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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35화 (35/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35화

“제라드.”

“예, 스승님.”

“어땠느냐? 입단식의 분위기는.”

제라드는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다들 반기지 않는 분위기더군요.”

“그야 그럴 테지. 아무리 공을 세웠다지만 낙하산을 누가 좋아하리.”

“이제라도 제안을 철회하고 지크를 데려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왜? 거기서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제라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달프레드가 웃음기를 머금었다.

“호랑이를 키울 때 우리에만 가둬놓으면 그게 고양이하고 다를 게 뭐겠느냐? 때로는 야생에 풀어놓기도 해야지.”

“지크가 시련을 겪으며 스스로 각성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아무렴. 그게 아니면 내가 뭐하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입단식까지 치르라 했겠느냐?”

지크를 굳이 단원들 앞에 소개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엘리트들의 시기와 멸시 속에서 낙하산이라는 편견을 깨고 각성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 아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닌 드래고니안이야. 이미 마법적 재능은 그 누구 보다 타고났으니 제대로 각성만 한다면 사람들도 평가를 달리할 게다.”

“하지만 이건 너무 무모하지 않습니까? 시기와 질투를 받을 게 뻔한 환경 속에 던져넣고 그저 각성하길 기다린다니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건 지크도 알고 있느니라. 그래서 나한테 나중에 부탁 하나를 들어달라는 당돌한 조건을 내건 것이 아니더냐?”

“…….”

“이미 본능적으로 마법을 파훼할 줄 아는 아이이니라. 네가 걱정할 일은 없을 게다.”

달프레드가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었지만, 제라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 * *

‘여기가 내 숙소인가?’

지크는 자신의 이름이 걸린 방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남들 몰래 스킬 숙련도 쌓기엔 딱 좋겠군.’

이럴 때는 아버지라는 인맥을 둔 것이 감사하다.

남들과 다르게 특별히 1인실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도 지크를 웃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이곳에 오기 전에 떠오른 퀘스트였다.

【메인 퀘스트 : 궁정 마법사단에서 인정받기】

└마법사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궁정 마법사단에 들어왔지만, 자신을 보는 주변의 시선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 단원들에게 인정받고 낙하산이라는 오명을 지우십시오.

<조건>

└과반수의 단원에게 실력으로 인정받기

<보상>

└스킬 ‘진실의 눈’ 획득

‘입단하기를 완료하자 또 퀘스트가 떠오를 줄이야.’

퀘스트만 기다리고 있던 지크에겐 희소식.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퀘스트 밑에 적힌 보상이었다.

‘진실의 눈? 무슨 스킬이지?’

뭔진 몰라도 완료 시 스킬을 준다.

이미 아공간이라는 스킬을 얻은 지크로선 탐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마법사단에서 인정받기라……. 시스템은 적어도 내가 여기서 인정받고 이름을 날리길 바라는 모양이군.’

안 그래도 상태창에 낙하산이라는 꼬리표가 추가로 생성됐다.

자신을 낙하산이라고 비하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가운데, 그들의 인정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지. 내가 낙하산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면 돼.’

보아하니 비그스란드 공작도 자신이 마법적 재능을 각성하길 바라는 눈치.

그게 아니고서야 낙하산이라고 말 나올 게 뻔한 이런 상황에 던져 놓을 리가 있겠는가?

‘내가 마법을 쓰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판은 만들어졌으니까.’

지크는 긴 고민 없이 퀘스트를 수락했다.

또 하나의 스킬을 얻을 좋은 기회를 저버릴 순 없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사람들 앞에서 효과적으로 실력을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지크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그래, 그게 좋겠어. 우선은 도발부터 해볼까?’

지크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 * *

쾅-!

“이런 X발 새끼!”

“차, 참으세요, 공자님.”

“놔! 이 X발!”

자신을 말리는 단원을 거칠게 뿌리친 가웬이 부르르 떨었다.

꽉 쥔 주먹과 숙소의 벽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건방진 애송이 새끼가 겁도 없이 나한테 덤벼?’

신입이 올 때마다 신고식을 치르는 가웬이었지만 이렇게 겁 없는 놈은 처음이었다.

웬만하면 마력의 차이를 깨닫고 알아서 굽히는 게 일반적인 반응.

그중 눈치가 빠른 녀석은 자신의 비위를 맞추며 꼬리를 흔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 새끼는 겁이라도 상실했는지 전혀 그런 게 없었단 말이지.’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상황판단이 안 되는 걸까?

