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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31화 (31/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31화

“넌 너에게 무슨 재능이 있는지 아느냐?”

“예?”

“크흠, 아니다.”

뜬금없이 재능을 묻다가 아니라고 얼버무리다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너에게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단다.”

“소개요?”

“전에도 봤을 거다. 내 스승님 말이다.”

“아아. 달프레드 비그스란드 공작님이요?”

최근에 달프레드와 만난 건 그레고르 포박 작전을 세울 때였다.

‘당시엔 작전의 성공이 우선이었던지라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넘어갔었는데…….’

보아하니 이참에 정식으로 소개해 줄 모양이다.

지크야 갓난아기 때 이미 봤던 얼굴이라 익숙했지만.

“알겠어요.”

흔쾌히 수락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지크는 몰랐다.

제라드가 소개해 주는 이유가 달프레드의 부탁 때문이라는 사실을.

* * *

“그래? 지금 이리로 오고 있다고? 알았다.”

제라드와의 통신을 마친 달프레드는 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거 원, 사춘기의 소년도 아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이렇게 설렐 줄이야.’

국왕을 친우로 둬서 그런지 웬만한 정계 인사들로는 달프레드의 가슴을 뛰게 할 수 없었다.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만나본 그였기에.

그런 달프레드가 지금은 들뜨다 못해 마법을 처음 사용하는 소년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놀랐겠지만 얼마 전에 나눈 제라드와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제라드. 그레고르는 잘 인계했느냐?

-예. 왕실의 지하 감옥에 갇히는 걸 보고 나오는 길입니다.

-잘했구나. 수고했다. 허허, 하마터면 녀석을 놓칠 뻔했어.

-그러게 말입니다. 녀석이 구속구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대의 흑마법을 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건 나도 예상치 못했다. 흑마법도 마나를 이용하는 이상 구속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 한데 실전된 고대의 비기를 익혔을 줄이야…….

-제 귀엔 놈이 악마어를 하는 걸로 들렸는데, 잘못 들은 거 아니겠죠?

-그래. 분명히 악마어를 사용했지. 고대의 악마들이 사용했다는 마법이 확실해.

-그런 걸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요?

-아무래도 발루두크에게서 배웠을 확률이 높지. 12인의 선구자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데다 고대의 서적을 탐구하는 취미를 가진 노인네니까. 뭐, 자세한 건 심문해 봐야 알겠지만.

잠시 침묵하던 달프레드가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네 막내아들 말이다.

-지크 말씀이신가요?

-그래. 혹시 오러를 배운 것이냐?

-그럴 리가요. 유적의 마력은 오러 유저도 영향을 받는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속도로 달릴 수 있지? 움직임이 흡사 오러 유저 같지 않았느냐? 딱히 운동한 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운동했어도 일반인이 그런 속도를 낼 순 없죠.

덤덤하게 말하는 제라드를 보자 달프레드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뭔가 알고 있는 게로구나?

-…….

-말해 보거라. 지크가 어떻게 그런 힘을 지니고 있는지. 혹시 스승한테 못 할 이야기라도 되느냐?

-아닙니다. 진즉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후우.

제라드가 평소답지 않게 뜸을 들이자 달프레드로선 안달 날 수밖에 없었다.

-빨리 말해라. 무슨 이야기인데 그리 뜸을 들이느냐?

-사실 지크는…… 드래고니안의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드래고니안?

어떤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달프레드의 동공이 잠시나마 흔들렸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

이내 호탕한 웃음으로 뒤바뀌었다.

-허허허헛! 지크, 그 아이가 드래고니안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예.

-확실한 것이냐?

-확실합니다. 지크에게서 용력이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왜 여태껏 몰랐을꼬?

-지크가 드래곤의 유적에 다녀온 이후로 재능을 개화한 듯싶습니다.

-허허! 어쩐지 심장의 서클이 떨린다 했더니만, 그게 유적의 마력 때문이 아니라 지크의 용력 때문이었단 말이냐? 허허헛!

