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63화
퀘스트가 떠오른 건 용병들이 메리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돌발 퀘스트 : 참교육하기】
└일부 용병들이 작당하여 메리를 추행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메리를 구하고 예절을 주입시켜 윗사람이 누구인지를 인지시키십시오.
<조건>
└메리 구하기
└용병들의 예절 교육
<보상>
└5차 스킬 숙련도 4,000 증가
갑자기 떠오른 퀘스트였지만 지크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퀘스트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시스템도 보기 싫은 거겠지. 저 병신들이 메리를 건드는 꼴을.’
동료는 아니지만 메리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부하.
자신의 것을 탐내는 놈들을 가만히 놔둘 지크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주변 시선이 마뜩잖아서 본보기가 필요했는데 마침 잘됐네. 어째 시스템이랑 합이 잘 맞는걸?’
낮잡아보는 시선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다만 무턱대고 팰 수는 없다.
단장도 인정할만한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
‘범행 현장을 직접 잡는다면 그보다 더한 명분도 없겠지.’
지크가 순순히 술자리에 메리를 데려간 건 다름이 아니었다.
범행 현장을 잡고 두들겨 패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는 척하며 인비저빌리티를 쓰고 들어와 상황을 지켜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러면 메리가 당하기 전에 개입할 수 있다.
‘피터 형님의 등장 타이밍도 좋았지. 내가 시킨 대로 단장도 불러왔고.’
모든 걸 해결한 지크는 보상으로 들어온 숙련도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5차 스킬 숙련도 4,000이 증가합니다.]
[6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5,900/10,000]
비록 6성은 찍지 못했지만, 숙련도 4,000은 적지 않은 보상이었다.
‘이제 녀석들의 처분만 남은 건가?’
지크가 단장에게 끌려가는 성추행범들을 바라봤다.
퀘스트도, 마법 복제도 전부 끝냈으니 놈들이 이제 어떻게 되든 알 바는 아니다.
다만 호기심이 동했다.
단장이 어떤 처분을 내릴지.
‘생각이 있으면 그냥 넘기진 않겠지.’
지크의 눈에 호통치는 단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너희 미쳤어? 내가 분명 신입한테 잘해주라고 했지?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일을 저질러?”
“저, 저기 단장님! 그게 아니라니까요.”
“오해예요, 오해!”
“오해는 무슨 오해! 바지를 벗고 있는 걸 봤는데!”
“그, 그건 저기 있는 지크라는 놈이 제 몸을 막 조종해서……!”
“술 취했냐?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억울하다는 얼굴로 해명하는 용병들이었지만 먹힐 리가 없었다.
5서클밖에 안 되는 단장이 7서클 마법을 알 리도 없을뿐더러, 안다 해도 지크는 6서클로 알려져 있다.
7서클 마법을 쓸 수 있을 리 만무한 일.
거기다 지크 일행이 5, 6서클이라는 걸 아는 단장으로선 용병들의 편을 들기가 부담스러웠다.
행여나 미적지근하게 조치했다가 기분 나빠서 용병단을 나가기라도 하면 곤란해질 테니.
‘마법사들 사이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지. 서클이 곧 법이야. 특히 마법사가 귀한 용병 업계에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단장은 지크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6서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하지만 용병들이 이리도 발뺌하는데 증거도 없이 처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 되겠다. 메리!”
취기는커녕 애당초 취하지도 않았던 메리가 단장의 부름에 걸음을 옮겼다.
아직 취기가 남았다는 듯 비틀거리는 열연을 보이며, 사전에 지크가 했던 말을 상기했다.
‘메리. 단장님이 너를 불러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볼 거야. 어쩌면 널 추행한 녀석들의 판단을 맡길 수도 있지. 그럴 때 네가 해야 할 일은…….’
꿀꺽 침을 삼킨 메리가 단장 앞에 당도했다.
“무슨 일로 저를…….”
