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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21화 (21/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21화

‘지크, 그 자식. 보기와 달리 악랄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투덜거리며 지크를 씹는 이는 다름 아닌 피터였다.

협박 때문에 강제로 맹약을 맺었으니 불만이 없을 리 있겠는가?

‘마탑주님이 아니라 지크에게 충성해야 하는 처지라니. 하, 참!’

막내에게 휘둘려야 하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서클을 지키려면 절대로 지크를 배신해선 안 된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어. 절대 알렉스처럼 폐인이 되진 않을 거야.’

그저 자신의 주인이 마탑주에서 지크로 바뀌었을 뿐이다.

지크의 말만 잘 들으면 서클이 무너질 일은 없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일.

‘보란 듯이 살아서 가주가 되고 말겠어. 그때가 되면 지크, 너도 지금처럼 날 무시하진 못하겠지.’

지금이야 강제로 계약을 걸고 갑질하고 있지만, 그때가 되면 함부로 대하진 못하지 않을까?

서약이 걸려 있더라도 말이다.

‘적어도 공생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도.’

평생 지크를 배신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서약을 맺은 이상 어쩔 수 없다.

지난 일은 잊어버리는 수밖에.

그런 심정으로 연무장을 걸어가던 피터가 문득 눈길을 돌렸다.

시선을 사로잡는 한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크잖아?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연무장에는 지크가 훈련용 목검을 고르고 있었다.

‘레이커 반에 루나, 약혼남인 테오 발도르까지도 있어.’

지크에 이어 테오가 목검을 고르고 있다.

아무래도 둘이 대련하려는 모양.

‘하, 마법 가문에서 목검으로 대련이라. 어처구니가 없구만.’

실소가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힘을 겨루려면 저 방법밖에는 없다.

테오와 달리 지크에겐 서클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테오는 모르고 있어. 지크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법을 못 쓰게 차단까지 할 수 있다.

그건 당해본 자신 말고는 아무도 모르리라.

‘그나저나 지크가 검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나?’

피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찍이서 둘의 대련을 지켜봤다.

내심 한 사람이 이기기를 간절히 바라며.

* * *

‘괜찮으실까? 도련님이 목검 휘두르는 건 본 적이 없는데?’

난데없는 대련 성사에 레이커로선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언급한 바와 달리 지크가 목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누가 보면 비웃을 일이기도 했고.

‘그런데 왜 굳이 나서서 대련을……?’

테오 공자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레이커의 눈엔 지크가 일부러 그를 도발한 것으로 보였다.

‘대련을 유도한 걸 보면 그만큼 자신 있으시다는 거겠지?’

그렇기에 둘의 대련을 잠자코 지켜보곤 있으나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딱 보기에도 체급 차이가 있었으니까.

‘머리 하나 이상 차이가 나는데…… 정말로 괜찮으실까?’

둘 다 검술에는 문외한인 초보자끼리의 대련이라 하더라도 20살과 15살의 대결이다.

기본적인 근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테오 공자의 몸이 마법사답지 않게 거구이기도 했고.

‘지크 도련님이 얼마나 훈련했는지 몰라도 테오 공자를 이기긴 힘들 거야.’

길고 짧은 건 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둘 중 누가 유리한지는 한눈에 들어왔으니까.

‘상황을 지켜보다가 중간에 개입하든가 해야겠어. 열 받은 테오 공자가 손속에 사정 둘 리가 없으니.’

여차하면 지크를 도우리라 여기고 있는 레이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두 사람을 지켜봤다.

* * *

‘같잖은 애송이 새끼. 이 기회에 혼쭐을 내주마.’

테오가 상대를 마주 보며 이를 갈았다.

루나와 약혼하면 처남 될 사이라지만 봐줄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애당초 루나가 녀석을 깔아뭉개기를 바라기도 했고.

지금도 눈빛으로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테오. 저 빌어먹을 꼬맹이를 반드시 작살 내주세요.

-염려 마시오. 내 이번 기회에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가르쳐줄 테니.

눈으로 그렇게 대답한 테오가 상대를 바라봤다.

상대는 자신보다 키도 작고 체구 또한 말랐다.

자기 말론 검술 훈련을 해왔다고 하지만 겁날 수가 없다.

그래봤자 15살 애송이가 아니던가?

