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51화
쿠우우웅-!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난데없는 폭발음이 들렸다.
감옥 입구를 지키던 호위병들은 놀란 눈으로 소음이 발생한 쪽을 바라봤다.
그때, 가너가 기다렸다는 듯 골목 밖으로 튀어 나갔다.
“너희들!”
“아, 간수장님.”
‘간수장?’
제시 가너의 정체가 뭔가 했더니 감옥을 관리하는 간수장이었다.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느냐?”
“드, 들었습니다. 무슨 폭발음 같은걸…….”
“이러고 있지 말고 지금 당장 확인하러 가보거라! 여긴 나한테 맡기고!”
“아, 예에!”
호위병들은 부리나케 소음이 난 곳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혼자 남은 가너가 골목을 돌아보며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라는 뜻이었다.
“난 지금부터 선구자님을 구하러 간다. 너는 여기서 호위병들이 돌아오는지 감시하고 있어라. 만약 돌아오는 게 보이거든 지하를 향해 소리친 뒤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알겠느냐?”
“아아, 예…….”
“그럼 간다.”
그 말만 남긴 채 가너는 지하의 계단을 내려갔다.
메리가 그 뒷모습을 얼떨떨하게 바라봤다.
‘첩자의 정체가 지하 감옥을 총괄하는 간수장이었다니…….’
이러면 감옥에 갇힌 죄수 한 명 꺼내는 건 일도 아닐 거다.
지금도 미리 설치한 폭탄으로 호위병들의 시선을 돌리지 않았는가?
‘어떡하지? 지금 바로 지크 공자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메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돌발행동은 자제하는 게 좋아. 지크 공자님도 최대한 협조하는 척하라고 했잖아?’
일단은 시키는 일만 하자.
그렇게 생각한 메리가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감시했다.
* * *
탁탁탁-
어둡고 깊숙한 왕궁의 지하 감옥.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 가너는 안에 있던 간수들을 마주쳤다.
“간수장님. 여기는 무슨 일로…… 커억!”
“어억!”
지체 없이 목에 칼을 박아넣자 간수들이 스르르 허물어진다.
대처할 틈도 없는 불의의 기습.
순식간에 두 사람을 죽인 가너가 추가로 간수들을 만났다.
푹! 푹!
“커거!”
“크억!”
기습적으로 목을 찌르니 백이면 백 대처하지 못하고 죽는다.
간수장의 얼굴이라 안심하고 있던 것도 한몫했으리라.
‘쉽네.’
그렇게 늘어난 시체가 여섯을 넘었을 때.
비로소 극독의 선구자가 잡혀 있는 철창에 다다랐다.
“녹스 베노마이어 님.”
“누구냐?”
“발루두크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갇혀 있던 녹스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후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풀어드리겠습니다.”
열쇠로 감옥의 문을 연 가너가 추가로 구속구의 수갑까지 풀었다.
찰칵-!
양손이 자유로워진 녹스는 손목을 어루만지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구속구가 없는 이상 무서울 것은 없다.
“국왕은? 예정대로 죽였나?”
“모르겠습니다. 아직 소식을 듣진 못했습니다만…….”
“그렇다면 직접 확인하러 가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거리낄 것은 없으니까. 행여나 살아 있다면 처리하면 그만이고.”
대놓고 국왕을 죽이겠다는 자신감 있는 말투에 가너는 더할 나위 없는 든든함을 느꼈다.
그럴만한 게 녹스는 일인 군단이라 불리는 12인의 선구자다.
왕국 하나 정도는 씹어먹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다.
“가자.”
“예!”
녹스가 앞장서서 뛰었고 가너가 그 뒤를 따랐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한, 그들을 가로막을 장애물이란 이제 없었다.
‘그 별종만 아니라면 말이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녹스였지만, 워낙 강렬한 인상을 받은 탓에 떠올랐다.
자신의 독에도 중독되지 않던 그 괴물이.
‘녀석만 만나지 않는다면 두려울 것은 없다.’
