 사람은…… 루나 누님의 약혼남인가?’

루나가 마법 가문 서열 4위인 발도르의 이공자와 약혼했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제집 드나들듯 공작가를 활보한다는 것 역시 들었지만 이렇게 대면하기는 처음이다.

지크가 멀뚱히 쳐다보자 약혼남이 눈살을 찌푸린다.

“뭘 그렇게 보느냐? 내가 누군지 모르느냐?”

“혹시 발도르 가의……?”

“발도르 가문의 이공자 테오 발도르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첫 만남이라 예의 바르게 인사했지만 돌아온 것은 혀를 차는 목소리였다.

“쯧쯧, 지나가는 시종도 아는 사실을 혼자서만 모르고 있다니. 마법 서고에만 처박혀 있다더니 그 말이 딱 맞군그래.”

“처박히다니요. 초면에 말씀이 심하신 거 아닌지?”

“뭐라?”

지크가 말대꾸할 줄은 몰랐는지 테오의 입이 벌어졌다.

“하! 아무리 맥러플린 가문이라도 그렇지 막내가 매형 될 사람을 상대로 눈을 똑바로 뜨고 말대답하다니. 기가 막히는군.”

“저도 참 기가 막히네요.”

“하긴 오러 유저 따위한테서 조언이나 듣고 있는 처지니 말해봐야 뭐하겠소?”

그리 말하며 레이커를 흘겨보는 테오와 옆에서 맞장구치며 거들어주는 루나를 보니 두 사람의 의도가 짐작이 간다.

‘보아하니 공개적으로 날 꼽주고 싶어 하는 눈치구만?’

전부터 느꼈지만, 루나는 자신을 싫어했다.

그러니 이렇게 되지도 않는 시비를 거는 거겠지.

‘아무래도 레이커 경을 먹잇감으로 삼은 모양인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옆에 있다가 불똥이 튀었으니 괜히 미안했다.

하지만 레이커도 참고만 있긴 싫었나 보다.

두 눈 부릅뜨고 테오를 쳐다보는 걸 보면.

“테오 공자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오러 유저를 비하하는 발언은 삼가십시오.”

“뭐라?”

“마법사에 비해 오러 유저가 뒤처진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호위기사단은 기본적으로 오러 유저로 구성되어 있고 매일같이 가문을 지키기 위한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희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십사 드리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노고를 알아달라는 소리.

대놓고 오러 유저를 비하하니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거겠지만,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물고 늘어질 게 뻔하니.’

아니나 다를까, 테오가 콧방귀를 뀌며 레이커를 노려봤다.

“건방지구나. 궁정 마법사단도 아니고 가문에서 고용한 일개 호위기사단장이 내게 말대꾸해?”

“…….”

“그리고 내가 뭐 틀린 말 했느냐? 오러 유저가 마법사에 한참 밀리는 것은 세상 다 아는 사실이거늘!”

“저는 그저 좋게 생각해 달란 의미였을 뿐, 다른 의미는…….”

“듣기 싫다!”

예상대로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던 테오가 미친개처럼 소리친다.

“아랫사람을 보면 윗사람도 알 수 있다고, 말대답하는 호위기사단장의 꼬락서니를 보니 처남의 성정도 알만하구나!”

“말은 똑바로 하시지요. 처남이라니요. 약혼일 뿐, 아직 혼인을 치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뭣? 이런 예의범절도 모르는 자식이…….”

테오가 뭐라 쏘아붙이려 했지만, 그보다 지크의 말이 더 빨랐다.

“저희 가문을 모욕한 테오 공자에게 지킬 예의란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가문을 모욕하다니?”

“방금 아랫사람을 보면 윗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지요. 그 말은 형제를 암살하려 한 알렉스 형님을 보면 다른 형제들의 성품도 짐작이 간다는 뜻 아닙니까? 게다가 가주인 저희 아버지까지도요.”

“……아?”

테오는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치명적인 말실수를 했음을.

“저희 아버지를 자식 교육도 제대로 못 한 사람처럼 비방하고 있으니 어찌 가문을 욕보인 게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 아니, 나는 그저…….”

괜히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 꼬투리를 잡히자 테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나, 나는 결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다.”