게다가 오러도, 서클도 없는 장애인이다.

‘훈련이라 해봐야 허공에 삽질하면서 끼적거리기나 했겠지.’

자신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이쪽이 더 낫다.

이미 18살 때 성인식을 치른 데다 체형도 마법사답지 않게 다부지고 우람한 편이다.

마법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오러 유저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

‘그런 나를 우습게 봐? 넌 오늘 잘 걸렸다.’

대련이라는 핑계로 흠씬 두들겨 패주리라는 생각으로 훈련용 목검을 들었다.

훈련용이라 해도 딱딱한 나무 막대기.

맞으면 멍이 들고 뼈가 아플 것이다.

‘근력을 증가시켜 주는 스트렝스 마법까지 걸어 놨으니 힘에서는 절대로 밀리지 않을 거다.’

게다가 움직임을 날렵하게 만들어주는 헤이스트 마법까지 몰래 걸어 놓았다.

검도 들어본 적 없는 초보라곤 하지만 절대로 초보의 움직임처럼 보이진 않으리라.

“준비는 되었는가?”

“예. 먼저 시작하시죠. 선공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빠직-

이마에 연결되어 있던 무언가가 끊기는 느낌이다.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부글거리는 심정을 꾹 눌러 참은 테오가 입꼬리를 비틀며 다가갔다.

“그럼, 사양하지 않지.”

조심스레 거리를 좁히다가 기습적으로 달려가 목검을 내려쳤다.

목표는 상대의 머리통.

‘끝났다!’

목검이 머리에 닿기 직전인데도 피할 생각을 못 하는 걸 보니 승부는 정해졌다.

곧 있으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울겠지.

하지만 그런 예상은 목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아닛?!’

지크의 머리가 환영처럼 사라졌다.

흡사 귀신이라도 본 듯한 몸놀림.

테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찰나.

따악-!

“끄억!”

옆구리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런 X발!”

억누르던 본성이 욕설과 함께 튀어나오며 상대의 허리를 베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헛방.

공격이 실패하자 돌아온 것은 따끔한 상대의 매질이었다.

따악-!

“으윽!”

어깨에 찌르르 통증이 울린다.

따악-!

팔뚝이 부러질 것처럼 고통스럽다.

따악-!

이번엔 골반을 맞았다.

더 이상 구겨질 여력이 없는 미간이 얼마만큼의 고통인지를 말해주었다.

“으아아아!”

분노에 찬 기합을 터트리며 마구잡이로 목검을 휘둘렀다.

기교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이 정도면 한 번은 닿을 법했다.

그런데.

부웅! 부웅!

어떻게 된 게 상대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한다.

이쯤 되자 테오의 얼굴이 고통보다는 당황으로 물들었다.

‘뭐, 뭐야? 왜 안 맞는 거야?’

상대는 지금 눈앞에 있다.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

그런데도 목검은 애꿎은 허공만 가르고 있었다.

귀신처럼 목검의 방향을 예측하고 피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을 약 올리듯 여유롭게 웃으며.

딱! 딱!

“끅!”

피할 건 전부 피하면서 여유롭게 공격까지 한다.

절대 초보자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딱, 딱, 딱, 따다다다닥!

“X발, X바아아아알!”

개처럼 처맞는 상황에 분을 삭이지 못한 테오는 결국, 주문을 외울 수밖에 없었다.

‘마나 스킨(Mana skin)!’

피부를 강화해 외부의 충격을 보호하는 2서클 마법.

적어도 이게 있다면 목검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으리라.

‘됐어. 이제 맞으면서 버티면……!’

하지만 테오는 몰랐다.

따악-!

“컥!”

상대에게 마법 따윈 통하지 않는다는 걸.

* * *

‘이, 이게 대체……?’

대련을 지켜보던 레이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테오가 유리할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지크가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오러를 배우지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뛰어난 동체시력으로 상대의 검로를 간파해내는 건 물론 여유롭게 피하기까지 한다.

결코 일반인이 흉내 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마치 오러를 사용하는 것 같잖아?’

코앞에서 저렇게 예측하고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폭발적인 힘과 순발력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

저 나이에 그게 가능하려면 오러밖에 없다.

‘그런데 오러를 사용하는 느낌은 전혀 없는데…….’