빠르게 지상으로 올라간 녹스는 이내 한 여자를 보았다.
같은 편이었는지 뒤따라오던 간수장이 말을 붙인다.
“메리. 호위병들은?”
“아직 안 왔어요.”
그때였다.
“저기다!”
웅성거림이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백여 명이 넘는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기가 질릴만한 숫자였지만 녹스는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끼며 앞으로 나섰다.
“아마도 내 탈옥 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고작 저 숫자로…….”
자신감 있게 걷던 녹스가 별안간 우뚝 멈췄다.
병사들이 마법의 위력을 반감시키는 아크니움 갑옷을 입어서가 아니었다.
수십이 넘는 궁정 마법사단이 포진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들의 중심에 데칸 왕국의 유일한 9서클이라 칭해지는 비그스란드 달프레드가 있어서도 아니었고.
그저, 앞선에서 달려오고 있는 사람 중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저놈은…… 그 괴물?’
녹스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본 제시 가너가 내심 놀랐다.
‘뭐, 뭐야? 선구자님이 저까짓 병력에 겁먹었다고?’
고작해야 오러 유저 백여 명과 궁정 마법사 몇 명이 섞여 있는 부대일 뿐이다.
녹스의 광범위 독 한 방에 수십 명이 죽어 나자빠질 것이다.
천외천의 경지에 오른 녹스에게 있어서 숫자는 의미 없으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녹스는 뒷걸음질을 넘어 아예 몸을 돌리고 있었다.
“간수장. 퇴로는 마련해 뒀겠지?”
“예? 예.”
“얼른 가자.”
“하, 하지만 저놈들을 상대 안 하실 건지…….”
“그럴 시간 없다! 얼른 안내나 해!”
“아아, 예!”
윽박에 못 이긴 가너는 의아함을 접어두고 서둘러 앞장섰다.
그 뒤를 녹스와 메리가 따랐다.
그리고 뒤로는.
“죄인이 도망간다! 놓치지 마라!”
달프레드와 병사들이 사력을 다해 쫓고 있었다.
* * *
“허억, 헉.”
“얼른 따라오너라! 한심한 년 같으니!”
“죄, 죄송합니다.”
뒤처지는 메리를 보며 다그친 가너가 선구자에겐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불편하신 곳은…….”
“내 걱정은 말고 길이나 똑바로 안내하거라.”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거의 다 왔습니다!”
녹스 일행은 축축하고 더러운 하수도를 걷고 있었다.
만일을 대비해 가너가 사전에 봐둔 퇴로였다.
“이쪽으로 쭉 가면 출구가 나올 겁니다. 저기, 어스름한 빛이 보이는 걸 보니 거의 다 온 모양입니다.”
잠시 후, 세 사람이 긴 걸음 끝에 하수도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펼쳐진 노을이 장관이었다.
시원하게 부는 하천의 바깥공기도 반갑기 그지없다.
“휘유, 이럴 때를 대비해 퇴로를 확보해두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런 것 같군.”
녹스는 주변 풍경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금 더럽긴 했지만 지하수로를 선택하길 잘했다.
쉽게 궁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등 뒤로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따라오지 않았고.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본국으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겠지.”
“그럼 저랑 함께 가시죠. 소개했는지 모르지만 제 이름은 제시 가너입니다. 알비츠의 첩자로, 동부 지방에 있는 발투락 마을에서 왔는데 아시는지……?”
“모른다. 알 필요도 없고.”
녹스의 시큰둥한 반응에 가너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름대로 빌붙기 위해 자신을 어필해 봤지만, 눈앞의 거물은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이었다.
“네놈은 이제 쓸모가 다 했다.”
“예?”
얼빠진 소리를 내기 무섭게.
“컥, 커어억!”
갑자기 가너가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바르르 전신을 떨면서 거품을 무는 것이 딱 봐도 독에 중독된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메리가 녹스를 쳐다봤고.