아니면 아직 자신의 무서움을 몰라서 그런 걸까?

‘아무래도 둘 다인 것 같은데, 기회를 봐서 예절교육 좀 시켜야겠어.’

비록 입단식을 치렀던 당시에는 장내에서 마법을 쓰면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손 놓고 있었지만 여기는 아니다.

숙소가 있는 이곳에선 규칙 따위가 없기에 얼마든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상황.

분노에 떠는 가웬의 표정을 보고 눈치를 챈 걸까?

주변 하수인들이 어필 좀 해보겠다고 저마다 분통을 터트린다.

“공자님! 그 개새끼를 이대로 두고만 보실 겁니까?”

“저한테 맡겨주시면 아주 반 작살 내고 오겠습니다!”

“아니요! 그런 애송이를 다루는 건 제가 전문입니다. 제가 골목으로 끌고 가서 아주 묵사발을…….”

“다 닥쳐라. 정신 사납게 굴지 말고 X발.”

가웬의 말 한마디에 합죽이가 된 단원들이었다.

‘하아, 그 빌어먹을 놈을 어떻게 조져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지?’

이대로면 발 뻗고 자기는 글렀다.

묵은 체증이 싹 가라앉을 정도로 시원하게 작살 내버려야 그나마 분이 풀릴 것이다.

자신에겐 철천지원수나 마찬가지인 맥러플린 가문이지 않은가?

‘그런데 맥러플린의 사공자가 마법을 배웠다는 소리는 못 들어본 거 같은데?’

일공자인 피터 맥러플린이 마도 수련에 초청될 정도로 높은 성취를 보인다는 것쯤은 소문을 들어 알고 있다.

이공자의 성취도 나름 나쁘지 않다는 것 또한.

‘삼공자는 후계 싸움에 암살자를 동원했다가 서클을 잃고 병신이 되었다지만 사공자는……?’

전혀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

피터를 뛰어넘을 정도의 마법적 재능이 있다는 소리 또한 금시초문이었고.

‘이거 완전 제대로 낙하산이구만? 마탑주를 제압했다는 것도 전부 다 거짓일 거야.’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속여 단원들을 모조리 바보로 만들다니.

‘어이가 없네. 썩어빠진 사단장 같으니.’

제라드만이 아니다.

비그스란드 공작은 물론이고 이를 허락한 국왕과 궁정 마법사단 전체가 썩어빠졌다.

요즘 같은 때에 낙하산이 웬 말이란 말인가?

한심한 왕국의 실태에 반감을 키워나가던 가웬은 합죽이가 된 단원들을 돌아봤다.

머저리들이지만 그래도 자신을 따르는 이 녀석들이 있기에 조금은 콧대가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병신 같은 아버지 때문에 지금은 추락했지만 발도르 가문은 언젠가 비상할 것이다. 내가 가주를 이어받고 궁정 마법사단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다면, 반역자 가문이라는 낙인도 씻은 듯이 사라질 테고.’

그렇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기에, 여기 있는 머저리들이 자신을 따르는 것이다.

비록 지는 해라 하더라도 태양은 밝으니까.

“얘들아.”

“예, 공자님!”

“멀뚱히 있지 말고 의견 좀 모아봐. 지크 그 새끼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예, 아, 알겠습니다!”

‘어휴, 등신들. 대답은 잘해요.’

속으로 비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돌리는 그때.

툭-

방문 아래로 밀려 들어오는 종이 쪼가리가 보였다.

“뭐지?”

가웬은 즉시 다가가 누군가 밀어 넣은 종이를 주웠다.

그 종이엔 어처구니없는 말이 쓰여 있었다.

[가웬 발도르 공자님께.

안녕하세요. 지크 맥러플린입니다.

저한테 불만이 많으신 것 같은데 마법 대련이나 한번 하시죠.

기숙사 앞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추신: 쫄리면 뒈지시던가.]

“하, 하하하! 하하하핫!”

가웬이 별안간 웃음을 터트리자 방에 있던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재미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광기 어린 웃음이라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하하, X발,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네. 얘들아. 이것 좀 봐라.”

“뭔데 그러십니까?”

가웬은 쪽지를 똘마니들에게도 공유했다.

그러자 하나같이 가웬과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 새끼 완전히 미쳤는데요?”

“4서클 주제에 6서클과 마법 대련을 하겠다고?”