달프레드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툭하면 자신을 찾아와 막내아들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한탄하던 제라드였다.

한데 알고 보니 불세출의 천재였을 줄이야.

장래는 보장된 거나 다름없다.

-이런 중대한 사실을 왜 이제야 말하는 것이냐?

-말하려고 했습니다.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이죠.

-허허! 기분이 좋겠구나? 드래고니안의 재능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일 테니!

-좋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됩니다. 송곳은 아무리 숨겨도 튀어나오기 마련이니까요.

-물론, 평범한 삶을 살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만큼 미래가 보장될 게 아니냐?

-그게 지크가 바라는 미래일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가능하면 아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요.

-허헛, 우리 제자님의 아들 사랑이 생각보다 더 지극하구먼. 어쨌거나 이제 좀 궁금증이 풀리는구나. 어째서 지크가 오러 유저처럼 보였는지.

-예. 드래고니안은 인간을 넘어선 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니까요.

-한데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지크가 그레고르를 제압하기 직전에 말이다. 분명 마법에 적중당했는데 어떻게 말끔하게 막을 수 있었을까? 마치 소멸시킨 것처럼 말이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재능과 관련이 있는 듯한데…….

-궁금한 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지. 지크와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겠느냐?

회상을 마친 달프레드가 설레는 마음으로 지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궁금하구나. 과연 무슨 대답을 할지.’

말로만 듣던 드래고니안을 실제로 만나는 건 달프레드도 처음.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그때.

별실의 문이 열리며 시종이 들어왔다.

“공작 각하. 손님이 오셨습니다.”

“맥러플린 부자더냐?”

“그렇습니다.”

“허허, 드디어 왔군!”

기다렸다는 듯 마중 나가자 공손한 자세로 서 있는 제라드와 지크가 보였다.

“안녕하셨습니까, 스승님.”

“안녕하십니까. 공작 각하.”

“오오, 우리 맥러플린 대공 나리가 오셨구먼!”

“스, 스승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허허! 농담을 들었을 때의 네 표정은 언제 봐도 재밌단 말이지.”

“…….”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자! 목이 빠지게 기다렸느니라.”

“예, 스승님. 가자, 지크.”

“예.”

예상치 못한 환대에 지크는 달프레드를 따라가면서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우릴 기다렸다고? 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 가는 바가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아했지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어진 달프레드와의 대화를 통해 풀 수 있었으니까.

“지크라고 했지? 늦었지만 너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마.”

“예?”

“네가 아니었다면 그레고르를 제압할 수 없었을 거야. 정말 고맙다.”

“아…… 별말씀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다. 실은 감사 인사나 하려고 너를 부른 건 아니란다.”

“예? 그럼요?”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제라드에게 부탁했지. 자리 좀 만들어달라고.”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을 받은 지크였지만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질문이든 꺼릴 것이 없다는 듯이.

“네. 뭐든 말씀하세요.”

“허허, 그래. 그럼 바로 질문 들어가마.”

달프레드가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전에 그레고르를 제압할 때 굉장히 잘 달리던데, 개인적으로 운동이라도 한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운동도 안 한 몸으로 어떻게 그런 속도를 낼 수 있었지? 마법도 오러도 배우지 않은 일반인이 말이야.”

“그건…….”

예상한 질문이지만 지크는 대답을 망설였다.

적절한 핑계를 아직 떠올리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침묵을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달프레드의 입이 먼저 열렸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모양이군.”

“예? 뭐를…….”

“드래고니안이라고 알고 있느냐?”

‘카르볼, 드래고니안이 뭐야?’

-모른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지크가 속으로 물어봤지만, 역사의 산증인인 카르볼도 모른단다.

‘3천 년 전엔 없던 단어인가?’

지크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보자 달프레드가 허허 웃었다.

“이거 참. 자신이 어떤 재능을 지녔는지도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여긴 달프레드가 인자한 어조로 말했다.

