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56화
“하아, 하아. 가, 같이 가요. 공자님.”
“빨리 안 따라오면 버리고 간다?”
“죄, 죄송해요. 제가 체력이 안 돼서…….”
지크가 돌아본 곳엔 지친 얼굴의 메리가 있었다.
힘들다고 콧잔등에 주름을 만드는데 그마저도 아름다워 보인다.
궁정에서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외모.
‘본판이 이렇게나 예쁘다는 걸 다른 단원들은 꿈에도 모르겠지.’
국왕 암살 사건 이후로, 메리는 궁정 마법사단에서 쫓겨났다.
지크와 함께 첩자를 잡는 데 도움을 줬다지만 얼굴을 위장하고 입단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
사단장인 제라드로선 추방할 수밖에 없었다.
지크도 메리와 함께할 이유가 없었기에 찬성했었고.
‘그런데 지금은 함께하고 있네?’
지크가 부른 것이 아니다.
후계자 시험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메리가 알아서 따라온 것이었다.
“메리.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헉, 헉. 마, 말씀하세요.”
“너 내가 후계자 시험 치른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으음, 그게…….”
“마법사단에서 추방당한 뒤로 뭐하나 했더니, 나 감시하고 있었냐?”
“지, 지크 공자님. 왜 이렇게 체력이 좋으세요? 한 번도 쉬지 않고 산을 오르시네요. 정말 대단하세요. 하하…….”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메리가 푹 한숨을 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공자님 말이 맞아요. 뭐 하시는지 궁금해서 그동안 엿보고 있었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1년 내내 그랬다고?”
“네…….”
말 그대로 스토킹했다는 의미.
지크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냥꾼의 감각으로 느껴졌으니까.’
1년이란 세월 동안 전체적인 스탯이 증가했다.
이제는 350m까지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기에 메리를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후계자 시험을 떠날 때도 알고 있었지. 메리가 날 미행한다는 걸.’
일찍이 러셀과 헤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메리가 쫓아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지크가 확인차 다시 물었다.
“그래서 날 감시하다가 후계자 시험 때문에 떠난다는 걸 알고 이렇게 따라온 거야?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급하게 따라오느라 준비는 못 했지만, 아버지께는 말해놨어요. 통신구는 가지고 있으니까요.”
“브라이언트 백작님이 반대 안 하셔?”
“안 하시던데요? 오히려 공자님께 폐 끼치지 않게 수발 잘 들라고…….”
“수발?”
지크가 허허 웃었다.
‘그 아저씨도 참 웃겨. 하나뿐인 딸을 나한테 맡길 생각을 하다니. 나의 뭘 믿고?’
목숨을 구해주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생판 모르는 남자가 아닌가?
‘뭐, 백작으로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지크는 메리를 데리고 다닐 생각이 없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돌아가.”
“네? 호, 혹시 시험 규칙 때문에 그러세요? 그거라면 걱정 마세요. 후계자 시험은 공작가의 일원만 아니면 같이 다녀도 된다고…….”
“그런 것도 알고 있어? 의외로 정보 수집에 재능이 있었네?”
“헤헷.”
‘칭찬이 아니라 비꼰 거였는데…….’
해맑게 웃는 모습에 기가 찬다.
한숨을 쉰 지크가 딱 잘라 거절했다.
“어쨌거나 안 돼. 네가 감당하기엔 모진 여정이 될 거야.”
“하지만…….”
“지금도 헉헉거리잖아. 그 체력으로 어딜 따라오려고.”
“죄송해요. 그치만 방해 안 되게 어떻게든 따라붙을게요. 적어도 요리할 사람은 있어야 하잖아요?”
“요리?”
“네! 저 요리 잘해요!”
“조리 도구들은 가지고 왔고?”
“…….”
메리는 잠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허겁지겁 달려온 터라 손에 들린 건 마법 지팡이뿐이었다.
“거, 걱정 마세요. 도구야 나무나 돌 같은 걸로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식자재도 근방의 멧돼지를 잡아서 구우면…….”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그, 그럼 뒤처리는요? 빨래는요? 불침번은 필요 없으세요? 짐꾼이라도 할게요. 네?”
이쯤 되자 지크의 눈에 안쓰러움이 어렸다.
어떻게든 자신을 어필하려는 게 이해 안 되기도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왜 이렇게 따라오려는 거야? 고생길인 거 뻔히 알면서.”
“…….”
“편하게 백작가에서 쉬고 있으면 되잖아? 근데 왜 자처해서 내 시중을 들려고 하냐고.”
“……사실대로 말해도 돼요?”
