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60화
[기본 스킬 : 영혼 베기]
-효과 : 상대를 베면 영혼을 공격하여 정신적인 타격을 추가로 입힙니다.
-특이사항 : 항시 발동되며 무기로 상대를 베어야지만 효과가 적용됩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들어온 건 패시브 스킬이었다.
무기를 이용해 벨 때마다 상대의 정신을 뒤흔드는 스킬.
‘물리적인 타격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타격까지 추가로 입힌다라. 나쁘지 않네.’
아직 시험해 보지 않아서 얼마나 좋은 스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없는 것보단 나으리라.
시스템이 자신에게 안 좋은 스킬을 줄 리도 없고.
“가자, 메리. 여기에 더 이상 볼 일은 없어.”
“어디로 가실 거예요?”
“일전에 말했듯, 텐진 지방으로.”
두 사람이 시체를 내버려 둔 채로 작업장을 나섰다.
* * *
12인의 선구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공간.
그곳에 서열 2, 3위가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어둠의 손 발루두크와 철인이라 불리는 무표정의 사내였다.
“발루두크.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나?”
“크흘흘, 준비야 차근차근 진행 중이지.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1년을 조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준비한 기간에 비하면 조금이 아니겠는가? 흘흘.”
웃음으로 털어 넘기는 발루두크였지만 속으론 쓰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준비한 계획이 망해 버렸다.
일전에 걱정 말라며 자신감을 표출한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
서열 1위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것 역시 뼈아픈 실책이었다.
안 그래도 철인이 이에 대해 말을 꺼낸다.
“작년에 국왕 암살이 실패한 일 때문에 선구자께서 실망이 크시다.”
“알고 있네. 그분과는 이미 대화를 나눴지. 내 책임인 만큼 최대한 계획을 앞당기겠다고도 말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지?”
“일단은 지난번 계획을 망친 원인부터 제거할 생각이라네.”
“원인?”
“알아보니 암살을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있더군. 반역자를 드러내는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고 말이야.”
“그게 누구지?”
“맥러플린 가문의 사공자, 지크 맥러플린이라네. 우선은 그 녀석부터 제거할 생각이야.”
발루두크의 안광이 어둠 속에서 형형히 빛났다.
* * *
철커덕- 푸쉬익-!
“에이 썅, 또 실패네.”
탄피를 빼낸 에스카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9서클의 마법사이자 기술자인 그가 만든 발명품 중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이 거대한 총.
일명 마나 건.
하지만 에스카의 눈에 현재의 마나 건은 문제가 많았다.
“어떻게 해야 더 크기를 줄일 수 있을까? 이런 무거운 무기를 사람들이 쓰겠냐고. X발!”
투덜거린 그가 고글을 벗으며 탄피를 주웠다.
탄피에 입힌 룬문자를 칼로 벗기고 마나 건의 본체를 분해하며 원인을 파악해 본다.
하지만 이렇다 할 문제점을 찾지 못하겠다.
“하긴 몇 날 며칠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던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리가 없지.”
자포자기한 듯 한숨을 쉬며 도구들을 내던진 에스카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통신구로부터 불빛이 들어왔기에.
“발루두크? 이 늙은이가 웬일이지? 반년 동안 연락 한번 없더니.”
콧방귀를 뀐 에스카는 통신을 받을 생각이 없는지 점멸하는 불빛을 가만히 바라만 봤다.
전과는 퍽 다른 태도.
아닌 게 아니라 이미 12인의 선구자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개 같은 늙은이. 자리가 있으면서도 주지 않다니. 나를 완전 호구로 아는 거야, 뭐야?”
자리를 줄 듯 말 듯하면서 이것저것 부려 먹다가 결국에는 선구자로 임명할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
이러니 열 받지 않고 배기겠는가?
“9서클인 데다 자격도 충분한데 대체 왜?”
이해되지 않았지만 에스카는 또 당해줄 마음이 없었다.
