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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57화 (57/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57화

메리의 합류가 결정된 이후로, 지크의 여정은 나름 편해졌다.

야영을 위해 뗄감을 구해오는 일부터, 요리, 사냥, 잠자리 준비 등.

지크의 편의를 위한 일이라면 뭐든 도맡아 하는 메리였다.

말 그대로 하녀가 하나 생긴 셈.

‘조금 유능한 하녀라고나 할까?’

마법으로 불도 지피는 걸 보면 꽤 쓸모는 있다.

화르륵-

“됐어요. 이제 밤에 춥지 않을 거예요. 여기 이불이요.”

이불이랍시고 준 물건은 메리가 두르고 있던 여행자 로브였다.

“그러는 넌? 이불이 없잖아.”

“전 괜찮아요. 지크 공자님만 따뜻하다면야.”

그렇게 말하고는 추운지 제 팔을 끌어안는다.

이러니 다시 돌려줄 수밖에.

“도로 가져가. 난 안 추우니까.”

“왜요? 추우실 텐데…….”

“안 추워. 내가 추위에 강하거든.”

빈말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저항력 스탯이 3천을 넘어가는 지크에게 추위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

겨울에 길바닥에 누워서 자도 입 돌아가지 않을 정도.

여름에도 땀 흘리지 않고 쾌적하게 보낼 수 있다는 건 지난 계절을 겪어오면서 확인했다.

“그래도 뭐라도 걸치시지…….”

“난 괜찮다니까.”

거듭 권해도 가져가지 않자 지크가 손수 메리의 어깨에 로브를 덮어줬다.

모닥불 때문인지 몰라도 메리의 얼굴이 벌겋다.

“고, 고마워요. 공자님.”

“아, 그 호칭 말인데. 이제부턴 공자라고 부르지 마. 어디 가서 내 정체를 까발릴 게 아니라면.”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그냥 지크라고 편하게 불러. 네가 나보다 2살 더 많잖아? 존댓말도 하지 말고.”

“그, 그건 좀…….”

주인이라는 의식이 머리에 박혀 있어서인지 존댓말 하기 어려워하는 눈치.

흔들리는 동공을 잠시 바라보던 지크가 하는 수 없다는 듯 끄덕였다.

“알았어. 존댓말은 하되, 그냥 지크 님이라고 불러. 이 정도면 됐지?”

“네에! 네!”

반말은 죽어도 하기 싫었는지 살았다는 표정을 짓는 메리였다.

“슬슬 배고픈데 저녁 준비나 할까? 불 준비하고 있어. 도축은 내가 할게.”

“공자…… 아니, 지크 님은 편하게 계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

말리려던 메리는 순간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허공에서 갑자기 지팡이를 꺼내는 지크의 모습 때문이었다.

“지크 님. 바, 방금 어떻게 하신 거예요?”

“마법으로 공간을 만들어서 창고처럼 이용하고 있어.”

“예? 아, 아공간을 만들었다는 말씀이세요?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고 말고 지금 하고 있잖아?”

지크가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하자 메리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진다.

“이런 거 가지고 놀라지 마. 앞으로 자주 볼 테니까 익숙해져야 할 거야.”

“그런데 그건 뭐예요? 처음 보는 지팡이 같은데.”

“아, 이거?”

금빛이 휘감긴 스태프를 든 지크가 씩 웃었다.

“높으신 분에게 선물 받았어.”

“높으신 분?”

메리가 갸우뚱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크가 국왕의 창고에 들렀다는 건 소수의 가신만 아는 대외비였으니.

물론 뭘 받았는지는 국왕과 지크만 알고 있다.

‘하지만 스태프에 숨겨진 능력만큼은 국왕도 모르고 있겠지.’

-그야 그럴 거다. 스태프 역시 마나 패턴을 입혀야 발휘되는 훌륭한 물건이니까.

카르볼의 말마따나, 국왕에게서 받은 스태프는 꽤 좋은 물건이었다.

[우리엘의 깃털]이라는 이름으로, 평소에는 여타 스태프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크가 현재 끼고 있는 아드올리아스의 반지처럼 특정 마력 패턴을 입히면?

모습이 변형된다.

이렇게.

“어? 스태프가…… 검으로 변했어?”

별안간 검으로 바뀐 스태프를 보며, 메리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엘의 깃털은 이렇듯 스태프와 검의 형태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마법과 오러를 사용하는 지크에겐 안성맞춤인 무기.

특히 검신에는 성력이 스며 있어서 마족을 상대할 때 유용하다고 한다.

‘그런데 카르볼. 정말로 3천 년 전에 천마 대전이 벌어졌었어?’

-그랬지.

‘너는 넋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고?’

-드래곤의 입장에선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넋 놓았다는 말은 하지 않은 것 같다만?

‘그랬나? 어쨌든 참전도 안 했는데 이런 귀한 물건의 마력 패턴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내가 남의 물건에 관심이 많아서 말이지. 크흠…….

골드 드래곤이라 그런 걸까?