지크가 끄덕이자 메리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지난 1년 동안 힘들었어요.”
“응? 뭐가?”
“지크 공자님을 못 뵈어서요.”
“……무슨 뜻이야? 그게?”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공자님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날이 허다했다고요.”
“뭐어?”
지크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바라봤다.
상사병에라도 걸렸나?
아니면 속임수?
그런 심정으로 바라봤지만.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스토킹한 거야? 날 좋아해서?”
“저도 정확한 제 마음을 모르겠어요. 하지만 곁에 있고 싶고 자꾸만 보고 싶어요.”
난데없는 메리의 고백에 지크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목숨 한 번 구해줬다고 이러는 건 아닐 테고, 설마…… 주인으로 삼으라고 명령한 것 때문에?’
1년 전, 메리에게 황금 볼펜을 쥐여주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자신을 평생토록 주인으로 삼게끔 계약을 쓰게 했었다.
‘그것 때문이네. 진짜로 날 주인처럼 여기고 있는 거야.’
잠 못 이룰 정도로 자꾸만 생각나는 이유도.
어떻게든 따라와서 수발을 자처하는 이유도.
주인이라는 인식이 머리에 박혀 있기에 그런 것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집착할 리가 없다.
‘하아…… 알아서 주인으로 삼겠다기에 그러라고 생각 없이 명령내렸더니만, 스토커로 만들어버렸네.’
자신의 실수였다는 걸 알게 된 지크가 관자놀이를 주무르자 메리가 걱정한다.
“괘,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 건…….”
“아니야. 그냥 머리가 복잡해서.”
“복잡하게 생각하실 거 없어요! 있는 듯 없는 듯 따라다닐게요. 같이 다니게 해주세요. 방해 안 될게요!”
지크가 고개를 들어 메리를 빤히 쳐다봤다.
믿어도 되겠냐는 눈빛으로.
‘이거 괜히 혹 달고 다니는 꼴 아니야?’
솔직히 같이 다니는 것보단 혼자가 편하다.
행동에 제약도 걸리지 않고, 동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엄밀히 말해선 동료라기보다 부하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부하가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
여행 중에 이것저것 시킬 수도 있고 귀찮은 일을 떠맡길 수도 있다.
혹인지 복인지는 두고 봐야 아는 법.
한숨을 쉰 지크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와아! 감사합니다! 앗, 너무 좋아했나? 헤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메리였지만 지크는 여전히 못 미더운 눈빛이었다.
그때, 늦었지만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떠올랐다.
[후계자 시험을 수락하고 가문 떠나기 완료!]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5차 스킬 숙련도 2,000이 증가합니다.]
[스킬 ‘마법 복제’의 성취도가 2성에 도달하였습니다.]
[습득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가 1개▶2개로 상향되었습니다.]
[스킬 ‘마법 복제’의 성취도가 3성에 도달하였습니다.]
[습득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가 2개▶3개로 상향되었습니다.]
[스킬 ‘마법 복제’의 성취도가 4성에 도달하였습니다.]
[습득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가 3개▶4개로 상향되었습니다.]
[5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600/3,000]
주르륵 떠오른 메시지에 지크의 눈동자가 커졌다.
단숨에 4성까지 오를 건 예상했지만 마법의 개수가 증가할 줄은 몰랐다.
‘이제는 마법 복제로 마법사 한 명당 4개의 마법을 습득할 수 있어.’
퀘스트 한 방으로 효율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지크에게 있어서 마법사는 스킬이 가득 담긴 복주머니나 다름없었다.
‘숙련도를 더 올리려면 스킬을 써야 하는데…… 가장 먼저 누구한테 써볼까?’
지크의 눈길이 자연스레 옆으로 향했다.
스킬을 써볼 시험 대상이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공자님?”
“가만히 있어 봐.”
“네?”
지크가 손을 뻗으며 다가서자 흠칫거린 메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는지 어깨를 바르르 떨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크는 은근슬쩍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발동 : 마법 복제>
[‘메리 브라이언트’의 마법 4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2서클 마법 ‘마나 스킨’을 습득하였습니다!]
[3서클 마법 ‘라이트닝 핸즈’를 습득하였습니다!]
[4서클 마법 ‘배리어’를 습득하였습니다!]
[5서클 마법 ‘인비저빌리티’를 습득하였습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130 증가하였습니다.]
[5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730/3,000]
메리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마나 고리는 다섯 개.
최대 5서클까지의 마법을 무작위로 배울 수 있었다.
그것도 무려 4개나.
‘스킬 발동에 이펙트는 없었어.’
