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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34화 (34/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34화

‘나한테…… 원한을 품은 사람?’

지크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누군데요?”

“내 첫째 형님이자 일공자 가웬 발도르야.”

“가웬 발도르?”

“가웬 형님은 20살에 벌써 6서클에 오를 정도로 마법적 재능을 타고났어. 궁정 마법사단에서도 가장 성적이 좋은 데다 우리 가문의 차기 가주이기도 하고.”

“그런 엘리트가 얼굴도 모르는 저를 왜?”

“너 때문에 가문이 망했다고 생각하니까.”

발도르 가문이 마법 명가로 불리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가주인 안토니오의 반역 때문에 가문의 명예는 땅으로 추락했다.

반역자 가문이라는 낙인이 찍히며 애꿎은 가족들마저 피해를 보는 상황.

차기 가주가 될 예정이었던 가웬이 분노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훗날 이어받아야 할 가문의 명예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져 버렸어. 가웬의 눈에 맥러플린 가문은 자신의 가문을 무너뜨린 철천지원수로 보일 따름이야.”

“아니, 가문이 무너진 걸 우리 탓을 한다고요?”

“아버지가 반역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드니까. 어떻게 보면 현실 부정이지.”

“그래서 비난할 대상으로 우리를 고른 거고요?”

“맞아.”

어처구니가 없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그 원인을 맥러플린 가문으로 돌리다니.

“그래서 요즘 단장인 너희 아버지와는 말 한마디 섞지 않는다고 들었어. 그런 와중에 네가 새로 입단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어?”

“저를 먹잇감으로 삼고 괴롭히려고 들겠네요.”

“바로 그거야.”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듯 쳐다보는 테오였지만, 지크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미 오러 유저로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자신이다.

육체적인 힘으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럴진대 상대가 오러 유저도 아니고 마법사다?

‘나한테 덤비면 6서클이고 뭐고 간에 마법 한번 못 쓰고 처맞겠지.’

피식 미소 짓자 기대한 반응이 아니었는지 테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반응이 왜 그래? 안 무서워?”

“무서워해야 하나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상대가 6서클 마법사잖아?”

“뭐가 됐든 저는 사단장인 아버지와 비그스란드 공작님 추천으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런 저를 설마 괴롭히기야 하겠어요? 제정신이 아니라면.”

“그건 네가 가웬 형님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성격이 얼마나 개차반인데. 자기 밥그릇 뺏기는 꼴을 두고 볼 사람이 절대 아니라니까?”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당한 게 많았는지 부르르 떨기까지 하는 테오였다.

“뭐, 매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저야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니.”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절대로 밉보일 짓은 하지 말고.”

“예, 예. 어쨌거나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건성으로 대답하며 한 귀로 흘려듣는 지크의 모습을, 테오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 * *

데칸에서 마법사 지망생들이 들어가길 바라마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건 바로 궁정 마법사단이다.

매년 30명의 인재만 차출하고 훈련시키는 궁정 마법사단은 왕국을 지키는 명예로운 자리다.

그래서인지 입단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내로라하는 가문의 귀족들이 너도나도 지원하기에 경쟁률이 장난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그 경쟁률을 한 방에 뚫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맥러플린 가문의 사공자 지크 맥러플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단상 위에서 지크가 인사했지만 모여 있는 100여 명의 단원 중 손뼉을 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그들이 낙하산으로 들어온 신입을 반길 리는 없었으니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제라드가 옆에 있는 지크의 어깨를 잡았다.

“다들 알겠지만 얼마 전 우리 가문에서 반역자를 붙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거다. 그 공을 세운 일등 공신이 여기 있는 지크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에 놀라움이 번졌지만, 그것도 잠시.

뭐가 됐든 낙하산이라는 말엔 변함이 없다.

“비록 국왕 전하의 허락을 받고 특채로 들어오긴 했지만, 마법에 재능이 있는 아이이니 다들 잘 가르쳐주도록. 알겠나?”

“예!”

사단장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단원들이지만 불만이 없다면 거짓이리라.

그 증거로 입단식에서 제라드가 사라지기 무섭게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잘 가르쳐주라고? 자기 아들이니까 특별 대우해 달라는 거야, 뭐야? 참나.”

