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55화
돌발 퀘스트가 떴다.
아버지의 말에 따라 가문을 떠나기만 하면 성공하는 퀘스트.
실로 간단했다.
보상도 달콤했고.
‘숙련도 2,000을 보상으로 준다니. 이건 거절할 수가 없겠는데?’
보통 1성 때 요구하는 숙련도는 100이고 그다음은 300, 그다음은 1,000이다.
즉, 보상으로 2,000을 받으면 단숨에 1성에서 4성까지 올릴 수 있다는 의미.
최근에 배운 5차 스킬의 숙련도를 위해선 무조건 수락해야 한다.
앞으로 숙련도를 쌓기 위해서라도 가문을 나서야 하고.
‘러셀 형님한테는 미안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어.’
원래라면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고 가주를 떠넘길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 없게 됐다.
퀘스트가 가문을 떠나라고 종용하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마음의 결정을 내린 지크가 속으로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 와중, 말없이 서 있는 두 아들을 보고 제라드가 오해한다.
“둘 다 어지간히도 놀랐나 보구나. 하긴, 갑자기 가문을 떠나라니 놀랄 수밖에. 하지만 다 이유가 있느니라. 자세한 건 앉아서 얘기할까?”
“예…….”
지크와 러셀이 얼떨떨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기존의 후계자 시험 방식은 몬스터를 토벌해 오거나, 일정한 성취를 달성하는 등, 서클이 높을수록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시험을 보기 전부터 가주는 거의 확정되다시피 했었지.”
확실히 서클이 높으면 가주가 되기에 유리했다.
장남인 피터가 후계자로 손꼽힌 것도 이 때문.
다른 형제들에겐 반등의 여지가 없는 게 기존의 시험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 때문에 암살자를 고용해 형제를 죽이려 하는 불상사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그 방법 말고는 후계자로 올라설 방법이 사실상 없었으니까. 뭐가 됐든 일어나선 안 될 일이지.”
알렉스 사건을 떠올린 제라드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하여, 후계자 시험을 구조적으로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 결과가 이건가요? 2년간 가문을 떠나는……?”
러셀의 말에 제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너희에게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세상에 대한 경험이다. 이제는 자립할 나이도 됐으니 가문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상을 돌아다니며 명성을 쌓도록 하거라.”
“명성을……?”
“정확히 2년이 되어 돌아오는 날, 가장 드높은 명성을 쌓은 사람을 후계자로 임명하도록 하마. 이것이 이번 후계자 시험의 방식이다.”
확실히 기존의 방식보단 공평한 처사였다.
서클과 관계없이 누구는 2년간 놀고먹을 수도, 누구는 노력할 수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물론 서클이 높으면 명성을 쌓기에 유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시험에서 이기지 못한다.
자립심, 생활력, 생존력 등, 여러 자질을 테스트하는 게 본 시험의 목적이었기에.
“어떤 것 같으냐? 이번에 개정한 시험 방식이.”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저도요.”
러셀과 지크가 차례대로 답하자, 제라드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내심 반발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제라드였다.
더구나 두 아들에겐 후계자가 될 의지도 엿보였다.
“긍정적으로 답한 걸 보면 두 사람 모두 시험에 참여하겠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지?”
“네.”
“네.”
거의 동시에 나온 대답.
러셀이 곁눈질로 지크를 쳐다봤다.
문 앞에서 나눈 것과는 말이 달랐으니.
“알았다. 두 사람의 뜻은 확인했다. 시험은 오늘부터 시작이니 방으로 돌아가 떠날 채비를 하거라.”
“아…….”
“예.”
갑작스러웠지만 러셀과 지크는 군말 않고 방을 나왔다.
탁-
“저기, 지크.”
방을 나오자마자 러셀이 지크를 붙잡았다.
“어떻게 된 거야? 아까 했던 말이랑은 다르잖아? 후보 자리는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어?”
후보 자리를 넘기겠다고 하더니만 안에 들어가서는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꿨다.
어떻게 보면 농락당했다고 여길 수도 있는 상황.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해명해야 한다.