확실히 물욕이 남다른 카르볼이었다.

-그런데 지크. 우리엘의 깃털은 왜 꺼낸 거냐? 왜 멧돼지에게 다가가는 거지?

‘왜냐니. 도축하려고 그러지.’

-미, 미쳤구나! 그 귀한 물건으로 도축이라니!

‘뭐 어때. 마족의 배도 갈랐던 물건인데. 멧돼지를 가르는 거랑 별 차이는 없을 텐데? 마땅히 도구도 없고.’

-그, 그래도 그런 하찮은 일에 쓰면 안 되지! 비켜 보거라! 내가 마법으로 해결해 주마!

목걸이가 빛을 발하더니 금세 바람의 칼날을 만들어낸다.

스거걱- 스걱-!

정교하게 가죽을 잘라내고 살덩이만 발라내는 기술이 도축업자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이 정도면 됐느냐?

‘오케이. 딱 좋아.’

카르볼을 이용해 고기 손질을 끝낸 지크가 메리를 불렀다.

“도축 끝났어.”

“이렇게 빨리요? 와, 깔끔하게 잘하셨네요!”

감탄을 터트린 메리가 미리 준비한 꼬챙이에 고기를 하나씩 끼웠다.

불에 노릇노릇 구워서 식사를 끝낸 뒤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로 이불 필요 없으세요?”

“괜찮다니까.”

“그럼 제가 불침번이라도 설게요. 먼저 주무세요.”

그리 말하며 주변을 경계하는 메리의 얼굴에는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힘든 여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끝내 감수하겠다는 그녀의 각오가 여실히 느껴졌다.

‘이건 뭐 주인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기세인데?’

새삼 계약의 대단함을 느끼면서도, 노예 1호인 피터를 만날 생각에 설레었다.

‘피터 형님을 만나서 마법을 습득한 후에 용병단에 들어가는 거야. 5서클 이상의 마법사 셋을 어느 용병단에서 반기지 않겠어?’

최대한 영지전을 많이 치르는 유명한 용병단으로 들어가 많은 마법사를 만나는 게 지크의 계획이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고생해.”

모닥불을 쬐던 지크가 몸을 돌려 누웠다.

늦은 시각이라 잠이 올 법도 했지만, 지크는 좀처럼 눈을 붙이지 못했다.

아까부터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반경 100m에 사람이 한 명. 보아하니 망원경 같은 걸로 보고 있나 본데…….’

동물이 아니라는 건 사냥꾼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다.

1시간 내내 두 발로 서서 쳐다보는 동물이 어디 있을까?

뭔가 꿍꿍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뭐 하는 놈인지 몰라도 내가 누웠으니 반응이 오겠지.’

지크가 누운 건 일종의 미끼였다.

잠든 척해서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보려는 것이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줄곧 감시하던 상대가 갑자기 뒤돌아서 사라진다.

‘쫓아갈 걸 그랬나? 뭐, 다시 오겠지.’

그런 지크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 * *

타탁타탁-

산 중턱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는 무리가 있었다.

머릿수는 열 명.

대부분이 허리춤에 검이나 도낏자루를 꽂고 있다.

“큭큭, 그래서 내가 그 계집을 어떻게 했냐면…….”

“야! 그래봤자 넌 평민이잖아. 난 말이야! 무려 귀족의 영애를…….”

자랑처럼 서로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시시덕거리는 그들이었지만, 매번 연례행사처럼 오가는 이야기가 지겨운 사람도 있었다.

무리의 유일한 마법사, 데이브가 그랬다.

“여자 얘기는 그만해라. 지겨워 죽겠다, 이것들아.”

“마법사님은 재미가 없으신 모양이네.”

“난 여자에 관심 없어. 그런 것보단 돈이 최고지.”

“하긴, 돈도 최고긴 하죠!”

“마법사님 덕분에 저희도 조만간 부자 되겠습니다? 으하하핫!”

무리의 주변에는 각종 물건이 든 포댓자루가 가득했다.

얼마 전, 근방을 지나던 상단을 마법사를 앞세워 털었기 때문.

물론 마차를 몰던 상인과 호위들은 전부 땅에 묻었고, 여자들은 범한 뒤 강가에 버렸다.

“그때 마법사님이 없었으면 상단 습격은 꿈에도 못 꿨을 텐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호위로 오러 유저를 달고 있을 줄이야. 까딱했으면 저희 모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쯧쯧, 고작 오러 유저한테 겁이나 먹고. 자랑이다, 새끼들아. 그러니까 시간 나면 오러 좀 익히라니까.”

“그게 가능했으면 이렇게 도적질이나 하고 있겠습니까요?”

“저희는 평생 마법사님 조수로 일하면서 콩고물 좀 주워 먹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요.”

“흐흐흐, 맞습니다요.”

헤실헤실 웃는 도적단이었지만, 마법사 데이브는 조금도 따라 웃지 않았다.

평민으로 구성된 도적단을 한심하게 보고 있었기에.

