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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67화 (67/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67화

아고스의 정규군은 모두 오러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자들이었다.

오직 전쟁을 위해 훈련을 받은 그들은 헤밀톤의 후문이 열리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보이는 적들을 도살했다.

살육에 젖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이 새끼들, 소문대로 완전 개 X밥들이네?’

‘오러도 못 만드는 쓰레기들. 그냥 뒤져라.’

‘이 정도 수준 차이면 영주님의 예상대로 쉽게 점령할 수 있겠어.’

기사들은 고삐 풀린 말처럼 영주 성을 헤집었다.

지겹고 지겨운 훈련 과정을 거쳐온 그들이었기에, 살육이라는 자극이 이리도 반가울 수 없었다.

그 끝에 승리와 명예라는 보상이 따른다면야 더더욱.

서걱! 스걱!

“끄아악!”

“어억!”

살을 찢는 파육음과 비명이 곳곳에서 들렸다.

적병인 헤밀톤의 것이 대부분.

그만큼 상대와의 격차는 비교하기 무색할 정도로 컸다.

그럼에도, 살육을 저지르는 기사들의 얼굴엔 일말의 동정도 자비도 없다.

무자비하게 학살만을 반복할 뿐.

살육이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며 더더욱 피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전투라 부를 수 없는 학살의 현장.

아고스의 정규군은 절제할 수 없는 폭력성에 한껏 심취해 있었다.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며.

그러다 문득 이성을 차린 것은 16세의 소년을 발견했을 때였다.

“야, 저기 봐.”

“뭐야, 저 애새낀?”

“차림을 보니 황금독수리 용병단 같은데?”

“미친 새끼인가?”

갑옷도 입지 않고 그저 깃털 같은 검만 들고 다가오는 소년의 모습에, 기사들은 헛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결코 상대가 마법사라는 것도, 오러 유저라는 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황금독수리 용병단의 문양이 박힌 옷을 입고 있었기에 짐작할 따름이었다.

이제 갓 용병 짓을 하게 된 하룻강아지 용병이라는 것을.

“저런 애새끼를 받아준 황금독수리 용병단도 어처구니가 없구만.”

“하필이면 우리한테 걸리다니. 재수도 없지.”

적이지만 모두는 한마음 한뜻으로 지크의 명복을 빌어줬다.

하필이면 이 전쟁통에 휘말려 죽게 생겼으니까.

“애새끼 비명은 어떤지 궁금한걸?”

“있어 봐. 멋모르는 애새끼가 용병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 로한 님이 보여줄 테니까.”

로한이라 소개한 기사가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섰다.

아무리 어린 용병이라도 적은 적.

그는 소년을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살육 컬렉션에 애새끼라는 트로피를 장식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것이 로한이 자진해서 앞으로 나선 이유.

속으론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눈빛은 살의로 번들거리고 있다.

서로 걸음을 좁히니 금세 거리가 가까워졌다.

‘죽어서도 날 원망하지 마라.’

아고스의 기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소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사람의 머리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불쌍한 녀석. 그러게 용병단엔 왜 기어들어 와서는.”

“병신 같은 애새끼. 제 수명을 자기가 단축시켰구만.”

“근데 아무리 그래도 단번에 머리를 날리다니. 로한, 저 녀석도 참 인정머리가 없…….”

비웃음을 머금던 기사들의 얼굴이 빠르게 식었다.

귀신처럼 멀쩡히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

“저, 저거 보여?”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떻게 된 거야? 분명 머리가 날아갔는데?”

“그, 그럼 이 머리는……?”

기사들은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날아온 것은 소년이 아니라 자신만만하게 나섰던 기사의 머리라는 것을.

“로, 로한?”

“로한이…… 죽었다고?”

그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상황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머리 하나가 더 포물선을 그리며 굴러들어왔다.

소년 근처에 있던 기사의 머리였다.

눈을 크게 뜬 사이, 서걱 썰리는 소리가 들리며 또 한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쯤 되니 아무리 멍청한 기사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눈앞의 소년이 저지른 짓임을.

“저, 저 새끼, 죽여!”

누군가의 외침을 신호탄으로 아고스의 정규군이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든 수는 다섯.

방향도 제각각이고 사방에서 에워싸는 구도라 소년에겐 더할 나위 없이 불리했다.