만약 오러를 사용하지 않은 거라면?

레이커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런 거라면 마법이 아닌 오러 마스터가 될 재능을 타고난 인재란 소리였으니까.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군.’

수십 번의 공격 중 한 번을 맞아주지 않는 지크다.

그러면서 상대에겐 수십 번의 공격을 명중시키고 있었고.

한마디로 모든 공격을 회피하면서 모든 공격을 명중시킨다.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온몸이 멍투성이로 변해가는 테오를 보면 알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끝났어. 내가 나설 일은 없…….’

그때였다.

휙-

테오가 꼴사납게도 목검을 던졌다.

그마저도 여유롭게 피하는 지크였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우웅-

테오의 손이 마력으로 일렁이고 있다.

대련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는 듯 마법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기량의 4서클 마법을.

“지크 도련님!”

“X발, 죽어어어!”

이글거리는 화염을 끌어내던 그 순간, 레이커가 나서서 테오의 복부를 걷어찼다.

“커헉!”

오러가 실린 공격이었기에 테오는 수십 미터를 날아가 연무장 돌벽에 처박혔다.

“꺄악!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레이커가 부릅뜨고 대들자 루나가 표독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그러더니 약혼자가 걱정되는지 무너진 돌벽으로 달려간다.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난 괜찮아요. 그보다 나서줘서 고마워요. 레이커 경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마법에 당했을 거예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던데요?’

속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레이커는 끝내 삼키고 테오를 돌아봤다.

지금은 그보다 테오의 상태가 더 염려되었다.

만에 하나 상처를 입기라도 했으면 자신의 커리어도 여기까지일 테니까.

“걱정 마세요. 레이커 경이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예?”

“먼저 규칙을 무시하고 마법을 쓰려던 건 저쪽이잖아요?”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 안심시키는 지크를 보며, 레이커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여러모로 특이한 도련님이야.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그동안 지크 도련님 때문에 몇 번이나 놀랐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끄으윽, 너…….”

그 와중에 잔해 속에서 몸을 일으킨 테오가 지크를 쏘아봤다.

상처가 별로 없는 걸 보니 찰나의 순간 마법으로 몸을 보호한 모양이다.

“감히…… 날 가지고 놀아?”

“제가요?”

“망신을 주려고 실력을 숨기지 않았더냐!”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뭐…?”

“만만하게 보고 대련에 응한 건 테오 공자님이었고 마법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도 테오 공자님이었습니다. 결과가 어찌 됐든 정당한 대련 아니었나요? 그렇지 않습니까, 레이커 경?”

“아, 예에. 맞습니다.”

“이이익……!”

대련의 공증인이나 다름없는 레이커가 인정했음에도 테오는 구겨진 인상을 펼 생각을 못 했다.

그렇게 당했는데도 분이 안 풀리나 보다.

“오늘 당한 수모는 내 반드시 갚아주도록 하지! 갑시다!”

“두고 봐, 지크!”

으름장과 달리 자리를 피하는 두 사람을 보며 지크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꼴에 자존심은 살아가지고. 저런 게 발도르 가의 이공자라니.’

루나의 부축을 받으며 떠나는 테오의 뒷모습은 어쩐지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 * *

지크가 테오와 대련하던 그 시각.

제라드는 달프레드를 만나고 있었다.

“스승님. 9서클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허허, 빈말이라도 고맙구나.”

“빈말이라니요.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가지고 온 것이 없는데 빈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달프레드가 농담처럼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정말로 축하한다면 선물이라도 가져와야 하지 않겠느냐?”

“아…… 죄송합니다. 급히 오느라 선물을 준비할 생각은…….”

“허헛! 녀석,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농담이니라, 농담! 제자가 된 지 수십 년인데 아직도 구별 못 한단 말이냐? 허허!”

보통이라면 머쓱한 듯 뒷머리를 매만진 제라드겠지만 그의 눈빛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마치 농담을 받아줄 여유는 없다는 듯이.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달프레드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본론을 말해 보거라. 무슨 일인데 이 늙은이를 찾았을꼬?”

“의논드릴 일이 있습니다. 먼저 이것부터 받으시지요.”

제라드는 선물 대신 다른 것을 내놓았다.

그것은 나비 모양의 브로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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