“또 뭔가 X 같은 일을 시킬 생각이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통신구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마음 한구석엔 혹시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하아…… 고양이가 생선을 끊겠냐?”
자조적인 한숨을 쉬던 에스카가 결국 연락을 받았다.
-왜 이렇게 늦게 받는 게냐?
“연구하느라 좀 바빴습니다. 급하니 용건만 말씀하시죠.”
-암살을 의뢰하려고 한다.
“하, 암살해 봤자 선구자도 될 수 없는데 제가 뭐하러…….”
-이번 일을 성공하면 선구자 서열 12위에 올려준다고 약속하지.
투덜거리기 무섭게 에스카의 입이 닫혔다.
눈빛엔 어느새 기대감이 번져 있었다.
“정말입니까? 약속 어기는 거 아니죠?”
-내가 언제 약속을 어긴 적 있었느냐?
“하하, 발루두크 님의 신용이야 확실하시죠. 누굴 암살해 드릴까요? 또 선구자입니까?”
-아니. 네가 제거해야 할 대상은 16살의 소년이다.
“소년…이요?”
고작해야 소년이라니?
에스카는 얼빠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데칸 왕국 동남쪽 끝자락에 있는 텐진 지방.
그중에서도 변방의 이름 없는 마을은 소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목가적인 마을이었다.
그래서인지 피터의 심심함이 극에 달했지만.
“하아아, 더럽게 따분하네.”
피터 맥러플린이 이곳에서 지낸 지도 벌써 1년.
적응하기엔 충분한 시간이 흘렀지만, 날이 갈수록 느는 것은 혼잣말과 한숨뿐이다.
“차라리 마도 수련을 한 번 더 가는 게 낫지…… 이게 사람 사는 거냐고.”
열 명도 살지 않는 작은 시골에서 대화할 상대라곤 평민, 노인, 소작농뿐.
또래는커녕 젊은 여인의 옷자락 한 번 스쳐본 적이 없다.
물론 마을 사람들과 대화하며 심심함을 달랠 수야 있지만, 피터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나 같은 고귀한 귀족이 저런 평민들이랑 대화할 순 없지.”
먼저 마음의 문을 닫아서인지 마을의 그 누구도 피터의 정체를 몰랐다.
유명한 공작가의 자제인 데다 6서클 마법사라는 게 알려진다면 단숨에 마을의 스타가 될 터.
하지만 되도록 조용히 지내라는 아버지의 엄명이 있었기에 근질거려도 참는 피터였다.
“젠장. 하도 심심해서인지 혼잣말이 버릇됐어.”
이 더럽게 심심한 변방의 시골로 추방당한 이후로, 피터는 줄곧 생각해 왔다.
자신은 이런 곳에 있어선 안 되는 인재라고.
언젠가 힘을 키워서 아버지께 인정받고 이 개 같은 감옥 생활을 청산할 거라고.
그때까지는 꾹 참고 실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21살의 나이에 6서클이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지만, 문제는 하루하루가 지겹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생리 현상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마나를 쌓는데 쏟고 있었으니까.
“시골이라 그런가. 다행히 마나 품질은 깨끗하고 좋네. 서클을 올리기엔 더할 나위 없겠어.”
그것 말고도 밤이 되면 별빛이 아름답다는 게 이 마을의 장점이지만, 이제는 질렸다.
하루빨리 7서클, 8서클로 성취를 올려서 대마법사의 반열에 들고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버지도 나를 용서하고 인정해 주시겠지.”
자신에겐 그럴 만한 재능이 있었으니 불가능한 꿈도 아니다.
“지겹지만 또 수련이나 해야겠군.”
조그만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주변의 마나를 받아들이며 심장의 마나 고리를 조금씩 키우고 있을 때였다.
“여기예요?”
문밖에서 들린 소리에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집중이 흐트러진 건 다름 아닌 여자 목소리였기 때문.
그것도 젊은.
