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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39화 (39/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39화

제라드의 등장으로 제이크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등 뒤에 있는 걸 알지만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제이크 팔머 교관.”

“…….”

“내 말이 안 들리나?”

“아, 아닙니…… 히익!”

서둘러 돌아본 제이크는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라드의 눈빛이 맹수의 그것처럼 무서웠기에.

“스승님의 말씀이 사실인가? 가웬의 뒤를 봐줬다고?”

“아, 그, 그게…… 컥!”

8서클 대마법사의 마력이 제이크의 몸을 옥죄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변명 따윈 생각할 수가 없었다.

“마, 맞습니다! 제가! 제가 그랬습니다.”

제이크의 빠른 시인에 제라드의 눈이 벌레 보듯 변했다.

“쯧, 벌레만도 못한 녀석 같으니.”

시선을 거둔 제라드가 달프레드에게 눈을 돌렸다.

“스승님. 이 녀석의 처분은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어쩌면 발루두크와의 연결고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발도르 가문을 도왔으니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겠군.”

“아, 아닙니다! 저는 절대……!”

“감옥으로 끌고 가거라.”

제라드를 따라온 호위병들이 제이크에게 구속구를 채워 질질 끌고 나갔다.

“이제 우리 셋만 남았군.”

“지크. 우리 할 얘기가 있지 않느냐?”

“……할 얘기요?”

아버지와 그 스승이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자, 지크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가웬과의 마법 대련에 대해서 들었다. 서클도 없는 네가 마법을 썼다고.”

“하하, 그게 말이죠…….”

적당히 변명하려던 지크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포옹에 놀란 눈이 되었다.

“아, 아버지?”

“드디어…… 드디어 내 아들이 빛을 보는 날이 왔구나.”

제라드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지크로선 당황할 따름.

조금 전에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던 아버지라고는 생각지 못할 만큼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달프레드는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었고.

“허허헛, 네 아비가 이날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 아느냐? 그동안 마법을 쓰지 못하던 막내아들 때문에 얼마나 전전긍긍했던지. 끌끌끌.”

“아…….”

변명 따윈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마법을 쓸 수 있다.

제라드로선 그 사실만으로 족했다.

그와 달리 달프레드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모양이지만.

“지크. 드래고니안으로서 마법적 재능을 개화했구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무영창도 쓸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어찌한 것이냐?”

“글쎄요…… 저도 본능적으로 하는 거라…….”

“과연.”

지크는 얼렁뚱땅 넘겼지만 달프레드는 더 캐묻지 않았다.

드래고니안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는 듯 웃음뿐이었다.

* * *

‘휴우. 드래고니안이라는 변명이 있어서 다행이었어.’

-그러게 말이다. 신의 후예라고 밝혔으면 아마 지금까지도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을 게 아니냐.

카르볼의 말에 지크는 묵묵히 동의했다.

드래고니안의 마법적 재능을 각성했다고 믿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변명을 생각해 내느라 골치가 다 아팠을 것이다.

‘어쨌거나 다행이야. 드래고니안이 생각보다 엄청난 존재로 인식되어서.’

-난 아직도 드래고니안이라는 말을 누가 지어냈는지 의문이로다. 직접 봤는지도 모르는 전설적인 존재가 아니더냐?

‘그래도 실존하니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거 아니겠어?’

-3천 년 전에 세상을 유랑할 땐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말이니라.

‘그래? 하긴 드래곤이라는 존재도 지금은 전설로 여겨지는 실정이니까.’

드래곤도 전설로 치부되는 마당에 드래고니안이라고 별다를 게 있을까?

그나저나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말 나온 김에 묻는데, 카르볼. 넌 어느 지역을 유랑했던 거야? 설마 데칸은 아니지?’

-아키델피아 제국이라고 들어봤느냐?

지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가? 하긴 내가 세운 제국이 3천 년이나 유지하고 있었을 리가 없지.

‘뭐? 제국을 세워?’

-그 당시 내가 좀 잘나가서 말이지. 후후후.

자뻑이 첨가된 듯한 말이었기에 지크는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사람과 달리 영혼의 목소리는 진실을 판별할 수도 없었고.

