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43화 (43/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43화

‘발루두크가 검은 달과 연관되어 있었다니…….’

지크는 이미 검은 달에게 당한 경험이 있다.

이복형제인 알렉스가 자신과 피터를 죽이려고 사주한 암살단이 바로 검은 달이다.

그런데 그 배후에 발루두크가 있었다?

‘그렇다면 데칸 왕국에 발루두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인데…….’

대체 녀석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일까?

데칸 왕국에 첩자들을 들인 이유는 또 뭐고?

지크는 답답함을 느꼈다.

의문은 해소하지도 못하는 데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일단 뭐라도 찾아봐야지.’

지크는 주점 주인과 남자의 시체를 뒤적였다.

금화가 들어 있는 전낭 말고는 딱히 가진 거라곤 없다.

신분을 증명하는 그 어떤 것도 안 나온다.

알아낸 거라곤 검은 달과 같은 흑색의 로브를 입었다는 것과 서클의 수였다.

‘주점 주인 역할을 하던 녀석은 6서클인 반면, 자결한 남자는 7서클이었어.’

명령을 내리던 걸 떠올려보면 남자 쪽이 더 상급자였던 모양.

그만큼 뽑아낼 정보가 많았을 테지만 지금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도움이라곤 안 되고 있다.

‘주방이라도 뒤져봐야지.’

지크는 주방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살폈다.

밖에 죽은 두 사람 말고는 다른 조직원의 흔적이라곤 없었다.

평범한 주방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줄만 알았다.

‘잠깐…… 뭐가 있는데?’

싱크대 하부장이 살짝 열려 있다.

다가가서 문을 열어보니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보인다.

어딘가로 이어지는 비밀통로다.

썩 괜찮은 단서였다.

그때,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인 퀘스트 : 검은 달의 수장을 제압하라】

└반역의 배후에 검은 달이 있는 것과 그들이 이용하는 비밀통로로 보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검은 달을 이끄는 조직의 수장을 찾아내 제압하십시오.

<조건>

└검은 달의 수장 제압

<보상>

└스킬 ‘빛의 축복’ 획득

‘메인 퀘스트다!’

메인 퀘스트가 돌발 퀘스트보다 좋은 점은 한 가지뿐이다.

보상이 두둑하다는 점.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스킬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빛의 축복? 잠깐, 빛의 축보오오옥?’

스킬을 알아본 지크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전생에서 익히 들어본 스킬로, 신의 손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던 힐러가 사용했었다.

‘그걸 고작 퀘스트 보상으로 준단 말이야?’

지크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검은 달의 수장을 잡으려면 뱀의 아가리로 들어가야 한다.

통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라도 단서를 찾아야 하니까.

‘혹시 누군가를 마주칠지 모르니 변장하는 게 좋겠어.’

지크는 아공간에서 기다란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여니 마법 두루마리 여러 장이 들어 있다.

형상 변형 스크롤이다.

‘카르볼. 이거 쓰는 법 알아?’

-어렵지 않다. 누구의 얼굴로 변할지 생각한 뒤 스크롤을 양손으로 찢어라. 그럼 스크롤 자체에 깃든 마력으로 술식이 구동될 거다.

지크는 속으로 얼굴을 떠올린 후에 스크롤 한 장을 찢었다.

쫘아악-

이윽고 스크롤에서 나온 빛무리가 지크의 얼굴에 머물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조금 전에 지크가 죽였던, 로브를 입은 남자의 얼굴이었다.

‘어때? 여기 누워 있는 놈이랑 똑같이 변했어?’

-완전. 쌍둥이라 해도 믿을 거다.

씨익 웃은 지크는 남자의 옷을 벗긴 뒤 주섬주섬 흑색의 로브를 입었다.

영락없는 검은 달의 조직원으로 보인다.

‘그럼 들어가 볼까?’

허리를 굽힌 지크가 통로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 * *

가뜩이나 어두운 지하통로에 흑색의 로브를 입은 세 사람이 있었다.

“금방 돌아온다더니, 왜 이렇게 늦는 거야?”

“글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자기만 바쁜가? 우리도 임무 때문에 바빠 죽겠구만.”

검은 달에는 네 명의 행동대장이 있다.

여기 모여 있는 1대장, 2대장, 4대장이 바로 그들.

각자 맡은 지역도 다르고 하달받은 임무도 다르지만, 오늘만큼은 한곳에 모여 있었다.

