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85화
“그게 뭐지?”
누가 보면 시치미 떼는 거라 생각하겠지만, 지크의 눈엔 다르게 보였다.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리치 드래곤에 대해 모른다고?’
지크는 다시 한번 물었다.
“리치 드래곤 말이야. 너희 12인의 선구자와 연관됐잖아.”
“무슨 헛소린지, 커흐윽!”
각혈하던 아즈라힐의 안색이 시퍼레진다.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죽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자 다급해진 건 지크였다.
“그럼 아공간은? 누구에게 배운 거지?”
“흐흐. 쿨럭.”
아즈라힐은 대답할 마음이 없는지 비릿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떨궜다.
눈빛에 초점이 없는 걸 보니 죽었다.
“하. 그놈 참 입 무겁네.”
숨 쉬지 않는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완료 메시지가 떴으니까.
[아즈라힐 존스턴 처치 완료!]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첫 번째 보상으로 새로운 기본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두 번째 보상으로 아이템이 지급되었습니다. 아이템은 아공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본 스킬 : 강인함]
-효과 : 3분간 물리적 또는 정신적으로 극한의 방어력을 가집니다.
-특이사항 : 강한 외부 자극이 느껴질 때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발동 후 30분의 쿨타임이 있습니다.
강인함은 방어력을 높여주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위험할 때 알아서 발동되는 모양.
‘어느 정도의 효과인진 몰라도 도움은 되겠지.’
지크는 아공간을 열어 아이템도 확인했다.
[환영의 벨트]
-분류 : 허리띠
-효과 : 모든 환영과 환영 속성 마법에 면역, 원하는 복장을 떠올린 뒤 버클을 누르면 [환복] 기능 사용 가능.
-내구력 : 무한
-사용 제한 : 지크 맥러플린 귀속
-설명 : 브라함의 환술사가 사용했던 벨트. 총 13개의 아이템이 존재하며 세트 효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선구자의 의복 세트 효과 (2/13)
-4세트 효과 : ?????
-7세트 효과 : ?????
-10세트 효과 : ?????
-13세트 효과 : ?????
아공간에 들어온 아이템 또한 나쁘지 않았다.
보기엔 평범한 벨트처럼 생겼는데 버클을 누르면 [환복]이라는 기능이 작동한다.
‘원하는 복장을 떠올리면 된다고?’
머릿속으로 상상한 지크가 벨트를 착용한 뒤 버클을 눌렀다.
딸깍-
스르륵.
한순간에 지크의 옷이 아즈라힐이 입던 로브로 바뀌었다.
‘오오, 마치 슈퍼 레인저로 변신하는 느낌이잖아?’
옷감을 만져보니 환영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정말로 바뀐 것인 양 질감이 느껴진다.
‘이러면 변조 스킬과 더불어 복장까지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있겠어.’
변조 스킬로 얼굴과 목소리를 바꾸고 환복 기능으로 옷까지 바꾼다면?
누구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리라.
심지어 아즈라힐로 변장하더라도.
‘보상은 다 확인했고 이제 주변 정리 좀 해볼까?’
지크는 죽은 아즈라힐의 품을 뒤적였다.
이내 통신구 하나가 손에 잡힌다.
‘누구와 연결되는지는 몰라도 가지고 있는 게 좋겠지.’
놈에게서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신분만큼은 확실히 얻었다.
‘이제부턴 내가 아즈라힐이다.’
씨익 웃은 지크가 아즈라힐의 시체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생명체가 아닌 데다 내부의 공간도 넓었기에 잘도 들어간다.
그 후 이쪽을 보고 있는 호세 공작을 의식해 한가지 환영을 설계했다.
아즈라힐이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도망치는 환영이었다.
번쩍!
별안간 터진 빛과 함께 아즈라힐이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본 호세 공작이 눈동자를 키웠다.
“가, 간 건가?”
공작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쉬었다.
솔직한 말로 아즈라힐이 마음만 먹는다면 공작가가 괴멸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만큼 12인의 선구자는 괴물 그 이상이었으니까.
사라진 아즈라힐의 환영을 멍하니 바라보는 척하던 지크가 호세 공작이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지크 경. 괜찮은가?”
“예, 전 괜찮습니다. 하지만 상대를 놓쳤는데…….”
“그건 신경 쓰지 말게! 사라진 게 오히려 다행이야.”
이미 죽었다는 걸 모르는 호세 공작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나저나 둘이 얘기를 나누는 것 같던데……?”
‘역시 보지 못했군.’
지크가 펼친 환영 장막 덕분에 호세 공작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위대한 12인의 선구자가 죽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거다.
“브라함의 환술사가 뭐라고 하던가?”
호세의 물음에 적당히 둘러대기로 한 지크가 생각해둔 거짓말을 줄줄 읊었다.
“저더러 어떻게 환각을 풀 수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해주었죠. 마법 서고에서 우연히 환술에 관련된 책을 보고 독학으로 익혔다고요. 그랬더니 몇 가지 더 질문을 하다가 급한 일이 있다며 가버렸습니다.”