‘일단 마법 흡수 숙련도나 쌓자.’

방에서 느긋하게 카르볼과 마법을 주고받으려던 그때였다.

똑똑-

별안간 들린 노크 소리에 지크가 방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 시간에 누구지?’

지금은 사용인도 드나들지 않는 야심한 시각.

1인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구시죠?”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가느다란 미성의 목소리에 지크가 놀랐다.

‘여자 같은데 누구지?’

-잠깐 기다려라. 내가 보고 오마.

벽간 이동에 자유로운 카르볼이 영혼 상태로 문 너머를 보고 오겠다고 나섰다.

-네 말대로 여자가 맞다. 꽤 미인이구나. 한데 이상한 게 예쁜 얼굴을 가리고 있어.

‘가리고 있다니? 가면이라도 썼다는 거야?’

-형상 변형 마법으로 얼굴을 바꾼 모양이다.

‘뭐?’

마법사단에 고의로 얼굴을 바꾼 존재가 있다?

무슨 의도인지 몰라도 심히 수상쩍다.

반역의 냄새가 느껴질 만큼.

‘혹시 삼왕자가 잠입시켰다는 첩자 중 한 명인가?’

지크는 일단 상대를 만나보기로 했다.

벌컥-

문 앞에는 갈색 머리칼에 주근깨가 인상적인 1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평범, 혹은 그 이하라고 볼 수 있는 외모.

‘이게 위장한 얼굴이라 이거지?’

카르볼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속엔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을 것이다.

“누구시죠?”

“브라이언트 백작가의 메리 브라이언트라고 해요. 지크 맥러플린 공자님이죠?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요.”

“일단 들어오시죠.”

메리를 방 안으로 들인 지크는 문을 닫고 팔짱을 꼈다.

“밤이 늦었으니 본론부터 말해보시죠. 저에겐 무슨 볼일로?”

“단도직입적이시네요. 좋아요. 바로 말씀드릴 테니 듣고 놀라지 마세요.”

무슨 말을 하려고 미리 겁부터 주는 걸까?

의문은 메리의 말을 듣고 나서야 풀렸다.

“지크 공자님. 저랑…… 결혼해 주시겠어요?”

“예?”

놀라는 지크였지만 속으론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놀랐다.

‘뭐야? 이 여자? 갑자기 프러포즈를 한다고?’

이제 막 이름을 알게 된 소녀에게 들은 말 치곤 다소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지크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자, 메리가 이해한다는 듯 미소 지었다.

“당황하실 거라 생각해요. 발도르 공자에게 말했을 때도 그랬으니까요.”

“발도르면…… 가웬 말이에요?”

“네. 당시에 가웬에게도 결혼해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거든요.”

“왜 거절당했죠?”

“그냥……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

“그게 아니라 황당해서가 아닐까요? 누구라도 갑자기 결혼하자 그러면 거부 반응을 보일 것 같은데.”

“그렇겠죠. 이해해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너무 놀라진 마세요. 저는 진짜로 결혼해 달라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저와 결혼하는 척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아버지의 눈에 그렇게 보여야 하거든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버지?

“무슨 상황인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세요.”

지크의 요구에 메리가 기꺼이 그러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브라이언트 백작가는 마법 가문 중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가문이에요. 저희 가문의 핏줄들은 모두가 변변치 않은 재능을 타고났죠. 하필이면 자식 중에 아들도 없어서 명맥을 이어가기에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고요.”

메리는 씁쓸함을 달래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와중에 궁정 마법사단에 입단한 것은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볼 수밖에 없었죠. 형제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마법적 재능을 타고났거든요.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저에게 거는 기대가 컸고요. 가문을 부흥시킬 유일한 사람이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메리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저는 장자 승계 원칙으로 인해 가문을 이을 수가 없었어요. 적어도 가문을 책임질 새로운 약혼자가 필요했죠.”

“그래서 마법사단에서 약혼자를 구하려는 겁니까?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맞아요. 아버지는 제가 마법사단에서 신랑감을 데려오기를 바라고 계세요. 그것도 가장 강한 사람을요.”

