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59화
데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도와달라니?”
-제, 제가 도적질하다가 어떤 미친 연놈들을 만났는데요, 자기들을 조합에 넣어달라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조합에?”
어이없던 데롤이 실소를 터트렸다.
“미친놈들이네? 조합원이 아무나 되는 줄 아나.”
무엇보다 조합원을 협박해서 조합에 들어오려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다.
이는 조합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
“그 새끼들 뭔데? 켈브리지 출신이냐?”
-그건 모르겠습니다. 돈 되는 사업이라면 뭐든 다 한다는 말을 듣더니 다짜고짜 조합원을 시켜달라고…….
“일단 끊어봐. 상의하고 다시 연락할 테니까.”
데롤이 통신을 끊자마자 아론이 반발했다.
“데롤 님. 이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무조건 거절해야 합니다.”
“이유는?”
“데이브를 제압한 걸로 봐서 실력은 있어 보이지만 그래봤자 모르는 사람입니다. 켈브리지 출신인지도 확실치 않고요. 무엇보다 여기서 더 받으면 12인이라는 숫자에서 벗어나지 않습니까? 재고할 가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예? 그럼 왜 상의해 보겠다고 말씀하신 건지…….”
“내가 상의해 보겠다는 건, 그 건방진 연놈들을 어떻게 끌어들여서 죽일까 고민해 보겠다는 뜻이었어. 누군지 몰라도 우리 조합원을 건든 새끼를 살려둬선 안 되잖아?”
“아……!”
상대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5서클의 데이브를 기습해서 이길 만한 실력자라는 것.
그 외에는 정보가 전무한 데롤이었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부터가 7서클의 강자였고, 여기 있는 서열 6위의 아론도 6서클이나 되니까.
“지금 전화 걸어서 이쪽으로 불러. 면접 보고 결정하겠다고.”
“여기로요?”
“고기를 다지려면 모쪼록 작업장에서 작업을 쳐야 좋지 않겠어?”
데롤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 * *
-데록 님이 허락하셨다. 작업장 위치는 알지? 그리로 오라더군. 면접부터 보겠다고.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론 님.”
통신을 끊은 데이브가 힐끔 눈치를 살폈다.
“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응. 아주 잘했어.”
옆에서 통화 내용을 전부 들은 지크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예상대로 자존심을 긁어주니 쉽게 미끼를 문다.
“작업장은? 여기서 멀어?”
“부지런히 걸으면 한나절 안에 도착할 겁니다.”
“좋아. 안내해라. 아, 그 전에.”
지크가 움직이려던 데이브의 어깨를 잡았다.
“약탈한 물건들은 어디에 있지?”
“무, 물건이라면 저기…….”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무 뒤에 여러 개의 포댓자루가 있었다.
보아하니 기습 전에 잠깐 물건을 내려놓은 모양.
자루를 열어보니 값비싸 보이는 물건들로 수두룩했다.
“이게 다 너희가 약탈한 거야?”
“그,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죽였겠지?”
“…….”
“쓰레기들 같으니.”
혀를 차준 지크가 아공간을 열어 자루들을 모조리 담았다.
“헛?”
그 많던 자루가 단숨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데이브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도 당연한 일.
“물건은 내가 가져간다. 너 같은 새끼보단 내가 가지는 게 맞지.”
“…….”
“불만 있어? 있으면 지금이라도 말해.”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노려보는 지크의 시선에 데이브가 얼른 꼬리를 말았다.
“뭘 멍하니 있어? 이제 앞장서.”
“예, 예엡!”
데이브는 후다닥 앞장서며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X발 도둑놈 새끼. 내가 며칠 동안 고생해서 모은 재물들을…….’
여자도 마다하고 모은 재물들이 일면식도 없는 놈한테 한순간에 털렸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당장은 참을 수 있었다.
어차피 재물이야 작업장에 도착하면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멍청한 새끼. 제 발로 호랑이굴에 들어가려고 하다니.’
켈브리지 조합은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조합의 우두머리인 데롤부터가 7서클 마법사인 데다, 서열 6위인 아론도 6서클은 된다.
‘그 둘만 있어도 이런 애새끼쯤은 쉽게 처리할 수 있지.’
면접을 핑계로 조직을 찾아가 복수하려는 모양이지만 마음처럼 쉽진 않을 거다.