씨익-
녹스는 자신의 짓이 맞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제 손을 썼는지 손아귀에 녹색의 마력이 흐르고 있다.
“정체가 드러난 첩자는 의미가 없지.”
“컥, 꺼륵.”
반박할 여지도 없이 가너의 숨이 멎었다.
입에 거품을 잔뜩 물고서.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메리가 두려움에 떨었다.
가너 다음은 자신일 테니.
아니나 다를까, 녹스의 눈빛이 메리를 향한다.
“네년도 여기까지다.”
메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나 보다.
한참을 지나도 살아 있는 걸 보면.
“……?”
“…….”
당장 죽일 것처럼 굴던 녹스가 어쩐지 가만히 있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녹스의 정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마력이…… 흩어지고 있다?’
익숙한 기시감이 들었다.
전에도 겪어본 상황이다.
그리고 녹스는 그 상황이 언제였는지 떠올렸다.
‘골목에서 봤던…… 그 소년을 만났을 때와 똑같다.’
그 사실을 알아챈 순간.
녹스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또 만나네?”
자신을 엿 먹였던 그 소년이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 * *
‘휴, 타이밍이 좋아서 다행이네.’
여유로운 표정과 달리 지크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메리를 지키지 못할 뻔했다.
‘마나 흡수 범위 내에 들어왔기에 망정이지, 까딱했으면 메리도 독에 중독됐을 거야. 뭐, 중독됐어도 치유 스킬이 있으니 문제는 없었겠지만.’
지크가 여기까지 따라올 수 있었던 건 다름이 아니다.
최근에 얻은 ‘사냥꾼의 감각’ 스킬로 메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
물론 처음부터 놈들이 탈옥할 줄 알았던 건 아니다.
‘메리가 첩자와 함께 감옥에 들어가는 걸 보고서 눈치챘지. 녹스를 빼낼 계획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알자마자 지크는 아버지에게 알렸다.
모두를 동원하여 탈옥을 막아야 한다고.
수백의 근위병과 궁정 마법사단, 비그스란드 공작 등이 동원된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놈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 탓에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다.
‘사냥꾼의 감각이 있는 난 아니었지만.’
지크는 혼자서 추격을 이어갔다.
반경 280m의 모든 움직임을 읽는 터라 하수도를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결과, 이렇게 녹스를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다행이야. 늦게 않게 놈을 찾을 수 있어서. 국왕도 살릴 수 있었고.’
국왕이 살아 있는 이유 또한 지크 덕분이었다.
애초에 제라드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한 지크는 직접 현장을 잡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제라드와 함께 국왕 전하께 말씀드리기에 이르렀다.
물론 국왕은 궁정 요리사가 첩자로 변신한 가짜라는 사실을 쉬이 믿지 않았다.
‘나비 브로치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걸로 도청할 수 있었으니까.’
간신히 국왕을 설득한 결과, 요리사의 암살을 훌륭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
‘이제 이 새끼만 잡아서 다시 감옥에 처넣으면 돼.’
지크가 다가서자 녹스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당연하지만 마력을 터럭만큼도 끌어올리지 못하는 녹스였다.
지크 앞에선 고양이 앞에 쥐 꼴이나 다름없는 셈.
“왜 그렇게 쫄았어? 누가 때리기라도 한데?”
“그, 그럼 왜 다가오는 거냐?”
“그냥 나랑 같이 감옥에 다시 들어가자고. 집으로 돌아가야지. 응?”
“…….”
농락당했음에도 녹스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당황이 역력한 얼굴로 뒷걸음질만 칠 뿐.
“네놈… 진짜 정체가 뭐냐? 어떻게 내 마법을 차단하는 거지? 무슨 기술을 쓰고 있는 거냐?”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나?”
“……대답해 줄 생각이 없군.”
“너라면 대답하겠냐?”
어이없다는 듯 웃고 있는 그때였다.
[60m 지점에서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저 멀리서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왔다.
커다란 마력의 폭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