“그러게 말입니다. 자기 아들을 낙하산으로 꽂아 넣다니. 이건 노력으로 들어온 우리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닙니까?”

“맞아요. 아무리 국왕 전하의 허락을 받았다곤 해도 너무하네요, 정말.”

가웬을 둘러싼 무리가 이때다 싶어서 사단장을 비난했다.

마법사단의 실세인 가웬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정작 가웬은 관심 가지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새로 온 신입에게 있었다.

“지크라고 했나? 딱 봐도 나이도 어린 녀석이 어떻게 마탑주를 제압한 거지?”

“에이, 제압이라니요. 저딴 놈이 8서클을 어떻게 제압한단 말입니까?”

“흔히들 부풀려진 소문이겠지요.”

“아니면 입단시킬 명분을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걸지도요.”

“흐음…….”

길 잃은 새처럼 혼자 멀뚱히 서 있는 지크를 보며, 가웬이 눈을 빛냈다.

“자세한 건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알겠지.”

흡사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의 눈빛이었다.

* * *

간단하게 입단식을 끝낸 지크는 허공을 바라보며 내심 흡족해하고 있었다.

[궁정 마법사단 입단 완료!]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스탯 450이 증가합니다.]

[근력 72가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지력 78이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순발력 70이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체력 80이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회복력 71이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저항력 79가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완전 꿀이구만? 45일 치 스탯을 이렇게 쉽게 얻을 줄이야.’

어디 또 퀘스트 들어오는 거 없나, 입맛을 다시는 그때.

“뭘 멍하니 보고 있나?”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지크가 고개를 돌렸다.

금발에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남자가 똘마니로 보이는 사람들을 거느리며 나타났다.

“우리 통성명이나 할까? 난 가웬 발도르라고 한다. 발도르 공작가의 일공자다.”

‘이 녀석이 테오 공자의 형?’

테오가 조심하라던 녀석이 먼저 다가왔다.

적의가 명백한 눈빛으로.

“뭘 병신처럼 멍하니 있어? 너도 소개해야지?”

“소개는 아까 단상에서 다 했는데요? 못 들으셨어요?”

“하, 이 새끼 말하는 싸가지 좀 보게?”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어 보인 가웬의 입에 비웃음이 걸렸다.

“넌 어디 가서 입 열지 마라. 누가 보면 가정교육도 못 받은 병신 취급당하겠어.”

“하하하핫!”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었는지 곁에 있던 똘마니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반역자 아버지 밑에서 가정교육 받는 것보단 나은 것 같은데요?”

지크의 말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웃음이 끊겼다.

“……뭐?”

가웬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마력이 넘실거리며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지크는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자, 가웬은 의아함을 느껴야 했다.

‘이 새끼, 왜 쫄지 않지? 마법을 배웠다면 분명 내 마력이 얼마나 강대한지 느껴질 텐데?’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걸 보면 보통내기가 아니다.

“너 몇 살이냐?”

“올해 15살입니다만?”

“몇 서클이지? 마탑주를 잡을 정도면 8서클은 되겠지?”

비꼬는 거였지만 지크는 말려들지 않고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달프레드와 미리 말을 맞췄으니까.

“4서클인데요?”

사실은 서클도 없는 몸이지만 그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의 반발이 클 것이다.

비 마법사를 단원으로 들였다고 항의가 빗발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그스란드 공작님이 누가 물어보면 4서클이라고 둘러대라 하셨지.’

15살에 4서클이면 대단한 성취라 할 수 있다.

재능이 뛰어난 가웬도, 피터도 이 나이에 4서클을 이뤘다.

그래서인지 여기 있는 모두가 놀란 눈치다.

“그 나이에 벌써 4서클이라고?”

“가웬 공자님도 저 때는 그 정도 성취 아니었나?”

“그럼 공자님과 맞먹는 재능이라는 소리야?”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가웬의 미간이 구겨졌다.

갓 들어온 신입과 동급의 재능으로 취급받고 있으니 자존심 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거짓말하고 있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가웬은 지크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너 실제론 3서클이지? 서클 확인 못 한다고 한 서클 올려친 거 아니야?”

“믿든 안 믿든 마음대로 하시죠.”

서클은 상대의 몸속에 마나를 집어넣지 않는 한 알아낼 방법이 없다.

