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62화
“야, 야. 저기 봐.”
“신입이 이쪽으로 오는데?”
지크의 접근에 용병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
“설마 우리 대화 들은 거 아니야?”
“저 거리에서?”
“오러 유저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신체 기관을 강화하는 오러 유저가 아닌 이상 대화가 새어나갈 일은 없었지만, 용병들은 가까이 다가온 지크를 경계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찔리는 게 있었으니까.
“뭐냐?”
“무슨 일이야?”
“우리한테 뭐 볼일 있어?”
선배들의 반응이 퉁명스럽다.
이유야 알고 있었지만, 지크는 일부러 모른 체했다.
오히려 방심하기 쉽도록 빙그레 미소를 만들었다.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오늘 들어온 신입, 지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예의를 갖춘 깍듯한 인사에 용병들의 험악한 인상이 펴졌다.
“아아, 인사하러 온 거였어?”
오해가 풀리고 경계심도 풀렸다.
“그래. 반갑다, 반가워.”
“어려 보이는데 예의가 바르네. 몇 살이야?”
“16살입니다.”
“이야, 애기네 애기.”
“부럽다, 부러워. 나도 20년만 젊었어도 너랑 친구 먹었을 텐데, X팔.”
용병들이 키득거렸지만, 그들은 몰랐다.
지크가 단순히 인사하러 온 게 아니었음을.
‘메리한테 뭔가 수작을 부릴 생각인가 본데, 확인은 해봐야지. 의도야 뻔히 보이긴 하지만.’
자신의 부하를 건들려는 놈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음흉한 저들의 눈빛도 교정해 줄 필요가 있었고.
하지만 그보다도.
[‘루크’의 마법 5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1서클 마법 ‘매직 미사일’을 습득하였습니다!]
[2서클 마법 ‘라이트닝 볼트’를 습득하였습니다!]
[3서클 마법 ‘패럴라이즈’를 습득하였습니다!]
………………
…………
[‘콜린’의 마법 5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
……
마법 복제가 주목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들의 마법이 털리고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지만.
“지크라고 했냐?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예! 뭐든 물어보십시오.”
용병이 눈짓으로 메리 쪽을 가리켰다.
“쟤 말이야. 너랑 무슨 사이야?”
‘미끼를 물었군.’
메리에 관해 물어보길 바랐던 지크가 준비했던 대답을 내놓았다.
“메리요? 저희 누나입니다.”
“누나? 누나였어?”
“둘이 별로 안 닮은 거 같은데?”
“누나가 참 예쁘게도 생겼네.”
“피부도 하얀 게 고것 참…… 크흠.”
군침을 흘리는 꼴이 꼭 발정 난 짐승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크는 여운을 남기기 위해 작별을 고했다.
“그럼 인사도 했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지크.”
“네?”
“이따가 말이야. 밤에 우리 숙소로 너희 누나 좀 불러올 수 있겠냐?”
“왜요?”
“왜긴, 우리가 환영회 좀 해주려고 그러지.”
“그래! 숙소 위치를 알려줄 테니까 오늘 밤에 데려와. 응?”
의도가 빤히 보였지만 지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할게요.”
“알았다.”
“기대하고 있으마. 흐흐.”
돌아서는 지크의 뒤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당장은 손 볼 타이밍이 아니다.
‘기다려야지. 밤이 되기를.’
덫에 걸린 건 메리가 아닌 녀석들이었으니까.
* * *
황금독수리 전투 마법사단은 총 27명의 단원이 있었다.
전체적인 용병 수에 비하면 극히 적었지만 그만큼 마법사가 귀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마법사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영지전 승패에 판가름이 날 정도.
그래서인지 마법사단에는 제멋대로 구는 용병들이 꽤 많았다.
어지간하면 잘리지 않으니까.
“어어, 왔어?”
“여기야, 여기!”
“이쁜아, 내 옆에 앉아. 이리로!”
기숙사에 들어오는 지크와 메리를 보며, 용병들이 환대했다.
총 네 명이었는데, 아까 메리를 보며 수군거리던 그치들이었다.
“누나, 여기 앉아.”
“으응.”
메리가 먼저 앉고 그 옆에 지크가 앉으려고 할 때였다.
“잠깐, 잠깐. 지크, 너는 이제 그만 가봐야지?”
“네? 환영회를 치르신다면서요. 왜 저만…….”
“여기 술 깔아놓은 거 안 보여?”
“어린놈이 어딜 술자리에 끼어들려고.”
판게아 대륙에서는 보통 12세가 넘어가면 성인으로 취급한다.
서클을 만드는 것도, 마도 수련을 보내는 것도 12세를 기준으로 하는 건 이 때문.
다만 신체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나이이므로 16세 이상부터 술을 허용하곤 했다.
