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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50화 (50/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50화

왕실에서 암살한다기에 거물급의 인사 정도로 생각했건만 국왕이라니.

‘하긴 국왕 정도는 되어야 암살에 의미가 있겠지.’

삼왕자를 이용해 내부에 첩자들을 들인 것도.

브라이언트 백작을 붙잡아 궁정 마법사단에 메리를 입단시킨 것도.

코렐이 궁정 마법사단의 실세로 변장하려던 것도.

전부 국왕을 암살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요리사가 첩자라고 했지? 그 말은…….’

음식에 넣어 국왕을 독살하려는 게 분명하다.

‘더 물어볼 것도 없겠군. 이 이상 물어보면 의심 살 게 뻔하고.’

지금도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약간 쫄리는 지크였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너 님. 궁금증이 한결 해소됐습니다.”

“그래. 그리고 이건 요리사와 약속한 시각과 장소인데…….”

지크는 가너로부터 정확한 실행 시기를 들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되니 요리사에게 확실하게 물건을 전달하도록.”

“알겠습니다. 꼭 그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네가 부리는 메리라는 년을 쓰고 싶은데 말이야.”

‘메리를?’

지크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단박에 답했다.

“예,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내가 그것까지 말해야 하나?”

하지만 가너는 계속되는 질문이 불쾌했던 모양이다.

지크는 즉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단순히 궁금해서…….”

“궁금하다고 그렇게 물어보면 네 명줄만 줄어들어. 이 바닥에 오래 있으려면 과묵해야 하는 거 몰라?”

“죄송합니다.”

멋모르는 후배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은 가너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하…… 아무리 연기라지만 저딴 첩자한테 굽실거려야 한다니. 기분 나쁘네.’

지크는 첩자가 사라진 골목길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잡을 수 있었지만 잡지 않았다.

고문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면 분명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이 술술 정보를 불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레고르처럼 발설하기도 전에 죽는다면?

오히려 단서를 놓치는 셈이 된다.

일단은 같은 편인 척 연기하며 속아주는 게 최선이다.

‘그나저나 메리를 달라고? 메리랑 대체 뭘 하려고?’

상념에 잠긴 지크였지만 혼자서 생각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엔 현장을 잡는 수밖에 없나?’

우선은 메리에게 언질을 줘야 한다.

지크의 발걸음이 골목 밖으로 향했다.

* * *

니콜라스 스튜어트는 데칸에서 유능한 궁중 요리사다.

국왕의 식사를 전담하는 그는 끼니마다 극찬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얼마 전에 바뀌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진짜 니콜라스가 죽었다는 것 또한.

‘형상 변형 스크롤은 정말이지 유용하군. 완전히 다른 사람이 궁정에 출근했는데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잖아?’

엄밀히 말하면 껍데기는 알아본다.

알비츠의 첩자라는 알맹이를 못 알아볼 뿐.

‘스크롤을 개발한 선구자에게 상이라도 줘야 할 판이야. 이렇게 쉽게 잠입할 수 있다니. 흐흐.’

니콜라스로 위장한 첩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했다.

아직 음식에 독약은 넣지 않았다.

애당초 독약을 가지고 들어올 수가 없다.

왕실에선 출입하는 모두에게 철저한 검문을 벌이기에.

그건 요리사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궁정 마법사단의 실세가 필요한 거지. 검증된 단원이라면 이렇게 빡빡하게 검문하지 않을 테니까.’

자신은 요리사인 척 행세하며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때가 되면 코렐 쉐도우가 단원 행세를 하며 독약을 배달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국왕의 질긴 목숨도 이젠 끝이다.’

첩자가 미소를 지으며 요리에 열을 올리는 그때였다.

“조리장님. 요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고개를 돌리니 부주방장이 의아한 듯 물어본다.

“왜?”

“그게…… 요즘 음식 맛이 달라지신 것 같아서요. 전하께서도 이에 대해 의문을 표하시고요.”

“그냥 피곤해서 그래. 쓸데없는 걱정 말고 가서 양파나 더 깎아.”

“아… 알겠습니다.”

주방에서 매일 얼굴을 대하는 부주방장이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얼굴은 물론 목소리, 말투, 과거, 주변 관계 역시 전부 파악하고 흉내 내고 있는 그였기에.

다만 요리 실력만큼은 완벽하게 따라 할 수가 없었다.

