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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36화 (36/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36화

궁정 마법사단의 숙소가 모여 있는 중앙 광장은 때아닌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200여 명의 궁정 마법사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마법사단 최고의 에이스와 오늘 들어온 신입이 맞붙는다는 소문을.

물론 소문을 낸 사람은 다름 아닌 가웬이었다.

‘관중이 많이도 모였구만.’

보아하니 마법사단 전원이 모인 모양.

이 중에 훈련 교관인 제이크도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가 알게 모르게 자신의 행동을 눈감아준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어떡하냐, 지크? 생각보다 일이 더 커져 버렸네? 흐흐.’

지크의 건방진 쪽지를 받은 이후로, 가웬은 똘마니들에게 기숙사 곳곳에 소문을 내라고 지시했다.

관객이 많으면 패배했을 때 지크가 받을 수치심도 극대화될 테니까.

‘그런데 이 새끼는 왜 안 나오는 거야?’

중앙 광장에 선 가웬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작 약속을 잡은 도전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역시 허세였나?’

이렇게 될 거라곤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최대한 끌어모은 것이다.

사건이 커지면 놈도 발을 빼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뭐, 이대로 나타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낙하산에 이어서 겁쟁이라는 꼬리표까지 달게 할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자신의 충실한 바람잡이들이 나타나지 않는 지크를 향해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이거 원! 자기가 먼저 도전장을 신청해놓고 나타나지 않은 경우는 뭐람?”

“뒤늦게 주제 파악을 했는지 꽁무니 말고 도망갔나 봅니다!”

“그러게 4서클 주제에 어딜 가웬 공자님에게 덤벼? 덤비길!”

“어쩌면 이미 성벽을 넘은 거 아닐까요? 겁쟁이처럼.”

“하하하하!”

구경꾼들이 함께 웃으며 조롱에 동참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저무는 시각인데도 나타나지 않으니 지크로선 욕먹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얘네들 말처럼 도망이라도 가라. 낙하산이 제 발로 나가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거니까.’

히죽거리며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관중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가웬이 의외라는 눈빛으로 눈자위를 키웠다.

나타나지 않을 것 같던 녀석이 인파를 헤치며 당당히 걸어왔으니까.

“제가 좀 늦었죠?”

“너…… 병신이냐? 제정신이야?”

“어이구, 보자마자 면전에 대고 욕질이라니. 그렇게 저랑 싸우고 싶어요? 좋습니다. 긴말할 것 없이 바로 붙어보죠.”

지크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몸을 풀었다.

그 모습에 가웬은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마법 대련인데 녀석의 손에 지팡이가 안 보였던 것이다.

“지팡이는 안 가져왔냐?”

“꼭 지팡이가 있어야지만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닌데, 지팡이는 마법사에게 있어서 거의 필수격인 장비였다.

마력이 통하는 성질이 있는 버드나무로 만들어져 마력의 순환이 빨라지도록 돕고, 더욱 정확한 타깃팅이 가능하게 한다.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핸드폰처럼 떼어놓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팡이를 쓰고 안 쓰고는 천지 차이였으니까.

‘그런 마당에 가뜩이나 불리한 상황에 있는 놈이 지팡이도 챙기지 않아?’

건방을 떨어도 유분수지.

이건 완전히 자신을 모욕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래. 지팡이를 쓰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라. 어디 한 번 해보자.”

“예, 빨리빨리 진행하자고요.”

이걸로 두 사람의 마법 대련이 성사됐다.

* * *

“저놈이야?”

“그래, 저 녀석이 오늘 낙하산으로 들어온 맥러플린 가문의 사공자잖아.”

“낙하산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모르네. 단원 중에서 가장 서클이 높은 가웬에게 덤빌 줄이야.”

“심지어 지팡이도 들지 않고 있어.”

“저거 마법사 맞아?”

지켜보던 관중들이 쯧쯧 혀를 찼다.

굳이 보지 않아도 뻔한 결과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흥미가 식은 얼굴이었다.

“이건 뭐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잖아?”

“누구 낙하산에게 걸 사람 없어?”

“있겠냐? 수준 차이가 이렇게 극심한데.”

