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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27화 (27/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27화

“너, 너는……!”

국왕 쉐인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지크의 지목을 받은 사람은 삼왕자인 조 필립 드 데칸.

형제 중 서열 3위라곤 하지만 모름지기 왕세자다.

그러니 국왕을 비롯한 가신들 또한 놀랄 수밖에.

“삼왕자. 정말 네가 증거를 바꿔치기한 것이냐?”

“예? 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바마마. 말도 안 됩니다.”

“그럼 어째서 너한테서 소리가 난 거지?”

아버지의 추궁에, 삼왕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범행이 들통나버렸으니까.

눈에 띄게 당황하는 삼왕자의 모습이 수상한지 가신들 또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여봐라. 삼왕자의 몸에서 브로치를 찾아내어라.”

“예.”

“아, 아바마마! 이, 이거 놓아라! 어딜 감히!”

호위병들이 삼왕자를 둘러싸더니 몸을 뒤적거렸다.

이내 품 안에서 지크의 것으로 보이는 브로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가져와 보거라.”

브로치를 전달받은 국왕이 버튼을 눌러봤다.

-안토니오. 무슨 일이냐?

-마탑주님. 경과 보고드리겠습니다.

-해보거라.

-탑주님의 예상대로 제라드가 궁정에서 쉐인 국왕을 알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더군요.

-무슨 말?

-탑주님이 발루두크 님과 내통하는 반역자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지?

-당연히 이의를 제기하여 회의를 끌어냈습니다. 그 결과, 다수결로 제라드의 의견은 묵살되었고요.

-잘했군. 수고했다.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더 있습니다.

-문제?

-제라드가 상대의 통신을 녹음할 수 있는 도청기를 증거로 가지고 왔습니다. 거기엔 마탑주 님과 발루두크 님의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었고요.

-뭐? 그게 무슨 말이지? 내 통신이 도청되었다고?

-예. 저도 그런 물건은 처음 봅니다. 쉐인 국왕이 멍청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증거로 채택될 뻔했습니다.

-그런 물건이 있었다니……. 제라드는 그걸 어디서 구한 거지?

-말하기론 막내아들이 구해왔다고 하더군요.

-막내아들이면…… 지크가?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이 물건을 한시라도 빨리 가로채야 한다는 겁니다. 위험한 물건이기도 하지만 가로챈다면 분명 탑주님에게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겁니다.

-동의한다.

-어떻게, 제가 한번 시도를 해볼까요?

-아니다. 잘못하면 네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으니 잠자코 있어라. 이럴 때를 대비해서 다른 첩자를 심어뒀으니까. 너는 지금처럼 국왕을 지켜보면서 제라드를 방해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레고르 님.

충격적인 대화 내용에 대전 곳곳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몇몇은 나지막이 탄식을 흘리기도 했다.

“안토니오 발도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안토니오가 뜨끔하며 국왕을 쳐다봤다.

“네놈이 그동안 잘도 나를 농락했구나.”

“구, 국왕 전하. 그, 그것이 아니오라…….”

“듣기 싫다. 호위병들은 당장 저 반역자를 옥에 가두어라.”

“예!”

“헉, 저, 전하!”

철컥!

마법을 쓰지 못하게 구속구를 채운 호위병들이 안토니오를 끌고 갔다.

쿵-

대전의 문이 닫히자 다시금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

다음 차례가 자신이라는 걸 아는지 삼왕자가 삐질 거리는 땀을 닦지도 못한 채 눈치를 봤다.

“삼왕자. 네 입으로 말해 보거라. 물건을 빼돌린 사람이 네가 맞느냐?”

“아바마마, 저, 저는…….”

“두 번 묻지 않겠다. 말하라.”

노기 어린 눈빛과 목소리에 위압 당한 삼왕자는 더 이상 발뺌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빠져나갈 구석도 없을 정도로 증거가 만연했으니까.

“마, 맞습니다……. 제가 형상 변형 마법 스크롤로 브로치를 바꿔치기하였습니다.”

“대체 왜 그런 것이냐? 언제부터 마탑주와 손을 잡고 있었지?”

삼왕자는 잠깐 한숨을 쉰 뒤 모든 걸 실토했다.

