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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72화 (72/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72화

“그런 쪽엔 욕심이 없습니다.”

“그렇군…….”

단호한 대답에 백작은 입맛을 다셨다.

보상을 마다할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리도 대차게 거절하다니.

자신보다 더 높은 공작가의 자제라는 걸 알면 이런 제안도 하지 않았겠지만, 그걸 모르는 백작의 눈엔 아무런 욕심도 없는 용병이 신기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허허, 근래에 이렇게 마음에 드는 젊은이를 보는 건 처음이구나. 사위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물론 딸의 마음이 더 중하겠지만.’

그런 생각으로 힐끗 트레이시를 바라봤는데 의외로 시선이 지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습격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듯하다.

“그나저나 죄수들의 처분은 어쩌실 생각이신가요?”

“아고스 백작과 키어스 바튼 말이오?”

“예.”

현실에 직면한 영주가 미간에 고민스러운 주름을 만들었다.

“마음 같아선 처형하고 싶다만, 아무래도 분쟁이 생기기 쉬우니 영토를 빼앗고 추방하는 것 정도로 끝내야겠지. 물론 아고스 백작만이오. 바튼은 당장 처형해도 무방하고.”

그리 말한 영주가 슬쩍 딸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느냐? 트레이시?”

“제 허락은 구하실 것 없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도 네 생각을 알고 싶었다. 아까처럼 또 위험한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고…….”

“이젠 안 그래요. 아까는 이해 못 했지만, 지금은 알겠거든요. 어째서 죽이지 못하는지. 그리고 저도 깨달았어요. 백작을 죽인다고 제 인생이 달라지진 않는다는 것을…….”

트레이시가 한 말은 진심이었다.

백작이 죽는다고 자신의 처지가 달라지진 않는다.

후련함을 느끼지도, 트라우마가 치유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상황만 더 악화했으면 악화했지.

불편하고 가혹한 현실.

그것이 이번에 지크를 습격하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지크가 보는 눈에도 트레이시는 체념한 얼굴이었다.

시스템 또한 진실로 판독했고.

‘여러모로 안쓰러운 처자네.’

지크는 그리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습격한 건 오해였으니 잊어버렸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자신이 더 할 일은 없었다.

영지전도 끝났고, 더 스킬을 복제할 마법사도 없다.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또 다른 영지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지만 영 찜찜하단 말이지.’

12인의 선구자 중 한 명이 영지전의 배후로 밝혀졌다.

지크가 노려야 할 인물이 12인의 선구자라는 걸 생각하면 사건에 좀 더 개입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단서랄 것이 없잖아. 감옥에 있는 놈들에 대한 정보도 다 털어냈고.’

브라함의 환술사가 배후라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실마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브라함 왕국 쪽으로 넘어가봤자 12인의 선구자를 만날 수 있을 리도 없고.

‘무엇보다 퀘스트가 안 떴으니 더 움직일 이유는 없지.’

퀘스트는 지크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내비게이션이었다.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면서 보상을 주고 지크를 강하게 만든다.

‘나는 보상을 받고, 시스템은 원하는 목적지로 나를 이끌고.’

서로 윈윈하는 구조.

그건 달리 말하면 퀘스트가 길 안내하지 않을 때는 가만히 있어도 무방하다는 뜻이 된다.

시스템의 최종 목적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일단 오랜만에 휴식을 취해볼…….’

까 생각하던 그때, 지크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돌발 퀘스트가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 * *

영지를 궁지로 몰아넣은 반역자의 말로가 어떨지는 뻔하다.

처형.

하지만 바튼은 남 일처럼 걱정하지 않았다.

‘영주는 결국 나를 살려 보낼 수밖에 없을 거야. 뒷배에 누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이미 지크가 아고스 백작으로 위장해서 정보를 털어갔다는 걸 모르는 바튼으로선 일종의 기대감이 있었다.

정보를 쥐고 있는 한 언젠가 풀려날 거라는.

그야말로 헛된 기대감이었다.

