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80화
“아저씨가 가져온 우유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해졌잖아요! 툭하면 신경질 내고, 화내고, 우유에 집착하고!”
“레온, 이 녀석! 네가 아직 덜 혼났……!”
“그만하시죠. 얘기하는 중 아닙니까.”
지크의 서릿발 같은 음성에 다가오려던 마을 주민들이 움찔거렸다.
표정을 푼 지크가 다시 레온과 시선을 맞췄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준 우유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이상해졌다?”
“그래요. 그러니까 이제 오지 마세요. 우유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내 우유 때문이라는 게 확실하니?”
“확실해요. 아저씨가 우유를 준 날 이후로 사람들이 이상해졌으니까.”
단호하다 못해 확신에 찬 눈빛.
마을 주민들은 느끼지 못한 걸 이 아이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다.
우유에 이상한 약물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아이의 증언에 따르면 우유를 먹었을 때 쉽게 화를 내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우유에 대한 의존성과 중독성도 상당히 강해지고.’
아무래도 우유에 마약과 유사한 환각제를 넣은 것으로 판단된다.
‘주민들에게 약물이 든 우유를 먹이고 반응을 지켜본 건가? 효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놈들의 꿍꿍이가 뭔진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채드가 살아 있었다면 이 아이는 죽은 목숨이었을 거라는 것.
그런데 레온은 어떻게 환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너 설마 우유를 안 먹은 거야?”
“네.”
“왜?”
“전 우유 싫어하거든요.”
“아, 그래?”
“이제 아시겠죠? 더 이상 우리 마을에 오지 말아주세요.”
“알았다.”
의외로 쉽게 대답이 나오자 레온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에 반해 마을 주민들은 사색이 됐지만.
“채, 채드 씨! 그 녀석 말 듣지 마세요!”
“계속해서 우리한테 우유를 제공해 주셔야죠. 예?”
“부탁입니다. 다음에도 부디 와주세요. 제발…….”
고작 우유 하나 끊는다는 말에 이런 절절한 반응들이라니.
중독성이 마약 저리 가라다.
“그런데 레온. 떠나기 전에 궁금한 게 있어.”
“뭔데요?”
“마을 사람들에게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니? 그저 충동적으로 변하고 신경질만 는 게 다야?”
환각제에 고작 그것만 들어 있을 리는 없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아! 하나 더 있어요.”
“뭔데?”
“종교라곤 믿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상한 종교를 믿기 시작했어요.”
“종교? 무슨 종교?”
“이름이 마도스교라고 했나? 그랬을 거예요. 맞죠, 아저씨들?”
레온의 물음에 주민들은 고개를 돌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위대한 마도스교의 신자가 아닌 사람하고는 할 이야기 없다!”
“우리랑 대화하고 싶거든 너도 마도스교에 들어오던가.”
“종교 따위 안 믿는다고 했잖아요.”
“뭐? 종교 따위?”
“이 꼬맹이가 그래도!”
“너 그거 신성모독이야 인마! 방금 한 말 취소해!”
주민들은 10살짜리 꼬마애한테 삿대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마 지크가 없었더라면 훈육을 빌미로 몽둥이찜질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흠. 마도스교라…….’
지크로선 들어본 적 없는 종교였다.
애당초 관심이 없어서 아는 종교가 없기도 했고.
‘신성 제국은 알고 있지만 다른 종교는 모르겠네.’
하여 지크는 또다시 레온을 불렀다.
“레온. 마도스교가 이 근처에 있어?”
“아니요. 여기서 꽤 멀어요.”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이 전부 그 종교를 믿는다고?”
“네. 선교사가 온 적도 없는데 갑자기 이런다니까요? 이상한 일이죠?”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우유 먹고 저러는 게 분명하다니까요.”
레온의 말은 일리 있었다.
선교사가 온 적도 없는데 특정 종교의 신도가 되었다?
그것도 우유를 먹고 난 이후에?
우연이라기엔 절묘했고, 우유에 든 환각제가 단순히 의존성만 높여준다기에도 의심스러웠다.
‘대충 우유에 어떤 효능이 있는지는 알아냈어.’
더 이상의 실험은 없다.
그렇게 여긴 지크가 마을 사람들에게서 우유를 빼앗아 들었다.
“어엇?!”
“왜, 왜 그러십니까, 채드 씨?”
“왜 줬던 걸 다시 가져가고 그래요?”
지크는 우유들을 마차에 다시 실으며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아까 먹어보니까 맛이 상했더라고요. 새로운 우유로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그래요?”
“얼른 가져오셔야 합니다?”
“저희 기다리다가 목 빠진다고요.”
“예, 예.”
지크는 건성으로 답했다.
새로 가져올 생각이 없었기 때문.
우유가 상했다는 말도 도로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레온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아저씨!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알아. 안 올 거야.”
“예?”
“더는 우유 배달 안 할 거라고. 그러니까 다들 기다리지 마세요. 아셨죠? 정신도 좀 차리시고요.”