‘하지만 퀘스트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그러면 어떤 이유가 좋을까?
찰나의 순간 고민을 마친 지크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형님.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렇게 갑자기?”
“막상 아버지 앞에 서니 포기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제야 알게 됐죠. 저도 가주 자리에 욕심이 있었다는걸.”
“그럼…… 나랑 가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겠다는 뜻이냐?”
지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욕심 따윈 없는데도 말이다.
‘욕심이 없어도 있는 척해야 해. 경쟁심을 부추겨야 러셀 형님도 2년 동안 나태해지지 않을 테니까.’
만약 가주를 넘길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면, 러셀은 2년간 흥청망청 놀고먹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노력하지 않고 도태되다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을지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형님. 이게 다 형님을 위해서니까 기분 나빠하진 마세요.’
하지만 걱정과 달리 러셀은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곤란한 웃음을 띤다.
“쉽게 가주가 될 줄 알고 좋아했는데…… 하필이면 네가 경쟁에 입찰하겠다니. 이거 곤란해졌는걸?”
우는소리를 하던 러셀이 마음을 잡았는지 표정을 고쳤다.
그러더니 불쑥 손을 내민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 우리 선의의 경쟁을 해보자. 동생.”
잠시 손을 바라보던 지크가 웃으며 러셀의 손을 맞잡았다.
“예, 형님.”
* * *
새로 바뀐 후계자 시험에 대한 소식은 발 빠르게 퍼졌다.
가장 먼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은 크리스티나였다.
“여보!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로 러셀을 가문 밖으로 내쫓으실 거냐고요!”
“내쫓는 게 아니라 출가시키는 거요. 후계자 자격을 시험하기 위해.”
“그게 그 말이잖아요!”
발작하듯 외치는 크리스티나의 언행에도, 제라드는 화내지 않았다.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유일한 희망이던 아들을 2년간 떠나보내야 하는 아내의 마음을.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오. 러셀만이 아니라 지크도 떠나니까.”
“지크는 내 알 바 아니고요! 어떻게 우리 러셀을 밖으로 내보내실 수 있어요?”
“러셀도 이제 20살이오. 독립할 나이는 이미 지났지.”
“하지만……!”
“피터를 생각해 보시오. 그 아이는 12살에 마도 수련을 위해 일찍이 집을 떠나야 했소. 그때는 흔쾌히 보내더니만 러셀에겐 이러는 이유가 뭐요?”
“그,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죠! 마도 수련은 아무나 갈 수 없는 데다 마법의 견문을 넓힐 기회잖아요!”
“그 기회를 잡았다가 어떻게 됐소? 견문은커녕 삐뚤어진 길을 걷지 않았소?”
“…….”
“물론 당신 탓만 할 순 없소. 나 역시 피터를 마탑에 보내는 데 동의했으니까. 그곳이 사지였을 줄은 몰랐지만…….”
“러셀도 사지에 보내실 생각이에요?”
“사지라니. 러셀을 무슨 세 살배기 어린애로 보는군. 이제는 가문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소?”
“…….”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크리스티나였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도… 저도 러셀을 따라갈래요. 같이 보내주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러셀은 혼자서 가야 하오. 그게 후계자 시험의 규칙이오. 가문의 일원이 도와선 안 되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저도 데리고 가게 해달란 말이에요!”
크리스티나가 생떼를 부렸지만, 제라드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근엄한 눈빛으로 한 가지를 제안한다.
“정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오.”
“뭔데요?”
“후계자 시험을 포기하는 것이오.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그렇게 하시겠소?”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크리스티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하나뿐인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 * *
아들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지크의 어머니, 데이나였다.
다만 그녀는 크리스티나처럼 아들을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지크. 정말로 후계자 시험에 응할 생각이니?”
“네.”
“후계자에 관심 없던 거 아니었어?”
“처음엔 그랬는데 시간 지나고 보니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니? 네 뜻이 정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구나.”
어쩐지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
그야 하나뿐인 아들과 2년간 떨어져 지는 게 걱정되고 두려웠으니까.
16살이라도 데이나의 눈엔 여전히 아기 같은 지크였다.