조금 정신병자 같긴 해도 서열 1위인 데롤의 실력만큼은 확실했으니까.
‘데롤도 진지하게 면접 볼 생각으로 부른 건 아닐 거야. 아마도 조합을 우습게 보는 건방진 애새끼를 처리하려는 목적으로 부른 거겠지.’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그의 성격상 가만둘 리가 없다.
그걸 알기에 데이브도 순순히 녀석들을 작업장까지 안내하는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저 녀석, 어째서인지 내 마법에 닿았는데도 멀쩡했단 말이야? 그건 어떻게 한 거지?’
자신의 마법에 두 번이나 적중당했는데도 소년은 멀쩡했다.
그것으로 모자라 자신과 똑같은 마법을 되돌려준 데다 회복 마법까지 사용했다.
‘움직임을 보면 오러 유저 같은데 마법을 쓴단 말이지? 지팡이인지 검인지 알 수 없는 물건도 사용하고.’
의문투성이였지만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다.
자신은 그저 놈을 데롤 앞에 데려다 놓기만 하면 된다.
그럼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노리개로 실컷 이용한 뒤 노예로 팔아넘기겠지. 수입이 꽤 짭짤하겠는걸? 흐흐.’
어쩌면 먹잇감을 물어온 자신에게 포상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남몰래 미소 지은 데이브는 서둘러 녀석들을 이끌었다.
데롤과 아론이 있는 호랑이굴로.
* * *
새벽이 지나고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지크 일행은 도착할 수 있었다.
조합원이 보자고 한 작업장에.
“이쪽으로 오십시오. 여기입니다! 여기!”
“너 어째 들뜬 얼굴이다?”
“예? 아,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에 저도 모르게 그만…… 하하.”
어물쩍 넘기는 데이브였지만 지크는 알고 있었다.
녀석이 함정으로 안내하고 있음을.
‘아마 이곳이 내 무덤이라 여기고 있겠지.’
겉으론 협력하는 척하지만, 속으론 복수하고 싶어 안달 나 있을 게 뻔하다.
그러니 이렇게 적극적으로 안내하는 거겠지.
“데롤 님! 접니다! 손님을 데리고 왔습니다!”
쿠그그긍-
철제로 만들어진 작업장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왔냐? 들어와라.”
“감사합니다. 데롤 님.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데롤이라는 자를 따라 작업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마자.
쿠그그그- 쿵!
문이 닫혔다.
뒤돌아보니 또 다른 사내가 철커덕 문을 잠그고 있었다.
‘퇴로를 차단한 건가? 웃기는군.’
정말로 웃긴다.
이 넓은 창고에 고작 두 명만 있다는 것도.
그만큼 자신을 만만하게 봤다는 거겠지만.
‘아무렴 어때. 조합원이기만 하면 됐지.’
피식거린 지크였지만 상대는 그 모습이 언짢았던 모양이다.
“웃어? 감히 내 앞에서?”
데롤의 주변으로 파괴적인 마력이 들끓었다.
옷자락이 펄럭이는 것이 어지간히도 열 받은 모양.
그럼에도 지크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왜? 면접하러 와서 좀 웃으면 안 되냐?”
“멍청한 놈이네, 이거? 내가 미쳤다고 우리 조합원을 건든 새끼를 채용하겠냐?”
“그럼 왜 불렀는데?”
“확 죽여 버리려고.”
데롤의 눈빛엔 살기가 넘실거렸다.
말에 진심이 담겼다는 건 진실의 눈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뒤에 있는 년은 같이 온 동료냐? 노예로 팔아먹기 아까운 외모네.”
“너는 노예로 팔리지도 않게 생겼어.”
“하, 이 새끼가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나이도 어린 새끼가 아까부터 말이 짧아.”
“너는 나이도 처먹었으면서 혓바닥이 왜 이리 기냐?”
“하…… 참.”
데롤의 얼굴에 황당함이 번졌다.
애송이가 또박또박 말대답하니 기가 찰 노릇.
“너 이 새끼, 지금 상황 파악 안 되지? 네가 얼마나 X 같은 상황에 부닥쳤는지 모르지?”
“뭘 모르는 건 그쪽 같은데?”
“됐고, 대화는 여기까지다.”
