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23화
시녀를 따라가던 테오가 의심을 가진 건 막다른 길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이봐. 왜 여기로 온 거야? 여긴 본관과 떨어진 곳이잖아?”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침착해진 시녀의 목소리에 이질감을 느끼던 찰나.
루나가 시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다.
“너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하인들을 무시한다고 들었는데 얼굴은 기억하나 보네?”
피식 웃던 시녀의 몸에서 별안간 마력이 흘러나왔다.
테오가 당황하며 소리치려던 순간.
“입 열면 죽는다.”
“헉.”
마력이 흩어지며 다섯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놀란 테오와 루나가 헛숨을 들이켰다.
투명화를 해제한 그들의 복장은 영락없는 시종이었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법을 쓰는 시종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대장. 오셨습니까?”
“이 녀석들인가?”
“그렇습니다.”
테오와 루나의 얼굴을 확인한 갈프가 히죽 미소 지었다.
“처리해라.”
“예.”
“자, 잠깐……!”
테오가 소리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시녀의 손아귀에서 전광이 번뜩였으니까.
그때였다.
“멈춰라.”
갑작스러운 명령에 서둘러 마법을 취소시킨 시녀가 갈프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자신이 걸어온 복도를 향해 있었다.
“루나 누님? 테오 공자님?”
“지, 지크!”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목격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목격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암살자들의 다음 타깃이었다.
“운이 좋군. 타깃이 제 발로 나타나다니.”
갈프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갔다.
일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됐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반면 테오와 루나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타난 사람이 제라드급의 인물이었다면 반가웠을지 모르겠지만 최약체인 지크가 아니던가?
호랑이 무리에 강아지가 나타난 격.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길동무가 한 명 더 늘어났다고 여길 뿐.
그러나 의외로 암살자들은 지크를 죽일 마음이 없었다.
“녀석은 죽이면 안 되는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처리해라.”
대장의 명령에 시녀가 손아귀에 마력을 일으켰다.
“패럴라이즈(Paralyse).”
상대를 마비시키는 마법이 지크의 몸에 그대로 적중했다.
더는 볼 것 없다는 듯 시선을 옮기려던 갈프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온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어야 할 사공자가 귀를 후비며 서 있었으니까.
‘……어떻게 된 거지?’
내색하지 않았지만 갈프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분명 마비 마법에 적중당하는 걸 봤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듯 움직인단 말인가?
부하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두가 놀란 듯 눈동자를 키우고 있었다.
그사이 지크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지만.
[시전된 마법 ‘패럴라이즈’를 흡수합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30 증가하였습니다.]
[6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6,750/10,000]
[마법 ‘패럴라이즈’를 차원의 틈새에 저장하였습니다.]
[저장한 마법 1/6]
[제한 시간 내에 마법을 방출할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 : 00:09:59]
‘스킬을 항상 켜두길 잘했군.’
만족스러웠지만 지크는 웃지 않았다.
마법 흡수 스킬이 없었다면 당하는 건 이쪽이었을 테니까.
‘곧장 죽이지 않고 패럴라이즈를 썼다는 건 납치하려는 의도인 건가?’
아마도 고용주의 지시이지 않을까 싶다.
“누가 보냈냐?”
“…….”
“마탑주냐?”
순간 지크는 놓치지 않았다.
암살자들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맞네. 고용주가 마탑주란 말이지?”
“…….”
“마탑주가 시켰냐? 날 납치하라고?”
암살자들은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말하기 싫음 말아. 일단 잡아놓고 물어보면 되니까.”
“뭣들하고 있나? 타깃을 제압…….”
‘방출.’
지크의 손아귀에서 저장해뒀던 마법이 방출됐다.
목표는 명확했다.
털썩-
“대장!”
아까부터 줄곧 대장이라 불리던 사내가 마네킹처럼 쓰러졌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로.
“어, 어떻게?”
“분명 사공자에게 서클은 없다고…….”
마법이라곤 배운 적도 없는 사공자가 마법을 쓰자 암살자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명령을 잊지 않았다는 듯 다들 마력을 끌어모은다.
일부는 테오와 루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하지만 될 리가 없지.’
지크가 마력을 흡수하자 암살자들의 눈에 경악이 차올랐다.
“마, 마법이 안 써지는데?”
“어, 어떻게 된 거지?”
예상했던 반응에 지크는 웃었다.
당연하다는 듯 써왔던 손발이 한순간에 사라진 기분일 거다.
