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38화
지크와 가웬의 마법 대련 이후.
궁정 마법사단은 한동안 떠들썩했다.
지크가 최연소 9서클 대마법사라느니, 12인의 선구자 자리를 위협하는 세기의 천재가 나타났다느니 말이 많았다.
심지어는 전설적인 존재인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낙하산인 줄 알았던 지크가 대마법사나 쓰는 무영창을 사용했다.
이는 비단 궁정뿐만 아니라 궁정 밖에서도 이슈로 자리 잡았다.
-애물단지로 여겨지던 맥러플린의 사공자가 드디어 재능을 개화했다!
-15살인데 벌써 6서클에 이르렀다더라!
-대마법사나 쓰는 무영창을 쓴다더라!
-그동안 재능이 없는 척을 한 것은 악마적인 재능에 스스로 두려움을 느껴서였다!
지크에 대한 온갖 소문이 궁정 밖에서 들끓었다.
진실도 있고 거짓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지크의 시선이 변화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큰 변화는 다름 아닌 단원들의 달라진 태도였다.
“지크!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뭐가요?”
“무영창 말이야! 9서클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런 고급 기술을 구사할 수 있어?”
“남이사, 구사하든 말든 그쪽이 무슨 상관인데요?”
퉁명스러운 지크의 태도에도 상대는 헤실헤실 웃을 따름이었다.
“하하, 내가 뭘 가르쳐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근데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에요?”
“언제 봤기는! 입단식에서 봤잖아, 우리.”
“아아, 가웬 옆에서 꼬리 흔들던 개새끼 중 한 명이었던가?”
“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만?”
“아, 그거야 지난 일이지! 그건 그렇고 가웬 얘기는 꺼내지도 마. 그 자식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나라고 기분 좋을 거 같아?”
“그럼 낙하산이라고 조롱당할 당시의 제 기분은 좋았겠어요?”
“윽.”
“가웬이랑 사이좋게 추방당하지, 저한텐 왜 자꾸 오시는 겁니까?”
“아, 아니다. 너 지금 너무 흥분한 거 같아. 다음에 얘기하자. 알겠지?”
뭐가 급한지 꼬랑지를 말고 도망가는 상대의 모습에 지크는 혀를 찼다.
‘쯧쯧, 가웬처럼 추방당할까 봐 쫄아서 도망가는 것 봐라. 박쥐 같은 인간 같으니.’
마법 대련 이후로 마법사단의 실세였던 가웬은 몰락했다.
마법 대련에서 광범위 마법을 사용해 사람들을 위협한 죄로 징계에 처했고, 이전에 신입생들을 괴롭힌 죄까지 밝혀져서 추방까지 당했다.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셈.
이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웬의 죄를 증언한 사람은 개처럼 곁을 지키던 똘마니들이었다.
그들은 가웬 때문에 자신들까지 피해를 볼 것 같아지자, 죄를 감추며 주인이었던 자를 내몰았다.
그리고 새로운 주인을 찾기에 이르렀는데, 그 대상이 바로 가웬을 꺾은 지크였다.
이번 대련으로 사실상 마법사단의 에이스가 된 지크는 더 이상 낙하산이란 오명을 쓰지 않았다.
상태창에 붙어 있던 꼬리표도 지워졌고.
‘그 대신 다른 꼬리표가 생겼지. 무영창의 천재라는.’
실은 시스템의 힘이었지만 뭐든 어떠랴?
단원들의 인정을 받고 퀘스트를 깨면 그만이지.
[과반수의 단원에게 실력으로 인정받기 완료!]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새로운 기본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기꺼운 알림에 지크는 상태창을 열어봤다.
[이름 : 지크 맥러플린]
[꼬리표 : 판게아 대륙 환생자, 데칸 왕국 최고의 마법 명가, 공작가 막내, 사공자, 서자, 노력가, 책벌레, 15살, SS급 헌터, 오러 마스터 하급, 드래고니안, 무영창의 천재]
[근력 : 2,738 / 지력 : 2,667]
[순발력 : 2,748 / 체력 : 2,770]
[회복력 : 2,727 / 저항력 : 2,677]
[기력 : 11,380]
[기본 스킬 : 통역, 해석, 룬 흡수, 오러 운용, 오러 주입, 오러 블레이드, 아공간, 진실의 눈]
[1차 각성 스킬 : 마력 흡수 (9성)]
[2차 각성 스킬 : 마력의 주인 (9성)]
[3차 각성 스킬 : 마법 흡수 (9성)]
[4차 각성 스킬 : 마법 흡수의 달인 (6성)]
[5차 각성 스킬 : ???]