메리가 지크를 고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신랑감이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지병을 앓고 계세요. 살날이 얼마 안 남으셨죠.”

“아…….”

“그래서 지크 공자님께 부탁드리는 거예요. 잠깐이라도 제 약혼자인 척해달라고. 아버지가 눈을 감으시기 전에 소원을 이루게 해드리고 싶으니까요.”

지크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메리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정말이지 기특한 효녀가 아닐 수 없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속았으리라.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황하게 설명하곤 있지만 전부 거짓말이다.

그걸 시스템 덕에 간파할 수 있었다.

‘시스템은 거짓말하지 않아.’

적어도 대뜸 결혼하자고 말하는 여자보단 시스템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얼굴도 바꿔서 다른 사람인 척하는 데다가 어쭙잖은 감성팔이를 하며 나를 꿰어내려고 하다니. 대체 무슨 속셈일까?’

지금 즉시 무력을 써서라도 상대를 심문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여자가 정말로 첩자이고 그 뒤에 발루두크가 연관되어 있다면…….’

심문한다 해도 얻을 게 별로 없을 것이다.

중요 정보를 발설하는 즉시 그레고르처럼 죽을 테니까.

‘지금 상황에서 증거를 얻기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여자의 말에 속아주는 척하는 거야.’

무릇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하지만 지크에겐 굳이 발루두크를 잡아야 할 동기가 없었다.

가문을 위협한 녀석이긴 하지만 자신이 나서기엔 상대가 너무 거물이다.

‘어떡하지? 내가 해결할 게 아니라 아버지나 비그스란드 공작한테 넘겨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때, 망설이는 걸로 보였는지 메리가 덧붙였다.

“물론 그냥 도와달라는 건 아니에요. 사례는 충분히 할게요.”

“사례라면 어떤?”

“약혼자를 데려오면 아버지께서 저희 가문의 가보를 주신다고 하셨어요. 대대로 물려 내려오던 지팡이죠.”

“지팡이라…….”

지크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마법사라면 탐이 날지 모르겠지만 지크에겐 딱히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수락할지 말지 고민하는 그때였다.

【돌발 퀘스트 : 약혼자 행세하기】

└메리 브라이언트가 아버지를 위해 약혼자 행세를 해줄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제안을 수락하고 브라이언트 가문을 방문해 가주를 만나십시오.

<조건>

└약혼자 행세를 하며 브라이언트 가문의 가주 만나기

<보상>

└랜덤으로 스탯 600 증가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두 달 치 스탯이 보상으로 걸렸다?’

이렇게 되면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고민 해결이다.

“좋습니다. 사정이 딱한 듯하니 그렇게 하죠.”

“저, 정말이에요? 고, 고맙습니다. 지크 공자님.”

“말 편하게 하세요. 이제 저희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인데요.”

“하하…… 그, 그렇네요.”

기뻐해야 할 메리의 표정은 어쩐지 그늘져 있었다.

* * *

“여기가 저희 가문이에요.”

메리와 함께 마동차에서 내린 지크는 브라이언트 백작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작가라 그런가? 우리 가문보단 크지 않네.’

남의 가문에 와본 적은 처음이다.

그것도 약혼자의 자격으로 온 것은.

지크가 곁눈질로 메리를 살폈다.

‘대체 뭘 숨기는 걸까? 백작가라는 신분만큼은 진실인 것 같은데 말이야.’

마동차에서 대화하면서 반응을 떠본 결과.

브라이언트 가문은 이처럼 실존했고, 메리 브라이언트라는 백작가의 딸이 있다는 것도 사실로 확인됐다.

다만 지금 보이는 얼굴이 메리의 진짜 얼굴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자신의 진짜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것 또한.

‘무슨 꿍꿍이인지는 부딪쳐보면 알겠지.’

일단은 연인 행세를 하며 가주를 만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차차 목적을 드러내리라.

“따라오시죠, 지크 공자님.”

“말 편하게 하라니까. 메리.”

“그, 그럴까?”

자신을 이런 상황 속에 끌어들였음에도 메리는 막상 연인을 연기하려니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때, 두 사람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황급히 마중 나온 이가 있었다.

백작가의 가주, 루이스 브라이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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