“그게 끝인가? 보복하러 오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예.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환술을 독학했다……? 그래서 내 딸의 환각을 해제할 수 있었던 건가?”
중얼거리는 호세의 얼굴에서 의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딸의 상태가 호전되는 걸 직접 보기도 했고, 아즈라힐이 대화하다가 사라지는 것도 생생하게 목격했으니까.
‘눈으로 본 이상 믿지 않을 수 없지. 내 변명도 그럴듯하게 들릴 테고.’
지크의 예상대로 호세는 끄덕이며 이해하는 눈치였다.
“어쨌거나 한시름 놓았군. 정말로 고맙네, 지크 경. 자네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어.”
“아닙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호세는 다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어떻게 우리 공작가로 텔레포트 할 수 있었나? 좌표는 나와 관계된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모를 텐데…….”
텔레포트 좌표라는 것은 어림짐작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도와 위도, 방향 등, 모든 것을 고려하여 산출되는 값이 좌표였다.
즉, 직접 가보지 않고는 기록이 불가능하다는 뜻.
한마디로 데포르테 공작가에 와본 적이 없다면 텔레포트가 불가능했다.
지크로선 변명이 필요한 상황.
그러나 변명이라면 이미 준비해 둔 지크였다.
“실은 예전에 아버지의 서재에서 기록된 좌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자네 아버지가 누구이길래……?”
“맥러플린 가문의 가주, 제라드 맥러플린입니다.”
“제라드?”
호세의 눈자위가 커졌다.
설마 상대가 마법 명가로 유명한 맥러플린의 자제일 줄은 몰랐기에.
“그러면 자네는…….”
“예. 맥러플린 가의 사공자, 지크 맥러플린이라고 합니다.”
“사공자라면…….”
마법에 재능이 없는 둔재로 알려졌다가 궁정 마법사단에 입단하여 두각을 드러낸, 힘을 숨기고 있던 6서클의 천재 마법사가 아니던가?
뒤늦게 알아봤지만, 여전히 얼굴과 이름은 생소했다.
아직은 지크라는 이름보다 사공자의 명성이 더 높았기에.
“자네가 그 천재 마법사라 불리던 맥러플린의 사공자였군. 그런데 내가 알기로 6서클이라 들었는데 어떻게 텔레포트를……?”
“최근에 7서클이 되었습니다.”
“자네 나이가……?”
“올해로 16살입니다.”
호세의 눈에 경악이 차올랐다.
16살인데 벌써 7서클의 경지에 이르다니.
12인의 선구자에 못지않은 천재라 할 수 있었다.
놀라거나 말거나, 지크는 생각해둔 변명을 이어갔다.
“7서클에 이르면 꼭 써보고 싶은 마법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텔레포트인데 마침 아는 좌표가 아버지 서재에서 봤던 좌표 하나뿐이라 그곳으로 이동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어디인지 알고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줄도 몰랐고요. 본의 아니게 데포르테 공작가로 무단침입한 점, 사과드립니다.”
“아니, 아닐세. 자네가 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하지 않았는가? 나로선 오히려 다행이었지. 자네가 독학으로 익혔다는 환각 마법 덕분에 내 딸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그 점은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네.”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는 걸요.”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는 호세 공작에게 지크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보아하니 자신이 꾸며낸 변명이 먹힌 듯하다.
저렇게 중얼거리는 걸 보면.
“그래서 텔레포트가 가능했던 거였구만. 확실히 맥러플린 대공이 공작가에 찾아온 적이 있었지.”
끄덕이던 호세 공작은 갑작스레 지크의 손을 맞잡으며 재차 감사를 전했다.
“고맙네. 지크 맥러플린 경. 자네가 아니었다면 실리스는 지금쯤…… 후우.”
정말로 고마운지 눈시울을 붉히는 호세 공작이었다.
“딸을 구해준 은인이니 사례를 하지 않을 수 없지. 원하는 게 있으면 말만 하게. 내 뭐든 들어줄 테니.”
“저어, 그러면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말하게.”
“이번 일을 저희 아버지에게 비밀로 해줄 수 있으신지요. 멋대로 서재에서 텔레포트 좌표를 훔쳐 이동했다는 걸 알면 제 입장이 난처해지는지라…….”
부탁을 들은 공작의 눈이 동그래졌다.
뭔가 물질적인 것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생각 외였다.
“그거야 걱정하지 말게. 당연히 비밀로 할 생각이었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공작님.”
“다른 요구사항은 없는가?”
“없습니다.”
정말로 필요 없다.
보상이라면 퀘스트로 이미 충분하리만치 받았으니.
딱히 요구할만한 게 없기도 했고.
‘아, 한 가지 있나?’
정보를 더 얻어야 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마침 호세 공작은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지 지크에게 보답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정말로 원하는 게 없는가?”
“방금 하나 생각났습니다.”
“뭔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방금 상대한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전부 듣고 싶은데…….”
“그야 물론이지. 따라오게. 쉴 수 있는 방도 마련해 줄 테니 가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세나.”
“호의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더 고맙지.”
호세 공작의 호의를 엄청나게 사버린 지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