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88화
츠츠츠츠-
“저, 저건!”
“……!!!”
지크의 손아귀에서 뻗어 나온 백색의 빛줄기가 모양을 형성했다.
그것은 분명하게도 검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라 불리는, 오러 마스터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지켜보던 데포르테 부녀는 그 모습에 두 눈을 부릅떴다.
“아, 아버지. 저, 저건 오러 블레이드 아니에요?”
“그, 그렇구나. 심지어 잭 공자의 것보다 큰…….”
“…….”
지크의 기행을 눈앞에서 마주한 잭도 관중들 못지않게 놀라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마법사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한다고?’
그것도 자신의 것보다 더 굵고 기다랗다니.
‘저 정도 크기의 오러 블레이드라면 최소 오러 마스터 중급은 된다는 건데…….’
하급인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이도 어린 주제에 성취는 검의 천재인 나보다 뛰어나다고? 게다가 마법까지 사용하고?’
그때 잭의 귀에 부녀의 대화가 들려왔다.
“어떻게 마법사가 오러를 운용할 수 있는 거예요?”
“나, 나도 모르겠구나. 전설에서나 존재하던 마검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인데…….”
‘마검사?’
잭은 곧바로 헛웃음을 지었다.
전설의 존재인 마검사가 눈앞에 있을 리가 없다.
차라리 드래곤이 존재한다는 말을 믿겠다.
마법과 오러는 공존할 수 없는 게 상식 아니던가?
‘분명 오러 마스터인데 마법사라고 거짓말한 걸 거야. 아니면 나한테 환술을 걸고 있다던가.’
지크가 환술을 배운 덕분에 실리스를 살렸다는 이야기는 시녀에게서 들었다.
‘나와 비롯해 지켜보는 모든 사람을 속이고 있는 거야. 그게 아니고선 말이 안 돼!’
하찮다.
대련에서 같잖은 속임수를 써서 자신을 동요시키려 들다니.
‘안 됐지만 난 속지 않아.’
잭은 더욱 싸늘해진 눈빛으로 발을 박찼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반응할 새도 없었는지 멀뚱히 서 있는 지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피하지 않으면 죽는다!’
잭의 오러 블레이드가 지크의 상체를 노렸다.
캉!
청아한 소리와 함께 잭의 일격이 막혔다.
마나 실드가 아닌, 오러 블레이드로 막아낸 거였다.
그그그그-
부딪친 두 오러 블레이드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크기도 굵기도 월등한 상대의 오러 블레이드를 잭이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미, 밀리고 있다. 힘겨루기에서.’
잭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 오러 블레이드를 보며 진땀을 뺐다.
‘크윽! 지, 진짜라고? 환상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힘으로 밀어내는 지크의 오러 블레이드에, 잭은 자신의 모든 오러를 쏟아부었다.
“하아아아압!”
그러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상대가 월등한 탓에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밀리는 건 오히려 이쪽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오러 블레이드의 크기야말로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이니까.
“질 수 없어. 질 수 없다고!!!”
소리친 잭은 순간적으로 검을 빼며 몸을 돌렸다.
힘겨루기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기습적으로 하단을 노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공격.
하지만 지크는 힘만 강한 것이 아니었다.
휙!
예상했다는 듯 하단 공격을 피하며 잭의 목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찔렀다.
멈칫.
“끝난 것 같네요.”
“…….”
주륵-
약간의 피가 잭의 목젖을 타고 흘러내렸다.
1㎝라도 더 깊었으면 영락없는 황천행이었다.
잭의 완벽한 패배였다.
‘내, 내가…… 검의 천재라 불리는 내가 지다니. 그것도 고작 일합에…….’
잭은 현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목젖에서 흐르는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괜찮으십니까?”
“…….”
“잭 공자?”
“아, 괜찮소.”
지크의 물음에 뒤늦게 정신 차린 잭은 손등으로 목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환상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생생했다.
‘차라리 환상이었으면 좋겠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참하게 패했다.
그래서인지 잭은 지크를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짙은 굴욕감과 모멸감을 느낄 뿐.
“잭 공자! 괜찮은가?”
구경하던 데포르테 부녀가 잭을 걱정하며 달려왔다.
그러나 관심도 잠시일 뿐.
지크에게 궁금한 걸 묻기 시작한다.
“지크 경. 도대체 어떻게 한 건가? 그대는 7서클의 마법사라고 알고 있었거늘.”
“지크 공자님. 혹시 마법사가 아니라 오러 마스터셨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지크는 침착했다.
변명이라면 이미 생각해둔 뒤였기에.
“두 분의 질문에 답하자면 저는 마법사이기도 하고 오러 마스터이기도 합니다.”
“서, 설마 전설의 마검사라도 된단 말인가?”
“검과 마법을 익힌 사람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오러와 마법은 공존할 수 없는 게 기본 상식인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어쩐지 가능하더라고요.”
제라드와 달프레드에게 그랬던 것처럼 드래고니안이라는 변명을 댈까 하던 지크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드래고니안이나 마검사나 전설적인 존재라는 건 똑같았으니까.
‘굳이 오해를 늘릴 필요 있나? 둘 중 하나라고만 하면 됐지.’
날 때부터 오러와 마법을 동시에 익힐 수 있었다.
나도 이유는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성의 없는 변명이었지만, 증거가 명확했기에 사람들로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과거에 마검사가 실존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인식이 한몫했다.
“허허, 전설로만 전해지던 마검사의 재능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그야말로 세기의 천재가 따로 없구만.”
“정말로 대단하세요, 공자님.”
민망하도록 치켜세우는 두 부녀였지만 한 사람만큼은 조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존심이 있는 대로 박살 난 잭이었다.