지크로선 마시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뜻.
그럼에도 용병들은 끼어들 생각 말고 얼른 꺼지라며 눈빛으로 압박을 가했다.
우물쭈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참다못한 용병이 꽥 소리친다.
“환영식은 나중에 치러줄 테니까 메리만 두고 빠져. 얼른!”
“아, 알겠어요. 저는 다음에 불러주세요. 그럼…….”
지크가 나가자 용병들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을 걸어 잠갔다.
철컥-
본격적으로 놀아볼 생각이었다.
여기 있는 예쁜 아가씨와.
“메리라고 했지? 술 잘 마셔?”
“네? 아, 아니요.”
“그러지 말고 한잔 마셔봐.”
“술은 입에도 안 대봤어요.”
“그럼 이참에 마셔보면 되겠네.”
“마시면 알딸딸하게 기분 좋아진다니까?”
“하지만…….”
“에헤이, 선배님들 말 들어야지?”
“신고식이라고 생각해.”
“자, 얼른.”
용병들이 재차 술을 들이댔다.
위스키의 강한 알코올 향이 코끝을 찌른다.
‘어쩌지? 마셔야 하나? 지크 공자님이 적당히 장단 맞춰주라고는 했는데…….’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메리였다.
곤란한 낯빛으로 계속해서 입에 댈 생각을 하지 않자, 참다못한 용병이 술잔을 내려놨다.
“씨이발, 적당히 빼야지. 진짜 재미없게 구네.”
“신입이면 신입답게 굴어야지 말이야. 마음가짐이 덜 됐구만?”
“누가 보면 잔에 독이라도 탄 줄 알겠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압박을 가한다.
이쯤 되자 메리도 더는 뺄 수가 없었다.
“꿀꺽, 우웁!”
“에이씨, 아까운 술을 왜 뱉어?”
“진짜 안 마셔본 티가 나는구만?”
“술 안 마시는 여자라니. 이거 귀한데?”
“외모만이 아니라 몸매도 훌륭하고 말이야. 흐흐.”
흘깃거리는 눈빛엔 저열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이미 자기들끼리 한잔하고 있었다지만 술기운 때문이라기엔 시선이 너무도 노골적이다.
“얼른 마셔야지?”
“그래 가지고 용병 생활할 수 있겠어?”
“그, 그만 마실게요. 머리가 어지러워서…….”
“한 모금도 안 마셔 놓고 뭘 빼고 지랄이야?”
“술은 취하라고 마시는 거야. 어지러운 게 당연한 거라고.”
“흐흐, 어지러워야 좋지. 우리한테는.”
히죽히죽 웃는 모습에서 뭔가 숨은 의도가 보였지만 메리로선 계속해서 권하는 술을 거부할 수 없었다.
“꿀꺽, 꿀꺽, 우읍!”
“어어, 뱉으면 안 돼.”
“그렇지, 그렇지!”
“다 마시라고.”
“자, 여기 한잔 더!”
생전 처음 마신 술에 메리가 취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 어지러워…….”
털썩-
기절하듯 쓰러지자 용병들의 입꼬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올라갔다.
“드디어 쓰러졌네.”
“설마 진짜로 술을 안 마셔봤을 줄이야.”
“이제 제대로 한 번 놀아볼까? 흐흐.”
씨익 웃던 용병들이 메리의 옷깃을 잡아끌려는 순간.
“뭐 하는 거예요?”
방에서 들린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언제 들어왔는지 지크가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뭐,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어,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지크의 태연한 대꾸에 용병들이 벙쪘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얼굴이었다.
지크가 스르륵 모습을 감추기까지는.
“……!!!”
“뭐, 뭐야!?”
“사라졌어?”
“설마 인비저빌리티?”
지크가 맞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정답.”
“인비저빌리티를 쓴다고?”
“그럼 5서클이라는 뜻이잖아?”
“아니요.”
지크가 정정했다.
“5서클이 아니라 6서클인데요?”
“뭐? 6서클?”
5서클이라 해도 믿기 어려운데 6서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6서클 마법사가 뭐하러 용병단에 들어오겠는가?
그것도 16살밖에 안 되는 나이에.
16살에 6서클이면 귀족 작위를 받아도 모자람이 없는 재능이다.
그 사실을 알아서인지 용병들은 쉬이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애새끼가 지금 선배들이랑 장난치냐?”
“어떻게 한 거야? 인비저빌리티 스크롤이라도 얻었냐?”
“무슨 아티팩트 같은 걸로 우리 속이고 있는 거지? 맞지?”
믿지 못하는 모습에 지크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거 원. 보여줘도 믿질 않으니.”
“어린놈의 새끼가 선배한테 하는 말본새 봐라?”