“인간이면서 용의 재능을 타고난 존재. 그를 가리켜 세간에선 드래고니안이라 부른단다. 한마디로 용의 특성을 계승한 인간이라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용의 특성……?”

“드래고니안은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타고난 근력이니라. 네가 일반인보다 빨리 달리고,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게 이 때문이지.”

“아…….”

“룬문자를 읽는다고 했지? 그 또한 드래고니안의 특성이니라. 마법의 언어인 룬문자는 기본적으로 드래곤이 사용하니까.”

“아아…… 그래서 내가 룬문자를…….”

지크가 중얼거리며 이제야 이해된다는 듯 혼신의 연기를 펼쳐 보였다.

‘날 드래고니안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오히려 좋지. 의도치 않게 핑계 댈 거리가 생긴 셈이니까.’

고맙게도 상대가 알아서 오해하고 있으니 이 상황을 이용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마수의 숲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왔다고 알고 있는데 몬스터를 마주한 적은 있느냐?”

“아니요, 없습니다.”

“그건 아마 용력 때문일 거다. 드래고니안은 용력이라는 기운을 자신도 모르게 내뿜는데, 몬스터들은 그 냄새를 맡고 자신들의 천적인 드래곤이라 여기고 도망치곤 하지. 그게 네가 마수의 숲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이유인 듯하구나.”

“어쩐지…… 숲을 돌아다니는데 몬스터들이 코빼기도 안 보이더라고요.”

아예 드래고니안이라 착각하도록 노선을 정했는지 맞장구를 치는 지크였다.

“드래고니안은 이처럼 많은 특징이 있단다. 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특징이 뭔지 아느냐? 바로 마법적 재능이란다.”

“마법적…… 재능이요?”

“대마법사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마법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보인다고 하지.”

지크가 이번에는 침묵했다.

잘못하면 자신이 밀고 있던 무재능 컨셉이 이 자리에서 탄로 날 위기에 처했으니까.

하지만 달프레드는 그마저도 다르게 오해했다.

“네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하지? 서클이라곤 만들어본 적도 없는 자신이 어떻게 마법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말하는지.”

“예…… 이해가 안 되긴 하네요.”

“드래고니안은 마법을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거든. 그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을 뿐이지.”

그리 말한 달프레드가 모든 걸 통찰하는 듯한 깊은 눈동자로 지크를 들여다봤다.

“그때, 그레고르의 흑마법이 너에게 직격했을 때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해다오.”

“어…….”

올 게 왔지만, 지크는 당황하지 않고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이 노인을 설득할 수 있을지.

‘아. 그러면 되겠군.’

좋은 생각이 떠오른 지크가 어수룩한 표정을 연기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요. 저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눈앞에 저를 덮치는 마법이 보였고, 그걸 손으로 치워 버리겠다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사라져서…….”

“말하자면 본능적으로 마법을 파훼했다는 뜻이군. 그게 아닌 이상에야 마법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질 리가 없지.”

-크크크, 이 늙은이. 진짜 드래곤을 못 봐서 그런가? 아주 단단히 오해하고 있네? 우리 드래곤들도 그 짧은 시간에 마법의 술식을 간파하고 파훼할 수 없는 법이거늘. 드래고니안 따위가 가능할 리가 있겠냐? 신의 후예라면 모를까.

카르볼이 비웃었지만 모르는 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지크는 신의 후예도, 드래고니안도 아닌, 그저 시스템을 각성한 인간일 뿐이었으니까.

‘뭐, 오해하면 좋지. 무슨 일이 생기면 드래고니안의 마법적 재능 덕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니까.’

마법을 흡수한 게 들켜서 뭐라고 핑계 댈지 막막했었는데 예상외로 일이 쉽게 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크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지크. 내가 이런 제안을 하는 건 네 아버지 이후로 처음이다만…….”

뜸을 들이던 달프레드가 결심한 듯 지크를 바라봤다.

“너도 궁정 마법사단에 들어오는 것이 어떻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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