[6차 각성 스킬 : ???]
[7차 각성 스킬 : ???]
낙하산, 마나 친화력 제로, 마법에 무재능 등.
부정적인 꼬리표는 지워지고 드래고니안, 무영창의 천재라는 새로운 꼬리표가 생겼다.
또한 기본 스킬 목록에 추가된 퀘스트 보상까지도.
[기본 스킬 : 진실의 눈]
-효과 :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할 수 있습니다.
-특이사항 : 상대를 쳐다보고 있을 때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거짓을 간파할 수 있다니. 이거 엄청나잖아?’
현재의 판게아 대륙은 각종 암약과 암중공작이 판치는 전란의 시대.
그런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내 편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이 아닐까?
‘이것만 있으면 상대방이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있어. 내 편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수 있다고.’
거짓을 판별할 수 있다니.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일 게 분명한 스킬이었다.
‘낙하산이라는 오명도 벗었고, 생각지도 못한 스킬도 얻었고. 일석이조잖아?’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확실히 알게 됐다.
퀘스트는 자신의 성장을 돕기 위한 보조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을.
‘문제는 어떤 조건으로 뜨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건데…….’
원할 때 퀘스트를 할 수 없다는 점이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아했던 부분이 있다.
‘카르볼.’
-왜 그러느냐?
‘내가 가웬과 마법 대련을 했을 때 네가 했던 말 있잖아.’
-아, 네 마력의 결집력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 말이냐?
‘응. 그 말의 정확한 의미가 뭐야?’
-말 그대로다. 마법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만큼 결집력이 높을수록 강하지. 쉽게 말하자면 네가 쓴 마법이 6서클이지만 사실상 7서클 수준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정도로 내 마법이 강했다고?’
-그래. 네가 방어에만 치중해서 그렇지 상대방한테 제대로 썼으면 상성 차이고 뭐고 간에 시합이 바로 끝났을 거다.
‘으음…….’
그동안 지크는 상대를 향해 공격 마법을 써본 적이 없다.
당연히 자신의 마법이 얼마만큼의 위력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서클 높은 위력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에 영향이 미칠만한 능력치라곤 ‘지력’ 스탯밖에 없다.
그게 아니고서야 자신이 쓰는 마법이 증폭될 리가 없지 않은가?
‘이거 오러가 아니라 마법을 익혔어도 엄청나게 성장했겠는데?’
물론 그렇다고 오러를 배운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는다.
마법이야 스킬로 차단하면 그만이니, 지크를 위협할 수 있는 적은 사실상 마법사가 아니라 오러 유저밖에 없는 셈이다.
‘나중에 나도 대륙의 오러 마스터들처럼 이름을 날릴 수 있을까?’
판게아 대륙에는 5인의 오러 마스터가 있다.
5군주 또는 오망성이라 불리는 그들은 당연하게도 오러 유저 중 최상급 등급이라 불리는 그랜드 오러 마스터에 이른 달인들.
기회가 있을 진 모르겠지만 한 번쯤 만나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기심 차원에서.
‘다음 퀘스트는 또 언제 뜨려나?’
시종일관 퀘스트만 기다리는 그때, 다른 소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맥러플린 공자님. 비그스란드 공작 각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스승님이 왜 자신을 찾는 걸까?
“그래요? 알았어요.”
사용인의 말을 들은 지크는 궁금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제이크 팔머는 교관 중에서도 실력이 출중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받는다.
궁정 마법사단에서 10년을 일하면서 별다른 사고 한번 치지 않았다는 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 그 평가가 흔들릴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제이크! 교관이라는 놈이 도대체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뭐 했단 말이냐?”
“며, 면목 없습니다. 비그스란드 공작 각하.”
“기숙사 광장에서 대련이라니. 그것도 갓 들어온 신입과 가웬이 대련하도록 두는 게 옳은 일이란 말이냐?”
“…….”
달프레드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노기를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사단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단원들이 마법 대련을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훈련할 때나 마법을 주고받았지, 이렇게 개인적인 시간에 서로 상처를 주기 위한 마법을 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달프레드를 화나게 만든 것은 가웬이라는 녀석의 행태였다.
“들어보니 가웬 발도르가 지크는 물론이고 들어오는 신입마다 괴롭혀왔다는데 그 말이 사실이냐?”
“예…… 사실입니다.”
“너는 그걸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었고?”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방치하겠습니까? 알았다면 진즉에 말씀드렸겠지요!”
“그럼 모르고 있었다?”
