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42화
남자의 이름은 코렐 쉐도우.
알비츠 왕국 소속으로 삼왕자가 집어넣은 첩자 중 한 명이었다.
“국내로 들어온 첩자가 몇 명이냐?”
“나, 나도 모른다. 끄, 끄아아악!”
지크가 상처를 짓누르자 코렐의 입에서 다급한 음성이 나왔다.
“저, 정말이다! 서로 간에 그런 정보는 주고받지 않았어!”
‘서로가 알 수 없도록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 건가? 행여나 꼬리가 잡히지 않도록?’
그렇다면 이해는 된다.
“배후에 발루두크가 있지?”
“그, 그건…… 그렇다.”
잡아떼려던 코렐이 섬뜩함을 느꼈는지 순간 말을 바꾼다.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녀석으로부터 네가 받은 지시는?”
“브라이언트 백작을 붙잡아 그 여식을 꼭두각시처럼 이용하는 것이었다. 궁정 마법사단에 입단시켜 그 안의 실세를 유인할 목적이었지.”
“실세를 유인해서 뭐 하려고?”
“마법 변형 스크롤로 위장해 단원인 척 행세할 작정이었다.”
‘말하자면 내 행세를 하려고 했다는 거잖아?’
진짜 지크는 감옥에 내버려 두고 자신은 얼굴을 바꿔 들어가려는 게 기본 계획.
버러지 같은 놈이 자신을 행세하려 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로 위장해서 뭐할 작정이었지?”
“그다음은 나도 모른다. 내가 지시받은 건 거기까지…… 지, 진짜다! 진짜야!”
지크가 들었던 주먹을 내렸다.
반사적으로 쪼는 것이 예절교육은 확실히 주입된 모양이다.
“내 얼굴로 위장한 채로 대기하라는 명령까지만 받았다 이거냐?”
“그, 그렇다!”
“발루두크는 네가 메리를 인질로 잡았다는 걸 알고 있나?”
“아마 그럴 거다. 내 윗선에서 보고를 했다면.”
“발루두크와 연락할 수단은? 통신구 가지고 있으면 내놔봐.”
“……통신구는 없다. 나는 발루두크의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직접 통신한 적도 없고.”
“그럼 어떻게 연락하는데?”
“중간에 접선자가 있다. 그 녀석들이 발루두크와 통신하는 걸 들었다.”
“그 녀석들? 접선자가 한 명이 아니란 소리야?”
코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자 지크가 메리에게 눈짓을 줬다.
“메리. 일단 이 녀석 힐 좀 해줘.”
“아, 네…….”
찜찜한 얼굴이었지만 메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전신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자 코렐의 얼굴에 평온함이 깃들었다.
그것도 잠시.
악마처럼 노려보는 지크의 눈길에 흠칫 놀라야 했다.
“얘 아버지는 어디 있냐? 진짜 브라이언트 백작 말이야.”
“그건…… 나도 모른다.”
“당신이 데려갔잖아!”
메리가 고함지르자 코렐은 억울한 눈치였다.
“난 그저 접선자에게 넘겼을 뿐.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
“네가 말한 접선자와 연락할 수단은?”
“그, 그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하는지라…….”
“이 새끼 완전 말단 중의 말단이잖아?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네.”
“…….”
지크의 푸념에 코렐이 입을 다물었다.
기껏 잡은 첩자였지만 얻을 정보가 별로 없다.
‘결국엔 접선자를 만나야 한다는 건데…….’
발루두크와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접선자에게 있다.
몇 명인지 몰라도 그들을 잡아야 발루두크의 꼬리라도 찾을 수 있다.
“형상 변형 스크롤도 그 접선자가 주는 건가?”
“그렇다.”
“너한테 지령 내리는 것도 그렇고 발루두크와 연락하는 것도 그렇고?”
“……그, 그렇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는지 코렐은 지크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남는 형상 변형 스크롤 있냐?”
“아, 아니. 없다…….”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지를 본 지크가 퍽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쉽네. 있었으면 이 자리에서 널 죽이고 곧바로 네놈 행세를 하는 건데.”
“…….”
이 순간만큼은 스크롤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코렐이었다.
“접선자와 연락하는 통신구는?”
“……여기 있다.”
코렐은 순순히 통신구를 넘겼다.
지크가 세 번 두들겨봤지만 응답하지 않는다.