주마다 한 번씩 치르는 임무 회의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방 돌아온다던 3대장만큼은 여기에 없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니야? 벌써 1시간째 기다리고 있잖아.”

“이상하긴 하네. 이렇게 늦은 적은 없었는데…….”

접선자에게 물건 좀 전해주러 갔다 온다던 3대장은 1시간째 회의 장소에 나타나질 않고 있다.

물건을 잘 전달했는지 소식을 듣고 나서야 회의를 마무리 지을 텐데 복귀하질 않으니 오죽 답답할까.

“혹시 길이라도 잃은 거 아니야? 여기 통로가 좀 복잡해야지.”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제집처럼 드나들던 지하통로에서 길을 잃었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 왜 이리 안 오냐고.”

“그걸 난들 어떻게 알아?”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오고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할 무렵.

“내가 좀 늦었지?”

수 갈래로 나뉜 통로 한군데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3대장이었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1시간이나 기다렸다고!”

“미안하군. 접선자가 제때 안 나타나서 말이야.”

태연하게 말하는 3대장이었지만 속내는 전혀 달랐다.

‘빌어먹을. 이 새끼들은 지하에 뭔 갈림길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놨어? 미로야?’

3대장은 사실 얼굴을 바꾼 지크였다.

이렇게 늦은 이유도 미로 같은 지하통로에서 길을 잃고 헤맸기 때문.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도 꽤나 갑작스러웠다.

그도 통로를 나오다가 조직원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으니.

‘다행히 정체가 들키진 않은 모양이야. 날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걸 보면.’

얼핏 들어보니 자신을 3대장이라 부르는 그들이다.

갑작스럽게 연기하는 상황이었지만 우선 당장은 3대장인 척하면서 정보를 뽑아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을 보는 시선이 어째 곱지만은 않다.

“왜 그런 눈으로 봐?”

“3대장. 목소리가 좀 변한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었어?”

“일은 무슨. 약간 감기에 콜록, 걸린 것뿐이야. 어흠!”

“…….”

나름의 연기를 선보인 지크였지만, 눈치 빠른 놈들의 눈을 속이기엔 다소 어설픈 감이 있었다.

“넌 누구냐? 왜 3대장 행세를 하는 거지?”

“들켰어? 뭐, 상관없나?”

이렇게 빨리 들킬 줄 몰랐던 지크가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변장이고 뭐고 그냥 돌아다니는 건데. 괜히 스크롤만 낭비했네.”

아깝다는 표정을 짓는 지크를 세 사람이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전혀 긴장하는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누구냐고 물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마법을 풀어라.”

세 사람의 로브 자락이 펄럭인다.

통로가 온통 마력으로 가득 찼다.

눈빛엔 살기로 번들거린다.

일반인이라면 그 눈빛에 기가 죽었을 테고, 마법사라면 마력의 크기에 짓눌려 벌벌 떨었을 테지만, 지크는 일반인도, 마법사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네. 이렇게 된 이상 정공법을 택하는 수밖에.”

시스템의 축복을 받은 각성자였다.

츠츠츠츳-

지크의 손아귀에서 새하얀 빛이 생성됐다.

길게 뻗어나간 빛은 검의 형상을 이루었다.

“저, 저건…….”

“오러 블레이드……?”

오러 유저는 일정 경지에 이르렀을 때 무기에 오러를 주입할 수 있다.

하지만 검신에 오러를 씌우는 것과 오러로 이루어진 순수한 검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난이도에서 차원이 달랐다.

그렇기에 오러 유저는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들에게 오러 마스터라는 칭호를 붙인다.

“네놈…… 오러 마스터였나?”

“그래서 우리 마력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거군.”

놀라던 암살자들이 이내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지금은 입가에 비웃음마저 걸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오러 유저를 깔보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지크를 보며 조롱을 아끼지 않는다.

“마법에 재능이 없어서 칼밥이나 먹는 떨거지가 여기 있었군.”

“오러 유저 주제에 감히 마법사에게 덤빌 생각을 하다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래도 마법사를 상대해 본 적이 없는 모양이야.”

“그럼 가르쳐줘야겠군. 7서클 마법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상대를 겁주기 위해 서클을 밝힌 거겠지만 지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세 사람의 가슴에 일곱 개의 마나 고리가 있음을.