거짓말해도 들킬 위험은 없는 셈.

하지만 증명할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이 자리에서 4서클 마법을 사용한다면 믿어주지.”

“싫은데요.”

지크가 즉시 거절했지만 가웬은 눈치 없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 새끼 4서클 아니네. 증명 못 하는 걸 보니.”

“맞아. 그게 뭐가 어렵다고 증명을 못 해?”

“저거 거짓말했다가 딱 걸렸네.”

가웬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단원들이 조소를 머금었다.

가웬의 입가에도 비식거리는 미소가 걸렸다.

“4서클도 못 찍은 풋내기 주제에 낙하산으로 궁정 마법사단에 들어오다니. 아버지가 사단장이니까 참 편리하고 좋겠어? 응?”

“공자님은 아버지가 반역자라서 참 아쉽겠어요.”

“이런 씨X 놈이…….”

순간 성질을 참지 못한 가웬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자신이 실수했다는걸.

‘젠장. 가족은 되도록 건들면 안 되겠어. 내가 더 손해 보는 느낌이잖아.’

녀석과 대화하면 할수록 어쩐지 말리는 느낌이 든다.

나이답지 않게 능구렁이 같은 면도 있고.

‘말로 해선 안 되겠어. 그렇다면…….’

무력으로 다스리는 수밖에.

“잠깐 나 좀 따라와라.”

“왜요?”

“따라오라면 따라와.”

“어디 뒷골목으로 데려가서 두들겨 패시려고요?”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자 잠깐 놀란 눈을 하던 가웬이 씩 미소 지었다.

“잘 아네.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따라…… 이 새끼 봐라?”

가웬은 말하다 말고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지크가 더는 대화할 가치도 없다는 듯 몸을 돌리고 있었으니까.

그러자 분노한 건 오히려 당사자가 아닌 가웬의 똘마니들이었다.

“야 이 새끼야! 거기 안 멈춰?”

“공자님이 말씀하시는데 어딜 건방지게!”

순간 지크가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따라오라며.”

“뭐?”

“가자고. 뒷골목.”

“이 새끼가 말이 짧네?”

어이없는 웃음을 지은 똘마니 한 명이 지크의 멱살을 잡았다.

“넌 진짜 안 되겠다. 따라와. 예의범절이 뭔지 알려줄…….”

자기 딴엔 멋지게 잡아끌고 갈 생각이었겠지만 지크는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 뭐야? 왜 안 움직여?’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오히려 당황하는 똘마니였다.

“귀찮게 하지 말지?”

“이런 건방진 낙하산 새끼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상대가 주먹을 드는 순간까지도 지크는 여유로웠다.

‘마법사가 좋은 마법은 놔두고 왜 주먹질을 한담? 마법은 쓰면 안 된다는 규정이라도 있나?’

이런 생각과 동시에 상대의 면상을 어떻게 날려줄까 고민하던 그때.

타이밍 좋게 중재자가 나타났다.

“가웬, 무슨 일이냐?”

“별일 아닙니다, 교관님. 그냥 신입생 좀 귀여워해 주고 있었습니다.”

‘교관?’

교관은 지크를 한번 훑어보더니 가웬 무리를 향해 손짓했다.

“적당히 하고 돌아가.”

“예~”

가웬이 움직이자 패거리들이 우르르 따라붙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자 교관이 지크에게 다가왔다.

“괜찮으냐?”

“예. 별일 없었어요.”

“별일 없었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는데.”

“…….”

“아! 내 소개가 늦었군. 마법사단의 훈련 교관 제이크 팔머라고 한다.”

“지크 맥러플린입니다.”

“알고 있다. 사단장님과 비그스란드 공작님의 추천으로 들어왔다지.”

“예.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네요.”

“아무래도 그럴 거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동안은 되도록 조용히 지내거라. 심기를 거슬리는 짓거리는 하지 말고.”

‘내 심기를 건드리는 건 괜찮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지크는 굳이 연장자의 말꼬리를 잡을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알겠습니다.”

“그래. 신입생이면 신입생답게 얌전히 굴어야지. 그럼 오늘은 이만 배정받은 숙소로 돌아가거라.”

“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지크가 인사하며 등을 돌리자, 그 모습을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교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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