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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44화 (44/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44화

“X까라.”

존 휠러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지크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수장의 위치를 말하면 살려준다고? 바보도 아니고 우리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설사 믿는다고 해도 우리 중에 말할 사람은 없을 거다. 마나의 서약이 걸려 있으니까.”

“서약이 걸려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 이 기회에 목숨이라도 건져보는 건 어때?”

“아까도 말했지만, X까.”

지크의 권유에도 1대장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옆에 있던 2대장도 마찬가지.

‘이렇게 되면 고문하는 수밖에 없나?’

하지만 쉽게 입을 열진 않으리라.

직위가 높은 만큼 수장에 대한 충성도도 남달라 보였으니까.

‘어떻게 입을 열게 만들지?’

지크가 고민하는 와중에도, 1대장과 2대장은 여러 차례 시도해 보고 있었다.

마법으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만 두 사람의 일그러진 얼굴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마력이 안 모이는 거지?’

‘구속구를 채우지도 않고 마력을 차단하다니…… 이런 기술이 있다고는 듣도 보도 못했어.’

마력을 차단하는 방법 중 가장 흔한 것은 바로 구속구였다.

마나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 ‘아크니움’이라는 광물로 수갑 형태의 구속구나, 족쇄 등을 만든다.

왕실 지하 감옥에 설치된 구속 철창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또 다른 마나 차단 방법으론 ‘디스펠’이라는 마법이 있다.

9서클의 대마법사만 구사할 수 있는 기술로, 무영창과 동급으로 취급된다.

‘설마…… 저 녀석이 9서클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9서클이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행동대장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크가 중얼거렸다.

“이제 얼굴을 숨길 이유는 없으려나?”

그러면서 얼굴에 걸린 마법을 지운다.

이윽고 드러난 앳된 소년의 모습.

행동대장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놀랐다.

“너, 너는!”

“맥러플린의 사공자?”

각자 맡은 임무는 달랐지만 서로의 임무 정도는 공유하고 있는 행동대장들이다.

그렇기에 3대장이 지크 맥러플린으로 위장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 대상이 눈앞에 있을 줄은 몰랐지만.

“네놈이 여긴 어떻게…….”

“아니, 그보다 어떻게 오러를…….”

마법과 오러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게 기본 상식.

그런데 6서클로 알려진 마법 명가의 사공자가 보란 듯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고 있다.

혼란스러운 게 당연했다.

당사자인 지크는 태연했지만.

“뭐 이런 걸 가지고 놀라? 내가 오러를 쓰는 게 이상해?”

“내가 알기로 넌 6서클이라 들었는데…….”

“어떻게 마법사가 오러를…….”

지크로선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아공간을 열 뿐.

“헛?”

“그, 그건!”

지크가 작은 상자를 꺼내 들자 행동대장들의 눈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꺼낸 물건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아, 아공간을 쓰다니!”

“서, 설마 그분에게 배운 건가?”

두 사람의 반응에 지크가 눈을 흘겼다.

“그분? 누구를 말하는 거지?”

“…….”

존 휠러는 실수했다는 듯 뒤늦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지크의 귀에 들어온바.

지크가 집요하게 물었다.

“나처럼 아공간을 쓰는 존재가 있나? 너는 알고 있는 거지? 1대장.”

“…….”

존 휠러는 끝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수장의 위치도 발설하지 않았는데 이런 거에 입을 열 리가 없었다.

“뭐 그건 차차 알아보면 되고, 그보다 이 물건, 너희에게 중요한 거지?”

지크가 작은 상자를 흔들 때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요리조리 따라온다.

“이게 뭔데 중요한 거지?”

“…….”

“혹시 위험한 거야?”

“…….”

“나 지금 누구랑 얘기하냐?”

한탄하듯 내뱉는 지크였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침묵은 곧 긍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달칵-

상자를 열어 약병을 꺼냈다.

출렁이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썩 안전해 보이진 않는다.

마개를 뽑자 뾱 소리가 난다.

“이게 위험한지 아닌지는 먹여보면 알겠지?”

“뭐? 자, 잠깐!”

지크는 기습적으로 2대장의 턱을 잡아 약물을 들이부었다.

한 모금도 안 될 정도의 소량만.

많이 붓진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효과를 보기엔 충분했다.

“끄윽…… 커얽…… 허으윽!”