다만, 여태껏 자신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의아하긴 했다.

‘슬슬 가신들과 회의를 마치고 협상을 제안하러 와야 하는데…….’

독방에 갇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던 바튼이 고개를 들었다.

철커덕- 철컥!

갑작스레 문이 열렸기에.

“드디어 오셨구만.”

간수가 다가오자 바튼은 확신했다.

자신을 데리러 왔다고.

이대로 영주 앞으로 데리고 가 협상을 제안할 거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바튼은 몰랐다.

푹!

고작 간수의 손에 인생을 마감하게 될 줄은.

“커허어…….”

심장에서 단검을 뽑아 든 간수가 쓰러진 바튼을 내려다봤다.

즉사였다.

냉정히 몸을 돌려 나간 간수는 이윽고 다른 독방의 문을 열었다.

철커덩-

“뭐 이렇게 문이 자주 열려?”

아고스 백작이 불만스러운 태도로 간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승사자가 찾아온 줄도 모르고.

“커억!”

간수는 바튼을 죽일 때와 마찬가지로 아고스 백작의 심장을 찔렀다.

순식간에 두 명을 살해한 간수가 단검을 버린 뒤 문밖으로 나왔다.

‘쳇, 결국엔 내가 나서게 만들다니.’

그도 녀석들을 죽이는 상황까진 오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영지전은 패배하고 계획대로 광산도 먹지 못했다.

이래 가지곤 그분을 뵐 낯이 없다.

‘그래도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를 생각해 나까지 첩자로 집어넣으시다니. 아즈라힐 님은 역시 위대하시다니까.’

할 일을 끝낸 간수가 그분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감옥에서 나왔다.

아고스 백작이 죽음으로써 명분은 만들어졌다.

이제 백작과 동맹 관계인 여러 영지를 규합하여 헤밀톤 영지를 공격할 수 있으리라.

‘그럼 계획대로 광산을 얻을 수 있어.’

다만 한 가지 껄끄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지크라는 마검사의 존재였다.

‘그 녀석,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모습만이 아니라 목소리까지 변조해냈어.’

마법으로 변조했다곤 하지만 간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아무리 마법이 위대하다곤 하나 6서클이 얼굴은 물론 목소리까지 흉내 낼 수 있다?

마법에 무지한 가신들이나 믿었지, 자신처럼 어느 정도 일가견 있는 마법사라면 코웃음 칠만한 거짓말이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쓸만한 정보를 얻었군. 아즈라힐 님이 들으시면 기뻐하시겠어.’

입꼬리를 올린 간수였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눈앞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어딜 그리 급하게 가세요?”

다름 아닌 지크였다.

간수는 놀란 눈으로 지크를 바라봤다.

‘저, 저놈이 여긴 무슨 일로……?’

상대로 위장하여 유도 신문한다고 들락거리던 터라 못 올 이유야 없었지만, 꽤나 공교로운 타이밍이었다.

방금 막 살인을 저지른 간수로선 껄끄러운 타이밍이기도 했고.

“지크 경.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볼일은 아까 다 보지 않았습니까?”

“또 심문할 상대가 있어서요.”

“누구요?”

“너요.”

“예?”

간수는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겉으로만 그럴 뿐 속으론 불에 덴 듯 놀라고 있었다.

‘뭐야, 도대체? 첩자라는 게 들켰나? 왜 갑자기 날 의심하는 건데?’

분명 들킬 만한 건덕지는 없었다.

조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쪽을 뚫어져라 보는 시선은 의심하다 못해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자신이 또 다른 첩자라는 것을.

물론 간수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크가 그를 의심하는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으니까.

【돌발 퀘스트 : 또 다른 첩자 막기】

└현재 간수로 위장한 헤밀톤의 첩자가 죄수들을 살해한 뒤 도망치려 하고 있습니다.

└서둘러 감옥으로 가 그의 도주를 막으십시오.