“말투가 어째 좀 띠껍다?”
“띠꺼울 수밖에요. 저희 누나를 추행하려고 한 사람들한테 고운 말이 나오겠어요?”
“지랄 마라. 우리가 뭘 어쨌다고 그래?”
“증거 있어? 네 눈깔이 증거냐? 응?”
“눈깔이 증거면 파버리면 되겠네.”
“저 새끼 안 되겠네. 정신 교육 좀 받아야겠는걸?”
흉흉한 기세로 몰아세우는 걸 보며 지크는 픽 웃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수를 믿고 나대는 모양인데, 자신에겐 통하지 않는다.
“교육이 필요한 건 선배님들 같은데요?”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가!”
마법보다 주먹질로 교육해 주고 싶었는지 용병 하나가 달려들었다.
그 전에 지크의 스킬이 먼저였지만.
“피지컬 리스트릭션(Physical restriction).”
“어엇!?”
달려오던 용병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한순간에 몸의 통제권을 빼앗긴 것이다.
훌러덩.
갑자기 바지를 벗고 팬티만 걸치자 지켜보던 동료들이 당황했다.
당사자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당황했고.
“루크!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옷을 벗고 난리냐고!”
“아, 아니야! 내가 그러는 게 아니라고!”
순식간에 추행 증거를 만들어낸 지크가 히죽 웃었다.
살면서 7서클 마법을 본 적이 없으니 자신이 뭐에 당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용병들도 눈치가 없진 않았다.
“네놈 짓이지!”
“저 애새끼 짓이 확실해!”
비웃음을 짓는 모습에 합리적 의심을 한 용병들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지크의 손아귀에서 빛이 떠올랐다.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1서클밖에 안 되는 기초적인 공격 마법이었지만, 그 위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하나도 아닌 수십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면.
퍼퍼퍼퍼퍽!
“억!”
“아악!”
수십 다발의 매직 미사일이 네 방향으로 갈라져 용병들을 구타했다.
몸에 닿자마자 멍 자국을 만들며 사라진 매직 미사일이었지만 그러기 무섭기 지크의 손아귀에서 다시금 떠오른다.
“개새끼는 맞아야 정신 차리죠. 안 그래요?”
“자, 잠깐만!”
퍼퍼퍼퍼퍽!
퍽퍽퍽퍽!
연속적으로 퍼부어진 그것은 용병들의 몸을 고기 반죽하듯 두들겼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퍼퍼퍼퍼퍼퍽!
퍽퍼퍼퍼퍽!
“커허으으…….”
“어어억…….”
애처로운 신음을 흘리던 용병들의 눈알이 희번덕거리며 돌아간다.
‘여기까지만 할까?’
정신을 잃게 할 생각이 없었기에 떠오른 마법을 취소시켰다.
“이만하면 교육이 됐겠죠? 그러게 왜 저희 누나를 건드려요.”
“너, 너 이 새끼…….”
그때였다.
쾅-!
“이게 다 무슨 소란이야?”
문이 부서지면서 단장 크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지만 이는 지크의 의도대로였다.
크리스의 옆에는 다름 아닌 부하 1호 피터가 있었기에.
‘시킨 대로 단장을 불러왔다. 지크.’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는 듯한 피터를 보며, 지크가 씩 웃었다.
‘잘하셨어요, 형님. 타이밍 좋았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크리스는 놀란 눈으로 방 안의 풍경을 바라본다.
단원들이 굼벵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상황.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은 오직 지크뿐이었다.
“싸움이 일어났다고 해서 와봤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
단장이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지크를 바라봤다.
“설마 네가 이렇게 한 거냐?”
“단장님. 제가 다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지크는 침착한 어조로 상황을 설명했다.
“여기 있는 선배님들이 메리를 부르더니 술을 권했습니다. 술을 못한다고 재차 거부했는데도 신고식이라며 억지로 먹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곤 메리가 취하자 바지를 벗기 시작하더니 강제적으로 추행을…….”
“뭐?”
크리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안 그래도 팬티만 입고 있는 단원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증거가 불충분했지만, 설득력은 있었다.
평소 성격이 개차반인 녀석들이었기에.
“이놈들이 기어코……!”
화가 머리끝까지 난 크리스는 신음을 흘리는 용병들을 걷어찼다.
“엄살 그만 부리고 당장 밖으로 따라 나와!”
“끄으으…….”
물에 젖은 듯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킨 용병들이 지크를 힐끔거렸다.
“뭘 봐요?”
“아, 아니다.”
피하는 눈빛엔 전에 없던 두려움이 각인되어 있었다.
비척거리며 단장을 따라가는 용병들에게, 지크는 시선을 두지 않았다.
눈앞에는 어느새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