더는 말하기도 싫다는 듯 데롤의 손끝에서 마법진이 형성됐다.
“너는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피지컬 리스트릭션(Physical restriction).”
짧은 시간 동안 상대의 신체를 장악해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7서클 마법이 지크의 몸에 적중했다.
당연하게도 몸을 마비시키는 패럴라이즈보다 고급 마법이었기에 막는 건 불가능.
“사지를 완전히 비틀어주마.”
곧 있으면 데롤의 명령에 따라 사지가 제각각 뒤틀려 비명을 지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당사자와 메리를 제외하고는.
“뭐하냐?”
“……?”
“뭘 비튼다고?”
“왜…… 반응이 없지?”
데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박거렸다.
마법 흡수에 처음 당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이는 반응이었다.
지크에겐 웃음이 나올 만큼 익숙했지만.
“뭐가 됐든 선빵을 쳤으니 나 역시 보답해야겠지?”
순간 시야에서 사라진 지크가 데롤의 코앞에서 나타났다.
데롤이 놀라며 반격하려 했지만, 지크가 한 건 공격이 아니었다.
<스킬 발동 : 마법 복제>
[‘데롤 레너드’의 마법 5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2서클 마법 ‘슬립’을 습득하였습니다!]
[4서클 마법 ‘라이트닝 스피어’를 습득하였습니다!]
[6서클 마법 ‘아이시클 오브 레인’을 습득하였습니다!]
[6서클 마법 ‘워터 웨이브’를 습득하였습니다!]
[7서클 마법 ‘피지컬 리스트릭션’을 습득하였습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250 증가하였습니다.]
[6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980/10,000]
‘됐어.’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은 지크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제 녀석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방출.”
조금 전 데롤에게서 흡수한 마법이 시전됐다.
순간 무영창이라는 것에 놀란 데롤이지만 눈자위가 커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뿌드드드득-
“끄, 끄아아아악!”
기괴한 소리를 내며 데롤의 팔다리가 태엽 감기듯 돌아갔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극심한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나한테 쓰려던 마법이 이거였구나? 신기하네. 내 마음대로 몸을 조종할 수 있다니.”
뿌드득- 빠드득-
데롤은 대꾸도 하지 못했다.
비명도 더는 지르지 못했다.
관절이 어긋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만 들릴 뿐.
“뭐야, 벌써 죽어버렸나?”
[켈브리지 조합원 처치 1/3명]
죽었다는 증거가 메시지를 통해 나타났다.
실로 허무한 죽음이었다.
켈브리지 조합의 일인자가 당하기엔.
“자, 서열 1위는 저세상으로 떠났고. 이제 누가 떠날 차례지?”
“…….”
“…….”
데롤의 죽음을 지켜본 아론과 데이브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입을 벌리며 멍하니 일인자의 시체를 바라볼 뿐.
지크의 시선이 가장 먼저 아론에게 닿았다.
“넌 몇 위냐?”
“칫!”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아론이 몸을 돌렸다.
서둘러 닫았던 철제문을 열어보려고 하지만.
“어딜 가려고.”
그보다 지크의 몸놀림이 더 빨랐다.
[‘아론 램지’의 마법 5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마법을 복제한 뒤.
츠으으읏-
아공간에서 꺼낸 깃털 검을 등에 박아 넣었다.
“커허억!”
피를 토한 아론이 철퍼덕 바닥에 쓰러진다.
[켈브리지 조합원 처치 2/3명]
지크가 마지막으로 덜덜 떠는 데이브를 바라봤다.
“여기까지 길 안내 해줘서 고마워.”
“사, 살려주십…….”
“그러니 고통 없이 보내주지.”
물론 처형 전에 마법부터 복제했다.
[‘데이브 워커’의 마법 5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복제가 끝나기 무섭게.
툭.
데이브의 머리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켈브리지 조합원 처치 3/3명]
‘오케이. 이제 조합원 배지라는 것만 구하면 되는데…….’
안 그래도 가슴팍에 배지를 달고 있는 녀석들이었기에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탁-
데롤의 시체에서 금색의 배지를 집어 들자 곧바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켈브리지 조합원 처치 3/3명 완료!]
[켈브리지 조합원 배지 획득 완료!]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새로운 기본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