<조건>

└간수의 도주 막기

<보상>

└5차 스킬 숙련도 5,000 증가

‘퀘스트를 믿고 이곳에 와봤더니 정말로 간수가 뭔가를 하고 있잖아?’

지크가 간수를 첩자라고 믿는 건 순전히 퀘스트 때문이었다.

솔직한 말로 퀘스트가 뜨기 전까진 또 다른 첩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이걸로 확실하게 알았어. 시스템은 미래를 내다보거나 하는 게 아니야. 나처럼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퀘스트를 내릴 뿐이지.’

그렇지 않다면야 이렇게 늦은 타이밍에 퀘스트를 발생시키겠는가?

첩자인 걸 미리 알았으면 진즉에 잡으라고 시켰겠지.

‘신적인 존재가 내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 건가? 그러다가 상황이 발생하면 뒤늦게 퀘스트를 적어 보내고?’

뭐가 됐든 퀘스트는 지크에게 확실한 도움이 된다.

목적지는 몰라도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서 손해 볼 건 없지 않겠는가?

“이봐. 첩자 나리. 왜 말이 없어? 협조할 거지?”

“지크 경…… 외람되지만, 낮술 드셨습니까? 지금 무슨 헛소릴 하시는 겁니까? 제가 첩자라고요?”

“첩자 맞잖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아까도 지크 경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죄수를 빼내며 협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첩자라니요? 억울합니다.”

정말로 억울한 표정과 눈빛이었지만 지크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정확하게는 시스템의 눈을.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연기는 집어치우지? 지금 감방에서 피 냄새가 진동하거든?”

“……마법으로 그런 것도 알 수 있습니까? 이거 놀랍군요.”

간수가 본색을 드러냈다.

냄새를 맡아 살인까지 파악할 줄은 몰랐던 모양.

그러나 사실 피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저 사냥꾼의 감각으로 느꼈을 뿐이다.

독방에 갇혀 있던 아고스 백작과 키어스 바튼의 심장이 멈춰 있다는 것을.

의심스러운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뭘 마법에 대해 모른 척하고 그래.”

“무슨 소리입니까?”

“너 마법사잖아. 그것도 5서클이나 되는.”

숨기고 싶던 정보였는지 간수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제가 마법사라는 것도 알아채신 겁니까?”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간수가 마법사 노릇을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설마 첩자였을 줄이야.”

“이것 참…… 쭉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왜?”

“그야…….”

간수가 손을 감추며 은밀히 마력을 모았다.

“제 손에 죽게 될 테니까요!”

어느새 전격을 머금은 손아귀로 지크를 덥석 붙잡았다.

기습적이었던 데다 대처할 틈은 없었다.

그랬어야 했다.

“뭐하냐?”

“……?”

라이트닝 핸즈에 감전되며 바르르 떨었어야 할 지크가 멀쩡한 몰골로 서 있었다.

“설마 이 짓 하려고 했냐?”

마법을 흡수한 지크가 간수의 몸을 붙잡았다.

파지지지지직!

“으어러어어러럭!”

자신이 쓰려던 마법을 그대로 돌려받은 간수가 바닥에 일자로 뻗었다.

마나 스킨으로 몸을 보호했는지 다행히 죽진 않았다.

“크으윽…….”

“일어나. 물어볼 게 산더미니까.”

멱살 잡고 간수를 일으켜 세우는 그 순간이었다.

“커억, 컥!”

“야, 왜 그래?”

별안간 눈알을 뒤집고 거품을 물더니 몸을 축 늘어트렸다.

심장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 걸로 보아 죽었다.

‘입 안에 독이라도 숨겨 놓았던 건가?’

허탈한 심정으로 내려놓은 지크가 허공을 응시했다.

다행히 퀘스트는 클리어한 것으로 인식됐다.

[간수의 도주 막기 완료!]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5차 스킬 숙련도 5,000이 증가합니다.]

[7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29,710/30,000]

지크는 그 외에 다른 메시지도 확인했다.

[‘네이선’의 마법 6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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