“병신이 주제도 모르고 가웬 공자님을 아주 만만하게 본 모양입니다.”

“주제 파악을 할 수 있게 아주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공자님?”

“어떡하긴 뭘 어떡해.”

가웬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지옥을 맛보겠다는데 당연히 받아줘야지.”

기회를 얻은 가웬의 눈빛이 맹렬하게 불타올랐다.

* * *

7서클의 마법사인 제이크 팔머는 자신을 좋은 훈련 교관이라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들어온 스카우트 제의에도 굴하지 않고 지금까지 궁정 마법사단에 남은 것은 분명 명예와 사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으며 이곳에서 원생들을 가르치고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

초심 따윈 잃은 지 오래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웬이 신입들을 겁박하는 것을 두고 보진 않았을 테니까.

‘가웬은 명실상부한 마법사단의 에이스다. 성격이 개차반이긴 해도 녀석의 실력만큼은 진짜야.’

마법사단에선 그를 대체할만한 실력자가 전혀 없다.

그러다 보니 제이크는 그의 편의를 알게 모르게 봐줄 수밖에 없었다.

그 일례가 신고식이라는 명목으로 괴롭히는 걸 알면서도 묵인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러고 있었고.

‘지크 맥러플린이라고 했나? 가웬이 이번에도 신입을 타깃으로 잡았군.’

들어오는 신입마다 기를 죽이며 굴복시키는 가웬이었지만 제이크는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지 않았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당연한 이치.

마법사단에서 가장 강한 가웬이었기에 우두머리 행세를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원칙적으로는 저러면 안 되지만…… 먼저 원칙을 어긴 건 사단장님 아니야?’

여태껏 마법사단에 낙하산이 들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것도 자기 아들을 보란 듯이 집어넣다니.

‘사단장이 되어서 명예도 없단 말인가?’

가웬의 가혹행위를 묵인하는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본다.

자신도 그렇고 여기 있는 모두가 수많은 경쟁을 뚫고 실력으로 들어왔기에.

그것이 제이크가 지크를 눈엣가시처럼 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재능이 있으면 정식 절차를 거쳐서 입단시킬 것이지, 왜 특채로 넣어서 사람들의 반발을 사는 거야?’

듣기로 지크의 성취는 4서클.

15살에 4서클이면 재능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절차까지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가웬을 뛰어넘을 수 있으면 몰라도 말이지.’

내심 불만이 있었기에 제이크는 가웬 무리가 지크를 겁박하는 걸 보고도 일부러 나서지 않고 뒤에서 지켜만 봤다.

분위기에 쫄아서 은근히 자기 발로 나가주기를 바라며.

‘그게 우리 마법사단의 명예를 위해서도 최선이야. 낙하산이 들어왔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마법사단의 위신이 땅으로 떨어질 것은 분명하니까.’

하지만 지크는 의외로 가웬의 겁박을 잘 버텼다.

자신에게 고자질하지도 않고 별일 없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도 했다.

‘의왼데? 그렇게 심지가 강해 보이진 않았는데…….’

어쨌거나 가웬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대로 물러설 것 같지만은 않다.

맥러플린 가문이라면 치를 떠는 녀석이었으니.

‘아마도 훈련 시간 외에 따로 불러서 정신교육을 하겠지.’

혼쭐날 지크를 생각하면 조금 안쓰럽기도 했지만, 제이크는 애써 모른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낙하산의 자세를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일단 가웬도 오늘은 별 탈 없이 넘어가겠…….’

그 순간이었다.

숙소가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무슨 일이지?’

적어도 수십 명 이상이 우르르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단원들이 외치는 목소리 또한.

“가웬이랑 신입이 마법 대련한다며?”

“어디야? 어디?”

“저쪽 광장에서 한다고 들었어!”

“빨리 가보자!”

문 너머로 들리는 소리를 듣던 제이크가 휘둥그레진 눈이 되었다.

‘가웬이랑 지크가 뭘 한다고? 마법 대련?’

6서클이랑 4서클이 마법 대련을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가웬 녀석이 아주 제대로 열받은 모양이구나. 굳이 마법 대련까지 해서 공개적인 굴욕을 주려 하다니.’

기어코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잘못하면 지크가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외투를 챙겨입고 문고리를 잡던 제이크였지만.

‘아니지.’

이내 잡았던 문고리를 놓았다.

‘조금 있다가 나서도 되잖아?’

이 기회에 지크의 기를 팍 죽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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