[암살자 제압 1/6명]
‘일단 한 명은 제압했고.’
지크는 시야 한쪽에 떠오른 메시지를 흘겨보며 암살자들을 쳐다봤다.
‘가슴의 고리가 여섯. 6서클 마법사 여섯 명이군.’
복장을 보니 아무래도 시종인 척하며 잠입한 모양.
공작가의 시종이 많다는 점을 이용해 침입한 게 분명하다.
‘방문을 지키던 호위 기사들은 이미 죽었겠지.’
아마 시종 행세를 하며 유인한 뒤에 남몰래 처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주변에 시종이며 호위 기사며 아무도 없는 게 말이 안 된다.
‘여기서 놈들을 제압하면 단번에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어.’
지크가 당황하는 암살자들에게 손짓했다.
“뭐 하고 있어? 대장이 저 지경이 됐는데 멀뚱히 있을 거야? 덤빌 거면 얼른 덤비라고.”
“…….”
살짝 도발해 봤지만, 훈련을 받은 암살자라 그런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차선책을 택하는 걸 보면.
“모두 흩어져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감지한 암살자들이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임무의 성공보다는 생존이 더 중요한 모양.
“노, 놈들이 도망간다!”
테오가 소리쳤지만, 지크는 여유로웠다.
마법도 쓰지 못하는 것들이 뛰어봐야 얼마나 뛰겠는가?
‘나처럼 오러를 배운 게 아닌 이상에야.’
하체에 힘을 집중하자 지크의 몸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파앙-!
“헉!”
한순간에 따라잡혀 기겁한 암살자가 습관처럼 마법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가능할 리가 없다.
반경 60m의 마력을 모두 흡수하고 있었으니까.
퍼억!
“커억!”
인중 한 대를 얻어맞은 암살자가 그대로 나자빠지며 기절했다.
‘굳이 마법으로 마비시킬 것도 없네.’
피식 웃은 지크가 다음 타깃을 향해 달려갔다.
뻐억!
뒤통수를 후려갈기자 암살자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잠깐이지만 죽은 게 아닌가 걱정됐다.
‘아무래도 상관없지. 고문할 입이라면 여기 많이 있으니.’
지크는 녀석들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누가 사주했는지 확실히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제압만 하는 편이 좋다.
퍼억! 퍽!
순식간에 넷을 제압하니 저 멀리 도망치는 시녀가 보인다.
거리가 좀 벌어졌지만 지크에게 그리 문제 되진 않는다.
1초 만에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였으니.
파앙-!
“힉!”
이렇게 빨리 따라잡힐 줄은 몰랐는지 시녀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크는 머리칼을 붙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콰직!
“여자라고 봐주지 않아.”
힘 조절을 못 해서인지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지만 역시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 힘을 쓸 상황이 생길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일 줄이야.’
기절한 암살자를 내려다보는 사이, 기다렸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암살자 제압 6/6명 완료!]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스탯 300이 증가합니다.]
[근력 56이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지력 48이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순발력 55가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체력 45가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회복력 44가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저항력 52가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한 달 치 스탯 나이스!’
만족스레 웃은 지크는 기절한 암살자들을 질질 끌었다.
“예비 매형.”
“으응?”
“계속 그렇게 가만히 있을 거예요? 좀 도우시죠?”
“아, 알았다.”
테오는 순순히 지크를 도와 암살자들을 한데 모았다.
처음 봤던 여섯 명 모두 깔끔하게 제압했다.
손을 탁탁 털고 놈들의 처분을 고민하는 그때였다.
“도련님! 도련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단장인 레이커가 다른 호위 기사들과 함께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도련님! 괜찮으십…….”
다가온 레이커의 눈이 이내 휘둥그레졌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한데 모인 암살자들을 쳐다본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암살자가 침입했더라고요.”
지크의 대답은 의문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암살자가 침입한 건 알겠는데 왜 한곳에 모여서 기절해 있단 말인가?
‘누가? 어떻게?’
레이커는 설마 하는 눈으로 지크를 올려다봤다.
알쏭달쏭한 지크의 표정에 레이커는 더 큰 혼란을 느껴야 했다.
* * *
혼란을 느낀 건 레이커만이 아니었다.
“뭐라? 암살자가 침입? 그게 가당키나 한 이야긴가!?”
제라드의 호통에 호위 마법사 달란트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어찌 된 것이냐? 호위는 충분했을 터인데!”
“좀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야밤에 감시가 소홀해지는 틈을 타 침입한 것 같습니다.”