아니,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고기 반죽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유연한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해낸 소년이 검을 몇 번 휘두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섯의 기사가 줄 끊어진 인형처럼 널브러졌다.

믿을 수 없는 무위.

그 참상을 직관한 병사들의 눈에 경악이 차올랐다.

아군이고 적군이고 할 것 없이.

‘혼자서 오러 유저 다섯을 베어버렸다고?’

‘저, 저게 가능한 일인가?’

‘보기엔 오러도 쓰지 않는 것 같은데…….’

깃털 같은 검만 지녔을 뿐, 별다른 장비도 없고 무방비나 다름없는 소년이었다.

그런데 예상외의 결과를 만들어냈으니 놀랄 수밖에.

심지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 못한 기사가 대다수였다.

“미친…….”

“X됐네…….”

아고스의 기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 * *

붉은 늑대 용병 마법사 단장 데커드는 줄곧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대 마법사에 대한 정체를 아직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행여나 7서클이라도 된다면 우리가 이길 확률은 낮아.’

하지만 그런 불안도 헤밀톤 영주 성이 열리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성문이 열렸다!”

“다들 들어가!”

부서진 후문 안으로 벌떼처럼 몰려드는 아고스의 병사들을 바라보며, 데커드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끝났군.”

“끝났네요.”

“성문을 끝까지 지켰어야지.”

“그러게 뭐랬어요, 단장님. 우리까지 나설 것도 없다니까요?”

“마법사들 고용한 비용만 아깝지.”

“뭐, 우리야 받을 거 받고 만찬도 즐겼으니 좋다만.”

“흐흐흐.”

시시덕거리는 단원들이었지만 데커드는 이전처럼 그들을 꾸중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마따나 전쟁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데커드가 경계했던 것도 성문이 열리기 전까지였지, 문이 저렇게 뚫려버려서는 헤밀톤이 이길 가능성은 적다.

아니, 아예 없다.

‘상대편에 제아무리 7서클의 마법사가 있더라도 말이지.’

마법사가 강한 존재이긴 하나, 오러 유저 수백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아무리 두터운 배리어를 쳐도 두들기다 보면 부서지기 마련이었으니까.

저기 저 성문처럼.

더구나 아군과 적군이 뒤섞인 난전에서는 마법사의 활용도가 지극히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데커드가 7서클 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안심하고 있는 이유였다.

‘끝났어. 우린 뒷짐 지고 여유롭게 걸어가기만 하면 되겠군.’

영지전에 참가하기 위해 왔건만 너무도 쉽게 승리를 따내고 말았다.

이렇다 할 활약도 못 한 채 집으로 돌아가게 생겼지만, 마법사들은 누구도 불만 어린 얼굴이 아니었다.

공짜로 얻은 승리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법사들은 오러 유저와 달리 피에 미친 살육자가 아니다.

“우리도 슬슬 가야겠는데요?”

“그래.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니 지원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후열에 있던 마법사들은 전열에 있는 오러 유저들이 들어가고 나서야 늦게나마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성안은 혼돈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병장기 소리와 고통에 찬 신음, 비명으로 가득 메워진 학살의 현장.

모든 게 예상대로다.

한 가지만 빼면.

“이, 이게 다 뭐야?”

“정규군 시체가 왜 이리 많아?”

예상과 달리 아고스 쪽의 시체가 많았다.

목 날아간 시체가 대다수였고 그나마 성한 사람은 팔다리 하나씩 잘린 채 신음하고 있었다.

“대다수가 오러 유저인 아고스의 정규군이 이렇게까지 당했다고?”

“헤밀톤의 병사들이 이 정도로 강하진 않을 텐데?”

믿을 수 없었지만 헤밀톤의 시체와 맞먹을 정도로 많이 쌓인 게 아고스 병사의 시체였다.

그 말은 일방적인 학살이 아니라 거의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는 뜻.

‘혹은 7서클 마법사가 개입했거나.’

데커드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곳곳에 폭발의 흔적이 있는 걸로 보아 상대 마법사의 개입이 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의아한 점은 시신들이 어째서 전부 검상에 당한 흔적을 보이느냐다.

“다, 단장님. 저기 좀 보십쇼.”

“왜? 무슨 일…….”

시선을 돌리던 데커드가 이내 눈을 커다랗게 떴다.

팔다리가 날아가고 머리통이 하늘로 떠오른다.