‘뭐, 상관없어. 의심을 받는 일도 얼마 안 남았다. 국왕만 죽이면 이 짓도 끝이야.’

그때 품에 감춰놓았던 통신구로 신호가 왔다.

잠시 자리를 이동한 니콜라스가 통신구를 받자, 또 다른 첩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때가 됐다. 시간은 오늘 해가 질 무렵. 그때 국왕을 독살한다.

“알겠습니다. 독약은요?”

-안 그래도 말해놨다. 코렐이 지크의 모습으로 전달하러 올 것이다. 지금 가서 받아오면 된다. 통신구는 끊은 즉시 파기하고.

“예.”

이윽고 꺼진 통신구를 니콜라스가 박살 내버렸다.

오늘이 바로 디데이다.

국왕이 서거한 날로 길이길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후후후. 쉐인 국왕은 저녁 식사 이후로 죽는다.’

비죽 웃던 니콜라스는 약속 시간에 맞춰서 골목으로 향했다.

마침 늦지 않게 기다리고 있던 코렐의 모습이 보인다.

지크 맥러플린이라는 소년으로 위장을 한.

“물건은?”

“여기 있습니다.”

지크가 건네는 물건을 받아든 니콜라스가 잠시 확인했다.

출렁거리는 액체의 빛깔을 보면 녹스가 만든 것이 확실하다.

보기엔 색과 향이 있지만, 음식에 스며들면 곧바로 무색무취로 변하는 독약이었다.

짙은 웃음을 지은 니콜라스가 말없이 돌아섰다.

약병을 품에 간직한 채 그대로 주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국왕의 마지막 식사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최고급 쇠고기가 들어간 뜨끈뜨끈한 스튜가 완성됐다.

“주방장님! 식사 준비는 되셨습니까?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네. 금방 가겠네.”

시녀가 나가자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린 니콜라스가 품에서 독약을 꺼냈다.

뾱- 꼴꼴꼴-

마개를 열고 스튜에 독을 모조리 부었다.

색도, 향도 변하지 않는 게 감쪽같다.

먹어보기 전에는 독이 들어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하리라.

‘아니, 먹어도 독이라는 걸 모르겠지. 12시간 뒤에나 효과가 나타나니까.’

사람이 먹으면 즉시 효과가 나타나지만 음식에 넣으면 극도로 늦춰지는 약이다.

굳이 요리사로 위장한 건 이 때문이었다.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서.

‘국왕이 죽는 걸 못 보고 가는 게 아쉽군.’

아직 먹진 않았지만, 니콜라스는 국왕을 이미 죽은 사람 취급했다.

조금 있으면 자신이 내민 스튜를 멋모르고 맛있게 처먹을 테니까.

‘알비츠 왕국의 영광을 위하여.’

씩 웃던 니콜라스가 접시를 들고 직접 국왕에게 향했다.

궁전 식당에 도착한 니콜라스는 마침 앉아 있는 국왕을 보았다.

“최고급 스튜입니다. 한 번 맛보시지요.”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지 평소보다 무거운 얼굴로 앉아 있는 국왕이었지만 아무래도 좋다.

곧 있으면 이걸 먹고 죽게 될 테니까.

하지만 국왕은 어쩐지 입도 대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은 웬일로 국왕의 호위병들이 가까이 접근한다.

그러더니.

턱-!

도망가지 못하게 자신의 양팔을 붙잡는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니콜라스 스튜어트. 아니, 니콜라스로 위장한 알비츠의 자객이라고 해야 하나?”

“……!!!”

속내를 들키자 순간적으로 놀란 니콜라스지만 지금 상황에선 당황하는 게 당연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 무슨 소리입니까, 전하! 자객이라니요?!”

“연기는 이제 집어치우지. 네놈이 날 독살하려는 걸 모를 줄 알았더냐?”

국왕이 그 어느 때보다 위엄 어린 눈빛으로 니콜라스를 노려봤다.

니콜라스로선 당연히 시치미를 뗄 수밖에 없는 상황.

“말도 안 됩니다! 전하! 제가 무슨 이유로 전하를…….”

국왕은 잡아떼는 니콜라스를 향해 뭔가를 들어 보였다.

그것은 나비 모양의 금색 브로치였다.

-때가 됐다. 시간은 오늘 해가 질 무렵. 그때 국왕을 독살한다.

-알겠습니다. 독약은요?