‘역시. 수신만 가능하게 만든 통신구인가?’
접선자를 만나려면 결국엔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답답하네. 단서를 더 얻으려면 접선자가 필요한데 언제 연락 올지도 모르고.’
지크가 미간을 찌푸리자 불안해진 코렐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말했다.
“……형상 변형 스크롤이 떨어졌으니 조만간 접선자에게서 연락이 올 거다.”
“접선자의 이름은 몰라? 규모는?”
“……모른다.”
코렐이라는 놈에게선 더 이상 얻어낼 게 없었다.
‘그걸 아니까 녀석도 내 눈치를 보는 거겠지.’
자신의 이용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코렐은 죽은 목숨이다.
그걸 알기에 놈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눈치 보고 있는 거고.
그때였다.
지크가 가지고 있던 통신구의 빛이 반짝거린다.
때마침 접선자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받아라.”
“으, 으응?”
코렐은 얼떨결에 지크가 준 통신구를 받아들었다.
“받아서 스크롤이 떨어졌으니 지금 만나자고 약속을 잡아. 만약 허튼수작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아, 알았다.”
침을 한번 꼴딱 삼킨 코렐이 연락을 받았다.
“예에.”
-코렐, 별일 없나?
코렐이 지크의 눈치를 보더니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요.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일은 어디까지 진행됐지?
“메리를 이용해 지크 맥러플린을 붙잡았습니다.”
-다음 단계로 진행할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잘했다. 발루두크 님도 이 사실을 들으면 기뻐하실 거다.
“가, 감사합니다. 저기 그런데 지금 스크롤이 떨어져서 말입니다…….”
-안 그래도 전해주려고 했다. 다음 단계에 필요한 물건도 줄 생각이었고.
“물건……이요?”
-접선 장소는 전에 만났던 술집이다. 지금 바로 준비하고 나와라.
“아,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통신구의 빛이 꺼졌다.
그제야 메리가 숨을 쉬었고 코렐이 지크를 바라봤다.
“이제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지크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접선자를 만나야지.”
* * *
브라이언트 백작가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술집.
[달빛이 머무는 주점]
주점의 간판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코렐이 침을 꼴깍 삼켰다.
‘빌어먹을. 죽겠네, 정말.’
3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긴장한 탓에 소변도 누지 못하고 왔다.
거기다 속도 울렁거려 미칠 지경.
그도 그럴 것이 지크에게서 감시당하는 상황이다.
어찌 마음 편할 수 있으랴.
‘분명 인비저빌리티를 쓴 채로 어딘가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 거야. 확실해.’
평소처럼 접선자를 만나러 가라고 풀어줬지만, 그 악마가 자신을 이렇게 순순히 놓아줄 리가 없다.
‘아마도 나를 이용해 접선자를 만날 속셈이겠지.’
그리고 접선자를 만나면 자신은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미 정보란 정보는 죄다 뽑아갔으니까.
‘어쩌면 여기가 내 무덤이 될지도…….’
그리 생각하니 주점의 출입구가 뱀의 아가리처럼 느껴진다.
막장 인생이지만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도움을 청해야 한다.
‘내가 살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후드를 꾹 눌러쓴 코렐이 주점의 문을 열었다.
딸랑-
안으로 들어서자 다소 한산한 주점의 풍경이 들어왔다.
“어서 오십쇼.”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자신을 반겼지만, 코렐은 알고 있다.
주인 행세를 하는 저 사람이 접수원이라는걸.
“코렐 쉐도우입니다.”
후드를 벗으며 말하자 주인이 고개를 갸웃한다.
“아, 예. 무슨 일이십니까?”
“물건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만.”
“물건이라니요? 그 무슨…….”
“메리. 지크. 궁정.”
작전의 핵심을 짚는 그 말에 주인의 눈빛이 단숨에 변했다.
연기를 집어치우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잠시 기다리시죠.”
주방으로 들어간 주인이 이윽고 누군가를 데리고 나왔다.
흑색의 로브를 입은 남자였다.
“코렐. 시간 맞춰서 제때 왔군.”
목소리를 들어보니 조금 전 통신구로 연락했던 그자가 틀림없다.
남자가 대뜸 길쭉한 상자를 내밀었다.
“여기 약속한 스크롤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말한 물건.”
추가로 내민 물건은 따로 작은 상자에 담겨 있었다.
“열어봐도 됩니까?”
“아직은.”
