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81화
“우유에는 아즈라힐 님이 직접 만든 환각제가 들어 있다. 중독성이 강해서 한 번 마시면 계속해서 찾게 되고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지. 하지만 진정한 효과는 따로 있다.”
“뭐지?”
“환각제를 마신 자는 신을 본다. 마도스교에서 섬기는 신을 보고 맹목적인 신앙심을 갖게 되지.”
“그러니까, 신앙심이라곤 쥐뿔도 없는 사람이라도 우유를 마시게 해서 충실한 신도로 만들 수 있다, 이건가?”
“그렇다. 마을 사람들에게 하고 있던 건 이러한 환각제의 테스트였다.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환각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고 이상 반응은 일으키지 않는지 알아보는 게 우리가 맡은 임무였지.”
한마디로 마을 사람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레온의 증언과 일치하네.’
거짓을 말했으면 즉시 고통을 줄 요량이었지만 그레그는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확실히 죽고 싶진 않은 모양이다.
“또 다른 건? 아즈라힐이 시킨 개짓거리가 있으면 또 말해봐.”
“으음, 그게…….”
주저하던 그레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이런저런 환각제로 테스트를 하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면 어디선가 납치한 귀부인을 데려와서는 죽일 것을 강요하거나…… 이런저런 고문을 즐기거나 하는 식이지. 무, 물론 내가 즐겼다는 게 아니라 아즈라힐 님이 즐겼다는…….”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허둥지둥 말하는 게 믿음직스럽진 않아 보여도 전부 진실이었다.
“그리고 남자아이를 데려와서 약을 먹인 뒤에 상처를 내본다던가, 약물이 어디까지 고통을 없애주는지 테스트해 본다며 산 채로 죽이기도 했지. 또 어떤 날은 여자아이를 데려와서는…….”
“그만. 역겨워서 더는 못 들어주겠네.”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아즈라힐이 고통을 즐기는 변태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신도들을 모아서 뭘 할 작정이지?”
“그것까진 나도 모른다. 정말이다. 우린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끄아아악!”
지크의 단검이 그레그의 손가락을 잘랐다.
거짓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거짓을 말할 때마다 손가락을 잘라주지. 그다음은 발가락, 그다음은 눈코입이야. 아니면 역순으로 눈부터 파줄까?”
“미, 미안하다! 내, 내가 실언했다!”
“허심탄회하게 다 말해. 아즈라힐이 뭘 꾸미는지.”
“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안다! 아즈라힐 님이 광산을 노린다는 것 말이다.”
“광산?”
“헤밀톤 광산이다!”
영주성의 키어스 바튼에게도 똑같은 정보를 들었었다.
아즈라힐이 헤밀톤 광산을 노린다는 정보를.
“거기 뭐가 있는데?”
“그, 그건 모르지만 재료로 쓸 광물이 잠들어 있다고만…….”
“뭘 만드는데?”
“그것까진 나도 잘…….”
“마도스교에 대해서 아는 거 있음 다 털어놔 봐.”
“미, 미안하지만 그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는…….”
지크의 눈썹이 갈지자로 휘었다.
그 모습에 그레그가 놀라서 덧붙인다.
“지, 진짜야! 마도스교에 대해선 쥐뿔도 아는 게 없어! 내가 종교 따윈 관심도 없는 무신론자거든! 아, 그래! 다른 녀석이라면 알고 있을 거야!”
“누구?”
“사무엘! 서열 5위 사무엘이 마도스교의 신자라고 들었어! 서열 8위 알론도!”
“흐음, 그래?”
그제야 지크의 인상이 곱게 펴졌다.
단서가 끊기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이렇게 된 이상 다 불러 모아야겠군.”
“응? 누, 누굴?”
“조합원들 말이야. 4위부터 시작해서 네 밑으로 싹 다 소집해.”
“내, 내가 직접?”
“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서라도 이리로 죄다 불러. 우유 남은 거 있으면 전부 가져오도록 하고. 행여나 허튼 말이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아, 알았어.”
품에서 통신구를 꺼낸 그레그가 시키는 대로 조합원들을 불렀다.
“당장 남은 우유를 들고 다이킨 마을의 진입로로 모이라는 채드 님의 명령이다. 아래 서열에게 전달해서 지금 모이라고 해.”
-지, 지금 당장은 힘든데요. 여기 맡은 일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아, 알겠습니다. 전달한 뒤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 *
시간이 흘러, 다이킨 마을의 진입로는 때아닌 마차들의 행렬로 줄을 이었다.
4위, 5위, 7위, 8위 등.
그레그의 아래 서열들이 명령대로 한자리에 모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휴이돈 마을을 지켜봐야 하는데 호출이라니…….”
“저도 감시하던 도중에 연락받고 왔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채드 님이 무슨 일로 부른 걸까요?”
“데니스 님은 뭐 짚이는 거 없으세요?”
“없지. 나라고 뭐 알겠냐? 다짜고짜 불려온 판국에.”
“그런데 그레그 님은 어디 계시지? 아직 안 오셨나?”
“여기다.”
숲 한쪽에서 서열 3위 그레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옆엔 서열 2위인 채드도 함께였다.
“엇, 채드 님도 계셨군요.”
“다들 와계셨네.”
“무슨 일로 저흴 부른 겁니까?”
“설명하기 전에 가져온 우유를 들고 안쪽으로 들어와라. 이곳은 너무 눈에 띄니까.”
채드가 먼저 숲으로 들어가자 다른 사람도 각자의 짐마차에서 상자를 들고 따라갔다.