“예…… 저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내심 달프레드의 말에 뜨끔한 제이크였지만 그렇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은퇴했다지만 자신을 추방하는 것쯤은 할 수 있는 게 달프레드의 영향력이었으니까.
다행히도 그간의 평가 덕분인지 달프레드는 제이크의 말을 어느 정도 믿는 눈치였다.
“교관이 되어서 원생들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쯧쯧, 나 때는 말이야…….”
‘또 시작이군.’
달프레드의 일장 연설을 꾹 참으며 듣고 있던 그때.
제이크의 시선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크가 보였다.
“오, 지크 왔구나. 어서 오너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비그스란드 공작 각하.”
“하하, 각하는 무슨. 내 앞에선 예의 차릴 것 없다.”
제이크와는 달리 부쩍 친근한 태도를 보이던 달프레드가 진중한 눈빛이 되었다.
“내가 부른 건 다름이 아니다. 그날 일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느니라.”
“그날 일이라 하시면……?”
“네가 가웬 발도르와 마법 대련을 했던 날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서 말이다.”
‘흐음.’
지크는 가만히 달프레드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 밑에 뜬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실의 눈으로 보니 다른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경위를 알고 싶어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자신을 추궁하려는 의도는 아닌 모양이다.
“제가 가웬 무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가웬 무리? 가웬 혼자서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닙니다. 가웬과 그를 따르는 무리로부터 온갖 비난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입단식에서 내려오자마자 저를 협박하기도 했고요.”
“뭐라?”
평온했던 달프레드의 얼굴이 악귀처럼 주름졌다.
단원들에게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증언이었다.
“내 이 녀석들을 당장……! 누구냐? 그때 누가 너를 조롱했는지 하나하나 밝혀 보거라!”
“그건 말씀드리기엔 너무 많은 데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지라…….”
“그렇게 많단 말이냐? 아주 떼를 지어 다니며 지크 너를 괴롭혔던 모양이구나!”
직접적인 괴롭힘은 없었지만, 지크는 부정하지 않았다.
옆에서 가웬과 어울리며 자신을 업신여기던 놈들이었으니까.
“제이크 훈련 교관! 너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이런 상황인 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저는 단원들 사이에 이런 일이 있는 줄 정말 모르고…….”
억울하다는 얼굴의 교관이었지만 지크의 눈엔 다르게 보였다.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거짓말이라. 연기가 능숙한 걸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가 본데?’
최고령 대마법사인 달프레드 앞에서도 저렇게 거짓말하는 걸 보니 습관처럼 해왔을 확률이 높다.
‘그러고 보니 대련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와중에도 훈련 교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
200여 명의 학생이 모이는 동안 같은 기숙사에 기거하던 교관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나타나지 않은 거구나. 가웬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
가웬이 왜 그동안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인지, 단장들이 왜 아무것도 몰랐던 것인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괘씸한 교관 같으니. 진실을 안 이상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지크가 달프레드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공작 각하. 제이크 팔머 교관은 지금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뭐라?”
“제가 가웬 무리에게 괴롭힘당하던 당시에 교관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저를 봤음에도 모른 척하고 계셨습니다.”
“뭣이?”
달프레드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제이크를 바라봤다.
제이크는 누가 봐도 수상스럽게 보일 정도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제이크! 지크의 말이 사실이렷다?”
“아, 아닙니다. 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지크가 가웬에게 괴롭힘당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크는 당황하는 제이크를 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뻔뻔한 얼굴로 잘도 거짓말을 늘어놓는군. 물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사실 지크는 그 당시에 제이크가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른다.
그냥 거짓을 말하는 걸 보고 눈치껏 때려 맞춘 것.
그런데 지금 반응을 보면 정말로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입단식에서 날 지켜보고 있다가 뒤늦게 나선 거라 이거지?’
교관이 원생의 괴롭힘을 방관했다?
자격 박탈당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이다.
지크가 증언에 힘을 보탰다.
“그때 교관님이 저한테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이곳에 있는 동안은 되도록 조용히 지내라고. 심기에 거슬리는 짓은 하지 말라고.”
“제이크!”
“힉!”
벼락같은 고함에 당황하는 제이크의 모습으로 달프레드는 확신을 얻은 얼굴이었다.
“네놈이 정녕 가웬의 뒤를 봐주고 있었단 말이냐!”
“저, 저는 그런 게 아니오라…….”
“무슨 소란입니까?”
그때 당황하는 제이크의 뒤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누가 가웬의 뒤를 봐줬다고요?”
지크의 아버지, 제라드가 무서운 눈길로 제이크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