“레이커 경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절대로 테오 공자님을 가르치거나 욕보일 의도는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오해는 푸시지요.”

“끄응…….”

테오가 곤란하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가문을 모욕했다는 오명을 풀려면 먼저 자존심을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아, 알았다, 내가 오해했군.”

“그리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공자님. 저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레이커가 사과했지만 테오에게 그런 걸 들을 정신은 없었다.

속으로 레이커와 지크를 흉볼 뿐.

‘빌어먹을, 내가 저런 병신들한테 먼저 고개를 숙이다니……!’

레이커를 이용해 상대를 깔아뭉개려 했지만, 오히려 이쪽이 먼저 굽히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제길, 루나 말만 듣고 만만히 봤다가 이게 무슨 꼴이야?’

재능도 개화하지 못한 장애인이라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말 한번 잘못한 걸 가지고 상대를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만들다니.

테오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애초에 계획했던 도발은 먹히지도 않겠어.’

조금의 내상도 입지 않았다는 듯 평온한 지크의 표정을 보니 쉽게 흥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더 흥분했으면 했지.

‘안 되겠어. 놈에게 말려들기 전에 일단은 물러나야…….’

계획을 철회하고 이만 물러나려던 테오였지만, 지크는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미끼를 던졌으니까.

“아까 테오 공자님이 말씀하셨지요? 오러 유저는 마법사에게 안 된다고.”

“그, 그랬지.”

“그렇다면 둘이 대련해 보는 게 어때요?”

“대련?”

“근처에 연무장도 있으니 그곳에서 레이커 경과 붙어보는 겁니다. 오러 유저와 마법사, 둘 중 누가 더 강한지.”

‘하, 이놈 봐라?’

비틀린 테오의 입꼬리 밖으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크의 의도가 빤히 보이는 탓이다.

‘보아하니 저놈이랑 대련시켜서 개망신을 줄 생각인가 본데, 내가 걸려들 줄 알고?’

아무리 마법사가 강하다지만 상대는 오러 익스퍼트 상급 수준.

최소 6서클 마법사는 되어야 비벼볼 만한데 자신은 그보다 낮은 4서클이지 않은가?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다.

“이봐, 예비 처남.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만 상대를 골라주려면 제대로 골라줘야지. 4서클인 내가 오러 익스퍼트 상급과 어떻게 대련한단 말인가? 붙여주려면 비슷한 급으로 붙여줘야지.”

“그런가요? 그럼 저는 어떤가요?”

“뭐?”

“예비 매형 정도는 제가 이길 수 있을 듯한데.”

“뭐라?”

씨익 미소 짓는 지크의 얼굴을 보자 테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지금 나와 마법 대련을 붙어보자고 한 것이냐?”

“아니요. 제가 요즘 할 게 없어서 검술을 배우고 있거든요. 테오 공자님은 마법을 쓰시고 전 검술을 쓰는 거죠. 어떠세요?”

“하, 하하하!”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테오는 자기도 모르게 대소를 터트렸다.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싸워보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어찌 우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러도 마법도 배우지 못한 병신한테 얕보이는 신세라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어떻게 해서든 방금 당한 굴욕을 갚아주고 싶다.

자존심은 한 번 내려놓은 것만으로 족하니까.

“하핫, 재미있는 제안이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오러도 배우지 못한 상대에게 마법을 쓸 수야 있겠느냐? 나 역시 너와 비슷하게 맞춰줘야지.”

“어떻게요?”

“나 또한 마법을 쓰지 않겠다. 검술은 배워보지 않았다만 체급 차이가 있으니 어느 정도 공평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저야 좋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테오는 공평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이미 머릿속은 마법을 활용해 이길 생각으로 가득했으니까.

‘녀석 몰래 스트렝스랑 헤이스트를 걸어놔야겠어. 몸은 마나 스킨으로 둘러서 단단하게 만들고.’

어차피 상대는 마력도 느끼지 못하는 애송이가 아니던가?

내 몸에 버프를 걸었다고 해서 눈치챌 리가 없다.

‘그깟 검술 좀 배웠다고 감히 나한테 도전을 해? 시작하자마자 땅바닥을 기게 해주마.’

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보자 지크가 싱긋 미소 지었다.

곧 있으면 벌어질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그럼 연무장으로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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