“그레고르 판테인을 알게 된 건 3년 전이었습니다. 그때 일이 생겨 변방에 나갔다가 우연히 마탑주를 만났습니다. 얘기 좀 나누고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저에게 제안하더군요. 왕위계승에 힘을 실어줄 테니 자신과 손을 잡지 않겠냐고…….”

“뭣!?”

목덜미를 잡을 것처럼 놀라던 쉐인이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후우. 계속 말해 보거라.”

“아, 아시다시피 저는 왕세자 중 가장 서열이 낮은 데다 현재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왕좌는 꿈도 꿔보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지요. 하지만 그 꿈을 이뤄준다고 하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레고르와 손을 잡았다?”

“정확히는 12인의 선구자인 발루두크와 손을 잡았습니다. 그레고르는 그저 중개인일 뿐, 실질적으로는 발루두크의 지시를 받으며 움직였습니다.”

“지시라는 게 무엇이냐? 왕실에서 첩자로 활동하며 뭘 한 것이냐?”

쉐인이 물었지만 삼왕자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주저했다.

“어서 말하거라!”

“마, 말하면 제 죄를 감형해 주실 겁니까?”

“뭐라? 지금 네가 흥정을 할 처지더냐!”

분노를 터트린 쉐인의 얼굴에선 평소와 같은 인자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서 말해보래도!”

“제, 제가 한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발루두크가 원하는 사람을 국내에 발붙일 수 있게 도왔을 뿐입니다.”

“첩자들을 내부에 들였다는 것이냐? 평생토록 일구고 가꾼 내 왕국에!?”

쉐인의 언성이 극에 달하자 놀란 삼왕자는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누구냐? 네가 침입을 도운 첩자의 이름을 대라.”

“그,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저는 시키는 날짜에 그저 문을 열었을 뿐, 누가, 몇 명이 잠입했는지는…….”

“이런 나라를 팔아먹은 불효막심한 매국노 같으니라고오오오!”

“저, 전하! 고정하시지요!”

쉐인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날뛰려 하자 가신들이 말리고 나섰다.

그 와중에 지크는 보았다.

삼왕자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가신들의 숨길 수 없는 표정을.

* * *

‘후우, 이게 뭔 난리인지.’

국왕이 극도로 흥분한 탓에 잠시 밖에서 대기하게 된 지크는 슬쩍 시선을 돌려 아버지를 쳐다봤다.

멍하니 있는 게 제라드 또한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는 표정.

‘마탑주의 반역에 왕세자까지 개입되어 있을 줄은 몰랐을 테니 놀랄 만도 하시지.’

왕정을 지키는 궁정 마법사단장으로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실 거다.

첩자를 골라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라던가, 책임감을 느끼실 수도 있을 테고.

그때 제라드가 자신을 돌아봤다.

“지크.”

“네, 아버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느냐?”

고개를 젓자 제라드가 말했다.

“널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네 덕분에 왕궁에 침범해 있는 첩자들을 골라낼 수 있었어. 정말 고맙다.”

“요즘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듣네요.”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부자가 서로를 보며 미소 짓는 사이, 알현실의 문이 열렸다.

“맥러플린 공작님.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알겠네.”

“사공자님도요.”

“저도요?”

지크가 놀라서 반문하자 제라드가 이끌었다.

“가자.”

알현실로 들어서니 의외로 사람이 없었다.

가신들과 삼왕자, 호위병까지도 전부 내보낸 모양.

가운데 위치한 왕좌에는 다소 진정된 느낌의 국왕만 있을 따름이었다.

“왔느냐?”

“부르셨습니까, 전하.”

“후우, 이거 얼굴 들기 창피하구나. 잠깐이지만 친우의 제자 앞에서 추태를 보이다니.”

“아, 아닙니다, 전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옆에 있는 아들이 막내라고 했나?”

제라드가 힐끔 지크를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지크입니다.”

“지크 맥러플린은 와서 이걸 받거라.”

“예.”

지크는 공손한 태도로 국왕이 주는 브로치를 건네받았다.

“고맙구나. 네가 가져온 그 도청기 덕분에 그레고르의 반역, 발루두크라는 배후, 발도르라는 첩자와 매국노 짓거리를 한 삼왕자까지. 나무 기둥의 썩은 부분을 도려낼 수 있었다. 아직 도려내야 할 부분은 많지만 말이지. 어쨌거나 내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네 이름 또한.”