“젠장. 실력이 비슷하기라도 했으면 내기를 걸었을 텐데.”

“4서클이 무슨 생각으로 6서클에게 대련 요청을 한 거야?”

사람들이 저마다 아쉬움이 담긴 얼굴로 둘의 대치를 지켜봤다.

자고로 싸움 구경에는 돈을 걸어야 더 재미있는 법.

한데 이렇게 수준 차이가 나버려서야 내기가 성립하겠는가?

내기도 상대편에 돈을 거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그런 생각은 브라이언트 가문의 메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모하네. 지팡이도 없고, 서클도 낮고, 대체 무슨 깡으로 가웬에게 덤빈 거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메리의 눈엔 지크가 아무 생각 없이 덤비는 머저리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랬다면 이렇게 보란 듯이 나타나지도 않았을 테니까.

‘자기가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구태여 모습을 드러냈어. 마치 승산이라도 있다는 듯이.’

무슨 생각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지만 흥미로운 상황임엔 분명했다.

만에 하나 가웬이 신입에게 깨진다면 마법사단의 실세가 한순간에 바뀌는 것이었으니까.

‘이변이…… 일어나기를.’

지크를 눈여겨보던 메리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 *

“보호구는 안 들고 왔냐?”

“보호구?”

“하, 이런 햇병아리랑 지금 뭐 하고 있는 건지.”

자조적인 웃음을 짓던 가웬이 한심한 눈초리로 지크를 바라봤다.

“마법 대련은 마법 보호구를 착용하는 게 원칙이다. 자칫하다가 마법에 직격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날로 송장을 치르게 되겠지.”

“그래. 그게 너일 수도 있으니까 기본적인 보호 장비는 착용해야 하지 않겠어? 저쪽 훈련소에서 장비를 빌릴 수 있으니 살고 싶으면 얼른 빌려와라.”

“너는? 착용 안 해?”

“이 새끼가 몇 번이고 황당하게 만드네? 내가 너 따위를 상대하면서 보호구가 필요할 일이 뭐가 있어? 당연히 필요 없지.”

“그럼 나도 착용 안 할래.”

“뭐?”

장비 착용을 과감히 거부하자 놀란 건 가웬과 관중들이었다.

“너 미쳤냐? 내가 몇 서클인지 몰라? 귀가 있으면 들어서 알 텐데?”

“알아. 6서클이라며.”

“알면서도 장비 없이 나랑 맞붙겠다고? 내가 스스로 장비 없는 페널티를 떠안아주겠다는데도?”

“그딴 페널티는 필요 없으니 나도 너처럼 장비 없이 붙겠다고.”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

황당한 웃음을 짓던 가웬이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내가 지금 네 목숨이 걱정돼서 착용하라는 게 아니야. 잘못하다 뒤지면 내 입장은 어떡하라고?”

“걱정 마. 내가 죽어도 네 탓 하지 않는다고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할게. 그럼 됐지?”

당당한 태도에 가웬은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하, 좋아. 다들 들었지? 이 새끼가 뒤져도 탓하지 않는다고 한 거! 너희가 공증인이다!”

주변을 향해 외친 가웬이 지크와 마주 섰다.

“건방진 새끼 같으니. 넌 이제 뒤진 목숨이야.”

“그건 내가 할 말이고.”

“끝까지 자존심은 챙기시겠다? 좋아. 패기만큼은 인정해 주지. 대련의 룰은 알고 있냐?”

“무슨 룰.”

“후우, 그럼 그렇지. 너 같은 풋내기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한숨을 쉰 가웬이 연이어 말했다.

“마법 대련은 오직 마법만으로 승부하며, 그 외의 도구나 육체적인 힘을 사용해선 안 된다. 대련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마력을 끌어모으면 반칙으로 치부한다. 어떤 마법을 써도 상관은 없으나 상대가 항복이라고 외치면 그 즉시 스펠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 이미 발동한 스펠은 예외로 친다. 이게 기본 룰이다.”

“오케이. 알았으니 빨리 시작하자고.”

