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75화 (75/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75화

에스카는 진심으로 놀라서 물었다.

“브라함의 환술사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왜?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나?”

“그게 아니라…… 연락도 없이 오시니 놀랐지 뭡니까, 하핫.”

어색한 웃음을 흘린 에스카가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아즈라힐 존스턴.

브라함의 환술사란 이명을 가진 자로, 12인의 선구자 중 서열 12위.

그와 만난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발루두크처럼 이미 몇 번이고 교류가 있었다.

애당초 생체실험에 대한 지원을 허락한 것이 선구자들.

에스카의 존재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봤자 자리를 내준다는 명목으로 부려 먹기만 해대지만.’

그래도 선구자 중 한 명이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데칸에 계신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직 안 돌아가셨습니까?”

“왜? 내가 얼른 브라함으로 꺼져주기를 원하나?”

“아이고,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당황하는 거 보니 맞는 거 같은데?”

“하하! 그럴 리가요!”

상대에게 갈굼당하고 있었지만 에스카에겐 퍽 익숙한 상황이었다.

아즈라힐이라는 저 중년인은 볼 때마다 자신을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까 봐 견제하는 건지, 낮은 서열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남 괴롭히는 걸 즐기는 미친놈이라는 점.’

그래도 에스카는 웃는 낯으로 대응했다.

“추천해 주신 조합원은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켈브리지 조합이라 했던가요? 일 처리는 잘하던데요?”

“그런가? 생각보다 별로라서 다 죽여버릴까 하는 참이었는데.”

“왜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즈라힐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짧게 혀를 찼다.

“한 명이 물건 배송하다가 실수를 저질렀어. 병신 같은 게 아녀자를 겁탈하느라 정신을 딴 데 놓다가 물건을 잃어버릴 뻔했다니까?”

“아이고, 뭐 그런 등신 같은 놈이……. 그래서 그놈은 어떻게 됐습니까?”

“죽였지. 마을 주민도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싹 다 몰살시킬 수밖에 없었고.”

“허, 쓸데없는 짓을 하다가 명을 재촉했군요.”

“쯧, 아까운 예비 신도들만 잃었지.”

마을 하나를 없앴다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겐 벌레를 잡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무릇 9서클 최강자끼리의 대화는 그런 법이었다.

“그래도 아즈라힐 님이 나서서 뒤탈은 없으셨겠습니다?”

“물론이지. 누구도 그 마을이 있던 자리를 찾지 못할걸? 아예 다른 지형으로 덮어 씌워 버렸으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정말! 부러운 능력입니다. 환술이라는 건.”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소리 해라. 그래봤자 다른 선구자들한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알지. 그러니까 네가 서열 최하위인 거고.’

속말을 삼킨 에스카가 웃음을 가장한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어떻습니까? 그 유명한 12인의 선구자이신데. 제 미천한 능력으론 아즈라힐 님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뻔뻔한 얼굴로 잘도 그런 소릴 지껄이는구나. 그 철판 떼기도 능력이야, 아주.”

“하하…….”

“그건 그렇고 발루두크 님이 만들라는 물건은? 진전이 있나?”

이번엔 에스카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후우,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 광물이 꼭 필요합니다. 대량으로요.”

“역시 그런가? 젠장, 이번 영지전만 이겼더라도 헤밀톤 광산을 얻을 수 있었는데. 병신 같은 아고스 백작 같으니.”

“설마 영지전에서 졌습니까?”

“졌다. 첩자가 지휘를 맡았는데도 졌지. 어처구니가 없어선.”

에스카의 눈동자가 커졌다.

헤밀톤 영지가 아고스의 군대를 막아내다니.

듣던 중 놀라운 소식이었다.

“대체 어떻게 졌답니까?”

“자세한 건 나도 몰라. 내일 만나기로 한 켈브리지 조합원에게서 보고를 들어봐야지. 그건 그렇고 암살 임무 받았다며?”

“아, 들으셨습니까?”

“지크라는 애송이 하나 죽이는 임무라던데. 잘 되어가고 있나?”

“그게… 단서 하나를 찾아서 쫓아볼 생각입니다.”

“뭐가 됐든 서둘러야 할 거야. 발루두크 님이 보기와 달리 느긋한 성격은 아니거든. 가뜩이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으니까.”

“그, 그렇습니까? 이거 당장이라도 서둘러야겠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해? 그럼 이것 좀 만들어봐.”

아즈라힐이 대뜸 내민 양피지에는 그림과 설명이 그려져 있었다.

“이, 이게 뭡니까?”

“설계도야. 마나 건도 만들었으니까 이것도 만들 수 있겠지?”

설계도를 보던 에스카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림만 봤을 땐 몰랐지만 곁들어진 설명을 보니 뭘 만드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저, 저더러 이걸 만들어달라고요?”

“어. 만들 수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이론적으로는 만들 수야 있지만 이런 걸 왜…….”

“어디에 쓸려는지는 묻지 말고. 넌 닥치고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 다른 선구자들한텐 입도 벙긋하지 말고 얌전히.”

“하지만 여기에 필요한 재료가 지금 없지 않습니까?”

“재료야 구해올 테니까 걱정 말고 작업이나 해놔.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뭐하러 날 찾아왔나 했더니만…… 이런 부탁을 하러 올 줄이야.’

에스카가 침묵하자 아즈라힐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왜 대답이 없어? 설마 내 부탁을 거절하려고?”

“아, 아닙니다. 감히 거절은요. 누구의 부탁인데.”