“입구에 디텍팅 마법이 걸려 있는데도 침입을 했다고?”
“애당초 인비저빌리티를 쓰고서 침입한 것이 아닙니다. 시종으로 위장하여 당당히 들어왔습니다. 시종까지는 검문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 같습니다.”
“허!”
탄식을 흘린 제라드가 강렬한 눈빛으로 달란트를 쏘아봤다.
“피해 현황은?”
“현재 확인된 바로는 호위 기사 여섯과 시종 열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달란트가 평소답지 않게 머뭇거리자 제라드가 어서 말해보라는 듯 쳐다봤다.
“루나 아가씨와 발도르의 약혼자인 테오 공자님께서 피해를 입을 뻔했습니다.”
“…….”
제라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암살자에게 피해를 입을 뻔했다는 게 무슨 소리겠는가?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죄송합니다. 저희가 일찍이 알아차리고 대처했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 아이들이 다치진 않았느냐?”
“예. 다행히 사공자님의 개입으로 더 큰 사달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지크가?”
갑작스레 나온 이름은 제라드에게 의문만 불러일으켰다.
“지크가 어떻게 개입했단 말이지?”
“테오 공자님의 증언으론 암살자들을 때려잡아 자신과 루나 아가씨를 구해줬다고 합니다.”
“뭐라?”
달란트는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나 할 인물이 아니다.
루나의 약혼자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 사실을 알기에 제라드는 더더욱 혼란을 느껴야 했다.
“믿기 어려운 말이군. 혼자서 6서클의 암살자 여섯을 때려잡았다?”
“저도 처음엔 믿기 어려웠습니다만…… 분명히 그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암살자들은 어디에 있느냐?”
“고문실에 넣어놨습니다.”
“입을 열더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닫고 있습니다만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마법을 쓰지 못하게 구속구를 차고 있는 데다 자결하지 못하게 힐링 마법도 걸어두고 있으니까요.”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뜻이었지만, 분노에 찬 제라드에겐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직접 봐야겠다.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맹수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하던 제라드가 몸을 움직였다.
* * *
갈프는 훈련받은 사냥개다.
마탑주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소위 말해 뒤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청부업자.
그것이 갈프와 그의 부하들이었다.
당연히 고문받았을 때의 훈련 또한 해놓은 상태.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따위 훈련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고.
“말해라. 누가 시켰느냐?”
“끄으윽.”
휘몰아치는 8서클의 마력을 온몸으로 실감하던 암살자들은 굴복하지 않으려 부단히도 애썼다.
하지만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법.
서걱-
옆에 있던 동료가 얼음의 칼날에 참수당하자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입을 열지 않는다면 죽음뿐이다. 말해라. 누구의 지시로 왔는지.”
“…….”
“대답이 없군.”
서걱!
지체 없는 행동에 순식간에 두 명이 죽었다.
제라드가 얼음의 칼날을 허공에 띄우며 암살자들을 노려봤다.
“이제 넷 남았군. 누가 대답할 테냐?”
“마, 말할 수 없다는 건 너도 잘 알 텐데? 우린 계약자와 이미 마나의 서약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서약이 걸려 있다고 말 못 하는 건 아닐 터. 선택해라. 이대로 죽을 것이냐? 아니면 폐인으로라도 살아갈 것이냐?”
제라드의 경고는 효과적이었다.
대장인 갈프가 체면 불고하고 소리쳤으니.
“마탑주…… 그레고르 판테인이 시킨 일이다!”
“대, 대장?”
“그렇군.”
서걱! 서걱! 서걱!
제라드는 갈프를 제외한 나머지 암살자들을 모조리 베어 죽였다.
고자질함으로써 목숨이라도 건진 갈프였지만 이내 끔찍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끄으으으, 흐어어어얽!”
마나의 서약을 어긴 대가로 서클이 붕괴하고 있었다.
“거짓을 말한 건 아닌 모양이군. 확실히 서약이 작동하는 걸 보면.”
“끄르르륵…….”
“약속은 지켰다만 그렇다고 해서 살려둘 수야 없지. 너 같은 놈에겐 공기도 아까우니.”
그 말을 끝으로 제라드는 갈프의 목숨을 거뒀다.
암살자들이 모조리 죽었지만, 한 가지는 건졌다.
습격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아냈다.
‘그레고르, 이 찢어 죽일 놈이 기어코 선을 넘었구나.’
제라드의 눈에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