‘누구지? 이 마을에 젊은 여자는 없잖아.’
피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빼꼼 열어봤다.
‘헛!?’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 마당에 들어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모양새.
피터가 홀린 듯 방문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여긴 어쩐 일로…….”
“형님!”
순간 피터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못 보던 일행이 옆에 있었기에.
“반가워요, 피터 형님. 이게 얼마 만이에요? 전에 봤을 때보다 살이 쏙 빠지셨네.”
살갑게 다가오는 남자를 본 피터가 얼른 방문을 닫았다.
쿵.
‘X발, X발.’
속으로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탈출구를 찾아봤지만, 자신은 이미 독 안에 갇힌 쥐였다.
끼익-
“왜 문 닫고 모른 척해요? 섭섭하게.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반갑지도 않아요?”
“하하, 바, 반갑지. 오, 오랜만이네, 지크.”
지크와 재회한 피터는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흉이 지크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기에.
물론 따지고 보면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지만.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면회라도 왔어야 하는데. 이런 곳에서 살고 계셨군요?”
“어어, 그래. 그런데 지크, 네가 여긴 어쩐 일로…….”
“전에 말했잖아요. 때가 되면 찾아오겠다고. 심심하던 차에 잘됐죠?”
심심해한 건 맞다.
그렇다고 원흉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딱 보니 뭘 또 시키려고 찾아왔구만……?’
당장이라도 축객령을 내리고 싶었지만, 피터는 지크를 내쫓을 수도, 비난할 수도 없었다.
그 마음이 배신으로 인정되는 순간, 마나의 서약이 그동안 모은 서클을 박살 내고 말 테니까.
그것이 피터를 억지로 웃게 만드는 이유였다.
“하하, 자, 잘됐네! 마침 심심하던 차였는데…… 잘 찾아왔다. 날 찾아온 건 어머니 이후로 네가 처음이야.”
“그렇죠? 그러니까 표정 펴세요. 잘못하다가 서클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 그래. 그런데 옆에 있는 아리따운 여인은 누구……?”
“아, 소개가 늦었네요. 궁정 마법사단에서 어쩌다 알게 된 사이입니다.”
“지크 공자님의 오라버니 되시죠? 반갑습니다. 메리 브라이언트라고 합니다.”
“아…… 예, 그런데 어디서 알게 된 사이라고? 궁정 마법사단?”
피터는 얼떨떨한 얼굴이 되었다.
“지크, 너 궁정 마법사단에 들어갔어?”
“지금은 나왔죠. 후계자 시험 때문에.”
“자, 잠깐. 무슨 소린지 천천히 얘기해 봐. 후계자 시험은 또 뭔지…….”
지크는 그간 벌어진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피터가 없는 동안 궁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론 메리와의 관계는 굳이 떠벌리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건만 풀어서 설명했을 뿐이었다.
‘아무리 부하 1호라 해도 전부 오픈해선 안 되지.’
서약이 걸려 있다고 해도 남에게 떠벌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서클이야 부서지겠지만 그렇다고 죽진 않으니.
그건 메리도 마찬가지였기에 지크는 두 노예를 부모님 이상으로 신뢰하진 않았다.
“허어, 국왕이 암살당할 뻔했다는 이야기는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디테일하게 듣기는 처음이네. 후계자 시험에 대한 것도 그렇고.”
“큰어머니가 이야기 안 해주셨어요?”
“어머니는 그런 것에 관심 없는 모양이야. 찾아와서 하는 말이라곤 대체 그레고르와 왜 손 잡았냐고 타박하기나 하고. 이미 다 지난 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에휴. 그래서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했지.”
“그랬군요.”
자신을 이해하기보다 면박부터 주는 크리스티나에게 정떨어진 피터였다.
“그런데 지크, 넌 후계자에 관심 없는 거 아니었어? 생각이 바뀌기라도 한 거야?”