그 말은 상대방 모르게 마법을 습득할 수 있다는 뜻.
아니나 다를까.
눈을 뜬 메리가 뭐 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보고 있다.
“머리에 뭐가 묻어서.”
“아.”
머리를 툭툭 털며 자연스럽게 넘긴 지크는 다시금 메시지로 시선을 돌렸다.
메리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줄도 모른 채.
‘어디 보자. 보조 마법이 많이 들어왔네? 마나 스킨, 배리어, 인비저빌리티도 들어왔잖아?’
보조 마법은 지크가 흡수할 수 없는 영역.
물론 카르볼의 도움으로 쓸 수야 있겠지만 남에게 의지하는 건 지크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영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혹시 모르니 카르볼이 없을 때를 대비해야지.’
무엇보다 인비저빌리티 같은 마법은 술자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이번에 배웠으니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터.
‘그런데 스킬을 복제하면 상대방 이름이 뜨네?’
어쩌면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는 수단으로도 쓸 수 있을 거다.
‘상태창.’
[이름 : 지크 맥러플린]
[꼬리표 : 판게아 대륙 환생자, 데칸 왕국 최고의 마법 명가, 공작가 막내, 사공자, 서자, 노력가, 책벌레, 16살, SS급 헌터, 오러 마스터 중급, 드래고니안, 무영창의 천재]
[근력 : 3,460 / 지력 : 3,386]
[순발력 : 3,468 / 체력 : 3,492]
[회복력 : 3,445 / 저항력 : 3,396]
[기력 : 15,100]
[기본 스킬 : 통역, 해석, 룬 흡수, 오러 운용, 오러 주입, 오러 블레이드, 아공간, 진실의 눈, 빛의 축복, 사냥꾼의 감각, 배니쉬 위드 포이즌, 마나 스킨, 라이트닝 핸즈, 배리어, 인비저빌리티]
[1차 각성 스킬 : 마력 흡수 (9성)]
[2차 각성 스킬 : 마력의 주인 (9성)]
[3차 각성 스킬 : 마법 흡수 (9성)]
[4차 각성 스킬 : 마법 흡수의 달인 (9성)]
[5차 각성 스킬 : 마법 복제 (4성)]
[6차 각성 스킬 : ???]
[7차 각성 스킬 : ???]
상태창을 열어보니 꼬리표가 달라져 있다.
16살로 오른데다 하급이었던 오러 마스터는 중급으로 바뀌었다.
스탯도 전체적으로 증가.
1년 전에 비해 꽤 성장한 지크였다.
그 밖에도 기본 스킬에 방금 습득한 마법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기본 스킬 : 배리어]
-효과 : 주변에 마나로 이뤄진 방벽을 만들어냅니다.
-특이사항 : 지력 스탯에 따라 크기와 강도가 늘어납니다.
자신이 익힌 스킬임을 증명하듯 이렇게 설명도 쓰여 있다.
‘진짜 이렇게 쉽게 스킬들을 습득한다고?’
지크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오러 말고 마법을 배웠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마법사가 남부럽지 않다.
‘이거 혹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복덩이였구만?’
지크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메리가 조금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왜, 왜 그러세요, 공자님? 제 얼굴에 또 뭐가 묻었나요?”
“아니야. 아무것도.”
“그런데 공자님.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목적지는 정하셨어요?”
그 말에 잠깐 생각하던 지크가 씨익 웃었다.
“정했지. 방금.”
“예? 방금요?”
“사실 난 명성을 올릴 생각이 없어. 가주에 관심이 없거든. 그보다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되도록 많은 마법사를 만날 생각이야. 적으로든, 아군으로든. 그러려면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게 좋을까?”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메리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으음, 다양한 마법사를 만나려면 아무래도 용병이 낫겠죠? 마법사만으로 구성된 용병단도 있고, 또 영지전에 참전해서 상대 마법사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 그 때문에 난 용병이 될 생각이야. 너도 마찬가지고.”
메리의 두 눈이 커졌다.
졸지에 주인 따라 용병이 되게 생겼다.
“원래는 혼자서 용병을 할까 했는데, 네가 있으니까 같이 하는 게 낫겠지. 네 나이에 5서클이면 출중한 편이잖아? 혼자보단 둘이 나서는 게 이름 있는 용병단에 입단하기도 수월할 테고.”
“확실히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저 아래에 있는 텐진 지방으로 갈 거야.”
“텐진이라면… 완전 변방이잖아요. 거기는 왜……?”
“멤버로 영입할 사람이 한 명 더 있거든.”
‘너도 모르는 노예 1호가.’
뒷말을 삼킨 지크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