설명은 귀찮다는 얼굴로 지크가 서두르자, 가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끝까지 콧대 높은 척하는데, 잠시 후에도 그럴지 어디 두고 보자고.’

지팡이를 든 가웬은 지크와 거리를 벌린 채 대치했다.

자신을 상대로 지팡이도 들지 않고 무방비하게 서 있는 꼴이 건방지기 짝이 없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야, 시작 카운트 세.”

“아, 알겠습니다. 공자님.”

심판을 맡은 똘마니 하나가 둘 사이에 서서 외쳤다.

“그럼 5초 후에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카운트 중에는 술식 계산은 해도 되지만 마력을 끌어모으면 반칙입니다. 그럼 둘이 준비하시고, 카운트 들어갑니다! 5! 4! 3…….”

카운트 중에도 지크는 여유만만했다.

그 이유를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몰랐지만.

“2, 1! 시작!”

심판이 서둘러 빠지자마자, 가웬의 주변으로 공기가 요동쳤다.

‘단 한 방으로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마!’

시작부터 모든 마력을 끌어모으는 가웬을 보며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한 방에 끝내려나 봐.”

“끝났네, 끝났어.”

관중들이 오히려 상대인 지크를 걱정할 정도.

하지만 이 순간에도 지크는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뭐 하는 거지?”

“마력도 안 모으고 있잖아?”

“수준 차이를 느끼고 벌써 포기했나 봐.”

“그럼 위험한 거 아니야?”

자포자기했다고 여긴 관중들이 지크를 걱정했다.

이대로 마법에 적중당한다면 피떡이 되는 건 지크니까.

그 사실을 가웬도 모르지 않는지, 술식에 필요한 마력을 모은 뒤 여유롭게 물었다.

“어때? 내 마력의 크기가.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항복하면 스펠을 취소시키마.”

“내 사전에 항복은 없어.”

“지랄하네. 너 그러다 뒤져.”

“웬일로 내 걱정을. 그럼 그냥 죽이던가.”

지크가 배짱 좋게 나오자 가웬이 코웃음을 쳤다.

‘이 새끼, 설마 내가 관중들 앞에서 못 죽일 줄 알고 저러나 본데…….’

그건 자신을 정말로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이미 대련으로 상대를 불구로 만든 경험이 있는 가웬이었으니까.

어렸을 적엔 평민을 과녁 삼아 마법 훈련을 해왔고.

물론 무고한 평민을 괴롭힌 게 아니라 배고파서 물건을 훔친 죄로 벌한 거였지만.

‘그런 내가 이대로 멈출 줄 알아? 흥.’

콧방귀를 뀐 가웬이 소리쳤다.

“실드라도 최대 출력으로 전개해라! 뒤지기 싫으면!”

고함과 동시에 지팡이를 겨누자 끝에서 마법이 사출됐다.

“플레임 블래스트(Flame blast).”

화염 마법이 돌풍을 일으키며 지크를 노렸다.

실드 마법을 펼치지 않으면 그대로 숯검정이 되어도 모자랄 화력.

그런데도 지크는 눈 하나 깜빡하지도, 목석처럼 움직이지도 않았다.

대응할 생각 따윈 전혀 없다는 듯.

그 모습에 가웬의 미간이 좁혀졌다.

‘뭐 하는 거야? 진짜 이대로 뒤지려고?’

술식을 짜는 것 같지도 않고, 영창을 위한 중얼거림도 없다.

마력을 모으는 낌새조차 느껴지지 않는 게 흡사 삶을 포기한 놈처럼 보인다.

그건 지켜보던 관중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화염 돌풍이 지척에 도달했을 때는 곧 벌어질 참상에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끝났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콰콰콰콰-!

무심한 표정으로 휘두른 지크의 손끝에서 별안간 물길이 쏟아졌다.

둑 터진 댐처럼 몰아치던 물류는 삽시간에 불길을 진화하며 사방을 수증기로 가득 채웠다.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내 수증기가 걷히며 지크의 모습이 드러났다.

상처라곤 없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예상과 다른 상황에 관중들이 넋을 놓았지만, 그들이 놀란 데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무영창을…… 했다고?”

9서클 대마법사나 할 수 있는 기술을 구사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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