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53화 (53/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53화

저벅저벅-

지크는 기대 어린 마음으로 국왕을 따라갔다.

왕실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보물 창고.

오직 선대 국왕들만 드나들 수 있다는 이곳을, 최초로 가게 되었으니까.

‘기대되네. 어떤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할지.’

-흥! 그렇게 기대하진 마라. 이런 약소국의 보물창고라 해봐야 변변찮은 골동품만 잔뜩 있을 테니!

카르볼의 어조는 어쩐지 퉁명스러웠다.

뭔가에 삐진 듯한 목소리.

아무래도 자기 것보다 남의 보물창고에 더 기대하는 꼴이 보기 싫었나 보다.

‘하여간 이상한 쪽으로 자부심을 부린다니까?’

-뭐라고 한 거냐? 설마 내 욕한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빙긋 웃으며 대꾸해 준 지크가 이내 걸음을 멈췄다.

앞서가던 국왕이 석실 앞에서 멈췄다.

“이곳이 선대 국왕들이 진귀한 물건들만 모아놨다는 데칸의 보물 창고란다. 데칸의 자랑이기도 하지.”

“아. 그렇습니까?”

대충 대답한 게 티 났던 걸까?

“허허, 빨리 보고 싶은 게로구나. 알았다. 바로 보여주마.”

너털웃음을 터트린 국왕이 수정구슬에 손을 가져갔다.

-쉐인 필립 드 데칸. 확인되었습니다.

쿠그그긍.

석실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며 지크는 입을 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국왕 앞인데 너무 덤덤해하는 것보단 리액션을 섞어줘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어……?”

지크는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온갖 금은보화가 산처럼 쌓여 있을 줄 알았던 창고엔 달랑 몇 개의 물건뿐이었으니까.

“허허, 내가 처음 문을 열어봤을 때의 반응과 똑같구나. 왜?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 쌓여 있을 줄 알았더냐?”

“……솔직히 그랬습니다.”

“후후, 그렇게 돈이 많았다면 우리 왕국이 약소국 취급을 받지도 않았을 테지.”

씁쓸히 말하던 국왕은 들어오라고 손짓한 뒤 직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소개해 주었다.

“여기 있는 것들이 바로 선대 국왕들이 수십 대에 걸쳐서 남기신 물건들이란다. 아주 귀중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이곳에 보관하셨지. 그래봤자 몇 가지 없다만.”

“생각보다 많은데요?”

정말로 그랬다.

적어도 스무 개가 넘는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으니까.

“천천히 둘러보거라.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얘기하고.”

“얘기하면 주시는 건가요?”

“아무렴. 약속하지 않았느냐? 무엇을 고르든 한 가지는 반드시 가지고 나가게 해주마.”

그 말에 남몰래 입맛을 다신 지크가 물건들을 둘러봤다.

번쩍거리는 갑옷도 있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스태프, 날이 예리한 장검 또한 있었다.

‘이것들이 모두 선대 국왕이 썼던 물건들이란 말이지?’

적어도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물건들.

그럼에도 상태는 썩 괜찮다.

국왕들이 저마다 관리를 해온 건지는 몰라도.

‘어떤 게 좋을까…… 카르볼. 네 눈엔 뭐가 좋아 보여?’

-…….

‘카르볼?’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이 없다.

물건들에 혼을 빼놓았는지.

‘카르볼레아로스!’

-아, 불렀느냐?

‘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이 물건들이 그렇게 탐나?’

-크흠…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군.

‘그 정도라고?’

그냥 던져본 건데 진짜로 물건이 탐나서 혼을 빼놓고 있던 거였다.

‘여기 있는 물건들이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야?’

-몇 가지는 볼품없지만 몇 가지는 대단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지. 예를 들어서 저거.

카르볼이 가리킨 것은 황금이 박힌 거대한 방패였다.

-저 방패는 [오르기우스의 암막 방패]라고 한다. 대 마법 보호막이 걸려 있어서 어떤 암 속성 마법이든 튕겨낸다고 알려진 신성한 방패지.