“이야기는 들었다. 이 녀석들에게 추행을 당한 게 사실이더냐?”
메리의 눈이 범죄자들을 바라봤다.
두려움에 차마 쳐다보지 못하겠는지 곧장 눈을 피했다.
의도적으로.
“그, 그게…….”
추행당할 때의 공포가 떠오르는지 파르르 떨리던 눈가 아래로 물줄기가 흘렀다.
뚝뚝.
“흐윽, 흐윽…….”
서럽게 우는 메리.
그 모습에 지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당황했다.
메리의 연기 실력이 발휘됐다.
* * *
메리를 건든 용병들의 처분이 결정됐다.
모조리 추방.
용병패를 반납하고 전투 마법사단에서 쫓겨난 그들은 평생 황금독수리 용병단에 들어올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다른 용병단에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다시 용병이 되든가, 아니면 어디 가서 도적질이라도 하든가. 알아서 잘살겠지.’
뭐 4서클이나 되는 마법사들이니 먹고살기에 걱정은 없으리라.
다른 걸 떠나서 지크는 용병단의 결정이 만족스러웠다.
이쪽 업계에선 4서클 마법사도 귀중한 인력.
용병단으로선 꽤 강단 있는 조치를 한 셈이다.
물론 지크 일행보다 녀석들을 버리는 게 낫다는 계산이었겠지만.
‘나 혼자 들어왔었으면 추방까진 하지 않았을지도…….’
피터와 메리까지 묶어서 들어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다른 조치를 내렸을지도 모른다.
‘아무렴 상관없지. 어쨌거나 의도대로 놈들을 내쳤고 퀘스트도 성공했으니. 이걸로 다른 단원들의 시선도 달라지겠지.’
아니나 다를까.
사건 이후로, 단원들은 지크 일행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괜히 건드렸다가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교훈도 얻긴 했지만, 무엇보다 서클의 차이가 컸다.
지크와 피터는 단장보다도 높은 6서클이었으니까.
‘단원들 대부분이 4서클 이하야. 뭐, 평민 중에 이 정도면 높은 편이라고 해야 하나?’
재능 넘치는 마법사들은 대개 귀족인 경우가 많았고, 당연하지만 귀족이 용병 짓을 할 리는 없었다.
평민 중에 4서클이면 높은 축에 드는 셈.
5서클이 넘는 지크 일행이 특출난 경우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숙련도를 위해 들어왔을 뿐, 계속해서 용병 짓을 할 생각은 없는 지크였다.
‘여기 있는 단원들의 마법은 전부 복제했어. 이제 슬슬 일거리가 잡혀야 할 텐데…….’
단장에게 들어보니 건수가 잡히는 경우는 한 달에 두 번 정도라고 한다.
황금독수리 용병단이 워낙 유명한 만큼 여러 곳에서 원하기에 가격 협상할 시간도 필요하다나 뭐라나.
그렇기에 한동안 기다려야 한다고 알고 있던 지크였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신입. 운이 좋구나. 출정이 결정되었다.”
생각보다 빨리 건수가 잡혔기에.
* * *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을에, 평범하지 않은 남자가 있었다.
“X발, 끄윽. 이제 술도 다 떨어졌고, 뭐 먹고 사나.”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앙상한 몰골과 수척한 외모.
귀족을 떠올리기엔 볼품없어 보이는 남자가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그러나, 안에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들어와 있었다.
“돈도 없는 양반이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가?”
“헛, 다, 당신 누구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중절모를 쓴 멀끔한 신사가 다리를 꼰 채로 제집처럼 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놀라던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왜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온 거냐고 묻잖아!”
“왜긴. 맥러플린 가문의 삼공자 도련님을 만나러 왔지.”
“뭐?”
오랜만에 듣는 호칭에, 남자 알렉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술기운이 싹 달아난다.
“하…… 도련님은 무슨. 가문에서 쫓겨난 지가 언젠데.”
“알렉스 맥러플린, 맞나? 후계자 시험에서 암살단을 고용했다가 쫓겨난.”