으슥한 숲속에 조합원 전원이 모였다.
“다 모였군.”
“말단은 아직 안 왔는데요?”
“저 여기 있습니다만?”
채드 옆에 있던 네이선이 손을 번쩍 들었다.
“너 언제 있었냐?”
“저야 채드 님이랑 같이 있었죠.”
“잡담은 됐고 빨리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더 지체했다간 저 진짜로 아즈라힐 님한테 혼납니다.”
“맞아요. 감시 안 했다고 혼날까 봐 지금도 얼마나 마음 졸이고 있는데요.”
몇몇이 불안함에 재촉했지만 채드는 여유롭게 웃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 여기 모이라고 한 건 다름 아닌 아즈라힐 님이시니까.”
“예?”
“저, 정말요?”
“다 모였습니다, 아즈라힐 님. 이제 나오시죠.”
채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르륵 투명화가 풀리며 아즈라힐이 등장했다.
“늦지 않게 모였군.”
“아즈라힐 님!”
“걱정 마라. 자리를 이탈했다고 질책하진 않을 테니. 그보다 너희를 갑자기 부른 건 중대한 사안이 있어서다.”
“중대한 사안이요?”
“자세한 건 알려줄 수 없지만, 내부적인 문제로 마도스교의 신도들을 급하게 늘려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여, 너희도 지금부터 약물을 복용토록 한다.”
“저, 저희도요?”
“그래. 남는 우유를 가져오라고 한 건 이 때문이다.”
“아…….”
갑자기 환각제가 든 우유를 먹고 마도스교의 신도가 되라니?
조합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 하지만 아즈라힐 님. 저희가 환각제를 복용하면 마을을 제대로 감시할 수가…….”
“그건 염려 마라. 약물 테스트는 거의 끝난 단계이니 감시도 더는 필요 없다. 그러니 오늘부로 테스트를 종료하겠다. 너희는 시키는 대로 우유를 복용하면 돼.”
“그, 그렇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수락은 했지만, 조합원들은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테스트하던 환각제를 자신들더러 먹으라는데 기분 좋을 리 있겠는가?
내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절이 곧 죽음이라는 건 브라함의 환술사를 따를 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이 중에 마도스교를 믿는 신자는 손을 들어라.”
서열 5위인 사무엘과 8위 알론이 슬쩍 손을 올렸다.
“너희 둘은 다른 조합원들에게 마도스교의 교리, 마음가짐, 신도 수, 예배 방법 등, 종교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도록. 예비 신도가 될 형제들인데 마도스교에 대해선 알고 있어야지.”
“아, 그러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두 사람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자신이 몸담은 종교의 교리를 전파한다는 데에 깊은 고양감마저 느꼈다.
“이리 오십쇼. 제가 마도스교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마도스교는 어둠과 파괴의 신인 마도스를 섬기는 종교입니다. 그와 대적하는 신으로는 빛과 복원의 신 엘로스가 있고요.”
지루하다면 지루할 수 있는 교리를, 두 마도스교인이 흥분 가득한 기색으로 전파한다.
강제로 가입해야 하는 예비교도들은 그러려니 듣기만 했고.
하지만 그 모습을 단 한 사람만큼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즈라힐 존스턴, 아니. 아즈라힐로 변장한 지크였다.
‘아주 신났군, 신났어. 마도스교에 대한 정보를 줄줄 읊는 걸 보니. 계획대로 돼서 나야 좋지만.’
지크는 다른 조합원을 부른 직후, 어떻게 마도스교에 대한 정보를 얻을지 고민했다.
의외로 고문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광신도들이 무서운 게 그런 점이잖아. 신념만큼은 누구 못지않다는 점.’
광신도들이 자신의 신을 배반할 리가 없다.
고문을 하더라도 쉽게 입을 열지 않으리라.
마도스교의 신자라는 조합원들도 그런 광신도일지도 모른다.
‘고문 말고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알아내야 해.’
그렇게 생각한 방법이 지금의 방법이었다.
조합원을 부른 뒤 예비 신도를 늘리겠다는 방법.
이러면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자기들이 알아서 정보를 읊을 테니까.
다행히도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게 우리 마도스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교리입니다.”
“끄, 끝이지?”
“예, 끝입니다.”
“어어, 잘 들었어…….”
예비 신도들의 얼굴엔 피곤함이 역력했다.
관심도 없는 종교에 대해서만 30분 이상을 들었으니 지칠 수밖에.
이 자리에 아즈라힐로 변장한 지크가 없었다면 아마 말 못 하게 입을 꿰매 버렸을지도 모른다.
[물건을 배달하며 꿍꿍이 알아내기 완료!]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스탯 700이 증가합니다.]
[보상으로 5차 스킬 숙련도 5,000이 증가합니다.]
[8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7,080/100,000]
주르륵 올라온 보상에 지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디어 퀘스트가 완료됐네.’
시스템도 충분히 정보를 들었다고 판단한 모양.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데 또 다른 퀘스트가 올라왔다.
【메인 퀘스트 : 아즈라힐 존스턴을 죽여라!】
└브라함의 환술사인 아즈라힐 존스턴이 환각제를 테스트하고 헤밀톤 광산을 차지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아즈라힐 존스턴을 죽여 그의 악행을 막으십시오.
<조건>
└아즈라힐 존스턴 처치
<보상>
└스킬 ‘강인함’ 획득
└아이템 ‘환영의 벨트’ 획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