강제로 약물을 복용한 2대장이 바닥에 드러누워 자기 가슴을 퍽퍽 두들겼다.

호흡곤란이라도 온 듯한 증세.

그 모습을 존 휠러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온 얼굴에 핏줄이 돋아나는 게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뭔가 했더니 독약이었네.”

지크가 움직임을 멈춘 2대장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예상대로 위험한 물건이 맞았다.

“자, 그럼.”

지크의 시선이 남아 있는 1대장에게 향했다.

“원하는 정보를 말할래, 아니면 이거 다 마실래?”

존 휠러가 경직된 얼굴로 꼴깍 침을 삼켰다.

* * *

검은 달에는 암묵적인 룰 하나가 있다.

바로 임무를 제외한 그 어떤 정보도 발설하지 말 것.

그 대상이 함께 일하는 동료라 할지라도.

행동대장들이 수장의 이름을 모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는데 왜 아직도 보고가 없는 거야?’

검은 달의 수장, 말록 피어스는 마력석으로 구동되는 탁상시계를 쳐다봤다.

행동대장들의 보고가 들어와야 할 시간이 이미 지났다.

행동대장과 연결된 통신구도 지금만큼은 잠잠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마냥 기다릴 순 없었기에 직접 연락해 봤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받지 않는다.

1대장부터 4대장까지 전부 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일이 돌아가는 낌새가 심상치 않다.

말록은 서랍에서 다른 통신구를 꺼냈다.

자신의 윗선과 연결되는 통신구였다.

세 번 두드리자 불빛이 점멸하며 상대방과 연결됐다.

-무슨 일이냐?

“발루두크 님. 늦은 시각에 죄송합니다만 급히 보고드려야 할 일이 생겨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이냐?

“별안간 행동대장들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마나의 서약은?

“물론 걸어놓았습니다. 따라서 배신의 가능성은 없습니다.”

-…….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 여겼는지 발루두크가 침묵을 지켰다.

“어쩌면 좋을까요? 녀석들을 찾을 방법도 없는데…….”

-녹스가 전달한 독약은 어디 있지?

“3대장에게 건네줬습니다. 아마 지금쯤 접선인에게 전달했을 겁니다.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요.”

-접선인의 이름이 코렐 쉐도우라고 했나?

“예. 맞습니다. 브라이언트 가문에서 백작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궁정 마법사단의 실세인 지크 맥러플린의 신분으로 위장할 계획이고요.”

-누구로 위장하든 간에 그 독약부터 찾아야 한다. 약의 출처가 밝혀지면 곤란해.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도 알겠군. 만약 이번 일이 어그러지면 네 자리는 새로운 수장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물론 너란 존재는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고. 알아들었느냐?

“예, 며,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통신을 끊는 즉시 나와 사용한 통신구는 파기해라. 새로운 통신구를 전해줄 때까지.

“아, 알겠습니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니, 대화라기보단 일방적인 협박에 가까웠다.

약병을 되찾지 못하면 죽을 거라는 협박.

“빌어먹을. 통신구를 파기하라니. 설마 이제 와서 꼬리를 자르겠다는 건 아니겠지?”

불길함을 느꼈지만, 원체 철두철미한 발루두크였기에 그러려니 생각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건 자신도 느꼈으니까.

“7서클이나 되는 놈들이 당했을 리는 없고. 대체 어디서 뭐 하는 거야?”

말록은 투덜거리며 발루두크의 통신구에 강한 마력을 주입했다.

파지직-

하나를 고장 내고 이참에 다른 통신구까지 고장 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알아서 뒷정리하는 말록이었다.

“이 새끼들, 돌아오기만 해봐라. 아주 반 죽여 버려야지.”

답답한 상황에 말록이 인상을 쓰는 그때였다.

끼이익-

방 밖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인적이 드문 오두막을 거처로 삼고 있는 말록이었다.

그런 곳에 누군가 말없이 나타났다?

말록의 눈에 경계가 어리는 것은 당연했다.

스윽-

테이블 옆에 기대놓았던 지팡이를 집어 든 말록이 문을 노려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머릿속에 술식도 이미 짜놓은 상황.

만약 모르는 얼굴이라면 바로 마법을 사용해 죽여 버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끼익-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외부인이 아니었다.

익히 아는 얼굴.

다름 아닌 1대장 존 휠러였다.