‘마흔도 안 돼 보이는데 벌써 7서클이라니. 과연 행동대장을 맡을만해.’

작게나마 상대를 칭찬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상대의 위협에 겁을 먹지도, 위축되지도 않았다.

상대가 마법사인 이상, 그저 자신의 먹잇감일 뿐이다.

“어디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덤벼봐. 위대한 마법사님들아.”

* * *

검은 달의 조직도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가장 높은 곳에 수장이 있고, 그 아래로 네 명의 행동대장이 임무를 받는다.

행동대장은 점조직으로 이뤄진 조직원들에게 개별적으로 명령을 내린다.

그것이 전부다.

같은 조직원이라도 필요 이상의 정보를 주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검은 달의 조직원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조직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죽이라기에 죽이고, 움직이라기에 움직일 뿐이었다.

쓸만한 정보는 오직 행동대장만이 알 따름이었다.

행동대장은 내로라하는 7서클의 강자로 이루어졌으니 자격이야 충분하다.

하지만.

‘고작 오러 마스터한테 3대장이 당했다고?’

남아 있는 행동대장들은 오러 블레이드를 만드는 상대방을 보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건 1대장인 존 휠러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도 7서클 마법사를 이기긴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된 거지?’

물론 상급 오러 마스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오망성이라 불리는 그랜드 오러 마스터라면 두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저 녀석은 오망성이 아니지 않은가?

‘오망성이 이런 별 볼 일 없는 왕국에 있을 리가 없지.’

데칸은 5대 왕국 중 가장 세력이 약한 왕국.

지나가다가 우연히 오망성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거기다 오러 유저보다 마법이 더 발달한 왕국의 특성상 괜찮은 오러 마스터를 만나기도 어렵고.

‘기껏해야 하급, 또는 중급 수준의 오러 마스터겠지.’

그런 녀석이 3대장을 죽이고 그의 모습으로 위장을 하다니.

정체는 몰라도 살려둘 수야 없다.

하지만 상대는 아직 상황 파악이 덜된 모양이다.

“어디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덤벼봐. 위대한 마법사님들아.”

‘같잖은 도발이군. 아마 방심을 끌어내려는 수작이겠지.’

이쪽은 7서클 마법사 셋, 저쪽은 중급으로 추정되는 오러 마스터 한 명.

누가 봐도 이쪽이 유리한 상황.

그런 마당이었으니 같잖은 도발이라도 던진 것이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목숨을 연명하기 힘들 테니까.

‘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우선은 마비 마법을 걸어 팔다리를 못 쓰게 만든 뒤 불 마법으로 고문할 작정이다.

3대장이 가지고 갔던 물건을 돌려받아야 하니까.

1대장인 존 휠러가 슬쩍 2대장, 4대장과 눈빛을 교환했다.

-죽이진 말고 고문한다.

-안 그래도 그럴 작정이었어.

-팔다리 정도만 끊어버리자고.

침묵 속에서 암묵적으로 합의한 세 사람이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릴 때였다.

‘어……?’

‘어라……?’

‘이게 무슨?!’

셋은 하나같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팡이에 모였던 마력이 미증유의 힘으로 증발해 버렸으니까.

“표정들이 볼만하군. 팝콘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네놈, 무슨 짓을……!”

“내가 뭘 어쨌다고? 난 여기 가만히 있었는데?”

“…….”

모르는 척 능청 떠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지만 눈치껏 알 수 있었다.

마력이 모이지 않도록 상대가 어떤 수작을 부렸음을.

“그건 그렇고 내가 시간이 없어서 본론부터 말할게. 너희들 수장 어디 있어?”

“미친 새끼냐? 때려죽여도 그건 말할 수 없…… 커억!”

4대장의 심장에 오러로 만들어진 검이 박혔다.

철퍼덕하고 쓰러지기 무섭게 섬뜩한 목소리가 울린다.

“친구 따라갈 사람?”

“…….”

“말 안 하면 둘 다 죽인다?”

1대장과 2대장이 서로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장의 위치는 알려주지 말자고 결의하듯.

그 눈빛을 읽었는지 상대방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간부급이라 그런지 충성도가 높네. 어떡하지?”

고민하는 상대가 아!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럼 이렇게 하자. 수장의 위치를 먼저 말하는 사람은 살려줄게. 어때?”

“…….”

“…….”

약속만 지킨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제의.

그래서였을까?

존 휠러의 입술이 달싹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