“알면서 뭘 자꾸 묻는 거요?”
“확인차 물은 것이네. 예상보다 꼴이 말이 아니군.”
빠직.
알렉스의 이마에 핏대가 돋았다.
멋대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안 좋은 기억을 들추어내니 심사가 뒤틀리는 게 당연.
“용건이 뭐요? 아니, 그보다 당신은 누구요?”
“내가 누구인지는 알 거 없네. 그나저나 이런 시골에서 살려니 삶이 꽤나 궁핍했겠군. 집 나오면 고생이지, 안 그런가? 뭐,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긴 하다만.”
“지금 뭐 하자는 거요? 누굴 놀리…….”
팅!
순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물건에 알렉스가 반사적으로 낚아챘다.
금화였다.
“그거면 넉 달은 너끈하게 생활할 수 있겠지. 안 그런가?”
“……뭡니까? 지금?”
돈을 받았으면서도 알렉스는 신사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원하는 게 뭔지 도통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상대의 경계심을 느꼈는지 픽 웃은 신사가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네.”
찰그랑.
테이블 위에 올려진 돈주머니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린다.
적어도 수백 골드가 들어 있을 게 분명했다.
“내 질문에 답한다면 주머니에 있는 금화를 전부 내어주겠네. 적어도 평생 먹는 걱정은 할 필요 없을 걸세.”
눈이 휘둥그레지는 제안.
말마따나 돈이 궁핍한 상황이었기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알렉스의 말투가 공손해진 건 그 때문이었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슬며시 돈주머니를 품에 챙기며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지크 맥러플린이라고 알지?”
“…….”
“그에 관한 것들을 알고 싶네.”
중절모의 신사, 에스카의 입꼬리가 짙게 올라갔다.
‘누구라고? 지크?’
잠깐이지만 알렉스는 악몽이 떠올랐다.
암살자 흉내를 내던 지크가 현장에서 증거를 잡아 자신을 엿 먹었던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꿈에 가끔 나타날 정도로 잊히지 않는 악몽이었다.
“지크, 그 개새끼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고요?”
알렉스의 반응이 거칠어진 것은 당연했다.
자신을 나락으로 보낸 인물을 꼽자면 단언컨대 지크였으니까.
“반응을 보니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군.”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그 새끼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됐는데?”
“진정하게. 나는 그저 궁금할 뿐이네. 지크 맥러플린에 대한 소문이 진실인지 아닌지.”
“소문이요? 무슨……?”
“모르는가? 궁정 마법사단에 입단해서 에이스로 활약했다는 이야기를.”
알렉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금시초문이었다.
궁정에서 도는 소문이 이런 시골까지 닿진 않았기에.
“그 녀석이 궁정 마법사단에 들어갔다고요? 마법도 쓰지 못하는 놈이 어떻게?”
“마법을 쓰지 못하다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6서클의 천재로 밝혀진 지가 언젠데.”
“6서클? 지크가?”
연신 놀라는 모양새를 보던 에스카가 표정을 살짝 일그러트렸다.
‘타깃에 대해서 정보 좀 얻으려고 왔더니만 나보다 더 모르고 있다니. 건질만 한 정보는 없는 건가?’
속으로 혀를 차는 줄도 모르고 알렉스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에 바빴다.
“정말이에요? 잘못 들으신 거 아니에요? 그 녀석은 어릴 적부터 재능이 없는 걸로 판별나서 마법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다고요. 허구한 날 마법 서고에 틀어박혀서 책만 들여다보던 놈이 6서클이라니, 그 무슨…….”
“나도 그것이 궁금해서 소문의 진위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일세. 듣기론 맥러플린 가문에서 지크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어릴 때부터 숨겨왔다고 하던데…….”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놀라는 알렉스의 모습에서, 에스카는 더는 얻을 정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거 헛걸음을 했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 순간.
알렉스의 중얼거림이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