그런 마음을 지크도 모르지 않는다.
‘미안해요, 어머니. 퀘스트를 위해선 떠나야 해요. 5차 각성 스킬의 숙련도를 위해서라도.’
지크가 시야 한쪽을 바라봤다.
거기엔 오늘 각성한 5차 스킬의 정보가 떠올라 있었다.
[5차 각성 스킬 : 마법 복제]
-성취도 : ★☆☆☆☆☆☆☆☆ (1성)
-유형 : 액티브
-숙련도 : 0/100
-효과 : 상대가 배운 마법 중 1개를 무작위로 습득합니다. 습득한 마법은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 접근해야 복제할 수 있으며, 마법을 배우지 않은 상대에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쿨타임 : 없음
-특이사항 : 마법 복제를 사용하면 숙련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한 대상에 1개의 마법만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수 있는 마법의 제한은 없습니다. 성취도 9성 달성 시, 6차 각성 스킬이 개방됩니다.
5차 각성 스킬 [마법 복제].
이름 그대로 상대가 가진 마법 중 하나를 복제할 수 있는 스킬로, 한 번 복제하면 영구히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상대가 먼저 마법을 써야 사용할 수 있는 지크로선 가뭄의 단비 같은 스킬.
하지만 단점도 명확했다.
‘대상이 가진 마법 중 랜덤으로 복제가 된다는 점. 대상이 마법사여야지만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한 사람당 1개의 마법만 복제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랄까?’
물론 복제 횟수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 이러한 단점을 모두 덮어버린다.
원한다면 수백, 수천 개의 마법을 익힐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러려면 수백 명의 마법사를 만나야겠지만.
‘이래서 밖으로 나돌아야 한다는 거야. 최대한 많은 마법사를 만나야 하니까.’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마법을 익히기 위해서라도, 지크는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더 이상 방에서 카르볼과 마법 흡수나 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떠나자. 더 많은 마법사를 만나러.’
지크는 간단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 *
때가 됐다.
떠날 준비를 마친 지크와 러셀이 공작가 앞에 나왔다.
“준비되었느냐?”
“예.”
“고생하고 오거라.”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제라드는 짧게 끝내고 말았다.
미련 있는 모습을 보였다간 애써 다잡은 마음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떠나는 두 아들을 위해서라도 굳건함을 유지해야 한다.
반면, 옆에 있는 두 부인은 아들을 보낼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2년간 고생할 걸 예상해서인지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녀의 자식들은 나약하지 않았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잘 다녀올게요.”
“씩씩한 아들이 되어 돌아올 테니 너무 심려치 마세요.”
“흐흑…… 그래.”
“건강히…… 잘 다녀오거라.”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명성을 쌓고 돌아올게요!”
씩씩하게 말한 지크와 러셀은 그 길로 걸었다.
모두의 배웅을 뒤로한 채.
“…….”
“…….”
두 사람은 말없이 오솔길을 걸었다.
마동차도 없이, 짐가방 하나만 달랑 걸친 채로 걷고 또 걸었다.
그럴수록 공작가는 멀어졌고 가족과도 멀어졌다.
“형님.”
“응?”
“우리도 여기서 이만 헤어지죠.”
갈림길을 앞에 둔 지크가 그렇게 말했다.
두려움이라곤 조금도 없는 눈빛.
방금까지만 해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앞서던 러셀이었다.
그런데 초연한 태도의 동생을 보니 걱정하던 자신이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형으로서 자존심도 상했고.
러셀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래. 여기서 헤어지자.”
“네, 형님. 2년 후에 뵐게요.”
지크는 미련 없이 먼저 몸을 돌렸다.
러셀도 더는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이건 다른 것도 아닌 후계자 시험.
물러터진 마음가짐으론 가주가 될 수 없다.
“고생해라, 지크!”
러셀이 그 말을 끝으로 오솔길로 사라졌다.
돌아본 지크가 사라지는 형님을 보며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곤 들릴 듯 말듯 중얼거렸다.
“형님도요.”
두 사람의 후계자 시험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