“황송하옵니다, 국왕 전하.”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였지만, 지크의 심정은 얼떨떨하기 그지없었다.

궁정에 올 때만 해도 한 나라의 수장에게 인정받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사단장이 참으로 훌륭한 막내를 낳았군.”

“과찬이십니다.”

“이쯤 하면 서론은 끝났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는데 말이야.”

“본론이라 하심은…….”

“내 그대를 찾은 것은 은밀히 할 말이 있어서다.”

가신들은 물론 호위병까지 물려서 할 말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말씀하십시오.”

“그대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고자 한다.”

‘일?’

제라드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마탑주 그레고르 판테인을 붙잡아다오. 그 빌어먹을 반역자를 제압해서 내 앞으로 끌고 왔으면 한다. 그게 내 부탁이니라.”

한 나라의 왕이 신하에게 굳이 부탁이란 말을 쓰다니.

살짝 놀란 제라드였지만 이해는 됐다.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 의미했으니까.

“이 말을 하려고 가신들과 호위병들을 물렸다. 당장 믿을만한 사람이라곤 맥러플린 공, 그대뿐이니까.”

삼왕자의 말대로라면 궁궐 내에 얼마나 많은 첩자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누가 첩자인지 분간할 방법도 없는 상황.

확실한 것은 사건을 고발하고 나선 제라드만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 부탁을 들어주겠느냐?”

“부탁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반드시 마탑주를 전하의 발아래로 끌고 오겠습니다.”

“고맙구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만 하거라. 내 친위대를 이용해도 좋으니.”

국왕의 친위대는 마나의 서약으로 충성을 맹세한 믿을 수 있는 마법사단.

궁정 마법사단만큼이나 실력 있고 믿을 수 있는 정예들이었으니 활용하면 도움이 되리라.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놈을 포박할 작전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하거라. 네가 이 일을 무사히 마무리한다면 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내리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국왕의 미소에 제라드는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물러나는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했다.

* * *

“아버지, 괜찮으세요?”

“으음, 괜찮다. 걱정해줘서 고맙구나.”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말과 달리 제라드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부담을 한가득 짊어진 듯한 얼굴.

본의 아니게 마탑주를 잡아 오라는 막중한 일을 떠맡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심적인 부담이 컸는지 제라드가 스스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에게 있어 왕께서 하달한 임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임무를 내려주셔서 반가웠지. 그레고르를 잡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줄곧 가지고 있었으니. 하나, 녀석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는 고민이 아닐 수 없구나.”

“왜요? 그냥 마탑에 쳐들어가서 잡으면 안 되나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다. 디텍팅 마법이 있어 마탑에 몰래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정면으로 들어가더라도 반드시 마탑을 지키는 사병과 맞닥뜨리게 되겠지. 사병과 싸우다 보면 마탑의 최상층에 있는 그레고르는 이미 도망가고도 남을 테고.”

“요점은 마탑주가 텔레포트할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하는 거네요?”

“그렇지.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느냐?”

“최상층까지 바로 들어갈 순 없나요? 예를 들면 창문으로 기습한다던가…….”

“마탑에는 창문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알람 마법이 있어서 외부인이 들어서면 곧바로 마탑주가 알게 되지.”

“아…….”

몰래 잠입도 불가능.

싸우지 않고 조용히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

최상층까지 단번에 진입도 불가능.

모든 방법이 불가능했으니 제라드가 고민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발도르 공작과 대화한 내용으로 보면 상황 파악은 전부 끝났을 거다. 어쩌면 이미 도주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만나자고 연락해도 만나주지 않겠네요?”

“후우, 그렇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던 그때, 지크가 넌지시 물었다.

“으음…… 아버지. 이런 방법은 어때요?”

“무슨 방법?”

“피터 형님을 이용하는 거예요. 알다시피 첫째 형님은 마탑주와 긴밀하게 연락하는 사이잖아요? 마나의 서약까지 했으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피터 형님은 마탑주가 믿을 거예요.”

“아……!”

생각도 못 했다는 듯 제라드의 동공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피터가 있었구나.”

“예. 저한테 피터 형님을 이용한 작전이 하나 있는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 말에 제라드가 눈빛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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