‘젠장! 젠장! 젠자아앙!!!’
검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강한 그였다.
그랬기에 이번 패배가 그 어느 때보다 쓰라렸다.
알고 보니 상대가 마검사라는, 전설 속의 괴물이었다지만 그럼에도 위안이 되진 않는다.
뭐가 됐든 패배한 건 패배한 거니까.
‘검의 천재인 내가 두 번이나 무력하게 지다니…….’
한 번은 아즈라힐에게, 한 번은 지크에게.
터무니없는 괴물을 둘이나 마주하다니.
아버지였다면 운수 좋은 하루라며 웃고 넘어갔을 테지만, 잭은 그와 달리 속이 넓지 못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패배라는 굴욕뿐.
‘빌어먹을! 실리스에게 꼴사나운 모습만 보이고 말았잖아…….’
잭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지크는 퀘스트 보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러를 사용해 대련에서 승리하기 완료!]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스탯 800이 증가합니다.]
[보상으로 5차 스킬 숙련도 6,000이 증가합니다.]
[8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28,080/100,000]
‘오케이. 보상 달달하고.’
저도 모르게 웃으려던 지크는 순간 상대를 보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누가 봐도 잭은 기분 좋은 얼굴이 아니었으니.
‘어지간히 충격이었나 보네. 하긴 검술 명가라 했으니 검에 대해서만큼은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겠지.’
그런 상대를 마법도 아니고 검으로 이겨 버리다니.
충격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일.
한데 정말로 충격받았는지 잭이 이상 행동을 했다.
언제 꿍했냐는 듯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게 아닌가?
“하하하! 이거 깔끔하게 저버렸소, 지크 공자.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오러 마스터 중급의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니. 믿기지 않은 나머지 환술로 속임수를 쓰는 줄 알았지 뭐요?”
“그렇습니까? 본의 아니게 마검사임을 속여서 죄송합니다.”
“아니오. 마검사라는 걸 알았더라도 궁금해서 먼저 대련하자고 했을 것이오. 어쨌거나 패배를 인정하리다.”
쿨하게 인정하는 듯했지만, 지크는 보았다.
잭의 눈빛이 독기로 일렁거리는 것을.
“내 마검사는 처음 보는 것이고 신기하기도 하여, 지크 공자를 우리 가문으로 초대하고 싶은데…… 어떻소?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가문에 방문하는 건?”
“바이소 왕국으로 말입니까?”
“그렇소. 데칸과는 동맹국이니 국경을 넘는 데 따로 필요한 절차는 없소. 가는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가문 근처에 텔레포트 게이트가 연결되어 있으니 도착이야 순식간이지.”
난데없는 초대.
지크는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하려고 했다.
뭐하러 남의 집을 방문한단 말인가?
‘뭐 그리 친한 사이라고.’
솔직히 말해 잭은 오늘 처음 본 사이가 아니던가?
더구나 시커먼 의도로 부른 것이 다분하기에 넘어갈 이유는 없다.
아무런 이득도 없었고.
하지만, 시스템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메인 퀘스트 : 라인하르트 가문 방문하기】
└5군주라 불리는 철혈의 군주의 아들인 잭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가문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초대를 수락하고 인근 동맹국인 바이소 왕국의 라인하르트 가문에 들어가 철혈의 군주를 만나십시오.
<조건>
└철혈의 군주 만나기
<보상>
└스킬 ‘광폭화’ 획득
‘뭐? 5군주?’
지크는 자신이 헛것을 본 건 아닌지 퀘스트 내용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봤다.
‘잭 라인하르트가 5군주의 아들이었어?’
검술 명가라곤 들었지만, 이 정도로 유명한 가문일 줄은 몰랐다.
‘시스템은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일부러 오러를 이용해 대련하도록 시킨 거고.’
잭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아놔야 독기를 품고 라인하르트 가문으로 초대할 거라고, 시스템은 예측한 것이다.
그래야 지크가 5군주라는 철혈의 군주와 대면할 수 있을 테니까.
‘잭 말고도 시커먼 속내를 가진 사람이 여기 또 있었네. 아니, 사람이 아닌가?’
어쨌든 수락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5군주와는 언젠가 한 번 만나보고 싶었으니까.
‘시스템이 5군주를 주선해 주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니…….’
지크가 퀘스트를 수락하는 사이, 잭이 물었다.
“어떻소? 다른 왕국의 검술 명가는 어떤지 보고 싶지 않소?”
음색에서 조급함이 느껴진다.
행여나 초대를 거절할까 봐 걱정하는 눈치.
‘진짜로 뭔 꿍꿍이가 있나 보군.’
평소라면 넘어가지 않겠지만, 퀘스트 때문에 속아주는 지크였다.
“확실히 관심이 생기네요.”
“그렇소? 그럼 오겠다는 거요?”
“예. 초대해 주신다니 기꺼이 응해야지요. 다만 지금은 안 됩니다.”
“그럼?”
“며칠만 기다려주시죠. 헤밀톤 령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요.”
그 말에 데포르테 공작이 끼어들었다.
“혹시 무슨 일로 가는지 물어도 되겠나? 헤밀톤 백작은 나와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말일세.”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요. 본의 아니게 헤밀톤 백작께서 사건에 휘말리셨으니까요. 그리고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고요.”
“그렇군. 그러면 나와 함께 가는 게 어떻겠나? 백작은 내가 소개해 주지.”
“저도요. 저도 같이 갈게요.”
호세 공작에 이어 실리스까지 손을 들고 나서자, 지크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달고 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뭐, 상관없나?’
지크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알겠습니다. 시국이 급하니 지금 바로 가시죠.”