-안 그래도 말해놨다. 코렐이 지크의 모습으로 전달하러 올 것이다. 지금 가서 받아오면 된다. 통신구는 끊은 즉시 파기하고.

-예.

‘아, 아니!?’

브로치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제 도청당했는지 첩자와의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다.

니콜라스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증거가 명백한데 계속 시치미 뗄 생각이냐?”

“…….”

“스튜에 독약을 넣어 날 독살하려고 했지?”

“저, 전하! 왜 이러십니까! 저는 평범한 궁중 주방장일 뿐입니다. 독살이라니요!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먹을 수 있겠느냐?”

“예? 뭐를…….”

국왕이 독이 담긴 스튜를 가리켰다.

“저것 말이다. 먹을 수 있겠느냐?”

“…….”

“먹고 하루가 지나도록 멀쩡하다면 내 너에 대한 의심을 지우도록 하마.”

멀쩡할 리가 없다.

극소량만 섭취해도 12시간 후엔 구멍이란 구멍에 온갖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죽는 극독이 들어 있었으니까.

“먹지 못하는군.”

“…….”

“저 쓰레기를 감옥으로 이송하라.”

“예, 전하!”

호위병들이 그 자리에서 니콜라스를 끌고 사라졌다.

끌려가는 와중에도 어떻게 암살이 들통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지만, 니콜라스는 몰랐다.

모든 것이 독약을 건네준 지크가 꾸민 일임을.

“허허, 설마설마했는데 정말이었다니.”

쉐인 국왕이 독약이 든 스튜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크가 건네준 나비 브로치가 아니었다면 암살 시도가 있을 거라는 말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지크 맥러플린이라고 했나? 그 아이에게 신세를 졌군.”

하마터면 죽을 뻔한 쉐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아… 떨려.’

메리가 초조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렸다.

본래의 미모는 형상 변형 마법으로 가린 상태였다.

‘대체 무슨 일을 시키려고 나를 써먹겠다고 한 걸까?’

몇 시간 전.

지크로부터 연락을 받은 그녀는 첩자와 접촉했다는 말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일이 지크 공자님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기쁨도 잠시.

첩자가 자신을 원한다는 말에 순간 멍한 표정이 되어야 했다.

‘국왕 암살 말고, 다른 뭔가를 꾸미는 걸까?’

뭔지 몰라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니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협조하는 척을 해야 놈들의 꿍꿍이를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지크 공자님의 기대를 저버리면 안 돼. 나와, 아버지를, 우리 가문을 구해주신 분이니까.’

마나의 서약 때문에 그를 돕는 것이 아니었다.

은혜를 입었기에 자발적으로 돕는 것이었다.

‘긴장할 것 없어. 연기라면 자신 있잖아?’

곧 있으면 첩자가 접근해 뭔가를 지시할 거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메리 브라이언트?”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메리가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사내가 마치 자신을 안다는 듯 다가오고 있었다.

“제시 가너라고 한다. 코렐 쉐도우에겐 자초지종을 들었나?”

‘코렐 쉐도우라면…… 지크 공자님을 말하는 거야.’

하지만 메리는 코렐의 이름을 모르는 상태다.

“그, 그게 누구죠?”

“누구냐니. 너를 납치한 남자 말이다.”

“아아, 네. 드, 들었어요.”

메리가 약간의 긴장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그러는 편이 녀석에게도 자연스럽게 보이리라.

“그렇담 이야기가 빠르겠군. 너는 나를 도와서 할 일이 있다. 시키는 일만 잘하면 코렐에게 브라이언트 백작을 풀어달라고 말해보지.”

‘이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풀려난 걸 모르고 있어.’

메리는 침착한 어조로 되물었다.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하죠……?”

가너가 잠시 주위를 살피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부터 극독의 선구자를 빼내려고 한다.”

“아.”

“너는 감옥 밖에서 감시를 맡아라. 할 일은 그것뿐이다.”

메리는 솔직히 놀랐다.

극독의 선구자를 빼낼 수 있다고 보는 건가?

왕궁 지하 감옥에는 수많은 간수와 병사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하지만 첩자는 그딴 건 문제가 아니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따라와라. 당장 작전을 수행해야 하니.”

메리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가너를 따라갔다.

첩자가 향한 곳은 왕궁의 지하 감옥 앞이었다.

건물을 엄폐 삼아 감옥을 감시하고 있던 그는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시간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걸 보니 뭔가를 기다리는 모양새.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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