곳곳에서 고함지르며 달려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저건…… 우리 편이잖아?”

아고스의 정규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단 한 명에게.

“저, 저 녀석 좀 보세요. 혼자서 지금 몇 명을 썰고 있는 건지…….”

“와, 씨, 미쳤네. 완전.”

적이었지만 실로 놀라운 무위였다.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

놀라운 것은 상대가 소년처럼 앳된 외모를 했다는 거다.

진중한 눈빛을 한 데커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야.”

“네?”

“저 녀석이 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앞서 봤던 시신들을 양성한 자가 바로 저기에 있었다.

녀석을 막지 못하면 전쟁에서 패배할지도 모른다.

“당장 마법 준비한다. 저놈을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어.”

“아, 알겠습니다.”

단원들이 각자 지팡이를 들며 지크를 타깃으로 겨눴다.

* * *

[3시 방향 60m 지점에서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한창 오러 유저들을 학살하던 지크는 메시지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호, 복주머니들이 저기 있었네?’

그토록 찾던 마법사들이 마력을 모으고 술식을 짜고 있었다.

보아하니 자신을 향해 포격하려는 모양.

아고스의 정규군도 그걸 알았는지 지크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이미 공포에 질린 얼굴로 떨어져 있었지만, 그보다 더 물러났다.

지원 온 마법사들이 포격하기 좋도록.

지크가 이번 포격으로 완전히 황천길로 가버릴 수 있도록.

‘내가 쉽게 죽을 거 같냐?’

속으로 코웃음 친 지크의 신형이 쏜살같이 사라졌다.

“오, 온다!”

“전원! 포격 개……!”

준비한 마법을 사용하려던 아고스의 마법사들이 순간 당황을 금치 못했다.

“뭐야!?”

“어, 어떻게 된 거야?”

“마력이 사라졌어?”

“너도?”

갑자기 모아놨던 마력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마력이 사라지니 당연히 마법도 쓸 수 없었다.

총알 없는 총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한순간에 일반인으로 전락한 마법사들이 어버버 하는 찰나.

“까꿍.”

어느덧 접근한 지크가 깃털 검을 휘둘렀다.

물론 마법은 복제하고서.

“끄아악!”

“아아아악!”

팔다리가 잘리자 마법사들이 끊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반격하기 위해 마나를 모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깨진 장독대에 물을 붓는 것처럼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그 당황스러운 현상에 우왕좌왕하는 것도 잠시.

“사, 살려줘!”

“으아아!”

지크의 칼부림에 마법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마법사가 달리 뭘 할 수 있겠는가?

하나뿐인 목숨이라도 건져야지.

애당초 그들에겐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는 없었다.

아고스의 정규군처럼 영지에 대한 소속감 또한 없었다.

그저 돈만 주면 움직이는 용병이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지크로선 단 한 명의 마법사도 놓칠 생각이 없었지만.

“어딜 가려고. 나한테 줄 게 있잖아.”

“히이익!”

귀신처럼 달려와 마법 복제를 함과 동시에 팔을 잘랐다.

[‘아발론’의 마법 5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마법 복제 30/100명]

[스킬 ‘마법 복제’의 성취도가 6성에 도달하였습니다.]

[습득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가 5개▶6개로 상향되었습니다.]

[7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10/30,000]

30명 정도를 복제하니 성취도가 6성으로 올랐다.

기꺼운 소식에 웃던 지크가 옆에서 달리고 있는 마법사를 바라봤다.

“넌 좀 강해 보이는데. 단장이냐?”

“……!”

데커드가 식겁한 눈으로 지크를 바라본다.

“뭐든, 상관없지. 죽이진 않을 테니 걱정 마. 다만…….”

지크의 깃털 검이 번뜩이는 속도로 움직였다.

“좀 아플 거야.”

다리 한쪽이 잘리며 데커드가 균형을 잃었다.

끔찍한 고통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쉽게 이길 줄 알았던 전쟁이 지옥으로 변했다.

[마법 복제 100/100명 완료!]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5차 스킬 숙련도 10,000이 증가합니다.]

[7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20,510/30,000]

기어코 100명의 마법사를 제압하고 복제까지 마쳤다.

어느덧 수백 개로 늘어난 기본 스킬들을 보자,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제 슬슬 전쟁을 끝내볼까?”

그 악귀 같은 모습에, 아고스의 정규군들이 질린 듯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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