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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87화 (87/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87화

대련이란 말에 당사자인 지크보다 실리스가 더 놀랐다.

누가 봐도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었기에.

“잭 공자! 이분은 저를 구해주신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분이에요! 그런데 대련이라니요!”

“뭐 어떻소. 나쁜 의도가 아니라 그저 지크 공자의 실력을 보고 싶어서 한 소리인데.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의 의견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소?”

잭이 지크를 똑바로 주시했다.

“어떻소, 지크 공자. 저와 남자 대 남자로서 대련해 보는 건? 그대가 뛰어난 마법사라 하니 호승심이 들지 않을 수 없어서 말이오.”

지크는 당장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잭이라는 사내를 살펴봤다.

‘호승심이 든다는 건 거짓이 아니야. 정말로 나와 힘 겨루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여. 그런데 무슨 의도로 대련하자는 거지?’

질투심 때문이라는 걸 알 리가 없던 지크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성격은 아니다.

“좋습니다. 대련은 어떤 방식입니까? 마법 대련입니까?”

순간 잭의 얼굴에 황당함이 번졌다.

“마법 대련이라니…… 내 가문이 검술 명가라는 걸 모르는군?”

“아, 오러 유저였습니까? 몰랐습니다.”

실은 지크도 알고 있었다.

상대의 심장에서 마나 고리라곤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괜히 아는 척하면 곤란해질까 봐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하지만 방금의 행동이 잭의 마음에 불을 지필 줄은 그도 몰랐다.

“……지금 바로 가시죠. 지크 공자.”

“그러죠.”

“잭!”

실리스가 말리려 했지만, 잭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지크와 함께 연무장으로 떠났다.

안절부절못하던 실리스는 이내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두 사람을 말리기 위해서였다.

* * *

‘대단한 성취야. 16살에 7서클을 이룩하다니.’

호세 데포르테는 집무실에 앉아 딸을 구해준 소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즈라힐에 의해 공작가는 무너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맥러플린 대공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고 싶지만…… 지크 경이 곤란해하니 어쩔 수 없구만.’

이번 일로 데포르테 가문은 맥러플린 가문에게 큰 빚을 졌다.

아니, 정확히는 지크에게 빚을 진 셈이지만.

‘언제 떠날진 모르겠지만 지크 경이 되도록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군. 가능하면 실리스와 눈이 맞을 때까지만이라도…….’

근래에 들어 공작가에는 수많은 구혼자가 찾아왔었다.

그들을 내쫓지 않고 받아준 호세 공작이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정략결혼을 싫어하는 딸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 문을 열었던 것뿐.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어떻게 해서든 지크 경을 사위로 들여야 해. 딸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도 둘이 이어질 수 있게 최대한 자리를 만들어줘야지.’

지크의 재능이 탐나서가 아니라 그 인성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다른 이들과 달리 욕심도 없고 남을 기꺼이 돕는 올바른 마음.

그리고 가문을 살린 장본인이기도 하면서 세기의 천재라 불릴만한 재능까지.

뭐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라도 사위를 고르라면 두말하지 않고 지크를 고를 것이다.

딸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보러 가지 않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크 경과의 인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정신 차리자마자 지크 경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갔다니.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할 수야 없지.’

어쩌면 실리스가 지크 경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며 집무를 보던 그때였다.

“아버지! 저 실리스예요!”

“들어오거라.”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실리스를 향해 호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지크 공자와 이야기는 잘하고 왔…….”

“아버지가 좀 말려주세요!”

대뜸 소리치는 딸 아이의 표정엔 왜인지 다급함이 가득했다.

“말려달라니? 누굴 말이냐?”

“잭 공자 말이에요. 지크 공자에게 뜬금없이 대련 요청하더니 연무장으로 데려가잖아요!”

“뭐?”

가문을 지켜준 중요한 손님한테 무례하게 대련 요청이라니?

놀란 호세 공작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다. 바로 가자꾸나!”

* * *

잭 라인하르트는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검사였다.

자신의 가문과 아버지를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기도 했고.