“다음 작전이라는 게 뭔지……?”
“그것도 때가 되면 알려줄 거다. 너는 물건이나 잘 간수하고 있어. 작전에 쓸 귀중한 물건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리 말한 코렐이 두 상자를 주섬주섬 챙긴 뒤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러나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본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해? 안 가고.”
“저, 저 좀 도와주십시오.”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바, 발각되었습니다.”
“뭐?”
“저희 작전이 발각되었다고요, 지크 그놈한테…….”
그때였다.
쾅-!
“내 이럴 줄 알았지.”
별안간 소년 한 명이 문을 박차며 들어왔다.
다름 아닌 지크였다.
“고새를 못 참고 딴 놈한테 붙어먹어?”
“저, 저 새끼입니다! 저 새끼가 지크입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지크와 코렐을 번갈아 보던 남자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 병신새끼가 꼬리를 달고 와?”
스릉!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든 남자가 기습적으로 코렐을 찔렀다.
“컥!”
목을 찔린 코렐이 줄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코렐의 죽음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피로 얼룩진 단검을 든 남자가 서늘한 눈으로 지크를 바라봤다.
“저 새끼도 죽여.”
“예.”
그 살벌한 명령에 주인으로 보였던 자가 움직였다.
사람 여럿 죽여봤는지 눈빛엔 살기가 가득하다.
“덤비려고?”
스르륵-
주인은 말없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인비저빌리티를 사용한 것이다.
“마법사였네?”
지크가 부럽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자신은 저런 잔재주를 부리지 못하니까.
하지만.
“다행이네. 마법사라서.”
지크의 입꼬리는 기분 좋은 듯 올라가 있었다.
“마법사는 다 X밥이거든.”
이내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자.
“……!”
투명화가 강제로 풀려 버렸다.
녀석이 당황하는 사이, 지크가 섬전처럼 뛰어들었다.
빠악-!
발차기에 머리를 맞은 주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즉사했다.
“한 놈은 끝났고.”
지크의 눈길에 불길함을 느낀 남자가 마력을 끌어모았다.
아니, 끌어모으려 했다.
‘마, 마력이…… 흩어지고 있어?’
정확히는 모으려는 순간 사라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외부의 힘으로.
착각인가 싶어 다시 한번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마법을 쓸 수가 없었다.
지크가 눈앞에 다가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악마어를 이용한 술법 또한.
퍼억!
주먹 한 방에 앞니가 옥수수처럼 떨어졌다.
“네가 접선자냐? 드디어 만났네.”
“크윽, 이, 이 새끼가…… 억!”
또 한 방 얻어맞자 우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진다.
도저히 마법사라고 볼 수 없는 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법까지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남자는 깨달았다.
자신은 절대로 눈앞의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런 판단을 내리기 무섭게.
“네깟 놈에게 줄 정보는 없다.”
갑자기 초연한 태도를 보이던 남자가 별안간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남자의 입에서 왈칵 피가 쏟아졌다.
털썩-
쓰러진 남자의 몸에서 쉴 새 없는 피가 흘러나온다.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었다.
“이 자식…… 갑자기 죽었어?”
제대로 된 고문도 하기 전에 죽어버리자 당황한 지크였다.
‘잠깐. 그레고르도 왕실 감옥에서 이렇게 죽었다고 했잖아.’
자결한 방식이 그레고르와 똑같다.
아마 같은 효력의 금제가 걸려 있던 모양.
‘젠장. 기껏 접선자를 만났더니 무슨 일이야, 대체? 이래서는 단서가…….’
고문해서 정보를 뽑아낼 생각이었는데 전부 다 죽어버렸다.
지크로선 난감한 상황.
남은 거라곤 남자가 코렐에게 건넨 두 가지 상자뿐이었다.
‘하나는 형상 변형 스크롤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자 그 안에 약병처럼 보이는 게 들어 있다.
출렁이는 액체가 들어 있었는데 보기만 해서는 뭔지 알 수 없다.
‘일단 이것들은 내가 킵해야겠어.’
아공간을 연 지크가 물건들을 챙겼다.
그리고 다른 단서가 없나 시체들을 보는데…….
‘응? 이 로브는…….’
이제 보니 익숙한 로브를 입고 있는 남자였다.
‘흑색의 로브라면…… 설마 검은 달?’
신흥 암살조직 검은 달.
그 조직의 배후에 발루두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