‘그런 귀한 방패를 선대 국왕이 썼었다고? 약소국인 데칸 왕국의 국왕이?’

-자세한 건 모르지만 틀림없다. 방패 특유의 문양을 보면 오르기우스의 방패가 확실해.

‘잠깐만. 네가 알 정도면…… 적어도 3천 년은 된 물건이라는 거잖아?’

-그런 셈이지.

지크의 입이 함지막하게 벌어졌다.

효과도 효과지만 그렇게 오래된 물건이 이런 곳에 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갑옷 역시 3천 년 전의 물건으로, [성스러운 빛의 바람 갑옷]이라고 불린다. 어둠을 몰아내는 효과가 있어서 마족을 상대로 상당히 효율적인 갑옷이지.

‘아…….’

-그리고 이 창 또한…….

카르볼의 설명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마음에 드는지 물건에 완전히 심취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카르볼. 어째서인지 전부 마족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물건들이네?’

-음? 그러게 말이다? 아무래도 천마 대전이 일어났던 당시의 물건들을 주어온 것 같구나.

‘천마 대전?’

천족과 마족의 싸움이 3천 년 전에 일어났다는 건 역사책을 봐서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지금은 전설이나 허황된 소설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천족이나 마족을 보지 못했으니 그도 당연하리라.

‘하지만 산증인이 여기 있었네?’

증인이 있으니 믿지 않을 수 없는 노릇.

지크는 카르볼의 말에 고개를 주억였다.

‘오케이. 이것들이 천마 대전 때 사용한 물건들이라는 건 알겠고, 그럼 이 중에서 가장 좋은 건 뭐야?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뭘 가지는 게 좋겠어?’

-으음, 나라면…….

‘아니, 네 입장 말고, 내 입장에서 좋을 것 같은 물건 말이야.’

-으으으음, 인간에게 좋을 만한 물건이라…….

한참을 고민하던 카르볼이 이내 결론을 내렸다.

-저게 좋을 것 같구나.

‘저거? 반지?’

-그래. 저 반지.

카르볼이 가리킨 곳엔 은빛으로 반짝이는 반지가 있었다.

그냥 봐선 약혼반지처럼 보이는 물건이었지만 카르볼의 설명은 전혀 뜻밖이었다.

-[아드올리아스의 반지]. 마력을 무한하게 공급해 주는 반지다.

‘오오, 마력을?’

-한마디로 고농도로 응축된 최상급의 마력석이라고 보면 된다. 이게 있으면 마력석을 조달하느라 더는 힘들일 필요가 없지.

‘너도 이걸 매개로 9서클의 마법을 쓸 수 있고?’

-그렇다.

지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동안 마력석의 농도가 낮아서 매번 낮은 서클의 마법만 흡수해야 했던 지크였다.

고품질의 마력석을 조달하느라 애쓴 적도 많았고.

‘근데 이것만 있으면 한 방에 해결된다 이거지?’

이게 있으면 카르볼을 내세워서 9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상대로부터 마법을 흡수하지 않아도 먼저 쓸 수 있다는 소리였다.

‘네 추천이니까 믿어봐야지.’

지크는 고민 없이 반지를 들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국왕이 의외라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다른 좋은 것들도 많은데 왜 하필 그걸 골랐느냐?”

‘왜 저런 반응이지? 이것도 좋은 거 아닌가?’

카르볼의 설명을 들어보면 엄청 좋아 보였는데?

의아함이 들었지만 카르볼의 설명으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드올리아스의 반지는 특유의 마력 패턴을 입혀야지만 작동되는 반지다. 실상은 무한한 마력이 숨겨져 있지만, 겉보기에는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지. 그러니 국왕의 눈에는 평범한 반지로 보일 수밖에.

‘아…… 말하자면 주인만 쓸 수 있게 잠금이 걸려 있다는 거구나?’

-그렇다. 다른 이의 무분별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함이지.

‘카르볼, 넌 알아? 어떤 마력 패턴을 입혀야 사용할 수 있는지?’