“그래. 한 달 내로 완성해놔. 그 안에 헤밀톤 광산을 차지하고 재료를 구해올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선구자들한텐 비밀로 해. 만약 조금이라도 떠벌려서 내 귀에 들어왔다간…….”

“야유,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또 입은 무겁지 않습니까.”

“믿어보겠어.”

아즈라힐은 그 말만 남기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숙제를 떠안은 에스카는 닫힌 방문을 떨떠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이제 슬슬 나가볼까?’

늦은 새벽.

지크는 묵었던 여관에서 나와 약속 장소로 향했다.

장소는 엘브로드령과 황천의 계곡 사이의 숲.

2시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거리로, 그리 멀지 않았다.

위치야 전날 사전답사를 해서 문제없었고.

문제라면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는 점이다.

해가 떠오를 때까지 딱 2시간이 남았으니.

‘일찍 가는 것보다 늦게 가는 편이 더 낫지. 변조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은 30분밖에 안 되니까.’

물론 30분이 지나면 쿨타임도 돌아오기에 곧장 사용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변조를 쓰는 모습을 보일 순 없다.

‘최대한 딱 맞춰서 도착하는 수밖에.’

지크는 걷는 동안 사냥꾼의 감각을 활성화하며 주변을 탐색했다.

행여나 가는 도중 다른 조합원을 만나게 되면 낭패일 테니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마주치지 않는 게 좋아. 회의에 참석하기도 전에 트러블을 만들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며 약속 장소에 다다랐을 때쯤.

정확히 2시간이 되었다.

슬슬 동이 터 오르고 있다.

‘180m 지점에 여섯 명이 모여 있어.’

방향으로 보면 약속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켈브리지 조합원일 것이다.

지크는 조금 더 걷다가 변조 스킬을 사용했다.

꿀렁꿀렁-

헤밀톤의 성에서 자신이 죽인 조합원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모습에서나 목소리에서나 의심받을 여지는 없다.

“후우, 가볼까.”

긴장을 풀듯 숨을 내쉰 지크가 약속 장소로 접근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이내 지크를 발견했다.

“네이선, 이 병신 새끼.”

“저 새끼 또 늦었구만.”

“늦는 게 아주 상습범이야.”

다행히 이 모습의 주인은 약속에 자주 늦는 모양.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혀를 찼다.

조합 내에서 네이선이라는 자의 지위가 어떤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5서클이었으니 서열이 그리 높진 않겠지.’

일전에 자신이 죽인 데롤이라는 조합원은 서열 1위이자 7서클이었다.

아론이라는 녀석은 서열 6위에 6서클이었고.

5서클이면 적어도 그 밑일 것이다.

‘여기 있는 여섯 명은 죄다 6서클이네?’

각자의 서열이 어떻게 되는진 몰라도 네이선이 제일 최하위라는 건 분명했다.

“야, 왜 이렇게 늦었어?”

인상이 곰처럼 생긴 남자가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지크는 적당히 쫄아버린 척 어깨를 움츠렸다.

“죄, 죄송합니다. 깜빡하고 잠이 드는 바람에…….”

“X발, 다른 것도 아니고 아즈라힐 님이 잡으신 회의인데 매번 늦으면 어떡해? 넌 목숨이 열 개라도 되냐?”

“죄송합니다, 정말…….”

상관의 압박에 더욱 움츠러들었지만, 상대의 눈빛을 보니 정답이 아니었나 보다.

갑자기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걸 보면.

“뭐냐?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쫄아 있어? 또 말도 안 되는 변명이나 지껄일 줄 알았는데.”

“그러네. 투덜거리지도 않고, 오늘은 어째 얌전하네?”

주위에서 거들자, 지크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다.

그리고 즉시 말투를 정정했다.

“피곤해서 그럽니다, 피곤해서. 그러니 그만 좀 괴롭히십쇼.”

“괴롭히긴 인마. 딱 봐도 이상해서 그러지.”

“왜? 또 도박하다가 날리기라도 했냐?”

“어휴, 말도 마십쇼.”

지크는 손을 휘저으며 캐릭터에 맞는 열연을 펼쳤다.

다행히 연기에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더 이상 의심의 눈초리는 받지 않았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이, 네이선. 왜 대답을 피해?”

“제가 피하긴 뭘 피했단 말씀입니까?”

“너 좀 이상하다? 말투도 달라진 것 같고. 옷 입은 것도 평소보다 말끔해진 것 같고.”

“옷 좀 바꿔입을 수 있지, 별 트집을 다 잡으십니다.”

“너 여태 구질구질한 옷만 입었잖아.”

‘구질구질한 옷만 입었다고?’

순간 자신을 의심해서 떠보는 말인가 싶었지만.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판독으론 진실이었다.

‘진짜로 회의 때 더러운 옷만 입고 나왔었나 보네.’

전혀 신경 쓰지 않던 부분에서 의심을 받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지크는 의연하게 대처했다.

“솔직히 이것까진 밝히고 싶지 않았는데…… 저 여자 생겼습니다.”

“뭐어어? 정말이야?”

“그래서 말끔해 보였던 거구나?”

“어쩐지!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싶더라니.”

“축하한다, 네이선. 말단인 주제에 장가는 제일 먼저 가게 생겼네?”

“부럽다, 부러워. 난 언제 장가 가보냐?”

“넌 평생 못 갈걸?”

“크큭큭큭!”

조합원들이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지크는 자신을 갈구던 상관의 눈치를 살폈다.

‘저놈 봐라?’

여전히 의심하는 눈빛이다.

연기는 완벽했는데 왜 저렇게 의심스럽게 보는 걸까?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위장한 채 회의 참석 완료!]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새로운 기본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에 성공하고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