수장의 맥이 탁 풀린다.

동시에 분노가 치솟는다.

“이 새끼, 왜 그동안 연락도 안 받…….”

순간 존 휠러 뒤에 있는 남자를 본 말록이 놓았던 긴장의 끈을 붙잡았다.

존의 뒤에 바짝 붙어 있는 상대는 15세 정도 되는 소년이었다.

‘저놈은…… 지크 맥러플린?’

데칸의 마법 명가 맥러플린 공작가의 사공자.

궁정 마법사단의 실세이자 6서클 마법사로, 원래는 마법적 재능이 없는 둔재로 알려졌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는 게 증명된 상태다.

그런 지크 맥러플린을 꿰어내 코렐 쉐도우가 위장할 계획이었고.

말록이 아는 정보는 딱 그 정도였다.

더 이상 자세한 정보는 알 필요가 없다.

직접 대면하거나 엮일 일이 없는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녀석이 형상 변형 마법을 쓰지 않은, 진짜 지크 맥러플린이라면…….’

눈앞에 1대장은 놈에게 협박당하는 상태일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곳에 같이 찾아올 리가 없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눈치를 보고 있는 1대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 개새끼가 감히 쥐새끼를 데려와?”

열받은 말록의 지팡이 끝에서 어둠의 창이 쏘아졌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에 마법의 발동은 순식간이었다.

푸욱!

“커어억!”

어둠이 심장을 파고들자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온다.

비명을 지른 사람은 지크가 아닌, 존 휠러였다.

털썩-

꼬리를 달고 온 1대장을 노린 일격으로 보였지만 실은 그 뒤의 지크까지도 염두에 둔 말록이었다.

하지만.

“호오?”

의도를 눈치챈 지크는 이미 범위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반응해서 피할 줄이야. 몸놀림이 마법사답지 않군.”

“칭찬은 됐고, 네가 검은 달의 수장이냐?”

“허허, 이 맹랑한 놈 좀 보게.”

“수장이야, 아니야? 대답해.”

지크의 황당한 물음에 말록은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맞다면? 뭐 어쩔 거냐?”

“내가 몇 가지 물어볼 건데 협조 좀 해줘야겠어.”

“이거 소문과 달리 단단히 미친놈이로구나.”

말록은 지크를 보며 비웃었다.

흡사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은 8서클이다.

상대는 고작 6서클이었고.

“질문은 내가 한다, 애송아.”

지팡이를 든 말록이 곧장 패럴라이즈를 사용했다.

온몸이 굳어졌는지 움직이지 않는 지크를 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뭐하냐?”

“……으응?”

말록의 얼굴에 당황이 번졌다.

움직이지 말아야 할 상대가 목덜미를 긁적이며 말하고 있었으니까.

“질문한다더니 대뜸 마비 마법을 쓰고 있어. 바보냐?”

“이, 이 새끼가…….”

마법이 안 먹힌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좋다.

이 자리에서 녀석을 죽여도 아무런 상관없었으니까.

‘계획이 좀 틀어지겠지만 나를 본 이상 살려둘 수 없다.’

마비시킨 뒤 고문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말록의 지팡이 끝에서 마력이 모이더니 지크를 겨눴다.

“버스트 오브 블러드(Burst of blood).”

한순간에 상대방 신체의 혈관을 건드려 폭죽처럼 피를 터트리는 흑마법.

발동 시간도 빨라 기습적으로 적중시키기엔 제격이었다.

적중당하는 즉시 죽었다고 봐야 하는 금기의 마법.

그걸 알기에 말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곧 있으면 지크의 머리가 폭죽처럼 터질 테니까.

그러나.

“뭐해?”

“……?”

3초, 5초, 10초.

아니, 몇 초를 기다려도 지크는 터지지 않았다.

콧구멍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부, 분명 적중시켰는데……?’

애써 당황을 감추고 있던 말록을 향해 지크가 씨익 웃었다.

“무슨 마법을 쓰려고 한 거야? 약간 생소한 마법이었던 거 같은데, 흑마법이야?”

“…….”

“뭐, 써보면 알겠지.”

지크가 별안간 손을 뻗어 말록을 겨냥했다.

약간 아래쪽으로.

“방출.”

순간, 말록의 눈자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퍼억!

자신의 소중한 부위가 폭죽처럼 터져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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