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41화
빠악- 빡- 빡!
사정없는 주먹질이 남자의 안면에 꽂혔다.
이빨과 함께 여기저기 튀기던 남자가 부들거리는 눈으로 노려본다.
“이, 이 개 같은 새…….”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끼…… 커억! 억!”
파운딩 자세로 완전히 제압한 지크가 사정없이 주먹을 내려쳤다.
지켜보던 메리가 눈을 질끈 감을 정도.
가뜩이나 어둠의 칼날에 입은 상처 때문에 남자는 저항할 수 없었다.
주문을 외울라치면 주먹이 날아오는 탓에 반격은 꿈도 못 꿨다.
퍽! 퍽!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패는 것 같아도 지크는 나름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었다.
‘온 힘을 다했으면 이 새끼는 진즉에 죽었을 테니까.’
몇 분 전, 감옥을 힘으로 풀고 나온 지크는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자신의 추측대로 상대는 진짜 루이스 백작이 아니었다.
루이스 백작인 척 얼굴을 변형한 누군가였다.
‘모르긴 몰라도 발루두크의 끄나풀이겠지.’
악마어로 마법을 쓰는 걸 보면 연관이 없진 않으리라.
‘얘기는 나중에 듣고 일단 패야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상대에게 들을 정보가 있으니 죽일 생각은 없다.
아직은.
“후우.”
남자의 이가 떨어지고 완전히 기절하고 나서야, 지크가 주먹질을 멈췄다.
메리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흠칫 쳐다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
“죄, 죄송해요. 지크 공자님…….”
지크가 주먹을 뚜두둑 거리며 다가섰다.
“난 여자라고 해서 봐주는 거 없어.”
“죄, 죄송해요!”
메리가 즉시 무릎을 꿇었다.
하기야 그 두려운 백작을 저리도 손쉽게 때려눕혔으니 무서워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잘못했어요. 지크 공자님을 위험에 빠트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니긴 뭘 아니야. 이미 빠트려놓고서.”
“…….”
“사정이야 대충 엿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나를 함정으로 끌어들여?”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메리가 자존심도 굽히고 넙죽 엎드렸지만, 그것만으론 지크의 마음을 풀 수 없었다.
‘그래도 이야기는 들어보는 게 낫겠지.’
지크는 쥐었던 주먹을 펴고 팔짱을 꼈다.
“내 넓은 아량으로 변명할 기회를 주지. 하나부터 열까지 말해봐. 이 새끼는 누구고,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메리는 눈물을 멈추고 자신이 겪은 일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남자의 이름은 저도 몰라요.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나더니 저희 아버지를 납치하곤 저를 협박했어요. 아버지를 만나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무슨 일을 시켰는데.”
“저더러 마법사단에 입단하라고 했어요. 남자는 제가 마법사단에 입단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제가 아버지를 끔찍이 아낀다는 것 또한. 저를 타깃으로 삼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얼굴을 바꾸고 마법사단에 입단한 건가?”
지크의 말에 메리가 놀란 눈초리가 되었다.
“그, 그걸 어떻게……?”
“딱 보면 알지. 무영창을 쓰는 내가 그 정도도 모를까 봐?”
가웬과의 마법 대련을 직관한 메리다.
무영창을 쓰는 괴물이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설마 내 얼굴까지 간파하고 있을 줄은…… 잠깐! 그렇다면 내 제안을 수락한 것도 일부러……?’
문득 든 생각에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지크는 사전에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접근했다는 것을.
더 이상 형상 변형 마법이 의미가 없다고 여겼는지.
츠츠츠-
메리가 얼굴에 걸린 마법을 풀었다.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이 아닌, 귀한 가문의 영애라고 해도 믿을 법한 새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은 왜 가린 거지?”
“마법사단에 입단하려면 다른 얼굴일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형상 변형 스크롤도 이 남자가 제공한 거고요.”
“입단 이후로 시킨 일은?”
“저더러 마법사단의 실세를 파악하고 집으로 유인하라고 했어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약혼자를 구한다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고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께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말도 거짓인가?”
“예…… 하지만, 위험한 상황이신 건 분명하죠…….”
진짜 브라이언트 백작은 어딘가로 납치되었다.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 의해.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군.’
지크가 턱짓했다.
계속 말해보라는 듯.
“처음에 제가 접근한 사람은 가웬 발도르였어요. 하지만 저한테 관심 없는지 거들떠보지도 않았죠. 몇 번이고 시도해 봤지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죄책감 때문에 못 하겠다고 말했었죠.”
“이 남자한테?”
“네.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소리쳤죠. 하지만 이번 일만 잘하면 아버지를 풀어줄 것처럼 저를 구슬렸어요. 데려온 단원을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고요.”
“그 말을 믿었어?”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을 함정에 끌어들여선 안 된다는 것쯤은 메리도 인지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선.
“남자는 여기 온 이후로 줄곧 아버지 행세를 했어요. 가문 사람들은 이 사람을 진짜 백작이라 믿을 수밖에 없었죠.”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지 메리가 양팔을 감쌌다.
“몇 달간 아버지 행세를 하는 남자를 보면서 저는 참을 수 없었어요. 빨리 아버지를 되찾겠단 마음뿐이었죠.”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을 함정에 끌어들여?”
“그 점은 정말 죄송해요.”
“죄송하다고 네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건 알지? 힘이 없었으면 난 죽었을 거라는걸. 그게 가웬이었을 수도 있고.”
“면목이 없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당연히 면목이 없어야지. 실은 너도 저 녀석처럼 돼야 마땅한 상황이었어.”