그렇기에 마법사를 상대로 진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럴만한 실력도 있었고.

‘16살에 7서클이라고? 어린 나이에 대단하네. 하지만 그것뿐이야.’

상대가 마법 쪽으로 천재라면 자신은 검술의 천재였다.

21살에 벌써 오러 마스터 하급에 이른 자신이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7서클 마법사와 대등한 경지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대련을 청한 거지. 7서클 마법사는 전에도 이겨본 적 있으니까.’

오러 유저라고 검사끼리 대련만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마법사와의 대련을 더 중시하는 게 요즘의 풍조다.

오러 유저보단 마법사를 상대할 일이 더 많았으니까.

‘마법사를 상대하는 법은 숱하게 훈련해 왔어. 7서클이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물론 그런 이유만으로 대련을 청한 것은 아니었다.

실상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더 컸다.

‘실리스가 보는 앞에서 이 녀석을 꺾어버리면 그녀도 깨닫겠지. 자신을 지켜줄 사람으로는 내가 더 적합하다는걸.’

그런 음흉한 생각을 하는 사이, 연무장에 다다랐다.

호위병의 검술 훈련을 하는 곳이니만큼 한쪽에는 목검이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는 잭에겐 필요 없었지만.

목검에는 시선도 주지 않는 모습을 본 지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기는 들지 않으실 겁니까?”

“무기? 나한테 무기는 필요 없소.”

잭이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손을 들었다.

츠츠츠츠-

순백의 빛이 손을 감싸더니 기다란 검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나에겐 이 오러 블레이드가 있으니.”

“오러 마스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잭이 픽 실소를 흘렸다.

“몰랐나 보군. 내가 괜히 7서클을 상대로 대련하자고 했겠소? 그만한 수준이 되니 요청한 것이지.”

“오러 마스터 하급이십니까?”

“용케도 알아보셨군. 아니, 찍은 건가? 어쨌든 얕볼 수준은 아니니 긴장해야 할 거요. 까딱했다간 한군데 잘릴 수도 있으니 말이오.”

“실전처럼 하자는 소리입니까?”

“그야 당연하지. 설마 내가 목검으로 설렁설렁할 거라 생각한 거요? 대련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렇게는 재미없지.”

지크가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잭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니 힘을 아낄 생각일랑 하지 마시오. 그대가 날 죽이더라도 탓하지 않을 테니.”

“그 말은 저 역시 다치더라도 탓하지 말란 소리입니까?”

“마법사라 그런지 이해가 빨라서 좋군.”

대련이란 모름지기 약자보다 강자의 대련이 더 위험하다.

까딱 실수했다간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그건 지크도 알고 있지만 솔직한 말로 긴장되진 않았다.

오러 마스터 하급이라면 중급인 자신의 상대가 될 리 없었으니까.

마법을 쓰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궁금하네. 오러 마스터와의 대련은 어떨지.’

매번 마법사만 상대해 봤지 오러 마스터와 싸워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지크 입장에선 한낱 유흥에 지나지 않았지만.

‘적당히 봐주면서 상대해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는 그때.

【돌발 퀘스트 : 마법이 아닌 오러로 승리하기】

└곧 있으면 바이소 왕국의 잭 라인하르트와의 대련이 시작됩니다.

└마법을 쓰지 않고 오러만 사용해 대련에서 승리하십시오.

<조건>

└오러를 사용해 대련에서 승리하기

<보상>

└랜덤으로 스탯 800 증가

└5차 스킬 숙련도 6,000 증가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급작스러운 퀘스트가 나타났다.

‘마법으로 이기지 말고 오러로 이기라고?’

시스템은 지크가 힘을 숨기기보다 드러내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마법과 오러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이잖아.’

이미 마법사로 알려진 지크가 오러를 사용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지는 뻔하다.

‘아마 괴물 보듯 쳐다보겠지. 아니면 전설의 마검사가 등장했다며 찬양하거나.’

