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66화
영지전.
영주가 서로의 영토를 탐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
그것이 보통의 이유였지만 때로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번 영지전이 그랬다.
두두두두!
100명의 기병으로 꾸려진 헤밀톤의 선봉대가 아고스의 영토를 침범했다.
이를 본 감시병이 서둘러 뿔피리를 불었고.
뿌우우우-!
곧이어 아고스의 영주성 앞으로 수백의 병사들이 집결했다.
“흥, 예상대로 저렇게 나오는군.”
만찬을 즐기다 나온 아고스 영주는 몰려오는 기병들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저 100명의 기병으로 깔짝거리며 우리를 유인하려는 속셈이겠지.”
영주의 예상은 적중했다.
기병들은 더 가까이 접근하지 않은 채 도발하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잡아볼 테면 잡아보라는 듯, 꼬리를 흔들면서 말이다.
“같잖은 영주 놈이 저리도 애쓰는데 놀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씨익 미소 지은 아고스 영주가 지휘관에게 명령했다.
“부대를 나눈 다음 작전대로 시행하거라!”
“예, 영주님!”
아고스 영주의 작전은 간단했다.
도발에 응하듯, 소수의 분대만 기병을 쫓는다.
그리고 진짜 본대는 뒤편으로 돌아서 헤밀톤의 후문을 친다.
‘놈들은 정문을 열어놓고 그쪽으로만 병력을 집중시켰을 터. 우리는 몰래 돌아서 후문을 공략하면 그만이야.’
상대의 작전과 병력의 배치를 꿰뚫어 보지 않는 한 실행할 수 없는 작전.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헤밀톤의 지휘관인 바튼이 자신의 편이었기 때문.
아고스 영주가 승리를 장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상대 지휘관이 통신구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해 오는데 이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설마 바튼이 날 함정에 빠트리려고 거짓 정보를 주진 않았겠지. 이날을 위해 오랜 시간 상대 영지에 첩자로 잠입해 있던 거니.’
헤밀톤 영주의 딸을 간음하기 좋게 유인해온 것도 바튼이었다.
배신당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아고스 백작이 출정 준비를 마친 군사들을 바라봤다.
“기병 200은 상대 기병을 따라가고, 나머지는 놈들의 뒤를 치러 돌아간다!”
두두두두두두-
아고스의 기병 200이 말을 타고 달려갔다.
멀리서 먼지를 뿌리며 다가오는 적군의 모습에, 헤밀톤의 기병들이 서둘러 말머리를 돌렸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예상대로 적들이 도발에 걸려들었어.’
‘혹시나 따라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이대로 헤밀톤 성으로 유인해서 놈들을 잡아먹는다.’
의도한 대로 따라오는 아고스의 기병들을 보고 안심했으나, 그들은 몰랐다.
함정에 걸려든 건 놈들이 아니라 자신들이라는 것을.
* * *
헤밀톤의 감시병이 눈을 크게 떴다.
저 멀리, 기병들이 본성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꼬리를 달고서.
“선봉대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적을 유인해서 돌아왔군. 그래, 숫자는?”
“기병 200 정도 됩니다!”
“아고스 백작이 예상대로 움직여줬군.”
지휘관인 바튼이 미소 지었다.
하지만 병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그 의미가 달랐다.
음흉함이 잔뜩 담긴 미소였으니까.
‘저 기병들은 시선을 끌기 위함이고, 진짜 본대는 후문에서 나타나겠지.’
아니나 다를까.
아고스의 기병들은 더는 접근하지 않은 채 머뭇거리면서 병사들의 시선을 끌었다.
성문을 반쯤 열어놨음에도 들어올 생각을 안 했다.
“저 녀석들, 왜 안 들어오지?”
“성문도 열어놓았고 성벽의 병력도 소수만 배치해 놨는데?”
“우리 작전을 눈치챘나? 너무 경계하는 거 아니야?”
대기하던 병사들이 불안한 듯 수군거렸지만 바튼은 침착했다.
“걱정할 것 없다! 성문을 열어놓으면 수상하게 여기는 게 당연하지! 200밖에 안 되는 기병으로 들어가 보기엔 부담스럽기도 하고.”
지휘관으로서 병사들을 안심시킨다.
물론 이곳에 묶어두기 위한 연기였지만.
“조금 더 기다리면 놈들이 본대를 불러올 것이다. 먹음직스러운 과실을 눈앞에서 놓치고 싶진 않을 테니! 그러니 자리를 유지한 채 기다려라! 적이 미끼를 물 때까지!”
바튼은 그리 말하며 슬쩍 돌아섰다.
슬슬 아고스의 본대가 후문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
곧이어.
땡땡땡땡!
종이 울리면서 병사 한 명이 다급한 얼굴로 뛰어왔다.
