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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77화 (77/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77화

“아아. 아까 마지막으로 보고했던 말단 말이군. 근데 녀석의 뭐가 의심스럽다는 거냐?”

“모든 것이요. 녀석의 성격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헤밀톤 영주가 보낸 첩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왜 그렇게 느꼈는지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거라.”

채드는 솔직하게 자신이 느낀 감정을 말했다.

“네이선은 조합 내에서 다소 활발한 성격입니다. 분위기 메이커라고 할까요? 서열 11위지만 우리 앞에서 단 한 번도 주눅 든 적이 없습니다. 투덜댔으면 투덜댔지.”

“그런데?”

“그런데 처음 마주쳤을 때 지각한 걸로 탓하자 죄송하다는 말만 몇 번이고 했습니다. 그러다 그 부분을 지적하니 기다렸다는 듯 말투를 고쳤고요.”

“고작 그거 가지고 첩자라 의심한다고?”

“의심 가는 점은 또 있습니다. 구질구질하던 녀석이 평소와 다르게 말끔히 차려입고 나타났습니다. 그 부분을 지적하자 여자가 생겼다는 헛소리를 변명으로 지껄이지 뭡니까?”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말이 안 되진 않는데?”

“일반인의 시각에선 그렇겠죠. 하지만 녀석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좋아합니다.”

“동성애자였군.”

아즈라힐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판게아 대륙에서 동성애자의 비율은 퍽 높은 편이었다.

남색을 밝히는 귀족도 많았으니.

“다른 조합원은 그 사실을 몰라서 넘어가는 눈치였지만 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너도 동성애자라서 그런 거냐?”

“…….”

“둘이 사귀고 있었나 보군.”

“……그건 아닙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차였으니까요.”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을 하게 된 채드가 보스의 눈치를 봤다.

행여나 불쾌감을 느끼고 자신을 내치면 어쩌나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즈라힐로선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눈치 볼 거 없다. 너희들끼리 뭔 짓을 하든 내 알 바 아니다. 일만 잘하면 그만이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네 생각엔 네이선이 얼굴을 바꿔서 들어온 첩자다?”

“예. 헤밀톤 영지에서 첩자의 존재를 눈치챈 누군가가 우연히 얻은 형상 변형 스크롤로 위장하여 들어온 것이 아닌지…….”

“하지만 목소리는 똑같지 않았나?”

“그렇긴 합니다만 형상 변형 스크롤로 목소리도 어떻게 조절한 건…….”

“그건 불가능해.”

아즈라힐은 딱 잘라 말했다.

“형상 변형 스크롤은 겉모습만 바꿔주는 술식이 걸려 있어. 내가 만들었으니 잘 알지.”

“그, 그렇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나라도 목소리까지 변조해내는 건 할 수 없어. 환각을 심어서 그렇게 느껴지도록 속이는 거면 모를까. 설마 놈이 나보다 뛰어난 환술사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그럴 일은 없죠. 없지만…… 목소리가 너무도 똑같은데 어떻게…….”

“네가 잘못짚은 거일 수도 있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네이선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거듭된 주장에 아즈라힐이 채드를 바라봤다.

헤밀톤의 첩자라고 확신하는 눈빛.

“좋다. 서열 2위가 이토록 의심하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의심스러운 부하에게 일을 맡길 순 없기에 아즈라힐도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놈에게 한 가지 테스트를 해봐야겠군.”

“테스트라면……?”

아즈라힐은 말없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따라오라는 눈짓을 보내며.

* * *

숲으로 들어간 채드와 아즈라힐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둘이 뭔 대화를 하길래 이렇게 오래 하지?’

사냥꾼의 감각으로 둘이 서서 대화하는 게 느껴졌다.

마법으로 차단해놨는지 무슨 말 하는진 들리지 않지만.

혹시나 놓치진 않을까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와중이었다.

‘움직인다.’

녀석들이 대화를 끝내고 움직였다.

한데 방향이 이쪽이 아니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순간 쫓아 가볼까 생각이 든 지크였지만 금세 접었다.

아직은 위장이 들켜선 안 된다.

다행히도 어딘가로 향했던 두 사람은 조합원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웬 남자 하나를 이끌고서.

“여기 앉아!”

“으읍! 읍!”

재갈이 물린 채 포박당한 남자는 누가 봐도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은 누굽니까?”

“아즈라힐 님께서 잡아 온 헤밀톤 영지의 포로다.”

“헤밀톤 영지?”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이, 지크는 보았다.

눈앞에 뜬 메시지를.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헤밀톤 영지의 포로라는 건 거짓말이다.’

왜 거짓말을 했을까?

의아함도 잠시, 아즈라힐의 시선이 지크에게 향했다.

“말단.”

“예엡!”

“지금 이 자리에서 저 포로를 죽여라.”

갑작스레 죽이라는 명령.

놀라야 마땅했지만, 지크는 의연했다.

이미 아즈라힐의 테스트임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알겠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뜸 들이는 기색을 보였다간 100% 의심을 사고 만다.

당장은 장단에 맞춰주는 편이 좋다.

스릉-

혹시 몰라 품에 가지고 있던 단검을 꺼낸 지크가 남자에게 다가갔다.

일면식이라곤 없는 사이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 자리에서 죽이지 못하면 의심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으니까.

푹-

“꺼으윽!”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심장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그 모습에 놀랐는지 채드의 눈자위가 휘둥그레진다.

아즈라힐이나 다른 조합원의 표정 변화는 없었다.

조합원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처리했습니다.”

“잘했다.”