-알지. 그러니까 고르라고 한 것 아니냐.

‘오케이. 그럼 너 믿고 이걸로 정한다?’

-그렇게 해라.

속으로 결정을 내린 지크였지만 침묵을 지키는 게 걸렸는지 국왕이 다시 한번 물었다.

“대답하기 어려우냐? 반지를 고른 이유가 뭔지?”

“어, 그게……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들고 다니기 편해 보여서…….”

“뭐라? 으하하하하핫!”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대소를 터트린 국왕이 이내 후회하지 말라는 눈빛을 지어 보였다.

“정말로 그걸로 하겠느냐? 한 번 고르면 번복할 수 없느니라.”

“이걸로 결정했어요. 남들 눈에 띄지도 않잖아요.”

“알았다. 네 뜻이 그렇다면 그걸로 하거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쉐인 국왕은 뭔가 더 챙겨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눈빛이었다.

그의 눈엔 지크가 고른 반지가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해 보였기에.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구나. 그것만 주기에는 내가 받은 빚이 너무도 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국왕이 이윽고 물건 하나를 들고 왔다.

“받거라. 선대 국왕께서 사용했던 스태프이니라.”

“예? 하지만 저는 이미 골랐는데…….”

“이것도 함께 가져가거라. 반지 하나만 주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지 않아서 말이다. 마법사인 너에게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니라.”

“가, 감사합니다. 전하.”

얼떨결에 스태프를 받아든 지크가 유심히 살펴봤다.

탄탄한 목재로 만들어진 데다 금빛의 줄무늬가 휘감겨 있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스태프였다.

‘카르볼. 이건 어때 보여? 좋은 거 같아?’

지크의 물음에 카르볼은 대답이 없었다.

또 멍하니 혼이 빠진 반응을 보이다가 뒤늦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좋은 거다. 엄청나게.

* * *

보물 증정식 이후로, 국왕은 세간에 공표했다.

얼마 전 알비츠의 첩자에 의해 독살당할 위기에 처했었고, 그 배후에는 극독의 선구자가 있었음을.

그 충격적인 소식에 세상은 크게 들썩였다.

아무리 약소국이라 해도 한 나라의 국왕을 시해하려 하다니?

그것도 마법의 새로운 지표를 열었다고 일컬어지는 12인의 선구자 중 한 명이?

결코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비난의 화살이 12인의 선구자들에게 꽂히는 건 당연한 수순.

물론 선구자들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잡아뗐다.

녹스 베노마이어 개인이 벌인 일이라며 딱 잘라 선을 그었다.

알비츠 왕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암살은 전혀 지시한 바가 없으며 전쟁을 일으킬 생각도 없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해명했다.

명확한 증거가 없었기에 국왕도 더는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다.

그저 왕국의 보안과 검문을 강화하기 위한 명분을 마련했다는 데에 만족할 따름이었다.

데칸 왕국을 흔들어 놓은 국왕 암살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한동안 아무런 위협도 없이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됐다.

더는 궁정에 있을 이유가 없던 맥러플린 가문도 원래의 공작가로 복귀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년이 지났다.

지크는 어느덧 16살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간 미뤄뒀던 후계자 시험이 있는 날이다.

* * *

‘카르볼. 준비됐어? 마지막으로 한 방만.’

-그래. 간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크가 끼고 있던 은색의 반지에서 빛이 번뜩였다.

매개체가 된 아드올리아스의 반지가 마력을 공급했다.

동시에 카르볼의 영혼이 담긴 목걸이에서 마법이 발동됐다.

화르르륵-!

사방을 불태울 듯 쏟아지던 마법은 지크의 몸에 닿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시전된 마법 ‘헬 파이어’를 흡수합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90 증가하였습니다.]

[스킬 ‘마법 흡수의 달인’의 성취도가 9성에 도달하였습니다.]

[흡수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가 9개▶10개로 상향되었습니다.]

[5차 스킬을 각성하였습니다.]

드디어 5차 스킬을 각성한 지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