“지, 지휘관님! 후, 후문 쪽으로 적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뭐라? 얼마나 말인가?”
“그, 그게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대규모의 적군이 후문에 모였다는 말에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튼도 마찬가지로 눈알이 튀어나올 듯 놀란 표정을 연기했다.
“모, 모두! 후문으로 이동하라! 성문을 사수해야 한다!”
다급한 외침에 병사들이 말을 타고 부리나케 이동했다.
대다수가 정문에 모여 있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잘못했다가 후문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그때는 끝이다.
하지만 병사들이 후문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성문이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적들이 오러를 주입한 검으로 장작 패듯 문짝을 자르고 있었으니까.
콰직! 콰직-!
제아무리 튼튼한 문이라도 오러 유저 수십이 달려들어 공격하면 너덜너덜해지기 마련이다.
오러가 주입된 무기의 절삭력은 쇠도 잘라낼 정도였으니까.
콰자작-!
“이런……!”
“후문이 부서졌어!”
“드, 들이닥친다!”
해일처럼 들이닥치는 적군의 물결에, 헤밀톤의 병사들이 당황했다.
‘후문에 병력을 분배해놨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적의 침입을 허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병사들에게 결정권은 없었다.
모든 권한은 지휘관인 바튼에게 있었으니.
‘끝났다. 성안으로 들어온 이상 막을 방법은 없지.’
망연자실한 아군을 보며 바튼이 속으로 웃었다.
자신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승패는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되도록 영지에 잠입해 오랜 시간을 첩자로 생활하고 아고스의 영주에게 정보를 준 거니까.
‘헤밀톤의 병사들은 이제 독 안에 든 쥐처럼 죽어가리라.’
더 이상의 전략은 필요 없다.
힘으로 찍어누르고 학살하기만 하면 손쉽게 승리를 따낼 수 있으리라.
아고스 영지의 승리를.
“마, 막아라!”
“으아아악!”
“마, 마법사단! 마법사단을 불러!”
아비규환의 현장이 벌어졌다.
아고스의 정규군이 영주 성을 제집 드나들듯 휘저으며 오러가 담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크어억!”
“아아악!”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헤밀톤의 병사들.
오러를 일으킬 줄 모르는 평범한 병사가 대부분이었기에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물론 헤밀톤에도 오러 유저가 없진 않았다.
우우웅-
검신에 푸른 빛의 오러를 감싼 정규군이 아고스의 정규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커억!”
“컥!”
기세가 무색하게도 헤밀톤의 정규군은 몇 합 섞어보지도 못하고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같은 오러라 해도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됐어. 아고스의 승리는 걱정할 필요 없겠군.’
상황을 지켜보던 바튼이 미소를 지으며 슬쩍 몸을 돌렸다.
난전이 벌어진 틈에 빠져나갈 생각.
그때,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마주쳤다.
“뭐가 웃기길래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난데없는 목소리에 바튼의 미소가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이 상황이 웃기나 보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상대를 보며 바튼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젠장! 저 애송이에게 웃는 걸 들키다니!’
걸어오는 상대는 다름 아닌 지크였다.
황금독수리 용병단의 16살 마법사 용병.
애송이처럼 보였지만 6서클이라고 알려져 있기에 방심할 순 없었다.
“무, 무슨 소리요? 내가 언제 웃었다고.”
“시치미 떼지 말고. 이 상황, 네가 만든 거지?”
“허! 이럴 시간이 없소! 얼른 작전 본부로 가서 대책 마련을…….”
“대책 마련 좋아하시네.”
픽 웃은 지크가 즉시 마법을 썼다.
“패럴라이즈(Paralyse).”
한차례 몸을 떨던 바튼이 철퍼덕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진다.
몸이 마비된 것.
다가간 지크가 마법이 풀리기 전에 포승줄로 몸을 묶었다.
“이러면 도망갈 수 없겠지.”
반역자를 생포한 지크는 아비규환이나 다름없는 현장을 바라봤다.
이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마법사는 나중에 찾고, 일단 상황부터 해결해야겠네.”
지크가 아공간에서 깃털 검을 꺼낸 뒤 달려갔다.
적진 한가운데로.
* * *
“끄아아악!”
챙챙!
“죽여라!”
“아악!”
푹!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살을 찢는 파육음, 함성 등.
온갖 소리가 현장에 난무했다.
전쟁이었으니 당연히 나는 소리다.
하지만 소리의 무게추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놈들이 도망간다!”
“쫓아라! 헤밀톤의 개새끼들은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이는 거다!”
아고스의 병사들이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수적으로 우세하기도 했지만 두 영지 간에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고스의 병사들의 검신은 대다수가 푸른빛이었다.
오러 주입.
검신에 오러를 주입해 절삭력을 강화하는, 오러 익스퍼트 이상만 사용할 수 있는 그 기술을, 아고스의 병사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었다.