‘하는 거라곤 짐 나르는 것밖에 없는 병신들 같으니라고.’

그렇다고 녀석들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요즘 상단을 털어먹으며 재미 좀 봤으니까.

‘그래도 혼자서는 어려운 일을 이놈들 덕분에 수월하게 끝냈잖아?’

노획품을 나르거나, 정찰, 야영 준비를 하는 등.

여러 용도로 부려 먹을 수 있는 도적단이었다.

여차하면 미끼나 방패막이로 써먹을 수도 있고.

‘확실히 혼자서 일하는 것보단 도적단을 이용하는 게 편하긴 해. 놈들로서도 내가 있는 편이 더 나을 테고.’

마법사라는 고급 인력 덕분에 도적단은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못하는 상단을 습격할 수 있었다.

자신은 도적단을 수하로 부리며 편하게 이득을 취할 수 있었고.

서로 윈윈인 셈.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받을 수 없는 온갖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내가 왕이고, 신이야. 조합에서는 꿈도 못 꾸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고.’

자신이 속한 조합에선 5서클 마법사라고 해봐야 콧방귀만 뀌지만, 이곳은 다르다.

흡사 도적단의 두목이 된 기분.

실제로 두목을 갈아치운 뒤 자리에 앉은 것이었기에 틀린 말은 아니기도 했다.

‘어느 정도 앵벌이 좀 한 다음 이 새끼들도 싹 다 뒤처리해야지.’

자신의 운명은 알지도 못한 채, 도적들은 시시덕거리며 서로 대화하기에 바빴다.

대화 주제는 다시금 여자로 넘어갔다.

‘지겨워 죽겠네, 정말.’

데이브가 끝내 한마디 하려는 순간.

“마법사님! 마법사님!”

1시간 전에 나갔던 정찰병이 호들갑을 떨면서 돌아왔다.

“무슨 일이야?”

“저, 저쪽에. 500m쯤 되는 거리에서 먹잇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규모가 어떻게 되는데?”

“남자, 여자. 이렇게 두 명이고요, 호위나 마차는 없습니다.”

“뭐?”

데이브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X발, 털어먹을 것도 없는 놈들 가지고 호들갑을 떤 거야, 지금?”

“좀 더 들어보십쇼. 놈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뭘 가지고 있는데?”

“남자 쪽이 금이 박힌 고급스러운 스태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금?”

이 세계에서도 금은 귀했다.

그런 금을 스태프에 둘렀다면 보통 물건이 아닐 터.

“정말이야? 제대로 본 거 맞아?”

“그럼요! 모닥불 불빛으로 번쩍이는 걸 마법사님이 주신 이 확대경으로 확인했습니다요.”

‘흐음. 금박을 두른 스태프라…… 못해도 30만 골드는 받을 수 있겠는걸?’

이거 웬만한 상단보다 벌이가 괜찮을 것 같다.

“남자가 가지고 있었다면 마법사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근데 여자 쪽도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녀 마법사 파티라…… 이런 곳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이 아닌데.”

보통 마법사들은 텔레포트를 하거나 상단을 이용하지 굳이 산에서 야영할 이유가 없다.

체력이 부족한 마법사들의 특성상 맞지도 않을 테고.

그때 옆에 있던 동료가 정찰병에게 물었다.

“엘런. 그 여자 마법사 말인데, 얼굴 봤냐?”

“봤죠.”

“예쁘냐?”

“X나게 예쁩니다. 그냥 천사예요.”

“호오오우!”

동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 소리에 데이브가 미간을 찌푸렸다.

“새끼들아, 소리 좀 낮춰라. 500m 거리에 있다잖아.”

“아하하, 죄송합니다.”

“마법사님! 그나저나 그 새끼들 빨리 털어버리죠? 금빛의 스태프는 마법사님 몫으로 드리겠습니다.”

“뭔 당연한 걸로 생색내고 있어, 지금. 내가 너희랑 나눠 먹을 줄 알았냐?”

“하하, 그렇죠. 대신에 그 마법사를 잡으면 말입니다…….”

“저희한테 넘겨주실 수 있는지…… 헤헤.”

벌써부터 군침을 흘리는 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 봐도 훤하다.

“쯧쯧, 한심한 새끼들. 여자는 마음대로 해.”

“가, 감사합니다! 히히힛!”

“대신 물건은 내 거야.”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흐흐흐.”

신난 도적들이 각자 병장기를 챙겨 들었다.

“말 나온 김에 바로 가시죠.”

“일단 여기부터 정리하고 새끼들아.”

“아, 그렇죠. 정신이 없네요, 하하핫!”

짜증스럽게 말한 데이브가 정찰병을 불렀다.

“야, 정찰병. 거기 둘 다 안 자고 있냐?”

“남자는 조금 전 잠들었고, 여자는 안 자고 있습니다.”

“딱 좋네. 선공은 내가 할 테니까 너희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지켜만 보고 있어.”

“알겠습니다.”

“안내해.”

데이브를 비롯한 도적단이 이내 정찰병을 따라 산길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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