지크가 가리킨 곳엔 피떡이 된 얼굴로 기절한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기회를 주지.”
“기, 기회요?”
지크는 메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와 마나의 서약을 맺어라. 날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면 너를 살려줄 용의는 있어.”
“아…….”
메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비였다.
흠씬 두들겨 맞아도 마땅한 처지라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다만 지크의 생각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함정에 빠트렸던 상대를 도리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다니.
메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봤지만 그건 카르볼도 마찬가지였다.
-저 여자를 왜 살려주는 거냐? 혹시 외모에 반하기라도 한 것이냐?
‘그럴 리가. 날 엿 먹이려던 여자를 그깟 얼굴 보고 살려둘 거 같아?’
-그럼 왜 살려주는 거지?
‘죽이긴 아깝잖아.’
물론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단에 확실한 부하 한 명 있으면 좋지.’
-하긴, 피터라는 놈은 멀리 유배되어서 당장은 쓸모가 없으니. 좋은 생각이다.
지크에게 당장 부하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한 명쯤은 마법사단에 심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메리를 이용해 다른 반역자를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왕궁에는 아직 첩자가 남아 있다.
몇 명인진 모르지만, 그들이 메리를 같은 편으로 인식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확실히 살려둘 가치가 있다.
‘게다가 서약을 맺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입막음할 수도 있고.’
메리는 봤다.
마법을 흡수하는 자신의 비밀을.
‘비밀을 본 이상 살려둘 순 없지만, 그렇다고 죽이기도 찜찜하니까.’
알고 보면 그녀도 피해자다.
일의 원흉은 어디까지나 여기 기절한 남자였지 메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메리의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죽일 필요 없어.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야지.’
피터처럼 계약함으로써 자신의 비밀을 막음과 동시에 반역자들을 끌어낼 비밀 부하로 써먹을 수 있다.
메리를 살려둔 데엔 그런 계산이 깔려 있었다.
“어떡할래?”
“하, 할게요. 속죄하는 의미로 평생을 주인님처럼 모실게요.”
“그래? 그럼 기회를 주지.”
“가,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셔서.”
지크는 엎드리는 메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진심이 담겨 있군.’
적어도 아버지를 납치한 괴한보단 자신을 따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자, 그럼 계약을 맺어볼까?”
“네…….”
메리는 눈을 감으며 손목을 내밀었다.
마나의 서약을 위해 자신의 손을 내준 셈이었지만 지크에겐 딱히 필요 없었다.
“뭐해?”
“네?”
“받아.”
눈을 뜬 메리에게 지크가 건넨 것은 양피지와 금색의 작은 볼펜이었다.
“이 펜으로 양피지에 내가 부르는 대로 써. 이렇게 하면 마나의 서약과 같은 효과가 있으니까.”
“아아, 네.”
뭐가 뭔지 몰라도 메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나 메리 브라이언트는 평생토록 지크 맥러플린을 주인으로 삼을 것을 맹세한다. 이를 어길 경우 전능하신 엘의 규율에 따라 서클이 붕괴할 것이다. 이렇게 써.”
“아, 알겠습니다.”
이렇게 부하 2호가 추가됐다.
* * *
“끄응…….”
문득 정신을 차린 코렐 쉐도우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X이발…… 내 잘생긴 얼굴이…….’
거울이 없어도 반병신이 됐다는 것쯤은 인지할 수 있었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지크 맥러플린. 어떻게 감옥에서 탈출했는지 몰라도 내가 살아나가면 넌 죽은 목숨이다. 오늘 본 일들을 낱낱이 보고할 테니!’
얼굴이며 몸이며 욱신거렸지만 다행히 움직일 정도는 된다.
어둠의 칼날이 운 좋게 장기들을 피해 간 모양이다.
‘그나저나 그 녀석이 어떻게 악마어를 이용한 마법을?’
코렐은 똑똑히 보았다.
지크가 자신과 같은 악마술로 반격하는 것을.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발루두크 님에게 이 충격적인 사실을 보고해야 해!’
실눈을 뜨며 잠시 주변을 살폈다.
자신을 개처럼 팬 불한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것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내가 기절했다 판단하고 어디로 간 모양인데 잘됐어.’
기회를 틈타 지금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
또 붙잡혀서 처맞기 전에 발루두크와 연락해야 한다.
고통을 참고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도망치기엔 최선의 환경.
그러나.
“깼어?”
“……!!!”
바로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순간 코렐의 심장이 멎을뻔했다.
“어디 가려고?”
“…….”
“2차전 해야지.”
“이, 무식한 개…… 커억!”
등을 돌리자마자 한 대 얻어맞은 코렐이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아직도 욕하는 거 보니 그렇게 처맞고도 말할 준비가 안 됐나 보네. 강도 좀 올려야겠어.”
“라 테크 샤…… 커억!”
“어디서 마법을 쓰려고.”
주둥이에 주먹이 박히자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주저앉은 코뼈에선 코피가 멎을 새가 없다.
극심한 고통에 말도 못 할 지경.
하지만 상대는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이 아닌 모양이다.
퍽- 퍽-!
또다시 무자비한 구타가 시작됐다.
다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빠득- 빠각-
“끄아아아아악!”
팔다리의 관절을 집중적으로 노린다.
뼈가 부서지는 감각과 함께 타오르는 고통이 작열했다.
“어때? 이 정도 강도는?”
“…….”
“이래도 말할 준비가 안 됐나? 더 올려?”
“하, 흐윽, 무, 뭐가 궁금하길래 그러냐.”
지크가 악마처럼 웃었다.
“일단 네놈의 하찮은 이름부터 읊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