우유 회수를 마친 지크가 씩 웃으며 마부석에 올라탔다.
이윽고 마차를 출발시켰다.
벙찐 얼굴의 마을 사람들을 뒤로하고서.
* * *
다그닥다그닥.
흔들리는 마차를 몰면서 지크는 생각에 잠겼다.
‘이제 어떡하지? 꼬마가 준 정보가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정보를 들었음에도 퀘스트는 완료되지 않았다.
약의 효능만 알아냈을 뿐, 놈들의 꿍꿍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일 거다.
‘좀 더 정보가 필요해. 놈들의 정확한 목적을 알아내야 퀘스트가 완료될 거야.’
그러기 위해서 지크는 마차를 세웠다.
그리고 채드의 통신구를 집어 들었다.
다른 조합원에게 연락하기 위해서다.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몰라도 아즈라힐에게 연결되는 통신구는 아닐 거야. 한 달 후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은 걸 보면.’
누가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통신구를 두들겼다.
잠시 후 깜빡거리던 빛이 멈추며 통신이 연결됐다.
-채드 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 목소리는…… 서열 3위?’
이름이 그레그였던가?
보고할 때 루보 마을을 담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레그. 루보 마을엔 도착했나?”
-예. 이미 우유는 전달했고 경과를 지켜보는 중입니다. 한데 무슨 일로…….
“내가 실수로 우유 몇 개를 깨 먹어서 말이야. 남는 우유 가지고 있지?”
-물론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전부 가지고 이쪽으로 와라. 다이킨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하지만 이쪽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데…….
“가지고 오라면 가지고 와, 이 새끼야.”
-아, 알겠습니다.
“빨리 와라.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예…….
통신을 마친 지크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루보 마을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상관없다.
녀석을 이리로 부르면 되니까.
‘놈이 오면 확실히 물어봐야겠어. 진정한 목적이 뭔지.’
그레그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지옥으로 향하는 덫에 걸렸을 줄은.
* * *
“X발, 서열 2위면 다야? 지가 뭔데 귀찮게 오라 가라야?”
그레그는 마차를 모는 내내 쉴 새 없이 구시렁거렸다.
혼잣말 대부분은 채드에 대한 험담으로 이루어졌다.
“아즈라힐 님이 준비해온 약물을 도중에 깨 먹다니. 제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병신 같은 놈!”
온갖 욕설은 다 하면서도 그레그는 다이킨 마을을 향해 꾸준히 마차를 몰았다.
자신의 상관이 오라는데 뭘 어쩌겠는가?
귀찮아도 우유를 가지고 갈 수밖에.
“만약 그 새끼 때문에 내 일에도 문제 생기면 바로 아즈라힐 님한테 일러바칠 거야. 우유를 깨 먹은 걸로 모자라 후배의 시간까지 낭비했다고. 어쩌면 그 새끼는 추방당하고 내가 서열 2위로 등극할지도 모르지. 흐흐.”
그렇게 되면 사실상 1위가 되지만 조합 서열 1위인 데롤이 이미 죽었다는 건 그들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로 맡은 일도 다르고 연락도 잘 하지 않는 조합원들이었으니까.
“저긴가?”
그때 저 멀리 길목에 멈춰 있는 마차 한 대가 보였다.
“X발, 오래도 걸렸네. 내가 7서클이었으면 텔레포트로 단숨에 오는 건데.”
투덜거린 그레그는 채드의 마차가 가까워지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속으로만 욕하며 자체 음소거 처리를 한 채드가 마차를 살펴봤다.
‘응? 이 인간이 어디로 갔지? 소변보러 갔나?’
마부석은 비어 있었다.
무엇보다 모자란다고 했던 우유병이 짐칸에 고스란히 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던 그때.
“컥!”
팔이 휘감기며 뒤에서 누군가가 그레그의 목을 졸랐다.
숨통이 조이는 느낌도 잠시.
털퍼덕-
그레그는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말았다.
“여기서 고문할 순 없으니 으슥한 데로 가자고.”
백 초크를 푼 지크가 기절한 그레그를 숲으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 * *
“아아아악!”
그레그를 깨운 건 극심한 통증이었다.
다리를 내려다보니 허벅지에 난데없이 단검이 박혀 있다.
“일어났어?”
그 소리에 순간 채드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지만, 상대는 처음 보는 소년이었다.
“누, 누구야?”
“누군지는 알 거 없고. 넌 이거 하나만 알면 돼.”
“아아악!”
지크가 허벅지에 박힌 단검을 뽑았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말하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거.”
그레그의 눈에 어느덧 두려움이 엄습했다.
“마, 말할게. 뭐, 뭐든 말할게!”
“너 의외로 입이 가볍구나? 마음에 들었어.”
악마 같은 미소를 짓던 지크가 단검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질문 들어간다.”
그레그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네놈들 목적이 뭐야?”
그레그가 술술 정보를 불었다.
놈들의 입을 열게 하기에 고통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