이미 마검사로 이름을 날린 지크지만, 아직 데포르테 공작가까진 소문이 전해지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진 몰라도 퀘스트대로 한다고 손해 볼 것은 없지.’

자신보다 주변 상황을 잘 아는 존재가 바로 시스템이다.

보상을 주고 성장을 돕는 시스템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

요모조모 따져봐도 오러를 사용한다고 상황이 난처해질 것 같지도 않고.

‘변명이라면 드래고니안이 있으니까.’

퀘스트를 수락한 지크가 잭을 바라봤다.

“뭐 하고 있소? 지팡이는 안 꺼낼 거요?”

“지팡이는 필요 없습니다.”

그 당돌한 말에 잭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 자기도 자존심 있다 이건가? 아니면 지팡이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얕보였다는 뜻?’

뭐가 됐든 심기가 좋지 않다.

마법사에겐 지팡이가 필수적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그랬다.

“마음대로 하시오. 뭘 하든 그쪽만 손해일 테니. 그럼 연무장으로 가서 대련 준비를…….”

“잭 공자!”

벼락같은 부름에, 잭이 말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장인어른?”

호세 데포르테가 뭐가 급한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그 뒤에 실리스 공녀까지도.

아무래도 그녀가 아버지에게 일러바친 모양이다.

‘뭐, 잘 됐지. 관중이 없어서 적적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장인어른이 될 사람과 예비 약혼녀에게 어필할 기회였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림이다.

장인어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버럭 호통을 쳤지만.

“지금 뭐 하는 건가? 가문의 손님에게 멋대로 대련을 청하다니! 그렇게 안 봤는데 예의가 없군!”

“장인어른. 그게 아니라…….”

“누구 마음대로 장인어른인가?”

호세 공작의 호통에 잭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생각보다 더 흥분한 장인어른의 모습이 심히 당황스러웠다.

“지, 진정하시고 제 얘기를 들어보시죠.”

“당장 대련을 취소하게! 우리 가문의 은인에게 이 무슨 무례인가?”

“아니, 대련이 저 혼자 하겠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기 싫었다면 지크 공자도 거절했겠지요.”

“그렇다 해도 편히 쉬어야 할 손님을 어찌……!”

그때 보다못한 지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퀘스트를 위해서라도 이 대련은 성사되어야 하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공작님.”

“정말 괜찮은가?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좋네.”

“아닙니다. 심심했는데 몸도 풀고 잘 됐죠.”

‘뭐라고?’

지크의 대답은 잭의 호승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호세 공작까지 열렬히 지크 편을 들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좋아. 어디 실력 좀 보자고, 마법사 친구.’

내심 이를 갈던 잭이 속내를 감추며 호세 공작을 돌아봤다.

“보셨죠? 이제 대련해도 문제없죠?”

“으음… 지크 경이 허락했으니 괜찮다만…….”

혹시나 지크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말끝을 흐리는 호세 공작이었다.

“지크 공자. 연무장으로 갑시다! 관중도 생겼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소. 하핫!”

얼른 지크를 때려눕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 잭이 서둘러 연무장으로 향했다.

지크는 잭을 따라갔고 실리스는 그 뒷모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괘, 괜찮을까요? 저러다 지크 공자님이 다치기라도 하면…….”

“걱정 말거라. 지크 경은 7서클의 마법사다. 쉽게 다칠 일은 없지. 행여나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나설 거고.”

8서클인 아버지가 나서준다니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약혼자로 점찍어둔 사람의 안위가 걱정되는 실리스였다.

“지크 공자. 그럼 시작하겠소.”

“예.”

잭은 아까 보였던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냈다.

“마나 실드를 최대한으로 전개해야 할 거요.”

“마나 실드는 쓰지 않을 겁니다.”

“뭐요?”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마나 실드를 쓰지 않겠다니.

방어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방어를 포기한다면…… 설마 무영창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냥 허세 잡는 거겠지. 실리스랑 가주님도 지켜보고 계시니.’

하지만 잭은 이어진 지크의 행동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영창보다 더한 것을 목격하고 말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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