“그럴 리가요. 여전히 관심 없어요. 그냥 2년 동안 자유를 누리려고 수락한 거죠. 러셀 형님의 자존심도 지켜줄 겸.”
“하, 러셀 그 유약한 놈이 후계자 시험을 포기하지 않았다니. 의외네. 2년을 버틸 수 있으려나 몰라.”
“러셀 형님은 강해요. 충분히 가주가 될 자격도 있고요.”
“그나저나 슬슬 말해주지? 진짜로 여긴 왜 찾아온 거야? 내 말동무나 해주려고 온 건 아닐 텐데…….”
“역시 눈치가 없진 않으시네요.”
지크가 씨익 웃었다.
“제가 찾아온 건 형님을 영입하기 위해서예요.”
“영입?”
“본론부터 말할게요. 저랑 같이 용병단에 들어가시죠.”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피터의 두 눈이 벌어졌다.
“아, 참고로 형님에게 선택지는 없어요.”
“…….”
이제 보니 제안이 아니라 통보였다.
* * *
데칸 왕국 사상 최초로 9서클을 달성한 사람을 꼽자면, 누구나 인자한 풍의 노인을 떠올릴 것이다.
비그스란드 가문의 가주, 달프레드를 말이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였다.
이미 50대의 나이에 9서클을 이룩한 인물이 바로 에스카 로빈스였으니까.
다만, 에스카의 성취는 데칸 왕국에 알려진 적이 없다.
데칸 왕국 소속이지만 데칸이 망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에스카다.
때문에 9서클임을 밝혀서 국왕의 자존감을 채우기보다는 감추는 쪽을 택했다.
일찌감치 편을 정한 것이다.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국왕보다는, 생체실험에 거리낌이 없는 12인의 선구자들에게 줄을 대기로.
그것이 연구에 대한 지원을 받기에도 더 좋았으니까.
‘반드시 이번 일을 마무리 지어서 12인의 선구자 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겠어. 그럼 국왕도 날 붙잡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되겠지.’
곧 있으면 타깃의 정보를 수집하러 간 부하가 결과물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잠시 후, 연구실의 문을 누군가 두들겼다.
“여기, 지시하신 정보입니다. 문 아래에 넣고 가겠습니다. 시킬 일이 있으면 또 불러주십시오.”
“그래. 수고했다.”
에스카는 문 아래로 들어온 양피지를 받아들고 봉인을 풀어보았다.
‘지크 맥러플린. 맥러플린 가의 사공자. 현재 16살이고, 마나에 재능이 없다며 존재감을 숨기다가 1년 전 궁정 마법사단에 입단, 실세인 가웬 발도르를 꺾으며 6서클의 천재라는 게 밝혀졌음. 지금은 후계자 시험을 위해 어딘가로 떠난 상태군.’
꽤 놀라운 정보였다.
16살에 6서클이면 천재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경지였으니.
‘그래봤자 내가 개발한 마나 건 한 방에 죽겠지만.’
피식 웃은 에스카가 정보들을 더 읽어내려갔다.
양피지의 마지막 장에는 요청했던 초상화가 있었다.
‘어디 어떻게 생겼나 볼…….’
무심코 초상화를 보던 에스카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그러더니 동공이 서서히 확장됐다.
‘이, 이 녀석은……!’
초상화엔 낯익은 얼굴이 그려져 있었으니까.
‘1년 전, 녹스와 함께 있었던 그 소년이잖아?’
에스카는 문득 두 사람을 떠올렸다.
녹스 베노마이어를 저격했던 당시, 자신의 마나 건에 맞고도 멀쩡했던 소년, 소녀를.
그중 소년의 얼굴이 여기 있는 초상화의 얼굴과 일치했다.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그때 그 소년이 맞아.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녀석이 지크 맥러플린이었다고?’
마나 건에 맞고도 살아남았다?
마법을 배우지 않은 평민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얘는 마법사잖아? 마법사가 내 마나 건을 맞고도 멀쩡하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일.
에스카의 머리가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