칭찬을 받았지만, 지크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사람을 죽인 것에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놈들이 자신을 테스트한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이유는 몰라도 첩자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래도 썩 기분이 좋진 않네. 애꿎은 동물을 죽인다는 건.’

현재 지크가 죽인 상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처럼 보이는 멧돼지였다.

아즈라힐의 환각 마법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실로 놀라운 마법이다.

‘현자의 눈이 없었으면 다른 녀석들처럼 속을 뻔했어.’

실제로 현자의 눈은 본질인 멧돼지의 모습을 보여줬다.

지크가 처음부터 동요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람으로 둔갑시킨 멧돼지를 데려오더니 갑자기 죽여보라고 한다?

테스트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헤밀톤 영지의 포로라고 말한 것부터가 나를 헤밀톤의 첩자로 의심한다는 뜻이지.’

어디에서 의심받았는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상황이 좋진 않다.

멧돼지를 죽인 것으로 의심이 풀리길 바라는 수밖에.

“채드. 시체를 들고 따라와라. 저쪽에 구덩이를 봐뒀으니.”

“예, 아즈라힐 님.”

두 사람이 다시 숲으로 사라졌다.

사람으로 위장한 멧돼지를 둘러메고서.

* * *

“그거 내려놔.”

서릿발 같은 음성에 채드가 둘러멘 사람. 아니, 멧돼지를 내려놨다.

“정체가 의심스럽다고 해서 기껏 환각 걸고 테스트해 봤더니 이게 뭐지? 찌르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지 않았나?”

“죄, 죄송합니다. 분명 헤밀톤의 포로라고 하면 주저할 줄 알았는데…….”

채드는 말하면서도 내심 억울했다.

멧돼지를 사람으로 위장하여 테스트해 보자는 말은 아즈라힐이 먼저 꺼냈기에.

어찌 됐건 의심스럽다는 말로 보스를 헛수고하게 했으니 채드로선 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보스의 기분이 언짢아 보였으니까.

“그동안 일 처리도 잘하고 서열 2위이기도 해서 선심 쓰고 도와줬더니만. 헛짓거리에 시간을 뺏겼군. 이거 내가 병신이 된 기분이야.”

“저, 정말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아직도 말단에 대해 의심스럽나?”

“아닙니다. 이제 의심하지 않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채드의 속마음은 달랐다.

여전히 지크에게서 네이선의 냄새는 나지 않았으므로.

“그래. 이쯤 했으면 오해라는 걸 인정해야지. 그나저나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군. 얼른 가자. 이러고 있을 틈이 없다.”

“예…… 거듭 죄송합니다.”

면목 없다는 얼굴로 따라나선 채드는 이내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네이선과 눈이 마주쳤지만, 여전히 자신에 대한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정체성에 대해 고민 상담도 한 사이인데 말이다.

‘저 눈빛을 보면 첩자가 분명한데…… 어떻게 증명할 방법이 없구나.’

한편 지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이쪽을 힐끔거리는 채드를 의아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여전히 날 의심하고 있다니. 채드라고 했나? 한동안 예의주시해야겠어.’

그보다는 문제가 있었다.

변조 스킬이 풀리기까지 5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빨리 회의를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즈라힐을 바라봤다.

안 그래도 촉박함을 느낀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너희가 할 일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물건을 배달하는 일이다. 각자 맡은 구역의 마을로 사람 수만큼 물건을 챙긴 뒤 배포하고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그 와중에 문제가 생기면 개인 재량으로 뒤탈 없이 처리하고.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열 11위 네이선.”

갑작스러운 부름에 지크가 바짝 긴장했다.

아니, 긴장하는 척 연기했다.

“옙!”

“너는 맡은 구역이 없으니 다른 조합원과 합류하도록 한다. 서열 2위인 채드와 합류하면 좋겠군.”

‘저 녀석이랑?’

지크와 채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서로 붙여서 오해를 풀어주려는 아즈라힐의 배려였지만 그걸 지크가 알 턱이 없었다.

떨떠름한 감정을 느끼는 그때.

[돌발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지크의 시선을 사로잡는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돌발 퀘스트 : 배달 임무 수행하기】

└켈브리지 조합 서열 2위인 채드와 같이 마을에 물건을 배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물건을 배달하며 아즈라힐 존스턴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알아내십시오.

<조건>

└물건을 배달하며 꿍꿍이 알아내기

<보상>

└랜덤으로 스탯 700 증가

└5차 스킬 숙련도 5,000 증가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당연히 수락해야지. 보상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데.’

계속해서 강해져야 하는 지크로선 퀘스트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럼 임무를 위해 당장 떠나라. 물건을 실은 마차는 저쪽에 준비해 뒀다.”

“예!”

아즈라힐의 말에 조합원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크 또한 조합원들을 따라가며 걸음을 재촉했다.

적극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요량이었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채드’의 마법 6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스킬 ‘마법 복제’의 성취도가 7성에 도달하였습니다.]

[습득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가 6개▶7개로 상향되었습니다.]

마법 복제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좋았어. 7성으로 올랐고.’

채드에 이어 다른 조합원들에게도 접근하며 은밀히 마법 복제를 사용했다.

[‘데니스’의 마법 7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사무엘’의 마법 7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

…………

[8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1,400/100,000]

그렇게 조합원 여섯 명의 마법을 복제한 지크가 나머지 한 명을 바라봤다.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 걷고 있는 아즈라힐 존스턴이었다.

“무슨 볼일이지?”

“아, 아닙니다.”

지크의 시선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아즈라힐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 짧은 사이에 마법 복제를 끝마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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