헤밀톤의 병사들과는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제, 젠장. 저걸 어떻게 이기라고!”
“X발, 도망쳐!”
“으, 으아아아!”
병사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검도, 갑옷도 무참하게 갈라버리는 기술을 구사하는데 어느 누가 검을 섞고자 하겠는가?
오러 유저에 대항할 수 있는 건 같은 기술을 쓰는 오러 유저뿐이었다.
때문에 남아 있는 병력이라곤 헤밀톤의 오러 유저들밖에 없었지만, 그들도 곤란하긴 마찬가지였다.
몇 합 부딪쳐 봐서 아는 것이다.
상대 오러의 밀집도가 더 높고 예리하다는 것을.
챙챙!
“크윽!”
헤밀톤의 오러 유저들이 필사적으로 버티고 대항했다.
같은 오러인데도 검을 부딪칠 때마다 반발력에 튕기듯 밀려난다.
“젠장, 더 못 버티겠어!”
“나, 나도!”
몇 합 섞어보고 죽음을 예감한 병사들의 얼굴에 절망감이 드리우는 그때.
화르르륵!
희망이 생겼다.
“3시 방향에 마법사다!”
“피해라!”
아고스의 정규군은 그리 외치며 서둘러 뒤로 빠졌다.
그러나 도망쳐 봤자라는 듯 불덩이가 날아와 한가운데서 폭발했다.
콰아아앙!
아고스의 병사 다섯이 한순간에 통구이로 전락했다.
단장 크리스의 지팡이 끝에서 다시금 마력이 모여들었다.
“사격 준비!”
화르르륵!
황금독수리 마법사단의 지팡이 끝에 일제히 화염이 만들어졌다.
“발사!”
후우우우웅!
후우우웅!
수십 발의 화염구가 아고스의 정규군을 불태웠다.
“끄아아아!”
“아아악!”
아무리 오러 유저라도 마법을 막을 재간이라곤 없었다.
쇠도 녹이는 불꽃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강화된 신체로 불덩이를 피하는 게 고작이다.
그렇다고 거리를 좁히면 이기느냐?
그것도 아니다.
티잉-!
마법사를 노린 검이 배리어에 부딪쳐 바르르 떨렸다.
쇠도 가르는 오러였지만, 마법사 앞에서는 한낱 애들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퍼엉!
“끄어억!”
가까이 붙은 오러 유저를 화염구로 날려버린 크리스가 재차 마력을 끌어모았다.
“익스플로전(Explosion)!”
한차례의 폭발로 또다시 세 명의 오러 유저가 날아갔다.
팔다리 하나씩 어딘가 사라진 채로.
압도적인 힘을 보인 크리스가 단원들을 격려했다.
“적군의 침입으로 불리해졌지만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오러 유저는 우리 상대가 되지 않는다! 차근차근 제거해 나가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어!”
“예! 알고 있습니다!”
“다들 힘냅시다!”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단원들은 침착하게 마법을 적중시키며 하나하나 적들을 제거해 나갔다.
그동안 용병단에서 의미 없는 훈련만 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은 말처럼 좋지만은 않았다.
“단장님! 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희 병사랑 섞여 있어서 맞히기가 어려워요!”
마법사가 오러 유저보다 강한 건 사실이지만 이런 난전 속에서는 빛을 발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움직임이 빠른 데다 까딱했다간 아군까지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범위 마법은 쓰지 말고 침착하게 한 명씩 제거해!”
“예!”
“그런데, 지크는 어디 있느냐?”
“모르겠어요!”
“전투가 벌어질 때부터 어느 순간 없던데요!?”
“젠장!”
단장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 명 한 명의 전력이 소중한 마당에 용병단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6서클 마법사가 사라지고 말았다.
‘겁을 먹고 도망친 건가? 빌어먹을. 애초에 어리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크리스는 지크가 전쟁이 무서워서 내뺐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적들이 들이닥치니 일찌감치 겁먹고 도망친 거겠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옆에서 소리친 용병에 의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 단장님! 저기 좀 보세요! 지크가 저기 있어요!”
“뭐?”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정말로 지크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도 적진 한가운데에서.
“저 미친 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
크리스는 지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법사가 거리를 벌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다니?
오만을 떠나서 멍청한 행동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지크의 다음 행동을 보기 전까지는.
서걱! 서걱-!
크리스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법사인 줄 알았던 지크가 유려한 움직임으로 적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저 검은 어디서 난 거야? 아니,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저 움직임은? 마치 오러 유저 같잖아?’
하지만 검날에는 조금의 푸른빛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공격을 회피하며 상대 오러 유저들을 잘도 썰어버리고 있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무위.
고개를 돌리니 다른 단원들도 자신과 다를 것 없는 표정으로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지크, 쟤 마법사 아니었어?”
누군가의 물음에 한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